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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리토피아문학상에 김영진 시인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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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리토피아악 주관하는 제11회 리토피아문학상에 김영진 시인이 선정되었다. 김영진 시인은 인천에서 출생하여 2017년 계간 리토피아로 등단하여 시집 달보드레 나르샤, 옳지, 봄이 있고 아라작품상을 수상하였으며 막비시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심사평>
지금 여기, 꼭 필요한 ‘옳지’와 ‘그렇구나’의 독창적 울림
시의 다양성과 시적 감성의 한계에 대해 생각해보자면 꼭 이 시인의 작품을 두 번 이상 읽어 볼 필요가 있다. 한 번은 작품의 표면을 입이 지나가는 그대로 따라가고, 다음번에는 시어와 시어 사이, 행과 행 사이, 연과 연 사이에 시인이 감췄거나 슬쩍 묻어둔 것을 찾기 위해 눈으로 열심히 탐구하듯 읽어야 한다. 시인은 일상의 미세한 부분과 시선에 잘 사로잡히지 않는 작은 사물들에 대한 그만의 애정과 정감으로 시 세계를 늘 재배치 한다. 그의 이름은 이번 ‘리토피아문학상’의 수상자로 결정된 김영진이다.
김영진 시인은 2017년, 《리토피아》로 등단한 뒤 그간 「달 보드레 나르샤」와 「옳지, 봄」이라는 두 권의 시집을 상재 한 바 있다. 시인은 첫 시집에서 신화와 전설, 민간전승 설화에서 영감을 받은 것 같은 해학적 작품을 보여주었다. 현대 시인에게 꼭 필요한 시적 서사를 구성하는 능력이 탁월함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이어 두 번째 시집에서는 일상의 미세한 사건과 사물들을 통해서 삶의 페이소스를 담아내면서도 예의 긍정적인 활력을 잃지 않는 독특한 시 세계를 열었다. 심사에 오른 다섯 편의 작품은 그 연장선에서 이해가 가능하기도 하고, 또 다른 변모, 정확하게 말하자면 시적 의미라는 측면에서 더 깊어지겠다는 신호처럼 보이기도 한다. 가령 「흙덩어리는 불도 견딘다」와 「새들의 몸에 악보가 있다」와 같은 작품들이 대표적인 징후를 보인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상상이 전혀 엉뚱하다거나 돌발적이지 않고 내면의 깊이와 시적 사유의 깊이를 반증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은 「꽃잎에 눈동자가 베인 날」 같은 작품들이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마지막 연, “못에 걸린 당신이 그림과 시계와 달력을 수건으로 닦아준다. 시간의 마음이 열리며 밤이 쉬는 창가로 죽은 자가 택배를 보낸다. 누런 삼베 속 발톱이 광기로 되살아난다. 새가 허공에 비명을 뿌리며 날아오른다.”는 세계의 표면을 한 꺼풀 벗겨냈을 때 형상화할 수 있는 표현이다.
이번 ‘리포피아문학상’의 수상이 김영진 시인이 활짝 열기 시작한 표현의 세계, 일상의 페이소스를 내장한 채 긍정적 에너지를 마구 품어내는 그의 시 세계의 또 다른 계기이자 초석이 되길 간절히 바라마지 않는다./백인덕, 장종권, 남태식
<선정소감>
자라는 돌의 필요 없는 부분을 하나씩 쪼개 제거하는 과정을 거치면 괜찮은 시를 건질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쉽지 않았습니다. 산과 들이나 도심의 거리 어디를 걸을 때이든 그것은 존재의 순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뼈를 갈아 넣고 피를 뿌려 쓴 시가 괜찮은 시라면 그리도 할 것입니다. 욕망이 충족되면 또 다른 욕망으로 이어진다고 했습니다. 욕망이란 기쁨을 절대로 놓치지 않겠습니다. 리토피아문학상은 너무 과분한 것 같아서 어깨가 묵직합니다. 심사해 주신 장종권 주간님과 백인덕 시인님, 남태식 시인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막비시동인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시는 신이 제게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김영진
<수상작품>
꽃잎에 눈동자가 베인 날
꽃잎에 눈동자가 베인 날 멍하니 벽에 박힌 못을 읽는다. 그림, 달력, 수건, 모자, 얼굴, 마음, 당신도 걸려있다. 창문 밖 상상 속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새 한 마리가 유리창을 뚫고 들어와 모자 속에 둥지 튼다.
발가락을 물고 자궁 속 낮잠에 빠지는데 갑자기 핸드폰 진동 소리가 방바닥을 흔든다. 깜짝 놀라 눈을 뜨면서 내가 느낀 최초의 천지개벽이 되었다. 내 몸을 타자들의 집합장소와 밀회공간으로 임대를 놓는다.
못에 걸린 당신이 그림과 시계와 달력을 수건으로 닦아준다. 시간의 마음이 열리며 밤이 쉬는 창가로 죽은 자가 택배를 보낸다. 누런 삼베 속 발톱이 광기로 되살아난다. 새가 허공에 비명을 뿌리며 날아오른다.
새들의 몸에 악보가 있다
악보는 음악의 레시피다. 음표는 출생이고 박자표는 삶이고 쉼표는 휴식이다. 쉼표가 없으면 마침표가 된다. 이때야말로 죽음이다. 새들은 몸속 악보에 따라 경쾌하게 때로는 느릿하게 때로는 우울하게 날아오르기도 하고 내려앉기도 한다. 버드나무가지 멧새들이 봄에 끌려 암컷 등에 올라탄다. 보름 동안 알을 품는다. 날개 속에서 굴리고 굴린다. 드디어 타탁소리 들리고 새로운 악보가 탄생한다.
흙덩어리는 불도 견딘다
맥을 짚어보더니 한의사가 가슴에 불이 났다고 한다. 손목에서 심장까지가 구만리인데 어찌 아느냐 물었다. 진맥할 때 손가락이 뜨거워서 혼이 났단다. 좌심실에 불이 났는데 숯불에 고기 타는 냄새가 난단다. 어떻게 불씨가 들어갔느냐 따졌더니 우리 몸속에는 태어날 때부터 불씨 하나씩이 담겨 있다고 너스레를 떤다. 그 불씨가 정에 목마르거나 마음과 마음이 부딪혀 번개가 치면 심장에 불이 붙는다고 한다. 어찌하면 좋겠냐 물었더니 산에 올라 새벽공기를 마시라 한다. 공기 좋은 가평으로 가 며칠 새벽공기를 채운다. 그래도 불은 꺼지지 않는다, 취하도록 술을 마시면 불이 꺼질까도 싶었는데 다음날 새벽 입속에서 화기가 또 밀려 나온다. 아, 내 몸이 흙덩어리라서 이 불도 견디는구나. 걱정이 사라진다.
뱀 먹은 닭
아버지는 바닥을 미끄러지며 기는 뱀의 건강을 선택하셨다. 수십 마리 뱀을 항아리 속에 넣어두었다가 뚜껑을 여셨는데, 며칠 지나자 하얀 밥알 같은 구더기가 득시글 득시글거렸다. 닭장 안에 뿌리면 닭들이 그 구더기를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다음날 닭장에는 지독한 뱀독으로 깃털이 모조리 뽑혀있다. 아버지는 털 다 빠진 닭을 잡아 보양식을 만들어 주셨는데, 맛있게 먹고 난 우리들은 온몸에 열이 치받혀 춥지 않았다. 겨우내 훌렁 벗고 살아도 그 흔한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았다.
어느 멋진 날 꿈의 무게
나는 오리궁뎅이다. 청설모가 잣을 물고 돌아다니는 가평에서 오랜만에 내리는 눈을 한쪽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두 눈 뜨고 보기 아까워 한쪽으로 오롯이 받아들인 감성의 코끝에 내린 눈이 차라리 따듯했다. 양팔을 들고 뛰려고 모양새를 잡았다. 가볍게 눈 내리는 하늘을 날아오를 것 같은 심정으로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길가에 말라비틀어진 금잔화는 갈색의 자궁 속 씨앗이 젖어있고, 뒹구는 자갈은 제 몸에 내리는 눈을 돌 속으로 나르기 바빴다. 떨어지는 눈 사이로 이제 두 눈 뜨고 양팔 벌리고 날아오르고자 도움닫기 몇 차례 시작했으나 허공의 무게로 머리를 누르는 것이다. 새들도 양 날개 양력을 잃어 곧 추락했다. 두 발이 중심을 잃어 눈 쌓인 도로에 미끄러졌다. 양팔로 날아오르려 했지만 허공을 날 수 있는 무게가 아니라고 받아주지 않았다. 지상에서 받아주는 것은 오리궁뎅이의 불시착뿐이다. 내 꿈의 무게가 오리궁뎅이의 무게보다 더 무거웠으므로 그 무게를 사랑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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