회원작품
아버지 / 이정화
페이지 정보

본문
아버지
이 정화
가지치기를 막 끝낸 가로수들에게서는
결연한 냄새가 난다
야자수 그늘아래 아버지
검은 라이방의 아버지
나트랑 해변 가 빨간 수영복의 아버지
종전직전 오촌조카가
회사 돈을 들고 밤도망을 친 후
섣달그믐이면 이발을 하고
유서 쓰듯 제문을 써 내려가던 아버지
싸구려 면도용 크림통속의 아버지
나무 아래 수북이 쌓여있는 잘라낸 가지들은
한 때 허공을 뒤흔들던 나무의
무한증식인 팔과 다리이다
팔 다리 다 쳐내고 맨 몸으로 다시
일어서려던 아버지의 결심이
길가에 꼿꼿하게 도열해있다
다녀오신 일이 잘 해결 되었는지
프라이드치킨을 양손에 들고 계신다
<현대시학 2006. 10월호>
- 이전글내성천 하늘 위에 북두칠성 떠 있었다 06.11.03
- 다음글개미 외 1편(10월 월례회 용) 06.10.20
댓글목록

김승기님의 댓글
김승기 작성일이 시인님 반갑습니다. 전지라는 것은 너무 무성한 자신을 치는 작업이라는 생각을 저도 하곤 합니다. 아버지와 연관되어 잘 구성된 시 한 편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 란에서 자주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남태식님의 댓글
남태식 작성일
프라이드치킨을 양 손에 들고 계시는 아버지의 모습에<br />
먼지 묻은 찐 달걀을 주머니에서 꺼내어 엄마께 드리는<br />
제 아버지의 모습이 문득 떠오르네요.<br />
찐달걀은 잡수지 않으시고 생달걀만 잡숫는 식성이셨는데<br />
엄마는 그 반대셨는데 매번 술안주로 나온 찐달걀을 챙겨서<br />
엄마께 드리는 그 모습이 아련하게 그립습니다.<br />
아버지 금년 제 나이에 먼 산 떠나셨거던요.<br />
시 잘 읽었습니다. 건필을.

이정화님의 댓글
이정화 작성일가족이야기를 쓰기가 왜 이리 어려운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