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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떠난 후 책을 펼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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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떠난 후 책을 펼치니
한 문장이 실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꽃은 어떻게 피는가를
겨우 읽었을 때 문장부호가 사라졌다. 물음표였는지 느낌표였는지
알아채기 전에 문장이 눈을 감은 것이다.
말줄임표는 맨 밑줄 거기 있었다. 그가 채 거두지 못한 꽃씨
일단 나는 나의 명치끝에 돌무더기를 치우고 꾹꾹 박았다.
눈감은 문장에게 물으러 가봐야 한다.
문장 사이로 걸어 들어가자 수없이 다녔던 길이었으나
그가 완벽하게 지웠으므로 나는 길을 잃어야만했다.
그새 책 속의 계곡으로 해는 졌다.
그가 안개등처럼 박혀 있는 눈동자를 끄고
이젠 나의 두 발과 두 손으로 가서
나의 두 발과 두 손에, 막 발아를 시작한 꽃씨의 탯줄을 감아올릴 것이다.
둥근 온점이 수없이 매달린 꽃을 피워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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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김태일님의 댓글
김태일 작성일
<p>모처럼 리토피아에 로그인하여 김춘 시인의 시를 읽고 있습니다. </p>
<p>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김춘 시인의 시를 읽으면 </p>
<p>뭔가 신비한 느낌에 사로잡혀 몽롱한 미지의 세계로 빠져드는 것 같네요.</p>
<p>계속 정진하셔서 큰 시인으로서의 자질을 갖춰나가시길 바랍니다. (鎰)</p>

김춘님의 댓글
김춘 작성일<p> 항상 용기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막 용기가 생깁니다^^</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