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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활주로/박혜연 시집/2014년 세종 우수도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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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토피아포에지 25
붉은 활주로
인쇄 2014. 4. 25 발행 2014. 4. 30
지은이 박혜연 펴낸이 정기옥
펴낸곳 리토피아
출판등록 2006. 6. 15. 제2006-12호
주소 402-814 인천 남구 경인로 77
전화 032-883-5356 전송032-891-5356
홈페이지 www.litopia21.com 전자우편 litopia@hanmail.net
ISBN-978-89-6412-039-2 03810
값 10,000
1. 저자
박혜연 시인은 승주에서 출생하여 순천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1993년 ≪시대문학≫으로 등단하여 작품활동을 하다가 2007년 ≪열린시학≫ 신인상을 수상했다. 여수문인협회 회원이며, 여수 갈무리문학회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2. 시인의 말
자서
詩
처음부터 잡은 손 놓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나도 그 손 놓지 않겠습니다.
2014년 4월
박혜연
3. 목차
제1부 물앵두나무
와온석양 15
나의 별자리 16
통증 17
바다, 여수바다 18
나무서랍, 따뜻한 20
바다, 별자리?2 22
바다, 피아노―새벽 종포 어시장에서 24
角 26
테이크 오프take off 28
거기가 그립다 30
플러그를 꽂으며 32
낡은 수첩을 위한 비망備忘 34
공 36
물앵두나무 38
연초록 젖꼭지 39
모든 별은 여수바다에서 뜬다 40
매미 42
제2부 바람의 이유
금오도 사람들 45
물푸레나무 46
바람의 이유 48
환절기 50
우리는 포로다 51
비밀번호 52
생각하는,사람 54
아침 단상 55
벌교천의 사랑 56
유리컵 58
등을 낮추는 이유 59
아버지의 숟가락 60
촉수 62
새 63
작은 돌탑에 깃든 64
우울증의 계절 66
다솔사 적멸보궁 68
49제 70
제3부 흔들리는 잠
다시 태어나 찾아오다 73
화가 74
안구건조증 76
사랑 79
캥거루 케어 80
가장 오래 된 말 82
갑골문자 84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영전에 부쳐 86
다시 자라는 나무 88
2월 눈 89
비눗방울을 불다 90
윤전輪轉 92
경도 94
참내, 96
강원도 98
신명의 근원을 생각하며 99
흔들리는 잠 100
제4부 어떤 시간
건어乾魚 103
가제 손수건 104
아버지의 기일 106
당산나무 108
미장공 109
선인장 110
만추 111
구슬치기 하는 아이를 본다 112
경계대상 1호 113
은하수 114
벚꽃이 흩날리는 116
기도 117
봄날 118
어둠을 틈타 120
어떤 시간은 122
물 속의 집 124
해설/신병은:오래 숙성시켜 풀어낸 맑은 휴머니티125
―박혜연의 시세계
5. 평
그녀의 매력은 이러한 의미의 상호소통을 통해 새롭게 유추된 의미를 넓히는데 깊게 관여하고 있다. 그의 시적 상상력의 오브제인 바다, 어머니, 하늘, 별, 별자리는 우리가 만나는 낯익은 대상이지만 그대로 재현된 것이 아니라, 메타포적 변용으로 오브제들 상호 간에 맺고 있는 의미를 새로운 의미체험으로 소통시킨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참으로 맑고 고운 서정적인 휴머니티가 숨어있다. 시를 사랑하며 살았고 시를 사랑하며 살고 있는 시인, 그것은 나무와 풀과 물과 바람, 사람을 사랑하며 살 수밖에 없는 휴머니티의 본래적 모습이다./신병은(시인)의 작품해설에서
6. 작품
와온석양
하늘이 바다로 내려오고 있다.
바다는 부드러운 계단을 만들며 길을 내어준다.
붉은 마침표가 산과 산 사이에 찍히고
꽃무늬 보자기에 뻘밭을 통째로 담고 있다.
여기서는 울지 않아도
찰박찰박 길을 내며 바다로 돌아갈 수 있다.
내가 내 속으로 들어가는 시간
꽃섬 몇 개 징검다리 삼아 바다가 돌아가고 있다.
멀리 겹겹이 서 있는 산도
제 몸을 땅에 두고 하늘을 넘어가고 있다.
나의 별자리
삶이 라면박스 안에 갇힌 병아리라는 생각이 들어요. 벽 너머 꿈을 생각할 때면 하루에 한 번씩 죽어요. 그렇다고 너무 큰 걱정은 말아요. 아직까지 정말 죽어 본 적은 없으니까요. 단지 라면박스 위로 보이는 하늘이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 어머니가 누구인지 기억할 수 없다는 사실, 나를 품었던 것이 뜨거운 형광 불빛이었는지 따뜻한 문장이었는지는 알 수 없어요. 가끔 손바닥만 한 하늘이지만 내 별자리를 찾아요. 불꽃이 쏟아지는 사자자리, 영원히 마르지 않는 물병자리, 고집불통 전갈자리까지 멀리서 빛나는 하늘, 눈이 작아서일까요, 내 별자리는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아요. 나를 인공 수정시킨 차가운 피를 모조리 뽑아버리고 싶은 밤, 안드로메다 공주를 태우고 힘차게 달리는 검은 말 페가수스가 되고 싶어요. 그런 밤 혼자서 뜨거운 별 하나 낳아요.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깃털 자꾸 겨드랑이를 간지럽혀요 어머니, 붉은 하늘을 베고 나를 다시 기록해 주세요.
통증
젖꼭지만 살짝 가린 가슴이 큰 여자가 텔레비전 속에서 걸어 나온다. 가슴 받쳐줄만 한 튼튼한 골반도 없는 그녀를 보면서 아들아이는 탄성을 지른다. 5학년 때 젖몽우리 잡힌 나는 양쪽 어깨를 웅크려 봉긋 솟는 젖을 숨겨야 했다. 중학교 친구는 너무 큰 젖 때문에 항상 이야기꺼리가 되었다. 피아노를 잘 치던 그 친구는 큰 젖 때문에 자꾸 몸을 움츠리더니 피아노 소리도 함께 작아져 버렸다.
젖을 밀어내던 아들아이가 뒤늦게 젖을 만지려 든다. 아이 입에서 불리지 못해 어설프게 한 손에 잡혀지는 젖이 괜히 미안하다. 육남매 젖으로 키워 배까지 늘어지던 어머니의 젖, 다 커서 만지려들면 스스럼없이 내어주셨다.
내 손에 잡힌 내 젖에서 저릿저릿 통증이 퍼진다.
바다, 여수바다
뜨거운 바다에서 열꽃이 터져.
나는 자궁 깊숙이 숨은 빈 방에서 나팔을 불어.
양생의 단전을 지나 뜨거운 나의 아래
낮고 넓은 골반에 뿌리 내린 꽃숨 끌어올려
얼굴 발개지도록 나팔을 불어.
기억하지, 내 몸에서 처음 꽃이 터지던 날
어머니 그 꽃잎 곱게 받아
두툼한 책갈피 사이에 모셔 두었지.
딸아, 꽃 피웠으니 너도 꽃밭이다.
꽃씨 받아 싹틔울 귀하디귀한 꽃밭이다.
축복의 주술로 어머니
내 꽃밭 오래오래 쓸어 주셨지.
나는 꽃씨였다가 꽃이었다가
풍성한 꽃밭을 꿈꾸는 바다였다가,
밀물 들면 꿈의 해수면이 차오르고
썰물 지면 보름달을 품는 여수바다였다가,
내 꽃밭에 처음 꽃이 피던 그 날
나는 신의 나팔소리 들었어.
내 몸에서 터져 나오는 나팔소리 들었어.
맞울림 하는 내 몸 안에 바다가 있어.
그래, 나는 바다야.
나팔소리 울려 퍼질 때마다
만선의 붉은 깃발 단 배가 귀항하는
꽃밭이야, 꽃밭.
나무서랍, 따뜻한
그녀의 손에 오래된 나무서랍들이 숨어있다.
한 손이 없는 그녀에게 악수는 추억이어서
그녀는 악수 대신 나무서랍을 열어 보여 준다.
서랍 열면 단발머리 찰랑이던 여고시절의
그녀, 흑백 사진 속에서 두 팔 활짝 벌린 채
하얀 금낭화처럼 환하게 웃고 있다.
시집을 읽던 귀퉁이 낡은 앉은뱅이책상과
툴툴거리며 돌아가던 방앗간이 보이고,
기계 속으로 떨어진 시집 속의 네잎클로버를
잡는 그 순간, 그녀의 행운은 끝났다.
크고 작은 나무서랍이 빠르게 열렸다가 닫힌다.
그녀의 웃음은 하얀 붕대에 감겨 창백해지고
꿈 많은 세상을 향해 펼쳤던 두 팔은 반쪽만 남았다.
오래된 그녀의 나무서랍을 열면
단발머리 순천여고 여학생이 뛰어나와
반갑게 안아주고 두 손 잡아줄 것 같지만,
지문이 닳아버린 그녀의 손은
남은 한 쪽만으로 나무서랍을 열었다가 닫는다.
꽉 잡은 십자드라이버로
헐거워진 서랍을 꼭꼭 조이고 기름을 치는
그녀, 손을 잃었지만 우리가 잃어버린
오래되어 따뜻한 나무서랍을 가졌다.
바다, 별자리?2
당신의 삶도 우리 안에 갇힌 양식 도다리일 뿐이지요. 나도 그래요. 양식장 너머 바다의 꿈을 생각할 때면 나는 살고, 항생제가 투여될 때마다 나는 죽어요. 어머니, 당신을 만난다면 나를 인공수정 시킨 차가운 피를 모조리 뽑아 돌려주고 싶어요.
단지 양식우리가 바다의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 어머니가 누구인지 기억할 수 없는 사실을 안다는 것이 슬퍼요. 나를 품었던 것이 뜨거운 형광 불빛이었는지 따뜻한 문장이었는지 궁금해질 때 가끔 바다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내 별자리를 찾아요.
불꽃이 쏟아지는 사자자리, 영원히 마르지 않는 물병자리, 고집불통 전갈자리. 오른쪽으로 쏠린 도다리 눈이어서일까요. 안드로메다 공주를 태우고 힘차게 달리는 검은 말 페가수스는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아요.
나도 페가수스처럼 달아나고 싶어요. 가짜 바다가 아닌 진짜 바다로 헤엄치고 싶어요. 꿈꾸는 것은 죄가 아니기에 그런 꿈을 꾸는 밤 혼자서 뜨거운 별들을 내 안의 도다리알처럼 수북수북 흘려보내요.
내 알들은 살려주세요, 어머니. 하늘이 아니라도 이 바다에 별처럼 뿌려주세요. 살아 반짝반짝 빛난다면, 그게 나의 별자리가 될 거에요. 그 중 몇 놈이 제 어미의 피를 묻는다면 그 바다 별자리를 자랑스럽게 가르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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