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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숙(시/2011년 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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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탄
댓글 0건 조회 1,939회 작성일 11-12-18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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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숙

절름발 고양이 튀튀 외 4편

튀튀, 손잡이의 달려있는 손들의 지문을 핥아먹고 있는 너는 육교 위에서 뽕짝을 부르던 맹인부부의 고양이. 동전을 훔치다 걸린 너는 절름발이가 되었네. 꼬리를 발라먹고 있는 비둘기 무리에서 원죄를 토하고 있는 너를 안아 옥탑방으로 숨어들었네. 자위를 끝낸 한낮이 혼절해 있었네. 너의 발톱에는 할퀴어진 세상이, 쿨럭이는 기침소리가, 낙숫물처럼 흘러내렸네. 꾸르륵 소리에 아끼던 겔포스를 먹여주었네. 개미들은 죽은 개미를 어깨에 이고 지맥을 찾고 있네. 고상한 얼굴로 밀린 월세를 받으러 다니는 페르세포네니 다이달로스, 그는 그의 발등을 한 번도 본적이 없네. 발등을 핥고 있는 튀튀를 개미쯤으로 알고 있네. 개명된 나의 이름을 재투성이 신발 한 짝 아궁이의 고양이 대지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자, 라고 적어 놓고 괄호 열고 신데렐라, 하고 괄호 닫네. 튀튀가 따온 토마토가 익으니 페르세포네니 다이달로스의 얼굴이 파래지네. 절름발이 튀튀 발에 정중히 나비타이를 묶고 언니의 정체를 밝히러 가네.



뱀눈그늘나비



박제 액자 속 뱀눈그늘나비가 사라졌다. 잠결에 잠별했다. 아프게 꽂아 둔지 모르고 날개에 박아둔 옷핀이 못이 되어 하늘에 박힌다. 하늘을 뒤집으면 호두가 떨어졌다. 호두나무에 목을 매단 두더지는 죽어서도 땅을 팠다. 오그라든 손으로 흙을 주워 먹던 박가네 셋째 고모처럼 죽어서도 땅을 팠다. 뒤집혀진 하늘에서는 백색의 포도주 같은 노을이 흐른다. 입을 벌리고 노을을 받아먹는 사람들의 목청에는 하얀 옷핀이 차례로 박혀갔고 입 속에는 노을이 번져갔다. 양 날개에 뱀눈을 문신한 나비를 찾습니다. 나에게는 호두가 많아요. 내가 가진 호두를 전부 드릴게요. 뱀눈그늘나비는 나의 오래된 애인이죠. 박제 액자 속으로 검은 알이 슨다. 이전에 알지 못했던 문양으로 검은 알이 슨다. 고양이 왈츠에 발을 맞추던 나의 구두 속에서 잠이 들던 뱀눈그늘나비. 날개 속에 어둠을 훔쳐와 심장 위에 내려놓고 조용히 날개를 접던.




마차, 낙타, 썰매, 당나귀 그리고 자동차

빨간 병 속의 모시나비



할머니는 빨간 병을 조심하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빨간 병에 걸리면 모시나비가 목구멍에 걸려 한동안 아플 것이라고 했습니다. 투명한 날개는 속에 찬 아픔을 다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칫솔을 못처럼 갈은 삼촌은 조국이라는 말을 쓰고 입 속에 거품을 물고 대중이라는 말을 쓰고 애자 언니를 데리고 왔습니다. 빨간 병에 걸린 애자언니의 얼굴에는 올긋볼긋 석류씨가 박혀있었습니다. 할머니는 모시나비를 삼킨 탓이라며 쇠붙이 같은 긴 손가락으로 모시나비를 찾아 뱃속을 휘저었습니다. 킁킁 자고 있는 자궁이 딸꾹딸꾹 흔들렸습니다. 슬로건을 찾기 전에 우리는 동굴 같은 방에 동거하며 칫솔을 못처럼 갈았습니다. 빨간 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 립스틱을 바르지 않고 있었습니다. 마차를 타고 온 그가 떠나고, 낙타를 타고 온 그가 떠나고, 썰매를 타고 온 그가 떠나고, 당나귀를 타고 온 그가 떠나는 동안 애자 언니의 배는 부르고 불러 뜨뜻한 모시나비를 토해 냈습니다.





변신byeonsin



소년 앨리스가 소녀 앨리스가 되는 날이었습니다. 소년 앨리스의 보조개는 그대로였지만 눈썹은 초록색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눈동자 색을 따라서 눈썹이 물들었고, 눈썹 색을 따라서 혀가 물들었습니다. 해바라기씨를 까먹고 있던 남동생은 소년소녀 앨리스의 브래지어 끈을 자르고 티 팬티 끈을 자르고 긴 머리칼을 잘랐습니다. 슬퍼하지 마, 네가 아침에 먹은 굴은 주기적으로 성이 변해, 네가 아침에 먹은 송사리도 나이에 따라 성이 변한단다. 소녀 앨리스는 공기의 요정 실프의 몸짓으로 고통에 관한 보고서를 구체적으로 적었습니다. 소녀 앨리스는 팔굽혀펴기를 자랑하는 동급생들의 등짝을 발로 차고 2호선 초록색 지하철을 타고 잠실역 지하상가에 내려 초록색 하이힐을 고르고 장님들의 하모니카 연주를 들으며 가볍게 탭댄스를 추었습니다. 앞에 떨어진 동전 몇 개를 주워 소녀 앨리스는 우표를 샀습니다. 내일까지 도착할 수 있나요. 소녀 앨리스는 미국에 사는 소녀 앨리스에게 편지를 씁니다. dambae han gae piman billyeo jullae?





마리아상이 바이올린을 켜고 있는 다락방



천장에 그려진 계단을 밟고 돌돌 말린 아들의 팬티를 찾으러 다락방으로 들어간 베트남 엄마는 최초의 밀실을 발견하고 최초의 기도를 올린다. 베트남 엄마는 베트남 엄마가 되지 못하고 베트남 엄마는 베트남 엄마가 되었다. 다리를 조금만 오므리면 다락방에 버려 놓은 소파와 쌀통 사이에 몸을 집어넣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스치는 얼굴들은 하나같이 멀리 있고, 가까운 곳에는 마리아상이 바이올린을 켜고 있다. 신은 바쁘십니다. 고해는 짧게 해주십시오. 마리아상에 붙은 바삭바삭한 모기를 마리아상 손 위에 올려놓고, 죽음이여. 주금이여. jug-eumijyeo. 망고나무 아래에서 춤을 추던 마더가 가르쳐준 다중언어는 다중에게 외면당하고, 다중은 모국어를 가져오라 하고, 모국어는 마더muder뿐.








소감/날 세우는 나의 시를 위해

힘든 시절 날을 세운 건 가족이다. 가족이 날을 세운다. 가족이 날을 세우는 동안 가족은 날을 새웠고 가족이 날을 새우는 동안 나는 날을 세우며 보냈다. 날을 세운 아버지의 날은 폐를 가르고 날을 세운 어머니의 날은 폐쇄성 폐질환이라는 말을 가르고 날을 세운 내 시는 유독 간지럼에 약했다. 돈벌이가 없는 동생에게는 아버지 묘 이장비용을 제외시켜준 형제들과, 국화 한 다발은 막내가 살 수 있게 길을 터준 어머니에게 면목을 좀 세워보고자 매일같이 악다구니를 쓰며 시를 썼다. 하지만 여기까지. 그럼에도 면목을 세워준 분들께 감사드린다. 대학시절 시를 가르쳐주신 권혁웅 교수님 장석남 교수님 그리고 현빈이라는 이름으로 묶여있던 시동아리 동기들에게 감사한 마음 전하고 싶다. 오늘도 활자로 남고 있는 사랑, 죽이고 싶은 기억들, 그러다 죽인 사람들, 그리고 뒤에 붙여지는 수많은 이름들, 그 모든 것들이 날을 세우고 날을 세워 날을 세우는 시가 되길 바란다./김보숙



추천평/매력적인 시인이 기지개를 켰다 

신인의 시가 젊어야 하는 것은 당위가 결코 아니다. 시가 젊다는 것은, 비록 기성 시인의 시에 비해 곰삭은 맛과 멋은 없으나, 자신의 방식으로 세계와 맞장을 뜨겠다는 시적 의지로 충만돼 있음을 말한다. 김보숙의 「절름발이 고양이 튀튀」외 4편은 더 이상 무엇 하나 자명하지 않은 지금, 이곳의 현실을 ‘변신’의 시적 상상력으로 그려낸다. 그의 시는 시적 유머의 활달한 감각으로써 세계와 고립된 단자적單子的 고통을 묘파한다. 그는 ‘환’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를 중첩하는가 하면, 현실의 세계 표면으로 미끌어지는 ‘환’의 세계를 통해 불가해한 우리의 삶과 맞장을 뜨고 있다. 이 또한 현실과 치열히 대응하는 시인의 윤리미이다. 가령, 맹인부부의 길거리 고양이가 겪는 온갖 삶의 고통(「절름발 고양이 튀튀」), 박제가 된 액자 속 뱀눈그늘나비의 더 이상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없는 환멸(「뱀눈그늘나비」), 도플갱어로서 현존의 아이러니(「변신」), 다중에게 외면당하는 다중언어의 비정한 현실(「마리아상이 바이올린을 켜고 있는 다락방」), 어느 가족으로 편입되기 위해 혹독한 통과제의를 거쳐야 하는 한 여인의 상처(「마차, 낙태, 썰매, 당나귀 그리고 자동차」) 등에서 우리는 김보숙 시인의 이후 치열히 대면할 세계의 고통과 마주한다. 김보숙 시인의 이 단자적 고통의 언어를 어디까지 밀고나갈 수 있을지 자못 기대할 만하다. 또 한 명의 매력적 시인이 기지개를 켰다./추천위원:강우식(시인), 장종권(시인), 고명철(문학평론가, 글).

 

 

김보숙∙서울 출생. 한양여자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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