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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렬-제29호 신인상(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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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상(소설부문) 당선작|
김석렬
소녀를 기다리기로 한다
똑똑똑 딱, 똑똑똑 딱, 똑똑똑 딱.
그는 지금 작업 중이다.
작업대 앞쪽 벽엔 베티 블루라고 쓰인 한 호짜리 사진엽서가 붙어 있다. 양손으로 턱을 괸 사진 속의 베티는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을 응시한다. 베티의 주위는 온통 검은 어둠뿐이다. 베티의 두 눈…….
그는 베티의 두 눈동자를 바라보며 다섯 평 남짓한 지하 방에서 늘 습한 꿈속을 돌아 다녔다. 똑똑똑 딱, 똑똑똑 딱, 똑똑똑 딱. 베티는 항상 그 어둠의 복판에서 숙여진 백열 스탠드 빛을 주시했다.
간혹 베티, 그녀 눈동자는 고스란히 그의 시선으로 들어가 풀 수 없는 수수께끼 마냥 온통 그의 가슴을 헝클어 놓고는 사라졌다. 그럴 때마다 허둥지둥 그의 시선은 빛을 피해 숨어 있는 주위의 어둠 속에 정처 없이 가 꽂혔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꽤 오래 전, 그는 여기로 보내졌다. 사장은 이전 방의 수리를 이유로 밤 깊은 시간, 잠든 그를 깨워 이곳으로 보냈다. 그 후로 지금까지 가타부타 아무런 말이 없지만 그는 사장에게 무척이나 감사해 하고 있다. 텅 비어 있던 방, 여기에서 베티를 만났다.
그에게 있어서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시간이란 그리 중요한 것이 못된다. 어차피 살아간다는 것을, 숨을 쉬어야 한다는 것을, 지극히 힘든 인내라고만 생각한다. 거기에 시간이, 집착이 끼어들면 정말이지 인내란 놈은 그의 혈관을 뚫고 삐죽삐죽 튀어나와 버릴 것이다. 똑똑똑 딱, 똑똑똑 딱, 똑똑똑 딱.
빙판 위의 소녀.
그는 가끔 외부와 연결이 된 110V 콘센트를 어루만질 때가 있다. 이유 없이 불현듯 찾아오는 외로움이 갈비뼈 속을 핀셋으로 꼭꼭 누르기 때문이다. 벽에 기댄 채 비스듬히 쪼그려 앉아, 한참 동안을 스탠드의 플러그와 함께 콘센트 전체를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빛은 그에게 있어 끝없이 펼쳐진 하얀 눈밭이다. 그 빛의 파장이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뚜벅뚜벅 걸어간다. 그리고 오랫동안 어둠 속에서 비를 맞는다. 그럴 때마다 머리 속으로 평화라는 단어가 민망하게도 자꾸 떠오른다. 그는 4절지 크기의 작업공간을 내리쬐는 스탠드 빛을 올려다보며 이따금, 아주 이따금 플러그를 뽑고는 평화라는, 어둠뿐이라는 안식의 제단 앞에 눈물을 바친다. 조건반사처럼, 흔들림에 주체하지 못하는 조그만 등판이 격하게 흔들리고, 그것이 싫어 또 어깨를 들썩이며 꺽꺽 울음 운다. 온통 깜깜해진 방, 그는 퓨즈 나간 두꺼비가 되어 울음을 참으려 애쓰는 것이다.
빙판 위의 소녀.
똑똑똑 딱, 똑, 톡톡톡, 톡톡톡. 합판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하던 망치질을 그만둔다.
“식사 왔습니다.”
하루에 딱 세 번, 그는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것도 아주 맑은 여인의 목소리를 말이다. 이 외에 또 무슨 소리를 듣게 되나. 낡은 수도관을 타고 흐르는 불규칙한 물소리. 아니면 벽장 속을 타고 흐르는 귀뚜라미 울음소리. 그도 아니면 가을이 북극으로 끌려가는 소리. 눈 오는 소리. 세상의 모든 떨어진 잎과 무덤 속 시체들이 썩어 가는 소리. 그가 가슴으로 매양 우는 소리. 그것이 아침인지, 점심인지, 저녁인지 도무지 알 수 없게 돼버린, 식사 왔습니다라는 짧은 여인의 목소리. 치운 그릇을 이고 계단을 오르는 발자국 소리. 합판 문이 열리는 소리. 합판 문이 닫히는 조금 더 큰 소리. 텅.
연일 비가 왔던 모양이다. 물이 스며 올라오는 장판을 닦아내며 그는 목구멍을 밀고 올라오는 트림을 참는다. 그가 살아있다는 것이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항상 계절의 소리가 묻어난다.
그는 늘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달리 말해야 할 대상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절대적으로 그와 베티 사이엔 아무 말이 없다. 필요한 말들을 찾지 못해서다. 그저 멍하니 작업대 스탠드 불빛을 오랫동안 서로 바라볼 뿐, 언제나 결국 말이 필요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베티, 그녀의 시력 또한 두꺼비의 그것이 돼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의 입 속에선 늘 입만 뻐끔거리는 물고기 비린내가 난다.
책상 앞쪽 벽, 베티의 사진엽서 오른쪽에는 14인치쯤 되는 거울이 있다. 거울 속에는 이따금 쇠락한 근육과 주름투성이인 그의 모습이 들어차기도 한다. 하지만 대개 먼지에 쌓여진 그의 이면의 시간과 공간이 검은색 장막으로 빽빽이 좁은 거울을 채운다. 손을 내밀면 그는 거울 속 세상으로 들어간다. 혹은 거울 속 세상이 그에게로 달려온다. 헐떡이는 숨을 몰아쉬며. 손을 내밀면 말이다, 손을.
빙판 위의 소녀.
단단히 조여 맨 그녀의 뒷머리가 인상적이다. 그는 거울 속 세상에서 겨울을 본다. 그녀의 하얀 발목과 바람이 일구어낸 머리칼 파도. 빙판의 호수 위에 그녀는 쪼그려 앉은 채 불안에 떨고 있다. 잡목이 바람을 맞고 쇳소리를 낸다. 그는 견고해 보이는 얼음의 두께를 바라보면서도 매양 걱정스러워 온몸을 뒤튼다. 빙판이 꼭 금이 갈 것만 같다. 그녀는 일어서서 그에게로 걸어오지 못한다. 그녀는 극도의 두려움에 묻혀있다. 빙판이 녹아 가는 느낌이 든다. 그녀의 하얀 발목과 하얀 빙판, 하얀 낮달. 그는 목구멍으로 이미 잊혀져 버린 단어들을 기억해내지 못한다. 기억. 기억.
그는 소녀를 기억한다. 소녀는 덜컹이는 완행열차 속, 행복한 모습으로 가족과 함께 있었다. 여름이었다. 길게 마주 보이는 빈 좌석으로 지쳐 보이는 표정의 승객들이 한 쪽 걸개 모서리가 떨어져 버린 액자처럼 열차와 함께 기우뚱 기울고 삐거덕 돌아가는 선풍기의 바람이 한낮의 더운 열기를 더디게 밀어내고 있었다. 그가 보풀이 인 검정 티셔츠 아랫배 부분으로 파란 사과 하나를 반질반질 닦아내고 있을 때, 그의 할아버지는 먼 차창 밖 풍경에 시선을 두고 흡사 그가 닦고 있는 파란 사과를 우걱우걱 씹는 것처럼, 입 안 가득 가래를 굴리고 있었다. 그러한 풍경 맞은편으로 그녀가 보였다. 열차 손잡이 링을 양손에 잡고 안간힘을 쓰며 천장으로 오르려 하는, 그녀의 머리칼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바람에 날렸다. 그녀는 자주 빛 반 팔 원피스에 분홍색 샌들과 레이스가 달린 흰색 발목양말을 신고 있었다. 그녀의 웃음소리가 끊임없이 기차바퀴 속으로 스며들었다가 돋아나곤 했다. 힘에 부쳐 떨어질 때면 그녀 아버지의 큰손이 그녀의 작고 가는 허리를 쏘옥 받아 주었다.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웃음소리들. 객차 안은 시소 타기를 하듯 기차바퀴 소리와 그녀 가족의 웃음소리들로 가득 찼다. 그들은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풍경. 열차는 더딘 속도에 속력을 더하고, 그녀는 되풀이해서 손잡이에 매달렸다. 그럴 때마다 그녀의 하얀 허벅지가 군데군데 내려지지 않은 차양의 차창들로 들어오는 햇볕을 받아, 당겨 올라간 원피스 속으로 아른거렸다. 열차가 기울면 여름의 따가운 햇볕은 오랫동안 그녀 발목을 눈이 부시도록 하얗게 달구어 주었다. 끝도 없이 펼쳐진 푸른 논밭이 커다란 원판처럼 천천히 돌며 그녀의 배경 화면을 온전히 채색하고 있었다. 그리고 길게 모로 누운 채 팔베개를 한 그녀의 어머니, 들어간 허리와 튀어 오른 엉덩이 선이 열두 살 소년의 고추를 딱딱하게 일으켜 세웠다. 그녀 어머니의 짙게 칠한 빨강 루주 입술이 그를 향해 비웃고……. 창 밖 메말라 가는 강이 보이고 열차는 다리 위를 힘차게 덜커덩 덜커덩 지나고 있었다.
파란 사과는 버려졌다. 오랜 시간 그의 작업대 창틀에서 썩어가다 앉은뱅이 사부의 손에 의해 검정 색 비닐봉지에 싸여 버려졌다.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때의 사과는 위장을 숫제 까뒤집어 놓을 듯, 심한 악취를 풍겼다. 그때부터 할아버지와 그를 키워주시던 할머니, 고향의 모습을 쓰레기통에다 함께 버렸다. 함께 썩어 가는 쓰레기통을 바라보며, 낡은 완행열차가 만들어 준, 풍경의 끝 모서리에 안착시켰던, 끝내 건네지 못한 파란 사과의 대상인 그 소녀를 기억 밑으로 침잠 시켰다. 사부는 조용히 그의 오른손 검지를 이끌어 금반지 하나를 끼워 주었다. 반지의 평평한 머리 부분에 자호 정으로 각인된, 별을 저울질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세상은 의외로 쉽게, 손을 내밀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반지만을 만들면 되었다.
구십이 센티미터, 이후 그의 키는 자라주지 않았지만 푸른 빛 영혼과 함께 떠돌며 수많은 별들을 저울질했다. 가슴에 푸른 녹이 낀 것을 느낄 때면 그는 어디로든 간다. 14인치 거울의 창을 훌쩍 뛰어넘어 이미 기울어진 달과 페인트가 벗겨진 낡은 공원 벤치가 있는 쓸쓸함 쪽으로 서둘러 걸음을 옮긴다. 그는 상상 속 영화의 주인공이 되어 단편적인 영화를 누린다. 최소한 난쟁이인 그의 희열은 그런 방식으로 해결된다.
그는 14인치 거울을 바닥에 내려놓고 꼭두망치를 집어 든다. 거울을 깰 심산이다. 오랫동안 쪼그려 앉은 자세로 망치를 든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본다. 바람이 거울 속 그의 옷깃을 스친다. 이유 없이 따뜻한 눈물이 거울로 떨어진다.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 가는 물결이 우울한 그의 표정을 풀어 놓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현듯 잘못 살아 왔다는 걸 느낀다. 문 밖, 같이 놀자고 부르던 어릴 적 친구의 음성이 들려온다.
“민수야 노올자.”
“밥 먹고.”
이제와 그는 문 밖에서 친구를 기다리게 한 것을 후회한다. 생각지도 않았던 기억들이 지금 그를 마구 아프게 한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서랍을 열어 망치를 제자리에 넣어 둔다.
그는 반지를 만들기 위해 알코올램프를 끌어 당겨 불을 붙인다. 의자 깊숙이 엉덩이를 밀어 넣으면 두 다리가 바닥으로부터 15센티미터 가량 뜬다. 그는 삼발이 위에 얹힌 비커에 8할의 물을 붓고 유산 두 방울을 떨어뜨린다. 쥠쇠에 불대를 고정시키고 팁을 갈아 끼운다. 이어 가스밸브를 열어 불을 붙인 뒤 조정밸브를 돌려 불꽃을 중성으로 조정한다. 다음으로 접시도가니를 예열한다. 부러진 몽땅 연필처럼 생긴 18K 금 조각을 도가니에 넣고 불대로 용해시킨다. 이어 흑연막대를 휘젓고 산을 제거한다. 용융된 금이 담긴 도가니를 집게로 집어 골판쇠에 흘려 붓는다.
그릇 치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알루미늄 쟁반 위에 스테인리스, 사기가 부딪히는 소리, 쟁반이 바닥에 이끌리는 소리, 계단을 오르는 소리, 언제나 똑같은 순서의 소리, 탁 톡 지이익 토박토박, 합판 문이 닫히는 탕 소리.
굳게 닫힌 여닫이문이 여인과 그를 익명이라는 선으로 갈라놓고 있다. 언제든지 문을 열고 안녕 하세요 인사할 수 있는 권리가 난쟁이인 그에게도 있다. 어서 오세요, 고맙습니다. 밖엔 지금 비가 오나요. 비빔밥이 안 나온 지 한참 된 걸 보니 가을인 것 같은데, 잎은 많이 졌나요. 아침에 나온 조기가 너무 많이 구워진 것 같더군요. 콩나물 무침이 너무 짜요. 제 몸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좀 많이 짧아요. 하지만 저도 사람……. 일 수 있나요? 당신에게 선물할 반지를 만들고 싶어요. 부담스러워하지 않는다면 목걸이 귀걸이도 만들어 드릴 수 있어요 정말이에요 정말이라니까요…….
굳게 닫힌 문이 어둡기만 하다. 그러나 때때로 장막처럼 가로 놓여진 문은 사파이어의 푸른 빛 아름다움과 같은 신비한 환상으로 그를 인도할 때도 있다. 그 환상의 극점은 언제나 그에게 푸르죽죽한 안타까움으로 내몰아 버리기도 하지만 난쟁이인 그는 잘 안다. 최소한 여기에 와서 처음 보게 된, 사진엽서 속 베티를 궁금해 하면서 시작된 환상의 달콤한 환영이 얼마나 크고 아픈 슬픔과 쓸쓸함으로 뭉뚱그려져 그의 가슴을 세차게 두드렸는지. 그러면서도 얼마나 그를 편안하게 호흡하며 살아갈 수 있게끔 만들었는지. 인간다울 수 있게 만드는 영혼의 여유로운 휴가를 즐길 수 있다는 게, 신이 버린 그에게도 하나 베풀어주는 자선인 양 얼마나 믿고 또 감사했는지.
여인이 가고 나면 다시 세상은 잠잠한 고요의 음률에 젖어 버린다.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지듯 그가 숨쉬는 공간에 살아 움직이는 생명을 과장해야 한다. 여인에 대한 환상만큼 여인 또한 어떤 식으로든 그에 대한 모습과 분위기, 감정 따위를 느낄 것이다.
똑똑똑 딱, 똑똑똑 딱, 똑똑똑 딱.
그는 다시 일에 몰두한다. 책상 왼 측면에 두 개의 못을 고정시키고 거기에 철사 줄을 연결해서 집게나 핀셋, 가벼운 망치 등속을 걸어 놓는다. 줄은 오른편 함석 상자에 담아 놓고 제법 무거운 망치 종류는 함석 서랍 오른쪽에 있는 조금 더 큰 서랍에 두고 사용한다. 그의 가슴이 닿는 책상 앞 중간에는 벙어리장갑처럼 생긴 태장대가 앞으로 삐죽 튀어나와 있다. 주로 반지 세공은 나무로 된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평면으로 줄질을 잘하기 위해서는 태장대에 걸린 반지를 집게로 단단히 고정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는 태장대에 반지를 고정시키고 줄질을 한다. 일률적인 템포로 움직이는 팔 모양이 경쾌하다. 그는 주로 작은 조줄을 사용한다. 그가 반지의 중량을 체크하는가 싶더니 다시 반지를 깎고 다듬는다. 줄질을 마감한 후, 줄 날에 끼는 금가루를 붓으로 줄 날 방향대로 털어 함석서랍에 담는다. 그는 바닥에 내려놓은 거울을 그대로 방치해 두고 있다.
14인치의 세상 안에는 푸른 하늘 빛 시냇물이 경쾌한 리듬으로 흘러간다. 일렁이는 눈물 안에서 유년의 그가 물고기 떼를 기다린다. 한 소년이 등교를 미루고 양 손바닥을 그릇처럼 패이게 붙인 채, 물고기가 와주기를 고대한다. 조그마한 손으로 고였다 사라지는 시냇물. 소년은 이제 책 보따리를 냇가에 던져두고 놀이에 더 열중이다. 첨벙첨벙 물방울을 튀기며 물고기 떼를 찾으려고 시냇물의 리듬을 흩어 놓는다. 바람이 불고 시간이 가고 저녁노을 빛이 소년의 눈동자를 가득 물들여도 시냇물이 흐르는 한, 소년은 이 일을 계속 할 것 같다. 소년이 냇물 속에서 걷어 올린 돌멩이를 건너편 냇물로 던진다. 그때마다 퐁당 푸른 별이 하나씩 떠오른다. 소년이 고개를 들었을 땐 이미 어둠이 깊고 그제야 풀벌레 약하고 연한 소리에 묻어오는 사람들 목소리가 지금 그를 부르고 있음을 안다.
그날 이후 소년에게 서너 날씩 계속되는 신열이 찾아온다. 지금의 이 가을처럼 온통 붉은 색으로 채색된 안온하고 따뜻한 신열이. 점점 추워져 오는 가슴과 얼굴로 점점 더 뜨겁고 따뜻한 열꽃들이 피어난다. 그 꽃들은 한밤 내내 내리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메마른 기침을 토해낸다. 이유 없이 열이 나고 식은땀을 흘리는 소년을 보며 할머니는 그가 홍역을 앓고 있음을 안다. 얼굴과 등으로 빨간 뭔가가 자꾸 돋아나고 솔잎 같은 기침을 쉴 새 없이 해댄다. 그런 소년 앞에서 할머니는 자주 눈물을 닦아낸다.
홍역이 지나가고 봄도 지나가고, 볕이 쉬 따가워지기 시작하는 오전의 여름이다. 모시 한복 차림의 할아버지가 죽담에 기대어 놓은 지팡이를 집어 든다.
“민수야, 잘 봐나라. 여기가 니가 살던 집이다.”
텅 빈 소 마구에는 소똥이 말라 있고 마당은 잡풀이 무성하다. 이미 소년은 떠날 준비로 가슴이 뛴다. 머리 속에는 기차가 긴 기적을 울리며 끝없이 놓여진 레일 위를 달린다. 돌아올 수 있으려나. 안채마루 문설주에 기댄 병색의 할머니가 낡고 갈라진 손, 풀어헤친 머리칼로 바닥을 내려치며 엉엉 소리 내어 울고, 그날 하늘색만큼이나 투명한 할머니 샘솟는 눈물이 소년의 가슴 벽을 오랫동안 타고 흐른다.
그는 붕사를 묻힌 금납으로 반지의 연결 부위를 땜납 한다. 골판쇠에서 나온 주물 형태의 반지를 둥글게 연결해서 접합시키기 위해서다. 땜납 한 반지를 유산이 든 비커에 넣고 핀셋으로 건져낸다. 이어서 좀더 부드럽게 표면을 처리하려고 고운 줄질을 시작한다. 줄질을 멈추고 유산이 든 끓는 물에 산 처리를 한다. 요리조리 반지를 돌려보던 그가 줄질이 여의치 않자 할 수 없이 움푹 들어간 홈을 핸드피스로 갈아낸다. 핸드피스로 갈아낸 부분이 지저분 하자 표면을 깨끗하게 할 요량으로 계속해서 산 처리를 반복한다.
“식사 왔습니다.”
여인의 목소리가 한 꺼풀 장막을 걷어내고 그의 방으로 들어온다. 여인의 목소리는 그에게 있어 사과즙처럼 달디 달다. 여인의 목소리를 지금 도가니에서 끓고 있는 금과 함께 용해시켜 고이고이 담아 둘 수는 없을까. 늘 그의 가슴으로 밀려오는 따뜻한 파장의 목소리. 그의 의식 속으로 단비가 내린다. 오후 한때의 소나기처럼 잠시 왔다 밀려가 버리는 비. 비의 냄새는 전체적으로 갈색 톤을 지녔을 것이다. 장롱 깊숙이 오래 묵혀 두었던 낡은 외투를 꺼내 들었을 때, 아마 이러한 냄새가 코끝을 간질일 것이다. 아련한 추억 같은 것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빛과 냄새로 그의 머리가 잠시 어지럽다.
여인의 모습은……. 물끄러미 쳐다보는 그의 시선이 사진엽서 속, 베티에게로 가서 머문다. 베티는 아무런 말이 없다. 베티가 이러한 물음에 답해 주지 않으리라는 걸, 잘 안다. 단지 베티는 자신이 처한 어둠을 비춰주는 푸른 빛, 낮은 명도의 조명 안에서 양손으로 턱을 괸 채, 빛의 시작점을 향해 끝없이 눈동자에 힘을 모을 뿐이다. 베티가 앉아 있는 곳은 어둡고 춥다. 그는 베티에게서 진한 외로움을 읽는다. 그의 방이 어둡고 춥고 쓸쓸하다. 베티는 푸른 꿈을 꾼다. 아니다, 베티는 양손으로 턱을 받치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아니다, 베티는 무언가를 꿈꾸거나 누군가를 기다리다 정물처럼 저렇게 두 눈을 뜬 채 죽어버렸는지도 모른다. 베티가 네모진 엽서 안에 갇혀있다. 베티의 두 눈동자가 그를 향해 말한다.
‘나는 지금 내 심장에 칼집을 내고 있는 중이야.’
사면이 밀폐된 듯, 그가 고막을 막으며 숨을 헐떡인다. 머리칼을 쥐어뜯는 그의 모습. 그 모습 뒤편으로 칠흑이고 절벽이다.
그가 지금 만들고 있는 반지는 간결한 느낌을 주는 티파니 형의 반지다. 고리 위로 돋아난 난 을 마치 꽃잎을 겹겹이 싼 것처럼 만들고 그 속에다 타원형의 보석을 심을 작정이다. 뭔가 부족함을 느낀 그가 의도적으로 반지 허리에 나사 형 홈을 새겨 넣는다. 반지 고리가 조금 더 얇고 넓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한다.
“나, 원 참. 갑자기 웬 소나기는.”
벌컥 열린 문으로 양복에 묻은 빗방울을 떨어내는 사장이 나타난다. 그는 의자에서 내려서며 쭈뼛한 모습으로 열린 문 뒤편의 깊숙한 어둠을 응시한다. 사장의 소나기라는 말에 감정 선이 팽팽히 당겨진다. 그에게로 다가온 사장의 그림자가 그의 몸을 뒤덮는다. 그는 사장의 배꼽 아래서 모든 느낌의 방향을 사장에게로 맞추려 애쓴다. 그러나 이미 사장이 몰고 온 비의 향기에 취해 있다. 계속해서 비 내리는 모습을 머리 속으로 그린다. 도저히 지워버릴 수 없는 기억처럼 비가 쌓인다. 그는 지금 계속해서 비를 되뇌고 있다. 이런 적이 없었건만 미치도록 현실에서의 바깥세상이 그리워진다.
“이봐 보석은 소유욕을 자극해서 가치평가를 받는 거야.”
사장은 넘버링이 된 모델 샘플 반지를 핀셋으로 집어 들며 혼잣말처럼 주절거린다.
“가치평가란 곧 현금화될 수 있어야 하고, 또 당연히 그렇게 돼. 소비자의 취향을 생각해 보란 말이야. 다시 말해서 백퍼센트의 가치를 뽑아내야 한다구. 현실성, 조실장 자네 문제는 바로 이 현실성인데, 현실성이 부족하단 말이야. 손님들의 기호를 조실장 스스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봐. 기호란 말 알지? 자네 반지를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도록 만들어 보란 말이야. 조실장?
옛날 일할 때에 비하면 지금은 천국이잖아. 안 그래? 얻어터지면서 라면 값 정도 받아가며 일하던 때를 벌써 잊어버린 건 아니겠지. 자네가 뭐 국보급 작품을 만드는 것도 아니고, 그렇지 않아. 어디 말 한번 해 봐?”
사장은 그에게 건 낸 보석과 금의 양으로, 또한 세월이 말해주는 그의 숙련도로, 일감 처리의 양을 충분히 가늠하고 있다. 그와의 오래된 거래를 통해서 그가 이미 얼마만큼의 반지를 만들어 냈을 지, 터득한 지 오래다.
“이봐, 시내에 있는 귀금속 거리에 가면 자네보다 실력 있는 사람들이 숱해. 그거 알고나 있나? 매일매일 들이미는 밥은 꼬박꼬박 챙겨 먹으면서 말이야. 도대체 그 동안 뭘 한 거야? 입 속으로 뭔가가 들어가면 뭔가가 튀어 나와야 될 거 아니야. 매일 거기에서 거기인 것 말고, 좀 삼빡한 걸로 만들어 보란 말이야 응? 무슨 말인지 알지, 조실장? 알았어, 몰랐어. 뭔 대답을 해보란 말이야 대답을.”
사장이 샘플 반지를 일일이 확인할 때, 더듬거리는 어투로 그가 묻는다.
“사장님……. 저기 붙어 있는 사진. 혹시, 저 여잘 아십니까?”
“뭐? 저 여자……. 왜? 영화에 나오는 배우겠지.”
“왜 저렇게 있대요?”
사장은 허파로 짧은 토막 공기를 뿜는 듯 피식, 한번 조롱조의 웃음을 흘린다. 못마땅하다는 듯 비스듬히 고개를 내려 돌린다.
“이봐, 걸 내가 어떻게 알아. 저런데 신경 쓰지 말고, 자넨 반지나 많이 만들어. 알았어?”
언제나 사장은 짜증 섞인 신경질투의 말로 그를 대한다. 핀셋을 양복 소매에다 닦으며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왜? 저 영화보고 싶어. 다음에 한번 보러가지 뭐……. 그러니까 좀 열심히 해줘 봐, 좀. 열심히 일하면 내가 다음에 올 땐 액자로 된 걸로도 사올수 있으니까. 시내에 가면 바닥에 깔린 게 저거야. 알았어? 다음에 올 때 신경 좀 쓸 테니까. 조실장도 신경 좀 써요.”
사장은 끝나는 멘트에 가서는 늘 달래는 조의 말과 높임말을 섞어서 쓴다.
그런 사장의 말을 그는 믿지 않는다. 다만 갑작스런 사장의 방문이 끝나가고 있음을 경험적으로 알뿐이다.
“여기 447번하고 513번, 514번은 80개 정도 더 만들어요. 그리고 616번은 난을 좀더 크게 만들고.”
샘플과 관련된 반지를 가방에 넣은 후, 사장은 두꺼운 책을 넘기며, 일일이 손가락을 집어가며 넘버링 된 사진을 가리킨다.
“어, 여기 652번. 652번은 말이야. 지금 있는 다이아 대신 루비를 집어넣어. 그렇게 해서 음, 가만 있어보자. 그래 한 30개 정도만 더 만들어 봐. 파는 건 내가 알아서 팔아 볼 거니까.”
손톱 끝으로 책상을 토닥토닥 두드리며 사장이 계속 말한다.
“그리고 자잘한 것들은 여기 메모되어 있으니까 보고 만들어. 다이아는 아직 충분히 남아 있지. 루비하고 사파이어는?”
사장은 가방을 뒤져 필름 통처럼 생긴 깡통을 책상 위에 내려놓는다.
“이 정도면 충분히 될 거야. 이번에는 오팔하고 비취를 많이 구했어. 안에 보면 터키석도 좀 있어.”
책상 위에 올려놓은 휴대전화와 가방을 집어 들고 사장이 돌아선다. 순간 사장이 뿌직 거울을 밟고 올라선다.
“도대체 가만 걸려 있는 거울은 뭘 하려고 내려놓은 거야. 정리 좀 하고 살어, 정리.”
사장의 화가 난 목소리에 거울 갈라진 날이 예리하게 일어선다.
사장은 휴대전화 고리를 감은 왼쪽 손목을 한번 쳐들고는 턱이 낮은 문을 허리 숙여 나간다. 목울대에 힘주어 가래를 뱉고.
“특별히 멋있는 걸로 팔찌 하나 만들어 놔. 선물 할 데가 있으니까. 어이 씨발 정말, 냄새 한번하고는.”
구둣발에 찍혀진 부분을 중심으로 폭을 넓혀가며 여러 개의 금이 그어진 거울. 세상 어느 누구도 그의 눈물의 색깔과 온도, 중량을 알지 못한다.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반지를 줄질하고 닦아내는 모습이 그 안에 있다. 그는 반지의 치수를 재고 눈물의 치수를 두드리고 맞추며 세월과 함께 떠밀려 왔다. 한참 거울을 지켜보던 그가 이윽고 쓰레받기에 그것을 담는다. 파란 사과를 버렸듯이 이제는 금이 간 거울을 쓰레기통에 버린다. 그때 가슴으로 너무나 평화로운 슬픔이 밀려온다. 실체를 모를 유영하는 그림자가 방안을 가득 메우고, 그가 못내 참을 수 없어 고통스럽게 비틀어 대는 목으로 전율한다. 그의 목 움직임에 따른 공기의 파장이 날개 짓을 하고 체취, 썩은 사과의 체취가 흡입되어서 진한 자국, 자국들로 심장에 쌓여 짓눌린다.
그는 천천히 일어서서 베티에게 걸어간다. 의자 위에 올라서서 베티의 시선과 자신의 시선을 가깝게 밀착시킨다. 그의 심장으로 구슬만한 기포가 마구 일기 시작한다.
‘왜 그렇게 어두운 곳에만 있니. 왜 그렇게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밝은 곳을 바라보고만 있니? 그렇게도 닫힌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니?’
대낮의 드넓은 사막을 끝도 없이 날고 싶다. 너무나 평화로운 표정으로, 그는 바람이 만들어 내는 사막의 표정 위로 넓디넓은 그림자를 만들며 날고 싶어 한다.
베티의 사진엽서 네 모서리로부터 곰팡이가 슬어간다. 그는 고운 줄로 베티의 주변을 깨끗하게 청소한다. 잠시 그의 삶을 지탱시키게 한 신념들을 되돌아본다. 철저히 자신에게로의 확신들로 뭉뚱그려진, 진정 그가 되고자 하려 한 노력들. 돌이켜보건 데 전체적으로 정신없이 살아보려고 애썼다. 줄질을 하며 목까지 올라오는 책상에서, 늘 찾아오는 반갑지 않은 손님처럼의 한기들에 쿨럭 대는 일상, 춥고 쓸쓸하게 보낸 지금까지의 모든 환상들을 이제 마감하기로 베티에게 다짐한다.
다만 한 여인을 기다리기로 한다. 매일 일용할 양식을 건네주는 여인을 기다리기로 한다. 붉고 연한 기다림으로 가을비 오는 시간을 그리워한다.
어둠 속 스탠드 불빛을 끝없는 시선으로 지켜내던 베티가 왜 그토록 처연한 표정이었는지……. 푸른빛을 따라 베티의 푸른 영혼은 이미 길을 떠나 버리고 없다. 외로이 꿈꾸는 그가 추슬러야 할 몫의 간절함으로 굳게 닫힌 어둠의 문을 열고 환한 빛에 싸여진 여인을 맞이해야 한다. 그도 이제 연인과 함께 길 떠날 채비를 서둘러야 하리.
여인의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계단을 내려오는, 그가 있는 누추한 곳으로 지금 걸음을 옮기는 여인의 발자국 소리. 잠시의 시간, 비에 젖은 새들의 깃털이 그의 눈으로 마구 쌓인다.
여인이 계단을 내려온다. 여인의 모든 온기를 안고 싶어 하는 그가 불현듯 손을 내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쉴 새 없이 그가 두드리던 망치 소리가 지금 가슴으로 울려 난다. 자신의 손을 들어서 가까이 시선 앞으로 당긴다. 메마르고 하얀 손. 아름다움을 아름다울 수 있게 만들던. 스탠드 불빛이 그의 손을 하얗게 달구어 준다. 이제 손을 내밀 준비를 한다. 닫힌 문으로 여인의 발자국 소리가 멈춰지길 기다려, 여인의 다순 혈관이, 가을 내내 아프게 동여맨 그의 심장을 풀어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여인이 걸음을 멈추고, 그가 어둠의 장막을 걷는다. 삐거덕 방문을 그가 스스로 천천히 연다. 열려진 좁은 문틈으로 여인의 손이 시야 가득 들어온다. 여인이 그의 손을 감싸 안을 듯 가슴 가까이 끌어당겨 잡아 준다. 그의 차고 작고 시린 손이 따뜻한 여인의 손등을 되감아서 쓰다듬어 준다. 여인의 눈부신 손목, 전해오는 맥박.
침묵만큼의 어둠이 여인의 발 아래로 채이고 한 동안의 정적.
그는 사장이 밟고 지나간 거울을 보며 여인의 목소리를 듣는다. 여인의 목소리에는 계절의 소리가 묻어난다. 여인의 목소리는 성큼 다가온 겨울의 목소리를 닮아 있다. 여인과의 익명성을 자랑하듯 닫힌 방문이 더욱 어둡다. 그는 부서진 거울을 가슴으로 꼭 껴안는다. 문틈 사이 이른 겨울바람이 들어오는지, 그의 작은 몸이 격하게 떨린다. 붉고 선명한 핏방울이 한 방울 바닥에 떨어진다. 그가 눈물을 흘리는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소감
삶 속에 감추어진 아름다움 이야기하고 싶어
내 것이든 남의 것이든 절망과 슬픔, 증오, 아픔, 이러한 것들은 분명 아름답습니다. 눈물은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사람들의 신선한 땀 냄새와 오래 함께 할 수 있는 글. 그들 삶 속에 감추어진 아름다움을 애써 찾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어머니. 저를 향한 당신의 깨끗하고 선량한 사랑이 내 문학의 시작이었고, 죽도록 소설가이고 싶게 만드는 눈물이었습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설레고 두렵고 기쁩니다.
부족한 원고를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과 아둔한 저에게 소설 써야 하는 이유와 소설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말씀해 주셨던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지금쯤 시골집 뒤편 언덕에서 토끼풀과 닭 모이를 나누어주며 고추, 호박, 포도 풍성한 초록의 여름을 계획 중일 아버지께 기쁜 소식 전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지난한 시간 함께 했던 오랜 술벗들에게, 현숙과 동휘, 연우에게 기쁨을 드립니다./당선자 김석렬
평
내면 의식의 묘사가 특히 뛰어나
김석렬의 「소녀를 기다리기로 한다」를 상반기 소설부문 신인상 당선작으로 뽑는다. 김석렬은 총 4편의 작품을 투고했는데 그가 보내온 이야기들은 기본기와 자질이라는 측면에서 신뢰감을 주었다. 당선작 「소녀를 기다리기로 한다」는 금속세공사 일을 하는 난장이 사내, ‘그’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작품이 그리고 있는 것은 절대 고독의 한복판에 서 있는 주인공의 내면화된 삶의 양상이다. ‘그’는 세계로부터 소외되어있다. 세계 속에서 ‘그’가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은 책상 위에 걸려 있는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거나 기억 속의 ‘소녀’와 대화를 나누는 순간일 뿐이다. 이 작품이 드러내고 있는 허무의 이면에는 푸른 사과가 내뿜는 푸른빛에 대한 기억이 자리 잡고 있는데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반지’를 만드는 세공사의 존재를 둘러싸고 있다. 주인공의 세공 작업 장면과 내면의식의 추이를 그리고 있는 대목의 묘사가 특히 우수하다. 그러나 이야기의 구성과 주제의식은 다소 산만한 면이 있으며, 이야기에 등장하는 다양한 기억과 환상, 현실이 맺고 있는 ‘관계’의 불투명성은 이 작품의 주제를 모호하게 만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번 수상자 김석렬은 자신의 개성이라고 할만한, ‘자기 세계’를 다듬어 나가는 일이 필요하다. 어렵게 뽑은 신인 작가이다. 앞으로 훌륭한 작품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임영봉(평론가,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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