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리토피아 신인상

신인상
수상자
투고작

오정자-제23호 이 시인을 다시본다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장종권
댓글 0건 조회 1,849회 작성일 06-09-06 17:49

본문


오정자

물꼬


윗논 아랫논, 위 아래로 농사를 짓는 박씨와 김씨를 보고 사람들은 죽을 때도 같이 죽을 거라고 말했다. 술을 사도, 고기 한근을 사도, 그들은 항상 같이 먹으며 혹 벼멸구라도 생기면 서로 농약을 뿌려주곤 하던 그들이었다.

이른 아침 김씨, 하늘을 보니 비로 쓸어낸 듯, 파란 하늘에 새털구름 하나 없다. 들에 나가 논을 둘러보니. 양분이 떨어진 모에 황달기가 있다. 김씨, 논둑의 물꼬를 터놓고, 물을 쫙 빼낸 다음 다시 단단히 막고는 허연 요소 비료를 설설 뿌려 주었다. 며칠은 족히 날씨가 좋을 것 같아서 개자리도 치지 않았는데, 하늘이 엉큼을 떨었는지 밤이 되자 갑자기 벌떼 같은 구름이 바람을 몰고 와 빗줄기를 쏟아 부었다. 논바닥 물은 오장까지 뒤집혀 시뻘건 황토물이 되었고. 새벽같이 나와 물꼬를 단속하던 김씨의 논에 위 박씨네 논둑 물꼬에서 콸콸 쏟아져 내리는 물이 보였다. 어제 뿌린 거름이 논둑을 넘어 아래로 아래로 떠내려가고 있었다. 김씨는 사색이 되어 박씨에게 물꼬를 막으라고 소리치고 박씨는 우리도 저 위에서 내려오는 물을 어쩌란 말이냐고 악을 썼다. 빗속에서대판싸움이 벌어졌다. 둘은 황톳물에 젖어 몸에 찰싹 붙은 삼베 등걸을 서로 거머쥐고 이리 밀치고 저리 밀치며 물구덩이를 뒹굴었다.

물은 아랑곳없이 아래로 아래로 흘러내렸고,
철모르는 붕어와 송사리떼들이 물줄기를 거스르며
뛰어 오르고 있었다.



흉년


수다댁, 이빨이 왜, 그리 꺼무요?
무릇싹에 쑥 때문이지라이,
얼굴이 매급시 부황 들린 사람맹키로.
누우러져서 남사스럽잔이유,

무릇싹에 쑥에 사카린을 늫고
엿맹키로 고와 먹었는디 
이렇게 이빨이 씨꺼머지드랑게
고것이 먹을 만헙디여?
먹을 만헙디다,

새끼들 고물고물허제 상은 안 팔리제
이 흉년에 살낭게 별수 있깐디유?

화롯불에 아교를 녹여 부치고 옻칠을 혀서
파리가 낙상할 만큼 번질번질한 상인디,
고라실마다 매고 다녀도 흉년이라
어느 시러베아들놈 하나 거들떠보지 안헙디다

굶기를 밥먹듯 하다가 누래지는 얼굴이 
부황의 징조같아 무릇싹과 쑥에 
사카린을 넣고 고와먹은 것인데,

애비, 애미, 새끼, 
이빨마다
가난의 그을음이 짙다,



은행나무


햇볕이 지나가다 담장에 부딪쳐 허리가 꺾인다 

거기, 연둣빛 이파리들 나부낀다
은행나무 가지들은 앞집 뒷집의 경계도 없이
담장을 넘어, 마당을 건너, 
자꾸만 남의 창으로 뻗어 간다

뒷집 주인, 제 창으로 자꾸 기어드는 은행나무 가지를 보며,
“이놈의 은행나무는 어쩌자고 우리 집으로 뻗어와 창을 가리는 거여”
투덜거린다

앞집 주인, 
“은행나무가지 좀 넘어갔다고 지랄이여, 상종 못할 놈이네”
맞수를 놓는다

어느 날  그 가지, 
주인의 손에 모질게 베어졌다

그렇게…… 옥신각신이, 밤과 낮이, 
돌고 돌아, 이파리들 윤기를 잃더니 
그만 우수수 떨어지며 또 담장을 넘는다 

뒷집 주인, 마당을 쓸며 또 투덜거린다
“아니 이놈의 은행잎은 왜 우리 마당으로만 떨어져”
그 말을 들은 앞집 주인
“또 지랄이네, 이웃 간에 황소 한 마리 가지고 다투지 말라는
옛말도 모르는 무식한 놈 에잇 퇫, 퇫!“

은행나무는 말이 없다.
그저 노란 잎만 자꾸 떨군다



느그 아부지


야야, 느그 아부지는 매일 먹는 밥을 어떻게 소화시켰는지 아냐 ? 맨날 밀창문을 열어놓고 앉아서 사람들에게 욕 퍼붓는 일로 소화시켰어야,

신작로 가시(가장자리) 논에서 모심을 때 읍내 여인네들이 장구 치며 살구꽃 만발한 흥복사로 놀러가는 게 보이면 욕을 퍼부었지 먹고 살기가 호랑이보다 무서운디 어떤 미친 것들이 지금 똥장구 메고 춤추고 지랄이냐고, 
근디 이상도 허지, 옛날에는 느그 집이 그렇게 크고 높아 거기 앉아 있던 느그 아버지도 엄청 높게 보였는디 지금은  느그 아부지가 없어서 그런지 그곳이 요래 쪼께하게 보여야, 
하여간 느그 아버지는 봇장이 대단한 사람이었어야 
멈들한티 욕하는 것도 봇장이 두둑혀야 할 수 있는 것 아니냐? 그려, 용기로 말하면 느그 아부지 당할 사람이 없었제, 자유당시절 투표소에서 사인조, 오인조로 투표할 때도 순경 놈들에게 느그 아부지 특허품인 욕설을 쏟아 붓다가 파출소로 끌려 가기도 하고, 그것뿐이냐? 길 가다 아무데나 거시기를 내놓고 오줌을 갈기던 눔 지팡이로 머리통을 때리다가 지팡이를 빼앗겨 부러뜨리는 일도 당하고, 육이오 때 동네로 들어온 피난민들을 모두 데려다 집을 왼통 난민 수용소로 만들기도 했제. 그래도 느그 아부지 눈물은 징하게 많은 사람이었어야, 친구 아들이 방죽에 빠져죽었을 때, 느그 아부지 눈물 때문에 방죽물이 더 불어났다는 말이 있었어야,

지금도 마른 땅에 느그 아버지 눈물 거튼 빗물 쏟아지면 
화-하니
흙냄새 일어나던 
그 길들을 잊지는 않었것지야?



엄마야!


응?
비 온디야?
비 온디야?
비 온디야?
그래…… 비 온디야……

밤새도록
옛날이야기라도 하는 것일까?

도란도란
숨 고르며 내리는 비

잠자던 씨알들이 흙 속에서 
뒤척이며 
돌아눕는 소리



시작노트


나는 왜 쓰는가?

문득, 바람이 풀숲을 흔들어 놀란 새가 우는 소리를 듣다가 아직도 딱지가 지지 않은 생채기들이 아려올 때가 있다.
이 지구상에는 부딪치며 살 수밖에 없는 운명적인 것들이 있는가보다. 나는 그 운명적인 것에 의해 글을 쓰는지도 모른다.
가만히, 내안에 가두어 놓고 싶기도 했던 것들, 때론 너무 어이없어 웃을 수밖에 없는 삶의 단면들을 이렇게 넋두리처럼 늘어놓는다.
내 생의 길이 되기도 한 그 아픔들의 배설구가 글을 쓰는 일이다.
오정자․1943년 일본 동경 신주꾸 출생, 광복과 함께 귀국
        ․시집 ꡔ풀숲은 새들의 몸을 숨기고ꡕ




추천사


징헌 전라도 사투리 속에 이야기 형식으로 담아내는 그녀의 천산북로를 보면 눈물이 난다. 그녀는 아는 척하지 않는다. 징징 짜지도 않는다. 그럴 듯하게 눈속임하려 들지도 않는다. ‘귀걸이 목걸이 주렁주렁 걸치고 아무리 폼 재도 소용없어야, 우리는 이렇게 살아왔고 우리 속에는 이렇게 징헌 피가 흐르고 있응게.’ 하고 유머러스하게 일침을 놓을 뿐이다. 그러나 그녀가 들려주는 나직한 이야기들 속에는 동학의 핏줄만이 갖고 있는 범접할 수 없는 자존이 있고, 제도권 속에서 안온하게 살아온 사람은 죽어도 못 쓸, 눈물로 쑥개떡을 씹으며 보릿고개를 넘어온 이 나라 백성의 고름 같은 눈물이 있다.
―서정춘(시인)
[이 게시물은 리토피아님에 의해 2024-04-25 16:31:08 신인상수상자에서 이동 됨]
추천6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