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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아라작품상 수상자 김동호 시인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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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아라작품상 수상자 김동호 시인, 수상시집 『알맞은 어둠과 따뜻한 황홀』(리토피아 발행).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가 주최하고 계간 아라쇼츠가 주관하는 제9회 아라작품상 수상자는 김동호 시인(수상시집 『알맞은 어둠과 따뜻한 황홀』)으로 결정되었다.
김동호 시인은 전남 순천 출생으로 1998년 계간 《순천문학》 추천을 받아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별들은 슬픈 눈을 가졌다』, 『기억의 우물』이 있다.
수상작품
망각의 힘
망각은 얼마나 넓고 잔잔한 바다인가
기억이 퍼붓는 폭풍우 속에서
회한의 멀미를 하다
비굴한 삶 앞에 무릎 꿇고
토악질하다 끝내
모든 과거를 토해내지 못해 떠밀려온
고요의 늪
텅 빈 한여름 밤의 끈끈한 평온 그래,
망각은 얼마나 깊고 애잔한 공허인가
망각은 얼마나 크고 어두운 그늘인지
종일 햇볕 한 조각 들지 않은 음지에서
공벌레처럼 웅크리고 있던 후회 속에서
추억의 곰팡이를 먹고 자란 슬픔마저
지워져 가는 것이 싫은데 그대 내게
없었던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 싫어
떠난 빈 가슴에 난 슬픔을 채웠는데
그댄 나 떠난 빈 그늘에 무얼 채웠을지
망각은 청춘보다 헛되이 흐르는 밤,
무심한 밤이 참 덧없다
당신, 홍매화
겨울이 채 가기도 전에
그대 영영 멀어지기 전에 이렇게
활짝 웃어도 될까
싸늘히 지는 놀이 가슴 저미는데
질리도록 빨갛게 소리 질러도 될까
겨우내 뜨거운 피 뿌리에 감추고 견딘
인고의 시간이 너무 길었나
취한 척 속없이 해롱대는 홍매화
벌써 찬바람에 생을 맡기고 원통하다
홀연히 꽃잎 지려는가
홍매화 피어나 그대 그리운 날엔
추억을 따라가며 저녁놀보다 붉게 울다
기어이 충혈된 눈으로 지친 척
미친 척 소리 내어 섧게,
서럽도록 웃어도 될까
달빛 하소연
이제는 얘기하고 싶다
얼마나 먼 길을 돌아왔는지
태양의 그림자 밟으며 뒤따른 시간
언제나 그대가 가린 만큼 눅눅한
그늘로 남아야 했던 숱한 밤에 대해
이야기해야겠다
그대 벗어난 지금 비로소 빛으로
빛날 수 있음을
골수에 사무친 빛만으로도
그대 앞길 밝힐 수 있음을
선정평
세상의 멀미를 달래주는
제9회 ‘아라작품상’에 시집 『알맞은 어둠과 따뜻한 황홀』을 상재한 김동호 시인을 선정한다. 그는 어려운 시어나 알쏭달쏭한 관념어로 독자들을 현혹하거나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자분자분 들려주는 그의 목소리가 느슨하지도 않다. 문학이 인간을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문학은 최후까지 우리 곁에 남아 모순투성이인 인간 삶을 까발리고 또 위무해야 할 것이다.
현대인들은 세상과 세월과 사람에 치여 멀미한다. 김동호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알맞은 어둠과 따뜻한 황홀』은 ‘그리움’이라는 멀미에 시달리는 현대인을 위무한다. 그는 시집 서문에서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혀를 갖고 싶다”고 했다. 그가 달싹달싹 호명하고 싶은 그리움은 자신을 위무하려는 게 아니다. “사람들의 내밀한 상처로 들어가/위로의 말 한마디 살갑게 속삭여 주”는 것이다. 그가 불러낸 그리움들이 “가슴속 아픈 못을 빼고/그 자리에” “안식과 평온의 풀씨 한 줌 뿌려”줄 것이다. 인생이란 먼 길에 멀미는 어쩔 수 없다. 이제 울렁거리던 그리움들을 다 토해냈으니 먼 길 잘 갈 수 있겠다. 수상을 축하한다./장종권, 남태식, 손현숙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해
기대하지 않았던 수상 소식을 들었다. 대단히 영광스럽다. 학창시절 백일장대회에서 상을 받은 후 글로 상을 받는 것은 처음이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든다. 하지만 이내 넋이 빠진다. 상은 분명 칭찬인데 왜 이리 차갑고 깊은 물에 빠진 기분일까? 가슴이 답답하면서 아득할까? 걱정스럽고 불안하다. 헤엄도 칠 줄 모르는데….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내 정신은 춤을 추는 게 아니라 허우적대다 흐느적거린다. 연체동물이 되어 흐물거린다.
1998년 계간 《순천문학》 여름호에 공식적으로 처음 작품을 발표했다. 매호마다 거르지 않고 3~5편씩 실리는 시를 주변 사람들이 좋다고 해주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설령 공치사일지언정 충분히 만족했다. 특히 지금은 작고하신 희곡작가 정조 선생님의 따뜻한 칭찬들이 오늘까지도 내가 시를 쓰게 해주셨다. 그렇게 28년 동안 나만의 세상, 알맞게 어둡고 따뜻한 골방에 틀어박혀 시집을 3권째 발간했다. 그래서 수상 소식은 방안퉁수인 나를 집 밖으로 불러내는 소리로 들려 두렵고 떨린다. 새가슴보다 작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낯선 세상으로 나가자니 조마조마하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글로 상을 받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그리고 중고교 문예대회 심사위원으로 위촉받아 간 적도 몇 번 있다. 그때 작품의 우열보다는 심사위원들의 호불호가 크게 작용한다는 사실을 느꼈다. 많이 부족한 졸작들이지만, 아주 사소하게라도 심사위원님들의 취향에 눈에 띄었다는 사실에 내심 기쁘다. 그리고 고맙다. 고개 숙여 정중히 감사드린다.
내 남은 생은 사랑에 미친 시인처럼 살아야겠다./수상자 김동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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