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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24년 문학나눔도서보급사업에 손현숙시집 '멀어도 걷는 사람'(리토피아포에지156)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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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24년 문학나눔도서보급사업에 손현숙 시집 '멀어도 걷는 사람'(리토피아포에지156)이 선정되었습니다. 이 시집은 올해 초 제14회 김구용시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합니다.

멀어도 걷는 사람
당신의 왼손은 나의 오른손이다 우리는 손을 잡고 반대쪽으로 걷는다 가끔은 당신을 잃어버리기도 하는데, 들판을 가로지르는 나무들 하얗게 손사래 친다 생각난 듯, 이름을 부르면 모르는 얼굴이 뒤돌아다 본다
당신은 어깨를 찢어서 부글거리는 흰피, 휘파람을 불면 꽃들은 만발한다 가을 개 짖는 소리는 달의 뒷면에서 들려오고 눈을 뜨지 못한 강아지는 꿈 밖으로 나가서야 젖꼭지를 물 수 있는데
담장밖에 둘러쳐진 오죽의 둘레는 그림자가 없다 대나무 숲으로 돌아가야 이름이 돌아오는데, 당신은 멀어도 걷는 사람 도무지 말을 모르겠는 여기, 눈빛으로 기록된 말들 속에서 없는 당신은 다정하다
야생이 돌아왔다
유연하고 견고한 저 발바닥의 곡선은 개양귀비의 언덕과
강기슭을 거닐던 눈부신 저녁의 한 때를 기억한다
우리에 갇혀 있었던 조 씨 할아버지의 공작새
모이를 주는 사이 문틈으로 탈출했다는
소문은 아무래도 잘못이다 탈출이 아니라 본능이다
처음부터 가팔랐던 제 속의 벼랑,
거스를 수 없는 야생의 방식 앞에 내가 서 있다
중문을 지나 오색의 꼬리를 거느린 채 마당으로 들어오는
조용하고 태연한 저 몸의 권력,
나는 혼자 비상을 꿈꾸며 날개 밑에 공기를 품듯
입 안에 가득 공작새, 이름을 지어 불러본다
누가 저 유장한 말씀 앞을 가로설 수 있을까
난간에 뿌리내린 이름 모르는 식물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람을 따라나선다, 나도
공작새처럼
배를 밀 듯 딱 한 발짝씩 앞으로 나가는
목소리도 아니고
기척도 없는 달의 궤도처럼,
저 몸짓은 처음부터 나의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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