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泣いて行くウェルテルに逢ふ朧かな　(紅葉)

울며 지나는
베르테르를 만난
안개 낀 밤거리

코요(1868-1903)

오보로(朧)는 봄날의 따스한 공기로 인해 안개가 낀 듯한 밤 풍경을 말합니다. 울며 지나는 청년이 있으니 시점은 아마 늦은 밤, 혹은 새벽의 풍경이 어울릴 듯합니다.

베르테르는 잘 알다시피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의 베르테르입니다. 일본에서는 '젊은 베르테르의 고뇌(若きウェルテルの惱み)'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베르테르도 일본식 발음이니 벨테르가 더 가깝겠지만 굳어져버렸으니 그냥 씁니다. 우리나라에도 ‘목련 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노라.’는 가곡이 있을 정도로 베르테르는 사랑에 빠진 슬픈 청년의 상징과도 같습니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많은 여자의 마음은 설렌다고 합니다. 따뜻하고 찬란한 봄볕을 받으면 새로운 사랑의 꿈이 들판의 아지랑이로 피어오릅니다. 정혼자가 있는 로테와 같은 처지의 여자가 그런 마음에, 불쑥 주위에 알고 지내던 어떤 청년에게 은근한 미소를 보냈는지도 모릅니다. 청년은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지만 그녀는 결코 어느 선 이상으로는 허락하지 않습니다. 현실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기 때문이겠죠.  여자의 그런 냉정한 이성은 또 오히려 지고한 매력으로 받아들여져 청년은 더욱 괴롭습니다. 고통을 달래기 위해 매일 술을 먹고, 오늘도 밤거리를 헤매며 여자의 어떤 말 하나 표정 하나를 생각하며 그녀의 마음을 추론하여 보지만 여전히 알 듯 모를 듯한 애매모호함은 밤안개가 되어 청년의 얼굴에 차갑게 와닿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찌할 수 없는 안타까움, 답답함에 가슴은 터질 것만 같습니다. 자꾸 눈물이 납니다. 남들이 볼까 저어하지만 밤이니 그 억제력도 느슨해져 눈물은 그대로 흘러내리고 맙니다.

작가 오자키 고요는 우리나라에도 유명한 장한몽(속칭, 이수일과 심순애)의 원작 금색야차(金色夜叉)를 쓴 사람입니다. 줄거리는 다 아시리라 생각하니 생략합니다만, 원작에서, 마음이 변한 여자를 떠나며 남자가 남긴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오늘은 1월17일. 내년 바로 이 날이 되면 내 눈물로 달도 흐려질 것이야. 달이 흐려지면 내가 어디선가 너를 원망하며 오늘 밤처럼 울고 있다고 생각해줘.”

금색야차의 이 남자 또한 울며 거리를 지나는 베르테르일 것입니다. 돈에 눈이 멀어 떠나간 여자에 대한 원망, 여자를 잡을 수 없는 초라한 자신에 대한 한탄으로 청년은 눈물을 뿌리며 밤거리를 걸어갑니다. 슬픔의 짙은 안개속에 달은 희미하게 떠 있습니다. 그를 쳐다보고 걸음을 멈춘 작가 역시 또 한 사람의 베르테르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뿌연 달이 뜬 도시의 밤거리를, 베르테르들이 취한 몸 비틀거리며 눈물을 흘리며 지나가고 있을 것입니다.

베르테르가
술 취해 지나가는
롯데백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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