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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회남-제23호 신인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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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종권
댓글 0건 조회 2,293회 작성일 06-09-06 17:50

본문


신인상 시 부문 당선작
구회남

하루 종일 혀끝에


매달린 말
‘바다를 보러 가자.’
고속도로를 달려와
모래사장에서 모던러브에 맞춰 늑대의 춤을 춘다
일몰은 붉거나 노랑에 보라가 살짝 
바다는 밝음을 모두 삼켰다
검은 바다에 시선이 고정된 우리
바다를 본 뒤에 끝장이 나는 현장
손끝이 닿으려는 순간
확 접어가 버리는 전복적인 반향
됐다 싶었을 때
낯설게 멀어지는 것은
프시케의 것이다
영혼의 개안을 위해서라면
기쁨이의 탄생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다
바다에 노란 부표가 흔들린다
흔들릴 때마다 나쁜 피는 출렁이고
의식은 진화된다
조이와 엑스타시여*
        *조이와 엑스타시: 평화 번영, 우주 등



여술마을*에서


‘소주 넉 잔에 그 남자 걱정은 NO!’
‘이젠 그만해요’
언제 시작이라도 했던가요
연못에서 연꽃은 바람결에 옷을 한 꺼풀씩 벗는데요
개구리는 꼬리를 떼지도 못하고 개굴개굴
붉은 고추잠자리는 쌍으로 강강술래를 추는데요
시절 잘못 알고 나온 코스모스도 보이고요
호박꽃 속에서도 벌은 농지거리를 하네요
나는 그. 만. 해. 요.에 취해 
뭘 그만하니?에 딴죽을 거는데요
시작이나 관계를 했느냐고 깐죽이고 싶은데요
처음부터 계산은 안 한다 했는데요
너는 셈할 때가 됐니? 묻고 싶은데요
부들은 부들부들 떠는데요
창포의 잎맥은 선명한데요
나리 나리는 바람에 흔들리는데요
탐스런 백련엔 많은 벌이 우굴거리는데요
‘너 가고 싶은 데로 가라.’고
취해만 가는데요
119를 대기 시켰는데요
가방은 맡겨졌는데요
본격적으로 딴죽을 걸 참인데요
술이 술술 넘어가는데요
개가 멍멍 짓네요


        *여술마을:성남시 모란과 야탑 사이에 있는 연꽃마을.




셀수스도서관*


도서관 기둥에 기대어 기억하는 문장
‘첫눈에 사랑한 것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나?’
단점을 보지 않으려고 했던 자국
그날 후
끝을 향해 가는 발걸음은 빨랐고
유리창 밖에서 날아오는 갈색 돌들
‘죄 없는 자 돌로 치라.’
나는 한 개도 맞지 않는다
내가 나의 종아리를 친다
혼자만 재미있게 산 이유
자꾸 부풀어 오르는 배
나는 나를 기둥에 묶네
기둥 뒤에서 아홉 명의 뮤즈가 보고 있기 때문이네
에페소스는 지금 재발굴 중이고
나도 나를 뒤집고 파헤치는 중이네
나를 새로이 명명하기 위해서
허허로운 곳에
낡은 문장을 버리려고 왔네
백년간의 고독 속의 아우렐리우스 대령같이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네.’


        *셀수스도서관:에페소에 있는 서기 135년에 세워진 도서관.



도라지꽃


도라지꽃으로 최우수상 받은
북한 여배우 하늘로 가다 
왜 죽었는지 모릅니다. 
도라지꽃이 피었던 이유도 알 수 없습니다
간밤에 비가 내렸고 벤치도 젖었고
이른 아침 담벼락에 달랑 혼자 핀 도라지꽃에게
손을 내어 밀어 계단을 올라오고 싶었는데
나는 너를 모른다 했던가요
눈이 내리고 벤치도 얼고
떨어진 꽃도 얼어
아주 작아 보일 때
내가 너무 크게 느껴졌죠
딜레마이거나 패닉인데요
서로는 등을 보입니다 
나는 취기에서 벗어나고
얼었던 그가 작은 알갱이로 부서질 때 
빛이 납니다
빛은 수중기와 만나더니
무지개를 피웁니다
나는 무지개 폭포를 맞습니다




돌아온 슈퍼맨


얼마나 기다렸던가?
9․11테러 후부터
망가진 체면
지칠 대로 지친 기다림
‘영웅을 기다린 것이 아니야.’
같이 먹고 자고 빨고 물리고 미끄럼을 타고
말하고 싶었을 뿐이야
친구이거나 동료이거나 가족으로
특별함이 아닌
일상적인 일
아이와 놀고 심장을 펄떡거리며
작은 학교 운동장에서 공을 차고
잔디 위를 가볍게 걷는 일
흙냄새를 같이 맡는 일
그런 자자하고 소소한 일상들
보기만 하여도 푸근하고
만져보면 따듯한
진부한 일상이 그리웠던 거야


|당선소감|


하이든의 소나타 D장조를 들으며

수요일에 붉은 장미를 뒤로하고 연꽃을 보러 여술마을엘 자주 갑니다. 거기, 세상의 온갖 풍경이 살아 숨쉬더군요. 나도 따라 검은 잠자리와 붉은 고추잠자리와 일반이 되어 연꽃 위를 나는 환상에 젖습니다.
지난해에는 아버지인 고 구성서 장로가 떠나시고, 지난달에는 99세의 할머니가 떠나시고, 치매로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 죄송합니다. 나는 무덤엘 자주 갑니다. 가서 ‘살아 있다’는 안도의 숨을 쉽니다.
리토피아로 가는데 비가 내립니다. 나는 하이든의 소나타 D장조를 들으며 액셀러레이터를 힘차게 밟습니다. 두 길 중 남은 한길이 살짝 보였기 때문입니다. 나는 한길을 오래도록 응시하는데 무거운 선율이 나의 남은 잠을 깨웁니다. ‘오!, 나의 뮤즈여, 당신의 성도가 되겠습니다.’ 깨어 기도를 합니다.
난생처음 첫 투고를 한 저를 반기며 의심 없이 뽑아주신 리토피아와 심사위원께 무한 감사드립니다. 목청 높여 잠자는 돌 같은 저의 머리를 깨우쳐 주신 많은 스승님 감사합니다. 지난 5년간 문창시절을 같이한 문우들 고맙습니다. 우리가 같이했던 보르헤스가 말한 우주의 사원인 도서관에 나의 성소를 세웁니다. 그동안 청소와 설거지를 해준 가족, 고생이 너무 많은 철아, 사랑한다. 무명의 나를 너만은 일찍부터 시인이라 불러주었다. 너의 바람에 어긋나지 않게 세상에 남을 시 한편 꼭 쓰고 싶다.
이제 비가 잦아듭니다. 갈라졌던 대지가 촉촉하게 젖습니다. 거기,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습니다. 다시, 수요일엔 붉은 장미를 보고 싶습니다.
‘혼자서 가라’는 니체를 그만 읽으렵니다. ‘같이 가자’고 두 팔 벌려 미연꽃나무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______________
구회남
․1957년 인천 강화 출생 
․2006년 ≪문학나무≫ 수필 등단․독서치료사
․463-830 성남시 분당구 이매동 럭키타운 112-301
․031-706-8386, 010-8233-8386
․memo8280@hanmail.net

|심사평|


부조리한 삶의 정경 묘사 돋보여

자신의 뚜렷한 목소리로 삶과 세계에 대해 노래하는 다부지고 힘차고 발랄한 시가 발견되기를 기대하면서, 심사자에게 넘겨진 응모작들을 꼼꼼히 읽어보았다. 그러나 기성의 때가 묻지 않은 싱싱한 상상력의 역동성과 언어구사의 활달함을 거침없이 보여주는 시가 얼른 눈에 띄지 않아 안타까웠다. 그런 가운데서 구회남 씨의 「도라지꽃」 외 4편과 홍순창 씨의 「뒤집히는 양말」외 4편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었다. 
구회남 씨의 작품들은 나날의 삶 속에서 수시로 부딪치게 되는 부조리한 상황 그 배후에 감추어져 있는 의미를 예리하게 포착, 자신만의 당찬 시적 문법으로 드러내는 솜씨가 만만치 않았다. 예컨대 「여술마을에서」같은 작품에서는 말의 유사성이 갖는 기묘한 희화성에 착안하여, 예술인이랍시고 터무니없는 딴지를 걸거나 엉뚱한 농지거리를 함부로 하는 부류들을 가차 없이 풍자하기도 하고, 선외 작품 중 「에뮤, 애무」 같은 작품에서는 “시드니 동물원에 사는 에뮤”와 “내 안에 사는 애무”가 동일한 의미의 층위에 놓을 수 있는 내면적 괴물의 정체임을 유머러스하게 묘사해내는 등 그 시적 형상능력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러나 구회남 씨의 언어구사의 어법이 주로 관념적 진술과 산문적 어조로 이루어져 있어 다소 거칠다는 느낌이었다.
홍순창 씨의 작품들 역시 현실생활의 비인간적 황량함과 부조리함을 날카롭게 꿰뚫어보는 관찰과 그 묘사능력이 돋보였다. 「뒤집히는 양말」에 보이는 “……눈을 맞으며 걸어온 친구들이 몰려오고 그들의 구두코에서 노란 캐롤이 뚝뚝 떨어진다” 같은 표현이나, 「말똥말똥」에 보이는 “천개의 눈알이 굴러다니는 깜깜한 밤이다. 소똥소똥. 개똥개똥. 모두들 아프다고 아우성이다” 같은 표현은 홍순창 씨가 우리말이 갖는 독특한 음성상징을 절묘하게 살릴 줄 알며 기지에 넘치는 해학을 담고 있다는 것을 확인케 했다. 초현실주의적인 이미지구사의 방법이라고 할만한 표현의 적절한 사용도 비교적 성공적인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보다 근원적인 세계와 사물의 실체에 육박해 들어가는 ‘역동적 상상력의 깊이’를 예각적으로 보여주는 시적 탐색의 치열성이 다소 미약하다는 느낌이었다.
앞으로 더욱 정진하여 한국시단에 새로운 빛을 던지는 시인이 되기를 기대해 마지않는다.
―이가림(시인, 인하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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