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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회 김구용시문학상 수상자 안성덕 시인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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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회 김구용시문학상 수상자 안성덕 시인, 수상 시집 '깜깜'(걷는 사람 발행)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가 주최하고 계간 리토피아가 주관하는 제15회 김구용시문학상 수상자가 지난 1월 진행된 심사에서 안성덕 시인(시집 '깜깜')으로 결정되었다. 김구용시문학상은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독창적인 세계를 끊임없이 추구하며 새로운 시에 대한 실험정신이 가득한 시인이 발간한 시집 중 엄정한 심사를 거쳐 선정하여 시상하고 있다. 시인 개인의 잠재적인 미래성 평가와 한국시단의 주역으로서의 가능성이 심사의 주요 기준이다.
안성덕 시인은 전북 정읍에서 출생하여 2009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시집으로 '몸붓', '달달한 쓴맛', '깜깜'이 있고, 디카에세이 '손톱 끝 꽃달이 지기 전에'가 있다. 계간 《아라쇼츠》의 주간직을 맡고 있다.
수상 시집 '깜깜' 중에서
깜깜
운다
숨바꼭질하던 손녀가
꼭꼭 숨어든 네 살배기가
눈물 범벅 콧물 범벅
하얗게 질려있다 깜깜
지워진 세상 헤어나지 못한다
고래 배 속 같은
어둠이 두려운 지니야
더 무서운 건 환한 세상이라는 걸
속속들이 발가벗겨지는 거라는 걸
알지 마라
네 눈동자 속 까만 머루알이
내 눈엔 없구나
못찾겠다 꾀꼬리
제 알몸 애써 안 보고 싶은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지나야 나는
눈을 감는다
깜깜
개밥바라기
어둑살보다 먼저 옵니다 검둥개 저녁 먹으라고 나옵니다 저기 다가오는 사람이 밥을 줄 주인인지 저를 묶어 갈 개장수인지 두려울 녀석, 어서 가 안심시키라고 떴습니다 이슬 차고 나온 사람들 허청허청 제집 찾아갈 때, 저기 저 기다리는 게 대문간에 꼬리 치던 녀석인지 사흘 굶은 늑대인지 분간 못 할 때, 안심하라고 떴습니다
개밥바라기 뜰 무렵 사람의 마을에도 등불이 켜집니다 식구들 어서 돌아오라고, 둘러앉아 밥숟가락 들자고 집집 밝힙니다 동구 밖에 검둥개 마중 나가듯 먼저 들어와 마중불 환하게 듭니다 아득한 고향집엔 어둑살보다 먼저 저녁연기 피어올랐지요 가마솥 밥물 내 넘쳤지요 날개 달린 것들도 개밥바라기 등대 삼아 제집에 날아들었고요
그믐
뭘 감추는 걸까
무슨 생각 그리 골똘한 걸까
깜깜한 그믐 말고
환한 보름에 들여다봐야 알 수 있을까, 달
슬며시 그대 손목 잡으려던 생각
절굿공이 맞잡고 쿵덕
쿵덕 찧으려던 방아
멋쩍어 그랬을까, 그대 모른 척했다
그믐밤이었다
끝내 안 보인
눈감은 그 대답으로 나는 버텼다
달의 뒤편을 기웃거리며
한 쟁반 은근할 보름을 고대하며
곰곰 생각해 보니 그대
어두운 그믐 같은 속내 보여 준 거겠다
어느 가을밤 누님처럼, 달도
뒤돌아 소슬바람 소리로 옷 갈아입는 거겠다
안 보여 준 게 아니라 차마
못 본 거겠다
선정평
다양한 시적 경험을 선사
안성덕 시인의 시는 하나의 틀에 갇히지 않고 자유로운 주제 의식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며, 섬세한 언어와 감각적인 표현으로 독자의 감정을 자극합니다. 두 번째는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며, 강렬한 이미지와 비유를 통해 독자들이 스스로 질문하면서 답을 찾아가게 합니다. 세 번째는 사랑과 이별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며, 공감과 위로를 전달합니다. 네 번째는 상상력과 상징성을 통해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적 감각을 선사합니다.
안성덕의 이번 시집 속에는 다양한 주제의식은 물론 시편마다 각각 다른 스타일을 구사하는 것으로, 문학적인 가치와 창의성을 충분하게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는 독자들에게 다양한 감정과 생각을 전달하며, 문학의 다양성과 풍부함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제15회 김구용시문학상을 수상하는 안성덕의 시편들은 독자들에게 다양한 시적 경험을 선사할 수 있다는 것은 물론 시의 변용이 또 다른 지평을 열어준다는 점에서 함께 기뻐합니다. 제15회 김구용시문학상을 수상하는 안성덕 시인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손현숙(글), 장종권, 남태식
수상소감
왜 사냐 건, 웃고 싶다
시루봉을 넘은 해가 은석동 뒷산을 물들일 무렵 뚜- 뚜우거렸다. 날이 궂어질라치면 사십 리 밖 신태인역 기적 소리가 나를 불렀다. 농사일에 치여 사는 어머니가 언제 한 번 당신 무릎에 누이고 귓밥 파 준 적 없건만, 또렷했다. 열여섯 살 나는 그 기차를 타고 삐까뻔쩍하다는 서울이라는 곳에 가보고 싶었다. 그래, 중학교 이 학년말 봄방학 무렵이 분명하다. 음악 선생님과 연애한다는 소문이 돌던 그 선생님이셨다. 창밖을 내다보며 나직이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요/강냉이가 익걸랑/함께 와 자셔도 좋소//왜 사냐건/웃지요” 읊었고 나는 끌렸다. 뜻도 모르면서 좋았다. 생각해 보니 언제 왔다 언제 갔는지, 오기는 온 건지도 모르는 사춘기 말고 내 ‘시춘기’였다.
말 한마디 붙이지 못했다. 어쩌다 주변이나 얼쩡거렸을 뿐 세월을 흘려보냈다. 그렇게 나는 나이를 먹었고, 결혼해 아이를 낳고 아침이면 출근하고 저녁이면 퇴근했다. 밥 먹고 똥만 싸다가 쉰 살, 아차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 내 것이 될 것만 같았다. 큰맘 먹고 시를 찾아갔다. 늦게 배운 도둑 날 새는 줄 모른다던가, “산 너머 남촌에 누가 사”는 줄도 모르면서 “해마다 봄바람”을 기다렸다. 절절하게 헤어진 그 누구도 없으면서 우기엔 “퉁퉁 눈이 붓도록 울”고 싶었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했다.
어느덧 세월은 흘러, 학교에서 문화센터에서 시를 좋아하는 분들과 함께 어울려 논다. 가끔 시가 뭐에요, 물어오면 녹음기를 튼다. 사전적 의미나 외운다. 형용사, 부사가 아니라 명사나 동사로 쓰는 것이 시입니다, 낯설게 하기가 어쩌고 주워들은 풍월을 읊는다. 이제 발자국 똑바로 찍어야 할 나이다. 소설 『불멸』에서 밀란 쿤데라가 말했다. “시의 천분은 어떤 놀라운 관념으로 우리를 현혹하는 데 있는 게 아니다. 존재의 한 순간을 잊을 수 없는 것이 되게 하고 견딜 수 없는 향수에 젖게 하는 데 있다.” 그렇다, 내 첫 시집 발문에 강연호 시인이 적어준 말씀이기도 하다.
고백한다. 나는 ‘김구용 시인’을 잘은 모른다. 그분의 작품 세계도 일천한 주제에, 주신다니 덥석 받는다. 목이나 축이라는 한 잔 술상도 아닌데 간이 부은 게 분명하다. 김구용 선생님은 물론 앞선 수상자들께도 누가 되는 일이겠다. 그만 사람 많은 도시가 물린다. 이제는 간간이 무궁화호나 서는 간이역만 같은 신태인역에서 내려 사십 리, 열여섯 볼 붉은 소년이 발 동동 굴렀던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다. 지금은 흔적도 없이 스러진 그 집에 가고 싶다. 왕겨 속에 내 태를 묻고 오래 태우셨을 서른 살 푸른 아버지를 뵙고 싶다. 가지런히 고무신 벗어 두고 들어간 산방에서 첫국밥 뜨셨을 아직 스물일곱 내 어머니를 꼭 한번 만나고 싶다. 왜 사냐 건, 웃고 싶다./안성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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