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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창-제23호 신인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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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종권
댓글 0건 조회 2,033회 작성일 06-09-06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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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상․시|홍순창
홍순창

뒤집히는 양말



나는 잠든다. 털실 양말 코 사이로 사랑은 다 흘러내리고 앙상한 뼈만 남는다. 내가 잠든 후 401호와 403호는 성탄의 축하파티가 한창이다. 잠시 음악이 흐느적거리는 틈에 나는 몽유의 관음 여행에 들어간다. 먹다 만 고구마 케이크와 술 방울들이 흩어진 망루 위에서 건넌방을 바라보고 안방을 거쳐 귀향한다.
오랫동안 그들에 섞여 기이한 춤을 추었지만 아직 뼈는 식지 않았다. 나는 잠든다. 양말 아래쯤에 달아난 여자아이의 시큼한 애액이 흥건하다.
한코 한코 더듬으며 짜 만든 양말을 뒤집자 뼈는 살아서 걸어 나가고 바닥에 고여 있던 물들, 해면처럼 빠르게 빨아들인다. 나는 스물아홉을 거쳐 열둘, 일곱까지 리와인드된다. 방은 그대로인데 사랑을 모르는 나이가 되어 질투도 의심도 없다.
띵동! 이파리 대신 전구를 몸에 두른 나무들과 철야로 이어지는 송년세일의 백화점 입구에서부터 눈을 맞으며 걸어온 친구들이 몰려오고 그들의 구두코에서 노란 캐롤이 툭툭 떨어진다. 역시 케이크와 포도주가 놓여진다. 402호도 이제부터 파티가 시작되려는 참이다. 성탄을 축하해!




말똥말똥


말똥말똥. 천 개의 눈알이 굴러다니는 허름하고도 깜깜한 밤이다. 소똥소똥. 개똥개똥. 모두들 아프다고 아우성이다. 용감하고도 어리석게 스스로 사랑을 물리친 눈알이 앞장서자 선착순 일렬종대로 헤쳐 모인다. 두 번째는 사랑의 칼날에 베인 눈알, 세 번째는 사랑의 잡탕밥에 급체한 눈알…… 이런 식이다. 
역시나 맨 뒷자리는 사랑이 무언지도 모르는 부처 눈알이다. 말똥말똥

눈을 감으면 언제부턴지 버석거리는 소리가 난다. 눈의 집으로도 쓰이는 가죽 자루 속에서 알맹이들이 서로 부딪친다. 실핏줄이 마른 강줄기처럼 번져 지난 몇 해의 가뭄을 드러낸다. 
그 강가에 남의 집을 짓느라 자기 집을 버려두었던 목수는, 딸의 가출 소식을 듣고 늦은 밤 귀가했다. 불이 꺼져 있는 집안에는 또 다른 천 개의 눈알들이 일렬종대로 모여 목수를 기다린다. 그들에게 성수를 뿌려야 할 시간이 도래했다. 
명하노니 부디 (각오해랏!) 뒤로오~ 돌앗!



밥풀 묻은 시집


한쪽은 개가 물어뜯었다. 침에 젖어 호빵처럼 부풀어 오른 귀퉁이 때문에 라면 냄비 받치기도 어려워졌다. 지도를 품은 그녀의 일흔 밤이 꼬박 담겨져 있다.
마음 다친 붉은 구름처럼 저녁을 생각 없이 돌아다닐 때부터 순순히 나를 달래주던 그녀는 이제 전지가 다 떨어진 시계처럼 느리게 작동한다. 귀퉁이가 뜯긴 채 언짢은 내색도 없이 자신의 생애를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우리가 함께했던 여행지에서의 추억 따윈 보이지도 않는다. 그녀가 쓰는 책의 표지와 본문은 대부분 흰색이기 때문이다. 매일 새벽까지 쉼 없이 긁어대도 읽을 수 없는 것을 난들, 그녀를 때때로 훔쳐보는 옆집 반바지 아저씬들 어쩔 것인가.
순순하다. 그녀와 나의 아들이 매우 훌륭하게 자라고 있다, 그렇다한들 이제 그녀는 그녀다. 떠날 때가 된 것이다. 마치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는 평일의 여사무원처럼 서류들의 귀를 맞춰 정리하고 책상 서랍을 닫는다. 반바지 아저씨 때문이라고 생각해보지만 아무래도 궁색하다.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도 부조리하다. 그것에 비하자면 비통을 누르고 말없이 퉁퉁 불은 시집은 대단하고 또 대단할 뿐이다. 



거짓말


1.
그녀는 문틈으로 사라졌다. 마치 형광등이 켜지거나 꺼지는 방식으로. 나는 무료하다. 내가 일어서자 그림자가 나를 거인으로 보이게 했다. 우람한 어깨를 슬쩍 비틀어 우심방을 덮은 빈 권총지갑이 과장되어 보이는 자세를 취했다.
동범이의 죽은 개는 물론 세상 사람들 모두 그녀를 범인으로 알고 있다. 그녀와 나만이 그녀가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뿐이다. 우울과 환희의 끝없는 도돌이표를 상징으로 날아오르는 그녀이기에 오해투성이다.
오해가 오해를 불러 진실이 밝혀지리라고 그녀는 소리쳤다.

2.
그녀는 오케스트라의 공연장에 가본 적이 없다. 그 끔찍하다는 강요를 달게 씹어 삼킬 이빨도 채 자라지 않았다. 구태여 원한다면 실탄 따위는 할부로 구매할 수도 있지만 숫자가 자라난다면 또 다시 오해 받을 것이다. 
미래의 기계인간들이 변장하고 앉아있는 저 배심원들이 수상하다.
그림자, 진실의 그림자는 2006년 여름, 입을 다물고 있다. 




조의 축구 이야기


조는 축구를 배우고 싶어 한다. 여유와 고급 발기술의 상관관계를 언급한 기사들을 스크랩하기도 했다. 감출 만한 실력도 없지만 보여줄 용기 또한 없다. 지친 가족들이 하나둘 그를 떠나갔지만 축구공을 안고 잠들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생계인 난전 앞을 지나쳤다. 유세비오와 펠레도 섞여 있었지만 알지 못했다. 
조의 어깨는 자라고 장딴지는 술에도 견딜 만큼 단단해졌다. 어이없는 일이었지만 팽팽히 부푼 지구의 중력이 그를 누르고 있다고 생각하는 날들이 점점 늘어갔다. 정말 어이없는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그는 모든 존재가 돌멩이를 배낭에 넣고 길을 걸어서 직장에 출근한다고 여기는 녀석이란 말인가?
바람 빠진 축구공처럼 지루한 지구에 무슨 질투가 남아 있어 그런 험담을 하는지 궁금했다. 염치없이 길거리 모퉁이에 기대 살아가는 처지에……

조는 축구를 배우고 싶어 한다. 황홀한 축구의 세계에 입문하기만 하면 거리에 서있는 여자들 정도는 수작을 부리지 않아도 가질 수 있대요. 무엇보다 수만 개의 손톱을 바짝 세우고 왕처럼 도도하게 누워있는 그라운드를 단단한 스파이크로 마구 뭉그러뜨릴 수 있는 자격증이 좋아요. 그레이하운드에 올라타면 어디든 도착할 수 있어요. 조의 꿈은 신장개업의 허수아비 풍선처럼 춤춘다. 부풀어 축구공보다 단단해지지만 그럴수록 그의 발목은……

|당선소감|


깨어보니 낯선 곳이다
짧은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즈음 나는 집이 여행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여행지에서 집으로의 또 다른 여행. 평생을 떠돌아다녀야 하는 운명이라도 그다지 나쁜 편은 아니다. 지금 얼마만큼 와 있는지 얼마나 더 걸어야 그곳이 나타날지 궁금하지 않다. 고작 지도나 살펴보는 지경이라면 들판에서 잠들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내 위에 올라타 나를 조롱하는 등짐은 혹처럼 단단히 들러붙어 있다. 배낭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다. 맞은편에서 누군가 걸어온다. 해를 등진 채 나보다 훨씬 큰 짐을 메고 묵묵히 지나간다. 딱딱한 표정을 가진 그 사내의 궤적을 거슬러 쫓아간다. 검은 색의 바닥에 떨어진 그의 땀방울이 섬뜩하다. 어딘가를 가리키듯 선명한 자국만이 나의 나침반이다. 지금 나의 집은 어디인가.
부족한 사람의 어깨를 툭, 툭 두드려 준 심사위원들께 감사드린다.




______________
홍순창
․1960년 경기 안성 출생
․435-768 군포시 산본2동 개나리A. 1335-402
․02-2271-3335 
․현재 토담미디어 근무
․chalkack@yahoo.co.kr

|심사평|


부조리한 삶의 정경 묘사 돋보여

자신의 뚜렷한 목소리로 삶과 세계에 대해 노래하는 다부지고 힘차고 발랄한 시가 발견되기를 기대하면서, 심사자에게 넘겨진 응모작들을 꼼꼼히 읽어보았다. 그러나 기성의 때가 묻지 않은 싱싱한 상상력의 역동성과 언어구사의 활달함을 거침없이 보여주는 시가 얼른 눈에 띄지 않아 안타까웠다. 그런 가운데서 구회남 씨의 「도라지꽃」 외 4편과 홍순창 씨의 「뒤집히는 양말」외 4편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었다. 
구회남 씨의 작품들은 나날의 삶 속에서 수시로 부딪치게 되는 부조리한 상황 그 배후에 감추어져 있는 의미를 예리하게 포착, 자신만의 당찬 시적 문법으로 드러내는 솜씨가 만만치 않았다. 예컨대 「여술마을에서」같은 작품에서는 말의 유사성이 갖는 기묘한 희화성에 착안하여, 예술인이랍시고 터무니없는 딴지를 걸거나 엉뚱한 농지거리를 함부로 하는 부류들을 가차 없이 풍자하기도 하고, 선외 작품 중 「에뮤, 애무」 같은 작품에서는 “시드니 동물원에 사는 에뮤”와 “내 안에 사는 애무”가 동일한 의미의 층위에 놓을 수 있는 내면적 괴물의 정체임을 유머러스하게 묘사해내는 등 그 시적 형상능력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러나 구회남 씨의 언어구사의 어법이 주로 관념적 진술과 산문적 어조로 이루어져 있어 다소 거칠다는 느낌이었다.
홍순창 씨의 작품들 역시 현실생활의 비인간적 황량함과 부조리함을 날카롭게 꿰뚫어보는 관찰과 그 묘사능력이 돋보였다. 「뒤집히는 양말」에 보이는 “……눈을 맞으며 걸어온 친구들이 몰려오고 그들의 구두코에서 노란 캐롤이 뚝뚝 떨어진다” 같은 표현이나, 「말똥말똥」에 보이는 “천개의 눈알이 굴러다니는 깜깜한 밤이다. 소똥소똥. 개똥개똥. 모두들 아프다고 아우성이다” 같은 표현은 홍순창 씨가 우리말이 갖는 독특한 음성상징을 절묘하게 살릴 줄 알며 기지에 넘치는 해학을 담고 있다는 것을 확인케 했다. 초현실주의적인 이미지구사의 방법이라고 할만한 표현의 적절한 사용도 비교적 성공적인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보다 근원적인 세계와 사물의 실체에 육박해 들어가는 ‘역동적 상상력의 깊이’를 예각적으로 보여주는 시적 탐색의 치열성이 다소 미약하다는 느낌이었다.
앞으로 더욱 정진하여 한국시단에 새로운 빛을 던지는 시인이 되기를 기대해 마지않는다.
―이가림(시인, 인하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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