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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토피아포에지 25/박혜연 시집/붉은 활주로/2014년 4월 발간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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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토피아포에지 25/박혜연 시집/제목 미정/3월 발간
박혜연
2007년 ≪열린시학≫으로 등단.
캥거루 케어*
나는 주머니 안에서 나왔다 태반이 없는 어미의 안쪽 주머니는 나를 오래도록 품지 못했다 아직 배아 상태였던 나는 태고 적부터 유전된 피의 속삭임에 따라 움직였다 눈도 뜨지 못한 채 생기다 만 앞발을 들어 젖내 나는 살 쪽을 움켜잡았다 미세한 바람에도 요동치는 몸은 날개보다 가벼웠다 한 호흡이 한 세상인 듯 여러 생을 걸쳐 어미의 바깥 주머니에 도착한 나, 비로소 날개를 접었다 나는 최초 자궁 외 임신에 성공한 배아였다
현실이란 벽을 뛰어 넘어온 꿈 나는 현실을 현실로 받아들이기 위해 뒷다리에 힘을 길렀다 뜨거운 피, 저기 멀리 여우나 비단뱀 혹은 독수리의 날카로운 이빨이 보일 때면 다리에 힘이 풀리기도 했다 하지만 주머니는 항상 몸 가까이 있었고 순간적으로 힘이 솟았다 끓는 피, 점차 힘이 실리는 꼬리는 뒷다리와 함께 크고 강해졌다 시속을 뛰어넘어 달릴 때면 푸른 초원은 나의 책갈피가 되었다 책갈피를 넘길 때마다 또 다른 세상이 돋아났다 환호하는 피, 그쯤 내 배 아래 부분에도 작은 주머니가 생기고 어느 새 초원이 그 속에 들어와 푸른 인큐베이터를 만들고 있었다
* 아기를 엄마 배 위에서 체온을 느끼며 자라게 하는 방법.
-리토피아 44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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