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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식 시집 '소이부답笑而不答'(리토피아포에지·143)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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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토피아포에지·143
소이부답笑而不答
인쇄 2023. 5. 4 발행 2023. 5. 10
지은이 강우식 펴낸이 정기옥
펴낸곳 리토피아
출판등록 2006. 6. 15. 제2006-12호
주소 21315 인천광역시 부평구 평천로255번길 13, 903호
전화 032-883-5356 전송 032-891-5356
홈페이지 www.litopia21.com 전자우편 litopia999@naver.com
ISBN-978-89-6412-179-5 03810
값 14,000원
1. 저자
강우식 시인은 1941년 강원도 주문진에서 출생하여 1966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사행시초’(1974), ‘사행시초·2’(2015), ‘마추픽추’(2014), ‘바이칼’(2019), ‘백야白夜’(2020), ‘시학교수’(2021), ‘죽마고우’(2022) 등이 있다. 성균관대학교 시학교수로 정년퇴임했다.
2. 시인의 말
지은이로부터·1
흔적
아파트에 살며 반려견을 끌고 외출을 한다. 두어 발자국 가서는 나무 밑에 왼쪽 다리를 들고 보란 듯이 오줌을 찍 갈기고 가다 섰다를 반복한다. 자기가 발 딛은 영역을 표시하는 개짓거리에도 배울 것이 있구나. 매년 시집을 내는 것도 삶의 흔적을 한 줄 긋고 가려는 애잔한 몸짓일 뿐이다.
2023년 하루를 살더라도 나다운 삶을 바라며
강老平우식 識
지은이로부터·2
나쁜 놈
나는 ‘나쁜 자식’이다. 내 면전에서는 차마 말 못하고 없는 데서 아내도 참다 참다 못해 “나쁜 색기色氣”라 욕했으리라.
이 산문시 시집에는 가난하기 이를 데 없는 나를 만나 어떡하든지 살아보겠다고 콩나물 몇 십 원어치를 산 것도 가계부를 쓰던 아내가 있다. 전차가 구르던 60년대에 마포 공덕동 좁은 골목길을 따라 한옥 대문만 허풍스레 우뚝한 내 시의 스승집으로 가던 나도 있다. 그런 내 곁에 수줍던 처녀적의 보조개 띤 얼굴에 비친 노을이 곱던 아내의 통속도 있다. 연애를 할 때는 온갖 부드러운 말로 아내를 흔들어놓고 결혼해서는 바위 같은 사내가 되어 사랑에 인색했다. 나는 참 얼마나 어리석고 나쁜 새끼인가. 나머지는 살면서 버렸어야 했을 자서전적인 얘기들이다. 산문시란 이런 사연을 담는데 편하구나. 정말 아내와 맞장구치며 시처럼 살고 싶었는데 그런 인생은 없었다.
2023년 5월 무릎이 시리고 허전한 세월을 살며
강詩人우식散人
3. 목차
지은이로부터·1 ―흔적 05
지은이로부터·2 ―나쁜 놈 07
1부 고요
가계부 15
가족력家族歷 17
가지 맛 18
개울움 19
거실 21
거울 입력 23
겨울나기 24
결혼 25
고맙다 꽃 26
고요 27
고추 28
고층유리 청소부 30
공평박물관 접시그릇 32
관상 33
꿈의 꽃밭 35
궁금 36
그네 37
긁데 38
나이 40
남산 봄날 하루 42
네플류도프의 외투 43
대구서문시장 45
대비對比 46
도배塗褙 48
도치 50
두 줄짜리 약력 51
등대 53
매미 울음 54
무지개 55
바다 56
밤하늘 57
밥 나무관세음 58
배 59
백발 60
보청기 62
사치 63
새 65
새들 66
선거 67
설한풍雪寒風 68
섭―이홍섭에게 69
2부 쪽문
성묘省墓 73
소이부답笑而不答 74
수술실에서·2 76
슬픈 Y담 78
승부勝負 80
승어부勝於父 81
시집 82
심장 83
아이를 보며 84
앰버그리스 86
양반 87
연어 89
열 살 무렵의 피난기 90
오징어 게임 93
옥가락지 94
외로움 96
워터프런트 호텔 97
원고료 98
육날미투리 100
은배꽃 101
이 지독한 사랑 102
이화중선李花中仙 103
인연 104
자서전적인 별 105
전복 106
제야除夜 107
쪽문 108
창덕궁 까마귀 109
추수秋水 110
춤 111
춤추는 자모 112
층간소음 113
치매 114
코드세상 116
폐사廢寺 118
행복해진 꿈 119
허허 벌판 120
호시탐탐 121
여적―말꼬리 122
4. 평가
나는 아무래도 네 발 달린 짐승이었나 보다. 산문시 시집을 내며 이제까지 나름 간신히 절제하고 통제하여 왔던 시들을 다 풀어버리려 하고 있다. 할 얘기 안할 얘기를 다 산문시에 늘어놓았으니 무슨 사연이 더 필요하랴. 비열한 좀 통속이면 어떠랴 싶었다. 속이 다 드러난 시중잡배나 다름없다. 처음에는 구구한 변명 같은 여적은 달지 말자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짐승처럼 꼬리를 단다. 꼬리라면 하루에도 줄기차게 천 리를 달린다는 천리마의 꼬리를 갖고 싶으나 가진 거라고는 말꼬투리밖에 없다. 일생 꼬투리 같은 말꼬리를 잡고 시를 써왔으니 시집에 말꼬리를 달 수밖에 없다. 꼬리가 있어야 그래도 간신히 균형을 잡고 가려는 방향으로 내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 실린 산문시는 다 그래서 늘어놓은 것이다. 말꼬리 같은 여적이고 산문시다.
그 동안 시집을 세상에 선보이면서 산문시를 한두 편씩 실었다. 그러나 산문시를 쓰겠다는 생각이나 또 가진 절박성도 없었다. 왜인지 산문시란 길고 말이 많고 잡다한 느낌이 들어서다. 그렇다. 개인적인 편차이지만 나로서는 몸에 기운이 빠진 늙은 영감이 되어서야 만들어보는 시였다. 여기 실린 산문시가 한 70여 편은 된다. 될 이야기 안 될 이야기 다 쓸어 담았다. 이 시집을 내면서 나는 나름대로 그래도 말이 되려고 대폭 수정에 수정을 했다. 그리고 가능하면 단문 형식으로 만들려고 문장을 끊었다. 시란 엿가락처럼 늘어지기만 하면 재미없잖은가. 그러면서도 산문시 시집을 내는 이 순간까지 부끄럽다. 나이 먹은 노인네가 되어 세상을 살아온 경륜이나 전해줄 지혜가 없는 내 자신에 대한 한없는 모자람을 잘 안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내 그릇이 이것밖에 안 되는 것을 다시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 문학이 현대문학으로 오는 과정에서 권선징악의 전범 같던 천편일률적인 스토리 전개에서 많이 바뀌었다. 온통 유종의 미처럼 박수치는 선善 위주의 이야기에서 악에서도 우리가 얻을 것이 있다는 패턴으로 바뀌어 갔다. 그 일환의 하나로 이 산문시도 이해해주었으면 한다. 아마 산문시의 창시자라 일컫는 보들레르도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미루어 짐작해 본다. 또 하나 빠뜨릴 뻔 한 것이 있다. 나는 시인으로서 시로써 할 수 있는 영역은 형식적인 면에서 다 시도해 왔다. 작은 일이라도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이면 시도해 왔다. 가령 말년에 시집의 서문도 무슨 습관처럼 남들이 다 그렇게 하니까 다는 일도 것도 싫어 “지은이에게”를 두 편씩 실은 것은 내가 처음으로 한 짓이며 또 이번 산문시 시집 서문에 “흔적”이나 “나쁜 놈”이란 제목을 붙였는데 이것도 어느 시인도 안 해 본 나만의 방식이다. 뿐만 아니다. 다음에 낼 연작시 시집에는 시집에 두 개의 제목을 한 의미단위처럼 달 예정이다. “송구영신, 국경을 넘어서”라고. 연작시답게 국경을 넘어서 송구영신의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뜻으로…… 지금까지 남들과는 다른 의미가 되고자 노력했다. 작은 일이지만 남들이 안하는 일은 시행이 그리 쉽지 않다. 형식만의 아니라 내용면에서도 되도록이면 남들과 다른 내용을 담으려 했다. 시집 『설연집』이 그러하고 『마추픽추』, 『바이칼』, 『사행시초2』가 그러했다. 아니 『꽃을 꺾기 시작하면서』, 『물의 혼』도 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시를 붙잡고 일생 참 외롭게 고집스럽게 살아왔다는 마음이다. 내가 가진 이 신념도 이제 서서히 꺾일 때가 되었다./여적 중에서
5. 작품
가계부
아내가 입던 입성이며 모두 다 불 태웠는데 유일하게 남겨둔 것이 있다. 가계부다. 이 세상 살다간 흔적이 아로새겨진 아내의 상처다. 가난하기 이를 데 없는 신혼에 무엇을 아껴가며 알뜰살뜰 할 게 있었을까. 아내는 매년 연말이면 여성지의 부록으로 시중에 나도는 가계부를 사서 썼다. 대다수의 살림을 사는 여자들이 가계부를 쓰다가는 한두 해를 넘기지 못하고 중도에 접고 마는 것과는 달리 69년 신혼 초부터 세상을 하직할 때까지 꾸준히 이어왔다. 《여원》이란 여성지의 별책부록 ‘일기가계부’. 두부 10, 콩나물 10, 도루묵 4마리 40, 숯 두 봉지 20원, 사과 2개 10, 팬티 110원. 이따위의 물목 이외에 가계부 이름대로 살아가는 일상들도 일기 쓰듯 적어 놓았다. 그곳에는 캐비닛을 장롱삼아 사글세를 살면서 답십리 장안평에 나가 우리 부부가 메뚜기를 잡던 얘기도 있고 갖가지 셋방살이 눈물 나는 설움도 적어놓았다. 자잘한 물품값보다 더 리얼하게 기록한 나의 살아온 행적들…… 내 사생활이 잔속을 썩이듯 낱낱이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속이려고 해도 속일 수 없는 기록들이다. 참으로 아팠던 것은 통금시절에 매일 술 먹고 외박을 일삼아 코스모스 같이 여린 아내를 남모르는 눈물을 흘리게 한 것이다. 부끄러운 내가 있다. 그래서 첫 권과 다음 권은 내가 가지고 마지막 권은 아들에게 주었다. 앞의 권을 내가 보관하고 있는 것은 가계부에 적힌 나를 두고두고 되돌아보기 위함이요, 아들이 가져간 마지막 권에는 이미 장가 가 가정을 꾸렸음에도 불구하고 지어미 속깨나 태운 아들이 틈날 때마다 보고 느끼라고 준 것이다. 가계부라는 이름도 언제 사라지는 줄도 모르고 날아가 시대 저편의 향수처럼 먼 그리움이 되었다. 하지만 내 가슴속에는 아내의 가계부가 살아있다. 이제는 내가 독거노인이 되어서 가슴에 아내처럼 가계부를 쓴다. 뿐만 아니다. 정년한 뒤부터 아내 따라 매년 가계부를 적어왔듯이 시를 쓰고 시집도 낸다. 옛사람이니까 어쩔 수 없이 옛 방식대로 가계부 같은 구닥다리 시를 쓴다.
가족력家族歷
나는 가족력이 있다. 누굴 탓하려면 피를 이은 부친을 들먹여야 하지만 고맙게도 나를 길러주신 아버지를 원망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 병이 아주 고약해서 나에게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고대로 자식들에게까지 이어져 있다. 그러니 천형처럼 아들손자로 대대로 갖고 산다. 병원에서도 의사들이 온갖 병은 다 신약 개발이다 첨단 수술로 고치면서도 왜 가족력은 근본부터 뿌리 뽑을 방법은 못 찾는지 모르겠다. 유전성이 강한 것이 발병 원인이니까 워낙 가려내기란 참 힘들 것이다. 아무튼 나는 신장 즉 콩팥이 나쁘다. 소식小食에 음식을 가려 먹어야 되는 무척 까다로운 병이다. 이 병에는 마음 놓고 먹어야 되는 음식이 없다. 그런데 병원에 가면 담당의사도 환자가 가려야 될 음식 정도는 다 알고 있다고 믿는지 별다른 주의 사항도 없다. 그냥 진찰하고 처방전을 준다. 그뿐이다. 거기다 가족력은 아니지만 아버지께서 살아생전에 좋아하고 잘 드시던 음식이 있어서 나도 은연중 따라 먹다보니 식습관처럼 인이 배였다. 매년 여름철이면 아버지는 천도복숭아를 특히 좋아 하셔서 크게 한 입 베어서 시원하게 자주 잡수셨다. 나도 딱딱한 천도복숭아를 매년 한 상자씩 들여와서는 시원하게 소리 내어 먹는 맛에 삼복더위를 이겼는데 이게 글쎄 콩팥에 제일 안 좋단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도 천도복숭아를 너무 좋아해서 수명이 단축됐는지 모르겠다. 바나나도 백해무익이라서 삼가긴 했다. 마음 놓고 먹을 건 없고 굶으면 죽고 먹고 사는 거 참 딱한 팔자요 내 신세다.
가지 맛
열매를 보면 뼈도 없이 온통 살로 뭉쳐진 타입이다. 하면서도 다이어트가 무엇인지 모를 만큼 날씬하다. 뼈가 없는 고기가 맛있는 걸 못 봤다고 하지만 채소여선가. 끓는 물에 살짝 데친 가지 맛에는 몸의 살맛이 난다. 아기를 낳는 것도 아니고 혼자서 가지고 노는 것으로는 은밀하다. 몸 풀어 본 사람치고는 이만한 물건도 없다고 여자들은 말한다. 내가 먹어보면서 느끼는 맛으로는 사람과 제일 가까운 살맛을 내는 것은 가지다. 어떻게 이런 맛을 내는지 참 희한한 일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말은 안하지만 본능으로 좋아하나 보다. 단것밖에 모르던 시절에는 맛이 없어 고개를 돌리던 이 살맛이 그냥 살색 맛만이 아니라 갖가지 맛인 가지 맛의 준말이기 때문인가. 지천명의 나이를 넘어서야 이제야 겨우 가지 맛 같은 갖가지 살맛을 알 것 같다.
개 울음
개소리는 보통은 도둑이 들거나 낯선 사람이 올 때 내지르는 멍멍 소리이지만 다른 소리도 낼 줄 안다. 예전에 답십리 주택에서 기르던 검정색 발바리는 피아노 소리만 나면 등따라 길게 노래를 뽑기도 하였다. 또 어딘가 맞아서 아프면 감정 표시로 비명도 질렀다. 이런 개는 곧잘 사람과 이어져 욕설이 된다. 개새끼도 있고 개종자도 있다. 또 개 같은 놈에서 입에 담지 못할 욕으로 년 놈 자가 붙은 쌍소리도 있다. 사람들이 천하게 취급하던 개가 어느 사이인가 반려견이 되어 귀염을 받으며 같이 산다. 아마 주거공간으로 아파트가 대량으로 세워지면서부터 짐작된다. 내가 사는 아파트 위층 집은 7년 전에 이사를 오면서 개를 데리고 왔다. 나는 그 개를 한 번도 본적이 없다. 그 개가 수놈인지 암컷인지 이름이 무엇인지 종은 똥개인지 그레이하운드인지 전혀 모른다. 다만 우는 소리로만 알 뿐이다. 개는 짖어야 하는데 위층 집 개는 운다. 개답지 않다. 아마 낯선 사람이나 주인이 외출했다가 들어오는 인기척에 반응하는 답이리라. 나는 그 소리가 한 번도 활기차다는 느낌을 못 받았다. 마지못해 내는 시늉뿐이다. 사람으로 치면 사흘에 피죽 한사발도 못 먹은 참 뭐라 표현하기에 딱한 기운이 쑥 빠진 소리다. 이웃이 아파트 관리소에 민원을 넣어서 주인이 개를 병원에 끌고 가 성대를 수술을 하였는지 아니면 주인이 울지 말라 윽박질렀는지 영 제 것이 아닌 가성이다. 늘 겨우겨우 기어 들어가며 기죽어 우는 목소리라는 걸 금시 안다. 개도 짖을 때 한 번쯤은 깃발을 꽂듯 목을 세워가며 동네가 떠나가도록 마음껏 우렁차게 목청을 터야 살맛이 날 텐데 죽지 못해 사는 기분일 거다. 개소리 같지만 못 짖는 개는 개가 아니다. 그런 말 못하는 짐승을 만들어 차마 내치지 못하고 사는 주인은 뭐며 또 반려견의 꼴은 뭔가. 가끔 사람들은 너무 자기 위주로 외로움을 달래기 위하여 개와 산다. 어찌 보면 그렇게라도 살아야 하는 사람이 더 안됐다. 어쨌든 곁에 개차반 같은 사내라도 있었으면…… 사내가 있어도 개를 좋아하면 어쩔 수 없이 또 다시 길러야겠지만…… 개나 사람이나 사정이 딱하다.
거실
추억에는 나름 알뜰살뜰 살아온 꺼지지 않는 그리움이 있다. 사람은 늙으면 추억을 먹고 산다. 우리 집 거실은 추억의 보물 창고다. 아내는 생전에 틈만 나면 돌에 미쳐서 탐석을 잘 다녔다. 내가 보기엔 돌은 그저 돌일 뿐이다. 몸에 이기지도 못할 무거운 돌을 찾아 애지중지하듯 거실로 끌어들였다. 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하며 살아가는 시인의 아내가 된 팔자여서 돌밖에 눈에 안 보였을까. 또 아내는 외국 여행을 가서는 그 나라의 풍물이 담긴 마그네트를 사서 거실의 한 쪽 구석 냉장고의 문이 차도록 붙여 놓았다. 만국박람회 같다. 이것도 다닥다닥 붙은 꼬락서니가 시인 남편의 자유를 사랑하는 무질서라 한다. 내 눈에는 마치 60년대의 성북동 산마루에 늘어진 무허가 판자촌의 애환이었다. 마누라의 내심은 아마 이것이겠지. 삼시세끼 혼밥 하며 냉장고 문 여닫을 때마다 자기를 그리워하라는 거겠지. 그리고 집안에 들이면 복이 온다고 코끼리도 아프리카는 물론 중남미 등 각국의 복이란 복은 다 가질 것처럼 사다 거실장 안에 위에 진열해 놓았다. 아마 코끼리를 실물대로 가져올 수 있다면 마음은 그리했을 것이다. 아내는 독거노인의 소일거리는 추억뿐이라고 미리미리 이런 것들을 갖추어 놓았는가 보다. 나는 그래서 요즘은 주로 집 거실에 머물며 꺼져가는 목숨에 50년대식의 호야불 같은 추억을 먹고 산다. 추억에는 옛날 간 날의 청포묵 맛 나는 그리움이 있다. 같이 살면서 내 것 네 것 가릴 것 없지마는 오늘 따라 거실에 걸린 소설가 송지영 선생이 83년도 세모에 써준 붓글씨 시유동성덕불고詩有同聲德不孤가 유난히 눈에 띤다.
거울 입력
벌거벗은 내 알몸뚱이가 거울에 입력되었다. 빛이 반짝 눈을 떴다. 얼마 후 한 여자의 알몸이 내 곁에 와 섰다. 빛이 투사되었다. 여자와 나는 서로 포옹을 하며 웃었다. 포옹을 할 때 서로가 팔에 힘을 주었다. 그것도 사진되었다. 빛이 반색하며 맞았다. 내가 웃으면서 그 여자의 중심이 예쁘게 비친다고 말했다. 그 말에 반응한 여자의 꿈틀거리는 하복부도 입력되었다. 거기는 차마 빛이더라도 눈뜬장님이 됐다. 빛의 각도에 따라 보이기도 하고 평범한 모습으로 비치기도 하는 요술을 부렸다. 그리고는 여자는 거울을 보고 무슨 미스 코리아 선발대회 수영복 콘테스트처럼 요트의 마스트에 기댄 듯 내게 기대어 있는 폼, 없는 폼을 다 잡았다. 그것도 촬영되었다. 여자가 말했다. 이 거울에 비친 장면을 우리 둘이서 가슴에 영원히 간직하자고 했다. 여자는 거울에 입력된 말과 사실과 소리들이 거울 밖을 벗어나면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지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말했다. 이 소문이 거울 밖으로 나명들명 조그마한 가시내야 네 말이라 하리라. 사진 거울은 요상하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보는 데 따라 다르다. 옷 입은 남녀가 벌거벗은 알몸이 되기도 한다.
겨울나기
봄이 오면 갈잎나무들은 지난해에 피었다진 꽃이며 잎이며 삶의 열매들은 다시 찾으려 한다. 계절 따라 임산부처럼 점점 무거워진다. 열매를 달 채비를 한다. 사람들은 봄이 오면서부터 한기 들까 봐 겁나 겨울 내내 껴입었던 입성들은 하나씩 벗으며 가벼워진다. 나무는 어이하여 가벼운 몸으로 겨울을 견디고 사람은 옷가지들을 잔뜩 걸쳐야 겨울을 날 수 있는 것인가. 사람들에게는 절기 따라 더우면 벗고 추우면 입는 자연본능이 있다면 나무들은 추울 때 더 추워야 사는 구도자 같은 결기가 있나 보다.
결혼
생판 모르는 사람끼리 만나 참 용하게 사는 결혼은 마음의 짐이다. 처음에는 사랑만 있으면 태산도 능히 질 수 있는 그까짓이었다. 그녀는 나만 기다려온 천사였다. 그녀의 빈터에 앉아 밤낮으로 시소게임을 했다. 아이를 둘이나 낳고 그럭저럭 학점도 이수하며 과락科落은 면한 줄 알았다. 일심동체가 아닌 것도 일심동체처럼 서로가 연극을 하며 잘도 견뎠다. 그러다 어느 날 나보다는 그녀가 먼저 인생은 감당 못할 짐이라 여겨 좌절했다. 세상을 버렸다. 남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라고 꽃처럼 지고 말았다. 여기까지가 그녀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는 끝이었다. 살아온 그녀와의 정을 뗄 수 없는 나머지 내 삶은 해머를 맞은 듯 그저 멍했다. 마치 한나라의 왕도 임금 노릇을 하다 승하하면 그 밑의 시종이나 신하들까지도 순장殉葬하는 심정과 같았다. 정말 나도 아내를 따라 순장되고 싶었다(여왕도 죽으면 순장제도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벼락이나 맞게 해달라고 처음으로 간절히 빌어 봤다. 소용없었다. 날개가 꺾여 지옥으로 가는 천사에게는 어떤 처방전도 필요 없었다.
고맙다 꽃
결혼식이 끝나고 하객들에게 진열된 축화 꽃다발의 꽃을 가져가라고 하여 한 묶음의 꽃을 들고 온 여자가 혼자 사는 내 식탁에 유리병까지 찾아서 꽂아두고 갔다. 따라온 꽃이나 사람이나 고맙다. 꽃병 하나로 늘 음침하고 냉기 감돌던 집안 분위기가 달라졌다. 노루꼬랑지만한 저녁해는 일찍 떨어졌다. 세상은 캄캄 어둠 속이었다. 꽃 꺾어 산 놓은 옛사람은 못되더라도 꽃이 있어 고맙다. 혼자 한술 뜨는 저녁 식사에 모처럼 꽃을 보며 내 곁을 떠난 아내 생각에 눈시울 적시게 하여 감사하다. 꽃이 없었으면 어이 꽃 같았던 아내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으리. 꽃은 내 외로움이나 슬픔을 알아도 모른 체 그저 웃는다. 꽃이 우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장례식장에서도 슬픔을 웃음으로 치장한 프리마돈나처럼 내색도 없이 천연덕스럽게 앉아 자리를 지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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