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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운주-제27호 신인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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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종권
댓글 0건 조회 1,621회 작성일 07-11-17 11:06

본문


조운주

추어탕


어머니는 주말마다 추어탕을 끓였다 온몸으로 버둥대는 미꾸라지 위로 굵은 소금 뿌리고 뜨거운 가마솥에 가둔 채 뼈를 고았다 아버지의 속내 다 드러내지 않던 배추, 지난한 날들을 쑥 뽑아 놓은 대파, 그 속에서 녹아나던 미꾸라지의 생, 울컥 밀물지던 가슴 속 찌끼들, 어머니는 가마솥 가득 양념 버무려 국물을 우려내었다 생의 끈 부여잡고 방울방울 밀어 올리는 거품, 솥뚜껑 달그락거렸다  어머닌 모가지가 긴 스텐 주걱으로 끓어 오른 포말을 걷어내곤 하였다 

아버지 옷깃에 묻어온 대문 밖의 생활들, 고운 채에도 걸러지지 않던 가시가 입안을 맴돌고 있었다 억지로 삼킨 가시는 가족 깊숙이 파고들어 생채기를 만들며 단단한 뼈가 되었다 

가마솥 가득 어머니를 우려 낸 추어탕을 먹은 지 십년, 굽이치며 흘러 든 강의 하류, 가슴 속 모래톱처럼 쌓인 생채기 평야를 만들고 나서야 어머니의 부서진 등뼈 사이로 헤엄치고 있는 미꾸라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푸른 물길 거슬러 올라가 떠나고 싶은 초여름



곰소항의 경전經典


질펀한 웃음, 간지게 넘어가는
노랫가락 한 소절 들리지 않는다
바다를 읽어 내려가는 젓갈냄새가 
곰소항을 지키고 있다

켜켜이 봉한 둥근 어둠
바다로 한없이 게워내며
맨몸으로 드나들었을 욕마저 삭이고 있는 드럼통
가끔, 양철 울리는 소리로 푸른 바다가 일어난다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갯벌 쪽으로 
고개가 사뭇 돌아간다
지느러미가 근질거린다
물위로 뛰어 올라 바라보던 하늘
이따금씩 꼬리가 요동친다
제 몸에 생채기 만들며 또는, 
갈구하는 눈을 감고 온 몸으로 땀을 쏟아내어도
좌선하고 앉은 귓가로 잔바람이 인다

먼 바닷길 돌아 곰소항 후미진 뒤꼍
나도 서서히 멸치젓이 되어가는 중이다
고요 속으로 헤엄치는 지느러미
푸르른 등은 제 색을 풀어내고
다듬고 빚어 물컹하니 익어가는 
다음 생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소싸움


탐색전의 시간은 짧다 
밀치기로 싸움소의 뚝심을 보여주든가
뿔을 좌우로 흔들며 공격하여 상대방을 제압하거나
배치기로 결정타를 날릴 것인가
상대의 흐름을 타야한다
모래판 사방에서 불빛이 번뜩인다

한 때, 긴 밭을 일구며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기도 했을 그는
처음부터 싸움소로 태어난 것은 아니다
밀고 밀리는 흙을 느리게 밟던 느긋함이 뒷발에 걸렸다
걸려 넘어진 그는 다시 그 곳으로 갈 수 없었다

관중석의 악다구니가 몸부림친다
때론 승패에 대한 집착이
뿔을 함부로 들이미는 우를 범하게 했다
쫒기지 않으면 쫒아야하는 모래판의 경쟁은
무엇을 위한 뜀박질인가
고개를 치켜들어도 소리조차 지르지 못하는 
목 줄기는 늘 숨 가쁘다

학원이 즐비한 팔학군 거리
보이지 않는 모래판을 오가며
싸움소의 기술을 익히는 어린 소들의 발길이 무겁다 



양파


꽃이었던 때가 있었던가
백색 꽃이 바람에 물결을 이루어도
누구도 꽃이라 부르는 이 없었다
그녀가 꽃을 피운다는 걸 애써 기억하지 않으려했다

단단함으로 위장한 몸
꿈틀대던 단맛 겹겹이 에워싸고 
매운 향을 철철 내뿜고 있었다

물 오른 한 때 지나고
허물어질 대로 무른 하얀 속살 사이
시퍼런 멍이 뼈대를 세우고 있다
튼실하던 엉덩짝 내려앉아 시커멓게 썩어들고 있다
온 방 냄새가 진동한다

노인 병동 
꽃대 다 피우지 못하고 시든 
하얀 시트 위의 어머니
한 겹 한 겹 매운맛으로 감싼 속내
급기야 감출 수 없어 훤히 드러내고 누워있다



이사


낯선 남자들의 눈빛이 그녀를 훑고 지나갔다
이파리 흔들리고 있다 
강둑으로 트럭이 달려온다 
엉거주춤 포크레인이 뒤 따라온다 
나무 등걸에 기대앉았던 바람 
들풀 사이로 눕고 있다 
그해 봄에 피운 벚꽃이 그녀가 남긴 
마지막 산고의 열매가 되리란 것을
나무는 알았을까 
둔탁한 쇳소리를 내며 포크레인은 
흙덩이 속으로 커다란 주먹을 밀어 넣는다 
뿌리가 안간힘으로 습기를 잃어가는 흙덩이 부둥켜안고 있다
이미 혈색 잃어버린 손가락 사이사이 
꽃의 기억들 허물어지고 있다 
남겨진 나무들의 뿌리까지 흔들며 트럭의 바퀴소리가 멀어져 간다 
모로 돌아누운 강은 그렁그렁 앓는 소리를 낸다
그녀의 자리는 메말라갔다
버려진 실뿌리가 악착스레 봄을 움켜잡고 있다
몇 번의 봄이 오고 가고

낯선 이들의 발길이 수술실로 뛰어들고 서른 세 살의 그녀 
바퀴소리 따라 먼 곳으로 떠났다 
그녀의 몸이 이삿짐의 전부였다

당선 소감

내 글은 삶의 반성이다. 등짐을 내려놓듯 하루의 무게를 내려놓고 어르고 달래는, 또 다시 내일을 기다리는 반성의 연속선이다. 그래서 아직 여물지 못한 속살들이 비비적대기도 한다. 글을 쓰면서 조금씩 비우는 연습을 한다. 살아가면서 가지고 싶은 수많은 것들 조금씩 나누며 걸어가는 연습을 한다. 모두가 지금이 시작이라고 한다. 이제 출발선에 섰다. 어쩌면 한참을 두리번거리게 될지도 모른다. 악착같이 붙잡으며 살아가던 지난날들을 조금씩 비워내면서 시의 집을 찾아간다는 것이 쉽지가 않다. 이 날을 기다리며 준비해 온 시간이었지만 막상 당선소식을 접하고 보니 가슴이 두근거린다. 너무 서두른 것은 아닐까. 아직 배워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이 남아 있다는 생각에 당선의 기쁨 뒤로 슬그머니 고개 드는 두려움을 만난다. 먼저 출발한 선배시인께 누가 되지 않게 열심히 따라가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나는 아직도 시를 잘 모른다. 다만 그 시작점에 서서 두렵고 외로움으로 뭉쳐진 슬픔의 덩어리를 평생 데리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만은 알고 있다.
시의 끈을 느슨하게 놓고 있을 때마다 따끔한 질책을 주시던 시산맥 문학회 문정영 선생님, 아트앤스터디 시창작교실을 이끌어 주시던 이재무 교수님, 길상호 선생님께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함께 시의 길을 걸어 준 시산맥 문학회 화시동인과 회원들께 감사드린다. 마지막으로 날마다 버팀목이 되어주는 가족, 선해주신 심사위원님께 특별한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당선자 조운주

|심사평|
다부진 언어구사의 힘 돋보여

이번 하반기 신인상 시부문에는 세 사람의 당선자를 시단에 내보내게 되었다. 한 명 또는 두 명의 개성적인 신인을 뽑아 선보이는 것이 지금까지의 통상적인 관례였으나, 이번의 경우 시조영역까지를 포함하는 바람에 풍성한 수확을 거두게 된 것이다. 이는 리토피아로서도 기쁘고 든든한 일이라 하겠다. 
「한국여자」 외 4편의 고춘옥은 고유한 우리의 시가형식인 시조의 정형적 틀에 맞추어 얼개를 옹골차게 짤 줄 아는 섬세한 언어세공의 직조능력이 믿을 만했다. 이러한 시적 기량을 갖추고 있는 시인이라면, 어떤 소재를 다루게 된다 해도 상당한 수준의 가작을 빚어내리라는 확신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특히 「검은 바다」에 나오는 “새우잠 꿈속 길일까, 알거품이 뽀글대는 한 세상” 같은 표현이나 「돌의 나라」에 나오는 “하늘을 반듯 떠안고 새들이 내려앉는다/바람에 궁굴리어 속내를 다스리는/해녀의 묵비권인가/나지막이 잠겨든다” 같은 표현에서 보듯이, 단순한 수사적 기교의 현란함이 아닌, 제주도의 구체적 삶과 현장에 밀착한 살아있는 이미지를 구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당대의 노래’로서의 시조時調가 지녀야 할 생생한 리얼리티를 확보하고 있음도 살만했다. 그러나 의고주의적擬古主義的 말투를 말끔히 씻어내지 못한 흔적이 더러 발견되고 있어, 이를 탈피할 참신한 미학의 개척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추어탕」 외 4편의 조운주는 우리가 흔히 스쳐 지나가버리기 쉬운 비근한 사물이나 일상적 풍경 속에서 깊은 의미를 캐어내는 통찰력의 날카로움을 시편들마다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우선 주목되었다. 특별히 새롭다고 말할 수 없는 주제들, 예컨대 ‘추어탕’, ‘멸치젓’, ‘싸움소’, ‘양파’, ‘벚꽃’ 같은 것들을 다루면서 대상 그 자체의 외면적 데생이 아니라 보다 심오한 깨달음을 얻게 하는 상징체 또는 의미체로 파악하는 애정 어린 사물인식의 방법이 남달라 보였다. “쫓기지 않으면 쫓아야 하는” 모래판의 싸움소를 “학원이 즐비한 팔학군 거리”에서 경쟁의 기술을 익혀야 하는 학생들에 빗대어 그리거나, “튼실하던 엉덩짝 내려앉아 시커멓게 썩어들고 있는 ” 양파를 “노인 병동/꽃대 다 피우지 못하고 시든/하얀 시트 위의 어머니”에 빗대어 그리는 묘사솜씨 또한 만만치 않아 보였다. 하지만 시적 소재의 선택이 다소 한정적인 테두리 안에 갇혀있는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새로운 타법」 외 4편의 임효는 자신만의 독특하고 개성적인 문법으로 물화物化된 가상현실의 냉혹성과 잔혹성을 치밀하게 파헤치는 다부진 언어구사의 능력이 주목할 만했다. “그녀는 밤의 문을 밀고 들어가 쇼를 할 것이다 큐 사인만 주면 펑! 하며 독수리들이 튀어나올 것 같다 입을 열게 하고 싶어 리모컨을 틱, 눌러댄다 거꾸로 로꾸거 질펀한 관계 후 피투성이 혼혈을 생산할 것이다” 같은 표현에서 보듯이, 속도감 있는 산문적 문체를 사용하여 아날로그가 아닌 디지털 공간 속에서 불가항력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소외감정을 날카롭게 드러내는 묘사력이 돋보였다. 「낙화」, 「오리들의 다비식」에 보이는 ‘핏빛 동공’의 이미지나 ‘뜨거운 찜솥에 속없이 가부좌를 튼’ 오리의 ‘찜식’의 이미지 등은, 예컨대 루이스 브뉘엘의 초현실주의 영화
[이 게시물은 리토피아님에 의해 2024-04-25 16:31:08 신인상수상자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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