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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계간지작품상 수상자-김나영,천선자,고명자,오대교,김하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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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탄
댓글 0건 조회 14,063회 작성일 14-08-12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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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계간지 편집자회의에서 주최하는 제1회 전국계간지작품상 수상자가 선정되었습니다.

이 상은 각 회원사가 1명 씩 심의 선정하며

시상식은 2014년 8월 23일(토) 인천 수림공원웨딩홀부페에서 오후 4시에 있습니다.

이 시상식은 제17회 전국계간문예지 인천축제를 주관하는 리토피아가 준비합니다.

 

1. 다층 수상자-김나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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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예술세계》 등단

한양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졸업

2005년, 200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 수혜

시집, 왼손의 쓸모(2006, 천년의 시작)

수작(2010, 애지) -2011년 우수문학도서 선정

현재 한양대 출강

 

 

수상작품

 

 

오랫동안 나를 떠나지 않는 이름 하나 있지

죄와 벌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무렵이었던가

푸른 눈의 혁명가 이마에 키스를 할 무렵이었던가

그 도서관에서 우리는 눈을 맞췄지

때마침 화단의 맨드라미는 미친 듯 타올랐고

청춘을 장전(裝塡)한 우리는 두려울 게 없었지

사랑과 혁명을 도모하기에 우리는 충분히 위험했지

그때 ‘종욱’이었던가 ‘진욱’이었던가 ‘동욱’이었던가

혈기왕성하던 다혈질의 나와 함께

청춘백서를 필사하던 ‘욱’

체크남방 안에서 키우던 근육은 어디로 갔을까

지금쯤 착한 여자 만나 조용히 잘 살고 있을까

그를 이제 내 품에서 해방시켜줘야 할텐데

뾰족하던 그의 정신에도 둥글둥글 살이 붙어

적금통장 부풀리는 일에 전력질주하고 있을지 모를 일인데

사회적 동물이란 말을 그리 실천하고 있을지 모를 일인데

TV를 켜거나 신문을 뒤적거리다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흑백에서 칼라로

옷만 바꿔 입었을 뿐이라고

그가 내게서 와락! 돋아난다

푸른 주먹을 불끈! 쥔다

겉이 아니라 속을 바꿔야 한다고

내 안에서 수없이 종주먹을 꺼낸다

세상을 향해 ‘욱’ 어퍼컷을 날린다

- <시인광장>(2013, 10월호) 발표

 

 

 심사평

<다층>에서 접수한 시들 중에서 김나영, 박이정, 송진, 임재정 시인 등의 시가 눈길을 끌었다. 그 중에 김나영 시인의 「욱」을 선정한다. 김나영의 「욱」은 지나친 수사 없이 아주 담박하고 울림이 있는 시이다. 시간을 관통하는 사유의 힘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사유는 체험에 기반하며 관념의 외피를 입지 않는다. 우리의 생(生)이 늘 ‘지금, 여기’에 귀속될 수밖에 없는 것처럼, 「욱」은 지난하게 이어져온 삶의 세목들을 씨줄과 날줄 삼아 다시 우리를 귀환시킨다. 열정의 수사와 꾸밈이 탈각되고 남은 우리들의 ‘사랑과 혁명’, 언어의 현란함보다는 담박하지만 묵직한 직방의 ‘욱’이라는 말이 참 뻐근하다.

 

 

수상소감

시에 깃들어 산 시간이 16년째다. 이 정도 세월이면 시에 익숙해질 법도 한데, 하루라도 시에 소홀하다 싶으면 시를 읽는 것도 쓰는 것도 낯설어지는 게 내가 겪은 시의 야멸찬 얼굴이다. 고백컨대 시가 내게 온 후 모든 우상 포기하고 여기까지 왔는데, 시는 좀처럼 나와 타협을 하지 않는다. 시는 내게 우상이었다가, 폭군이었다가, 연인이었다가, 시시때때로 변하는 팔색조의 얼굴을 하고 있다. 그러나 시를 쓸 때 시의 얼굴은 언제나 무사로 변한다. 그때마다 나는 무사와 대결을 벌이는 듯한 기분에 휩싸인다. 시의 칼날을 대척하고 가로지르고 마음을 베이고, 베이고, 또 베이지만 그 순간 나는 이 세상과 결별한다. 그 무엇이 나를 세상으로부터 자유하게 할 수 있을까. 시가 만들어 준 진공의 상태, 그때 비로소 내가 내게 주인이 된다. 그렇게 한편의 시가 만들어지고 나면 온몸의 기운이 소진한다. 너덜너덜한 만신창이가 되어 있지만 그 피로감 뒤에 오는 한 줄기 쾌감이란, 이 누적된 감정의 습관이 내 몸에 온전히 깃들 때까지 나는.

 

 

2. 리토피아 수상자-천선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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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도시의 원숭이.

 

수상작품

고양이, 나비를 잃어버린 아이

 

 

승용차 한 대가 화려한 불빛을 조용히 빠져나온다.

어둠이 깔린 빈집 주차장에 가 조심스럽게 선다.

정적 속에 쌓여있던 문이 열리고 단정하게 빗은 머리,

정장하의에 흰 와이셔츠 차림의 젊은 남자이다

소주, 한 손엔 검은 비닐을 들고 온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남자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번진다.

페르시아 고양이와 장미꽃이 그려진 그네를 탄다.

그네가 흔들릴 때마다 동공이 풀린 눈동자는,

수많은 별빛으로 쏟아져 내린다.

도둑고양이가 담장 위에서 남자를 노려본다.

더러운 털과 맹한 저 눈을 보고 있으면 화가 치밀어,

언제나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히던 아버지가 키운 그 고양이,

취한 남자가 고양이를 피해 마당 끝 의자에 주저앉는다.

소주 몇 병을 더 마시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신발을 신고 테이블 위에 오르락내리락 의자를 걷어찬다.

검은 봉지에 얼굴을 묻고 숨을 크게 들이쉰다.

몇 번이고 반복 하던 남자의 흐린 눈동자는 별이 된다.

몽상가가 된 남자는 검은 봉지 속으로 들어간다.

검은 봉지는 남자가 밖으로 달아나지 못하도록 온힘을 다해 팽창한다.

빵빵해진 무력감이 남자를 가볍게 들어올린다.

편안한 자세로 마당 한 가운데 눕고 달그림자가 봉지 위에 길게 눕는다.

남자는 지금 환각의 행성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심사평

한 세기를 넘어 비약적으로 성장, 확대되어온 우리 현대시의 저변을 생각할 때, 전국계간지작품상을 시행하게 된 것은 자못 의의가 새롭고, 다시 한 번 각 계간지들의 재도약을 다짐한다는 데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1회 수상자를 선정하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었다. 시적 성취라는 측면이 간과될 수 없음은 자명한 것이고, ‘자생적 담론’을 지향하는 우리의 편집방향과도 분명한 공통점, 또는 지향점을 엿볼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천선자 시인은 이미 첫 시집, 『도시의 원숭이』를 통해 현대인의 비극적 일상을 시인만의 방식으로 형상화한 바 있다. 이때 ‘비극적 일상’이란 시적 의미로서 어떤 숙명성을 말하며, ‘시인만의 방식을 통한 형상화’란 시적 기법을 통원한 시인의 시적 개성의 표출이라고 할 수 있다. 첫 시집에서 보여주었던 이 두 가지 측면이 이번 수상작, 「고양이, 나비를 잃어버린 아이」에서는 더욱 바람직한 방향으로 작품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강제된 성장의 그늘에서 ‘몽상가’가 되어버린 한 ‘젊은 남자’의 ‘환각의 행성’을 만드는 행위가 적절한 심리적 거리를 통해 더 비극적으로 환기되고 있다. 현대성을 담보하는 일의적 조건으로서 ‘승용차’, ‘정장하의’, ‘검은 비닐’ 등의 일상적 시어가 “페르시아 고양이와 장미꽃이 그려진 그네”와 이루는 조응의 효과 등이 돋보인다. 핵심 상징으로서 ‘고양이’를 ‘나비’와 병치시킨 것도 주목할 만한 수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일견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들 내면에 숨겨진 부자연스러움, 혹은 상처나 어두운 흔적을 탐색하는 천선자 시인의 작업을 당분간은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이다./백인덕(글), 장종권

 

 

수상소감

영화 속 괴물 가면을 쓴 신사가 어깨를 펴고 옵니다. 나비모양의 가면을 쓴 여인도 우아하게 걸어옵니다. 늑대와 여우의 가면을 쓴 사람들도 나란히 걸어옵니다. 고양이의 가면을 쓴 여인은 레드 카펫을 밟고 옵니다. 잠자리에 들면 꾸는 꿈입니다. 나는 꿈속에서도 가면 천지인 나의 축제를 시작합니다. 아직은 미흡한 제가 큰 상을 받게 되어 영광입니다. 더욱 열심히 하라는 채찍으로 알고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3. 시와정신-고명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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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시와정신』 봄호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술병들의 묘지』

 

수상작품

헝겊인형

 

 

무엇이 너의 끄나풀이었는지

겹겹으로 빨강을 껴입고 엉거주춤 서 있지

입술이 뒷꼭지까지 돌아가도록

웃음을 비틀면서

가로수를 붙들고 쫑알거리지

기댈 담벼락도 없는 바람찬 거리에서

눈총 따위 손가락질 따위 발끝으로 쓱쓱 뭉개고있지

겨울이 매연처럼 고약해서 입을 틀어막고 눈썹을 찡그린 것 아니지

얇은 남방에 꽂힌 역겨운 꽃 냄새, 그러나

망가진 코사지만으로도 너는

아름답게 버려진 저녁이다

순서 없이 껴입은 붉은 겨울은 짧거나 구겨졌거나 얇거나

미쳐서 아름다워 보인다는 험한 말이 내 목구멍을 넘어오고 말았다

누더기인 네 입술이, 눈빛이 겨울 저녁을 뜨겁게 달궈놓는다

하마터면 손 내밀 뻔했다, 다 버리고 붉음 한가지만을 기억하는

너의 집착을 데리고 집으로 올 뻔 했다

손발을 냄새를 씻기고 머리 빗겨 밥 떠먹여줄 뻔 했다

사십쯤 아니 사백 살쯤에서 멈춘 네 이름을 불러줄 뻔 했다

- 2014년 봄 계간 『예술가』 발표

 

 

심사평

그동안 고명자 시인은 2005년 『시와정신』 봄호로 등단한 후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쳐왔으며 2013년에 첫 시집 『술병들의 묘지』를 펴냈다. 이번에 당선작으로 결정한 「헝겊인형」은 발랄함과 재치 속에 있는 날카로운 인식이 이 작품의 특색이다. 또한 거기에는 평범 속에 내재된 아픔 또한 간직되어 있다. 그것을 감각적으로 다가올 듯 풀어내는 것이 고명자 시의 강점이라 하겠다. 뿐만 아니라 일상에는 보상받지 못하는 아픈 흔적들이 도처에 널려있는데, 그 아픔이 시인의 내면에 자리한 어둠이고 진실이기도 하다.

그 어두운 기억 저편에서 꿈꾸는 것이 밝음에 대한 미학적 승화인데, 동일화되지 않았던 트라우마 등을 묘혈의 깊이에 가두려는 노력을 고명자 시인은 끊임없이 시도해 온 것이다. 그 치열한 여정이 앞으로도 고명자 시인의 작품 가능성에 무게를 실어주기에 기꺼이 당선작으로 선정하는 것이다.

-심사위원 : 『시와정신』 편집위원 일동

 

수상소감

白旗를 들을 땐 웃어야하는데

 

낭만적인 글쓰기는 끝난 것 같다. 무분별함과 무모함과 분노가 뒤엉켜 나를 풀어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끄적대던 그 짜릿한 고통의 시간은 가버린 것 같다. 염천에 책상과의 한판 승부에서 나는 졌다. 어루만지고 새침을 떨어도 무뚝뚝한, 무덤덤한 애인처럼 책상은 영 시큰둥하다. 내리치고 걷어차도 멀뚱하니 딴청만 부리는 것 같다. 왜? 내가 시시한가? 내 詩가 시시한가? 그래, 내가 좀 시시하긴 하지 그러니 내 詩도 시시할밖에... 백기를 들을 땐 무조건 웃어야하는데 그 것이 마지막 전략이며 적에 대한 예의인데 아뿔싸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부끄러운 고백이다. 올 여름 나는 책상 앞에서 허리병이 생겼고 온 몸에 땀띠가 돋아 몇 년 만에 병원이란 곳을 찾았다.

서서히 알게 되었다. 詩란 짐승이 얼마나 위험한 생명체인지를...아마 나를, 내 몸뚱이를 먼지처럼 흩어놓으려 할 것이다. 흩어놓고 말 것이리라.

 

 

4. 시와사람-오대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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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함평 출생.

계간《시와사람》으로 등단

시집 『윽신윽신 뛰어나 보세』, 『새물내』

 

 

수상작품

샛길

 

 

초등학교 시절

샛길로 빠지기를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다

등굣길에 딱 한 번 따라간 적이 있는데

학교까지 빨리 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 나는 그를 따라가지 않았다

나는 그저 한길이 좋았다

넓고 거침없는 한길이 좋았다

세월이 흘러 그는 큰 장사꾼이 되었다

여손 잠상꾼 노릇도 서슴지 않으며

구렁이 제 몸 추듯 한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그러던 망육(望六)의 어느 날

그가 급사했다는 부음을 받았다

마지막 길도 샛길로 빠져버린 친구

장례식장에 다녀오면서

그가 곧잘 사라지던 길을 보았다

한번 걸어볼까 하다

그냥 한길을 걸어 집으로 왔다

 

*여손; 물건값을 올려서 남겨 먹는 장사꾼을 뜻하는 은어.

*잠상꾼; 예전에, 법으로 팔지 못하게 하는 물건을 암암리에 팔던 장사꾼.

*구렁이 제 몸 추듯 한다; 자기 자랑만 하는 사람을 빗대어 말할 때 쓰는 속담.

 

 

심사평

오대교 시인의 「샛길」은 ‘人生’을 압축해 놓은 듯하다. 그의 시는 대단한 기교를 보여주지 않지만 그러한 무기교가 오히려 이 작품을 더욱 깊고 향기나게 한다. 오늘날 ‘새로운 시’라는 이름으로 소통이 되지 않고 경박하기 그지없는 시들이 평가받고 있는 듯해 ‘시를 왜 쓰는가?’라는 서정시 본래의 효용성을 생각하게 한다. 이런 측면에서 오대교 시인의 시는 크게 낯설지는 않지만 실존의 방식에 대해 통찰하게 한다.

“초등학교 시절/샛길로 빠지기를 좋아하는 친구”가 “학교까지 빨리” 가기는 해도 화자이기도 하고 시인 자신이기도 한 시적 주인공은“그저 한길이 좋”다.

시간이 많이 흘러 ‘샛길’을 좋아하는 친구는 지름길인 샛길을 좋아한 것처럼 자신의 목적지를 빨리 가기 위해 물건값을 올려 남겨 먹는 장사꾼이 되어 큰 장사꾼이 되었지만 더 먼 곳까지 가지 못하고 중간에 길을 멈춰버린다. 급사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샛길로 빠져버린 것이다. “장례식장에 다녀오면서” 화자는 “그가 곧잘 사라지던 길을 보았다” 그 길은 ‘샛길’로 탐욕과 정의롭지 못한 것의 상징이다.

이 작품은 ‘샛길’과 ‘한길’이 서로 만나지 않지만, 의미상으로는 서로 충돌하는 시적 구조를 지녔다. 그렇기 때문에 시적 긴장이 유지되면서, ‘옳은 것과 그릇된 것’의 의미를 살피게 하고 있다. 자칫 명암처럼 선악이 대비되는 시적 구조로 인해 상투적이고 뻔한 작품으로 전락할 위험성도 내포하지만, 시인의 삶의 연륜과 시를 부리는 능수능란함이 생각이 깊은 시를 무리하지 않게 잘 빚어내고 있다.

특히 “한 번 걸어볼까 하다/그냥 한길을 걸어 집으로 왔다”는 고백이 이 작품의 진정성을 깊게 하고 있다.

서정성 회복과 시의 효용성에 가치를 둔 《시와사람》에서 뽑는 제1회 <전국계간지작품상>에 알맞은 작품이기에 오대교 시인의 「샛길」을 뽑는 기쁨이 크다. (시와사람 편집위원회)

 

 

수상소감

 

시와사람 꽃밭에

송이송이 꽃이 핍니다

 

봄을 노래하는 꽃

여름을 노래하는 꽃

가을을 노래하는 꽃

겨울을 노래하는 꽃

 

동네방네

아름다운 노래가 울려 퍼집니다

 

지나가는 사람이 발걸음을 멈춥니다

노래에 취해 갈 줄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의 이 기쁨은 더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라는 격려로 알고 마음을 다잡습니다.

꽃밭을 일군 시와사람사와 시와사람을 사랑하는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5. 열린시학-김하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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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익산 출생. 2012년 열린시학 신인작품상으로 등단. 양산 성모병원 원무과장으로 근무.

 

수상작품

공중그네

 

 

우리 동네 공사장

18층 빌딩에 한 사내 줄타기 한다

 

공중정원에 사방팔방 스치는 바람 속

삶을 꿈꾸는 페인트 공 손끝이 환하다

 

하늘을 팽팽히 버티는 시간

손때는 언제나 반질반질 윤기가 난다

 

지루한 녹물이 벗겨진 자리

늙은 부모와 자식 얼굴처럼 동그랗다

 

대롱대롱 외줄에 몸을 맡기고

벽면에 붙은 제 그림자를 따라 색칠하던 한낮

 

붓 끝이 만난 그림자 언저리

12시 정오가 시침과 분침처럼 둥글게 찰칵거린다

 

시간은 언제나 과거가 되지만

새로 그린 그림, 하늘에 오늘의 꽃이 핀다

 

낡은 시간을 잡고 앉아있는 페인트 공

고개 들고 바라보는 어린 눈망울을 의지한다

 

벽면에 환한 해가 뜬다

 

- 시와사람 2013년 여름호

 

 

심사평

제 1회 문예지작품상으로 계간 열린시학은 김하경의 「공중그네」를 선정했다. 여섯 분의 작품이 예심을 통과해 올라 왔다. 모두 일정한 수준과 자신만의 목소리를 확보한 작품이었다. 고심 끝에 우리는 시적 표현과 시적 사유가 명징하게 조화를 이룬 「공중그네」를 문예지작품상 선정작으로 결정했다. 어떤 분의 작품은 시적 표현은 좋은데, 그 표현에 부합하는 시적 사유가 따라주지 못했다. 그리고 어떤 분의 작품은 시적 사유가 아주 단단한 데에 비해 시적 표현이 진부하거나 모호했다. 두 요소가 적절하게 교직하여 상승의 효과를 드러낸 작품은 「공중 그네」였다. 이 작품은 외줄을 타고 작업하는 페인트공의 애환을 진정성 있게 그린 수작이다. “18층 빌딩” 앞이라는 공간과 “하늘을 팽팽히 버티는 시간”이 만나는 지점에 페인트공이 매달려있다. ‘늙은 부모’와 어린 자식을 가진 그의 삶은 “지루한 녹물이 벗겨진 자리”처럼 애잔하다. 그러나 그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오늘의 꽃”을 그려 넣는다. ‘환한 해’가 뜰 때까지……. 외줄에 매달려 일하는 청소부나 페인트공에 관한 기존의 작품들은 현실의 안타까움과 부조리를 위악적으로 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김하경의 「공중그네」는 그것을 뛰어넘는 긍정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시적 전개의 자연스러움과 현실인식을 내재한 따뜻한 미의식. 이것이 김하경의 시를 선정하는데 중요한 포인트로 작용했다.

-심사위원: 이지엽, 하린

 

 

수상소감

문예지작품상을 수상하게 되어 기쁘고 또 감사합니다. 부족한 점이 많은 제가 수상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감히 이 상을 받아도 되는지 고민부터 됐지만 한편으로는 마구 설렙니다. 저에게 시는 늘 ‘가을을 타는 것’과 같았습니다. 시를 생각하면 얼굴이 붉어지도록 행복해지다가 가슴 저리고 아픕니다. 원하는 글이나 마음에 맞는 단어를 찾아 쓸 때면 보는 이들의 마음을 만족시킬 것 같아서 행복했다가도 금방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걸 깨닫고 또 얼굴이 붉어지면서 부끄러웠습니다. 가을 날 단풍은 한 없이 약한 바람에 떨어집니다. 그래서 글을 읽기도 좋고 쓰기도 좋은 계절이 가을인가 싶습니다.

저는 시를 쓰면서 늘 생각했습니다. 꼭 약한 바람에 떨어지는 단풍잎은 되지 말자고.

이 상을 통해 시에 대한 저의 생각을 되돌아 봤습니다. 이젠 생각을 조금 바꿔보려 합니다. 약한 바람에 매달리기보다 열매 맺을 때까지 노력하겠다고, 그리고 시가 더욱 단단하게 익거나 여물어 갈 수 있도록 다져보겠다고…….

늘 시는 가을걷이다. 생각하며 부단히 애를 썼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더욱더 크고 굵은 열매, 그리고 단단하고 잘 익은 열매처럼 쓰려고 합니다. 아울러 부족한 저에게 문예지 작품상을 수상하게 도와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늘 응원해주시는 지인 분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시를 더욱 더 사랑하게 깨우쳐준 문예지작품상, 관계자 분들 그리고 함께 모든 해주신 분들께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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