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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민-제33호 신인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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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민
1961년 충청북도 충주 출생,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와 동대학원 졸업. 문학박사,
성균관대학교, 세명대학교 등에서 시간강사. 현재 한림대학교 일본학 연구소 전임연구원.
새재에서 외 4편
경계에 서면 모두가 낯설다.
지난 시절 자주 오르내리던 도로도
오랫만에 만난 친구들의 웃음소리도
짧은 밤 그들의 높고 낮은 코골이도.
얼마나 더 깊은 산 속에 숨어야
부끄러운 것들을 다 가릴 수 있을까
눈 내린 아침 천지는 덮여도
더욱 알몸으로 드러나는 허허로움.
창틈으로 스미는 차가운 산바람
귀 기울이느라 실은 아무도
아무 것도 잠들지 못한다.
어부사
물 속 깊은 속내
아무도 헤아릴 수 없다
그저 소문만 무성하다.
확실한 신념으로
깜빡이는 야광찌 불빛보다
오히려 달이 더 밝아
지친 조바심만 들킨다
찌불 점점 흐려지고
아침 물안개 물감 풀어지듯
세상으로 번져 가면
내 안에도 바람 불어
청풍 가는 길
산벚꽃 흐드러졌다.
넋 놓고 퍼질러 앉아
세월도 잊고
만사를 잊었다.
방향도 잃고 갈 길도 잃고
까무룩하게 잦아드는
정방사 목탁소리.
바람 한 줄기 부는 듯해
졸린 눈 겨우 뜨자
화다닥 놀라 저만큼 달아나는
계곡의 물소리.
해우소에 들러 허리띠 풀고서야
비로소 산도화 한 무리
제대로 보인다..
동행
병아리 또로록또로록
굴러 유치원 가는 봄날이다.
허리 굽은 호호할머니 두엇
가파른 골목길 허위허위 오르고 있다.
몸피 따라 작아진 보따리 메고
홀가분한 세상 나들이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치맛귀에 질척한 세월이 튄다.
아이고. 아리랑고개보다 더 힘들데이
가 봤니껴?
어디 가봐야 아나요. 토닥토닥
왕피천 은어*
질기디 질긴 목숨 끊지 못하고
내 여기 왔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아
거친 세월 피해 여기 숨었다.
한세월 지나 번쩍이는 비늘갑옷 무장하고
거센 바다, 세파에 씻기면서도
지워지지 않는 문신처럼 새겨진 인연 따라
맑은 물살 거슬러 운명처럼 왔다.
봄풀 무성해지고
태백산 복수박 단맛 들 때의
그 폭포 같던 사랑의 흔적은
불영계곡 어디쯤에 가라앉아 있다.
타고난 승벽을 어쩌지 못해
팽팽하게 밀고 당기다
아아, 등허리 꿰인 사랑
* 경북 울진에 있는 하천, 왕피천이란 이름은 옛날 어느 왕이 난을 피해 이곳에 머물렀다는 전설에서 유래한다고 함.
당선소감|새로운 가지 하나 돋는 듯
대학에 입학하고부터 줄곧 시 주변을 떠돌았다. 시를 쓰면서도 그것이 내 생활의 중심이 되지 못했고, 학생들에게 시를 가르치면서도 정작 내 삶은 알지 못했다. 시가 삶이고 삶이 곧 시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그 둘은 하나가 되지 못하고 겉돌았다. 그러면서도 안동에서 제천으로, 서울과 춘천으로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떠도는 삶의 속도 속에서 나는 내 자신의 리듬을 잃어버렸다. 이제부터 삶과 시의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면서도, 시간과 속도에 매몰되지 않고 스스로의 리듬을 찾는 것, 이것이 내가 시를 쓰는 이유가 될 것이다.
입춘이 지나면서 화분에 심어 놓은 매화에 새순이 텄다. 두터운 각질을 뚫고 내 몸 어디선가에 새로운 가지 하나 돋는 것 같다. 위대한 순환의 계절에, 무엇보다도 오랜 세월 기다리며 틈틈이 물을 주신 강우식 선생님께, 낡고 두꺼운 껍질을 벗겨내고 신인으로 태어나게 해준 리토피아에 감사드린다. ―당선자 유목민귀여운 짝짜꿍.
추천평|자연과의 친밀성 돋보여
오늘날 한국시단의 시는 너무나 말이 많고 지나치게 산문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는 늘 시는 짧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병관의 시는 짧습니다. 짧으면서 시의 가장 기본골격이라고 할 자연과의 친밀성이 돋보입니다. 저는 유병관의 시의 특색을 산수시라 하고 싶습니다. 단순히 풍광만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시인이 갖는 주제가 곁들여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런 점에서 유병관이 우리에게 맛깔진 시를 선보이리라 믿습니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시작하는 시인은 없습니다. 시인은 누구보다 가능성의 존재입니다. ―추천위원 강우식(시인)그림 같은 잔물결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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