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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청미-제5호 신인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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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리토피아
댓글 0건 조회 2,669회 작성일 03-07-25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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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청미-제5호 신인상(시)

2002년 리토피아 신인상



피엠 일레븐  外 8편


뉴욕 맨해튼 소호거리의 밤

사막의 모래바람에
타던 불꽃은 어느덧 사위어가고
마지막 종부성사를 준비하는 시간

대문 앞에 조등이 켜지고
집안에서 호곡이 흘러나올 때
별물은 흥건하리라

유골을 기다리는 바다가 출렁거리며
풀물 밴 무명 수의를
가져오는 밤
장송의 시간은 충분하지 않은가




流轉

                                      
수많은 별로 태어난 우리는
자대 배치 야간 열차를 탔다

아직 아무도 듣지 못했다

누가 대를 이을 씨받이가 될 것인지
몇 번의 도정을 거쳐
사내를 눕히는 보리밭이 될 것인지

불타는 사막의 바비큐가 되었다가
자작나무 끝의 겨우살이가 되었다가
칼끝 같은 가을 햇살에 전신을 찔리는 낟알이 될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살빛 등이 켜져 있는
저녁 식탁에서
그대에게 살짝살짝 손바닥 드러내보이게 될 것인지
싱크대 걸름채 속에
도착한 열차에서 내리는 병사처럼 떨어져
구더기의 양식이 될 것인지




비비새
      

몸은 보이지 않고 저녁 안개 속에서
삐르륵 삐르륵

환한 달빛 입고 서 있는 나루터의 미루나무 같은
무명 저고리 고름에
강물 흘러
저 피안에 지금 이르렀는가

부엌을 쓰는 낡은 빗자루처럼
내 닫힌 빗장 흔들리는데
그때는 듣지 못했지
내 강물의 길을 바느질하듯 촘촘히 여는
저 물빛 달의 수런거림을

삐르륵 삐르륵
마침내 피안에 든 것일까

아, 어머니의 버선발




朴 五代


추석날 할아버지가
자신의 할아버지 차례상 앞에서 절을 올리자
보행기를 탄 손자가 손뼉을 친다

내가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리는데
내 손자가 손뼉을 치는구나
내 할아버지로부터 오대째인 박 오대야

합문(闔門)을 하는 동안 할아버지는
먼 길을 짚어 가신다

박 오대가 내 신위 앞에서 술을 따를 때
네 손자는 나로부터 또 오대
네 손자 박 오대도 보행기를 타고
내 제사상에서 손뼉을 치겠구나

할아버지는 보행기 속 손자를 끌어당기며
음복을 권한다





폭포


1
- 심근경색 - 큰 물기둥에 박혀 떨어졌다

수직으로 투시하는 물길이 부서지며
옷을 벗고
천길 피안 끝에
영혼을 내려놓는다

2
오랜 연습이 있었던 무대가 아니다
부고 한 장 속의
즉흥 단막극
문득 죽은 자와 산 자의 경계가 그어지고
이별은 이렇게 단도직입이다

망자의 자리에 괸
이승의 것들
모래성이 무너진 척박한 자리에
돋아난 기억의 돌기들

산 자가 밥을 먹는다
버텨야 할 무게만큼 꾹꾹 밀어넣는다
누가 내일 그 벼랑 끝 물길이 될지
너는 아는가

천길 깊은 구멍 끝에
영원으로 가는 길이 보인다




젖니


지진이 일어나고 있구나
며칠 새 요람이 요란하게 흔들리고
예사롭지 않은 예감 꽂히더니
껍질을 뚫고 푯대처럼 솟았구나
젖물 묻은
저 생존의 시그널!

밥알 몇 알은 부수어 낼 수 있겠다
바위도 깨물 수 있겠다
쇠스랑 같은 세상 둥글게 갈아낼 수 있겠다

우물 같은 붓꽃의 입 속에
젖니 하나 동동 띄우고
아이가 웃는다

콤콤한 젖내가
환하게 불을 켜고
내 속의 옹이를 콕콕 쪼아댄다



바람 소리


바람과 바람 사이로
달이 기운다

바람은 결을 만들고
날을 세워
숲을 베어내듯 일렁인다

능선마다 계곡마다 넘나드는 바람의 결
나는 알지 못한다

도솔암 청정 도량에 노승의 법구경 소리가
빈 계곡을 구비구비 돌다가
멧부리에 쌓이는데

나무들은 알고 있을까
결국 빙점에서 얼음 조각으로 떠돌아야 할
긴 터널의 적요함을

바람이 내 옷섶 한 끝을 물고 가다
또 한 잎을 떨구고 우수수
달아난다



묘비


냉장고 안에는 작은 바다가 있다
바람이 지느러미를 접고
파도가 목젖이 잘려 울지 못하는,
투명한 비닐 팩 속에
해금을 게워 내며 몸을 뒤척여보는 바다
토해 놓은 갯물을 다시 물고
숨을 몰아 쉬고 있다
누가 그의 세상을 통조림했는가

냉장고 문이 열린다
나는 그 작은 바다를 송두리째 움켜쥐고
렌지 위 열탕 속에 쏟아 붓는다
오!
가슴에 마지막 성호를 긋듯
방패를 내려놓은 생의 끄트머리들이
보글보글 뚝배기에 떠오른다

고장난 아코디언처럼
한 생의 음계가,
生과 卒이 음각으로 패인 묘비 하나가

허공에 꽂힌다



꽃잎


너는 잠깐 몰핀으로 왔다

이제 축제는 끝나고
모래바람 불어오는데

너를 가만히 남겨두고
침묵의 강을 천천히 건너가는 꽃대

달거리 뒤 그 강물에 슬픔의 껍질을 띄우는 너는
유리된 불꽃,

너는 잠깐 몰핀으로 왔다



<당선 소감>


  어릴 적 길을 가다가 문득 주위를 둘러봤을 때 아무도 없어 느꼈던 두려움. 나는 그럴 때면 노래를 부르곤 했는데, 그것이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다.

  아직 음표를 볼 줄도 모르고 발성연습 중인데, 귀기울여주신 이경림 선생님을 비롯한 심사위원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늦었지만 용기를 갖고 저의 두려움을 쫓는 노래를 열심히 부르겠습니다.

  지금까지 노래부르기를 따스하게 이끌어주신 맹문재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늘 묵묵하게 용기와 격려를 해준 남편과 우리 아이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함께 시를 사랑하는 동작문화원의 <시울림> 문우들에게도 감사함을 전합니다

  {리토피아}의 발전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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