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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웅(시/2012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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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탄
댓글 0건 조회 1,940회 작성일 12-07-06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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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시부문)

박철웅

두리번 외 4편

어디 있어요, 두리번. 안경을 쓰고 안경을 찾듯이 너를 찾는다. 찾을 수 없어요. 어디선가 너를 두고 왔는데 생각이 안 난다. 분명 요 근천데, 내가 몸을 섞었던 곳, 그곳에서 너는 분실되고 발화되었음직하다. 어디였을까, 나를 찾는 목소리가 신음처럼 들리는데, 꽃잎 지는 소리, 꽃잎 열리는 소리만 실실 들리는데, 어디선가 웅크리고 앉은 소년의 눈물, 어디선가 성당의 종소리처럼 눈물 훔치는 소녀, 나는 저녁 골목길을 돌아 골목길을 돌아 너를 찾아가면 비 맞은 우산은 혼자 울고 있었다. 우산을 접어줄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어디선가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환히 비추고 있는 밤, 나를 잃어버린 너는 누구였을까. 밤이 무서워, 헤드라이트가 무서워, 골목길을 돌아 돌아서 오면, 마주치는 너, 네가 아닐 거야, 분명. 네가 아/닐/ 거/야. 숨 줄임표처럼 기어서 기어서 가면, 너의 몸은 분명 나였을 텐데, 어디 있어요, 두리번. 두리번거리다가.

 

 

어쩌겠어

어쩌겠어, 언어의 유희처럼 생을 유희하는 짓을 이제는 접어두고 싶어. 어쩌겠어. 날마다 창살에는 해가 뜨고 지는데, 눈만 뜨면 구름은 흐르고 바람은 부는데, 나는 강물의 돛단배처럼 떠내려가는 걸, 그래도 어쩌겠어. 강물도 졸졸 고백하는데, 바람도 살살 고백하는데, 모두가 지나가는 거라고, 모두가 떠나가는 거라고, 솜사탕처럼 사랑의 말들이 안개 같은데, 어쩌겠어. 소리며 포옹이며 첫 키스도 다 꿈이라는데, 오늘도 누군가의 생각으로 바람에 흔들리는데, 나부끼는데, 어쩌겠어, 진정해, 진정해. 비처럼 내리는 목소리는 컹컹 울라고 우는데, 울지 않는 생각 있으면 컹컹 짖으라는데, 나는 미치지 못하여 미치는데, 슬슬 미쳐 가는데, 누군가 부르는 손길, 누군가 손짓하는 목소리, 어쩌겠어. 아이처럼 작아지는, 작아지다가 사라지는, 저 능선에서 불어오는 엄마의 목소리, 아이의 목소리, 안개처럼 젖다가 젖어 혼자 가는 돛단배, 이것이었다니. 이런 것이었다니. 오늘도 눈을 뜨면 바람은 불고 비는 내리고 꽃은 피는데, 나는 거울처럼 바라만 보고 있는데, 손짓하여도 소리쳐도 안 오는데, 움직일 수도 없는데, 어쩌겠어, 어쩌겠어.

 

 

숭늉을 마시며

죽은 것들이 냄새를 피운다. 노릇노릇 제 몸 태우며 말라간다. 그 몸 달게 달게 먹으며 산자의 영혼을 생각한다. 가끔 그 몸 한 올 한 올 풀린 물 한 잔을 마시며 그와 하나가 되어가는 느낌을 받는다. 몸속에 몸을 집어넣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터널의 끝을 응시한다.

하루의 수고를 내려놓으며 알았다. 한 생명이 생명의 능선을 타고 좁은 계곡을 거쳐 다다르는 그 곳, 비움의 자리에서 비워지는 나를 보았다. 서로서로 밀어가며 사라지자고 흘러가는 물줄기들의 깨끗한 언어를 보았다.

생명의 끝, 혹은 죽음의 시작.

식사를 할 때마다 어디선가 바람 소리처럼 들려오는 낮은 숨소리, 꽃이 질 때마다 흔들렸던 숨소리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느라, 내 몸에서도 노릇노릇한 냄새가 번져오고 있다.

 

 

꽃들은 고속으로 지고

나는 매일 저무는 꽃처럼 확인한다.

젊은 여인들 틈새에서 향내를 맡고 있을 즈음,

치워! 치워! 속삭이는 눈꼬리들을.

누군가는 바라보다가 고개를 휘익 돌리고,

꽃도 듣는 귀가 있어 심장이 멈출 뻔했다.

당신이 사시나무 떨듯이 움츠렸다.

저녁 햇살이 느긋하게 웃는 날

생각은 장미정원처럼 품어내는 향기를 맡으며,

신호등은 파란빛으로 바뀌고

나는 어떤 수수께끼도 풀 수 있다.

당신은 지는 것이 아니라 엄마가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바쁜 걸음으로 하나 둘 환승열차를 타러가고,

밀감 빛 헤드라이트가 고속으로 달려가자

꽃들도 고속으로 지고 있었다.

나는 휴지통처럼 지나가는 것들을 모두 담아 모았다.

고속으로 뱉어놓은 시간표처럼 차곡차곡 쌓이고,

누군가는 그 위에 퉤, 퉤, 마른 침을 뱉었다.

누군가는 한 편의 시를 완성하고 있었다.

 

 

스위치

스위치는 먹을수록 배고프다. 스위치를 먹다보면 어디론가 날아가고 싶다. 누군가는 내 입술에 입술을 대고 깊은 애무를 한다. 빵빵하게 들뜬 육신을 안고 시장으로 들판으로 바다로 안방으로 데리고 가면 달콤한 솜사탕이 된다. 흔들면 흔들리고, 훅 불면 훅 날아가고, 가벼운 입김에도 손길에도 쉬이 무너진다. 스위치는 오래 머물지 않는다. 식어가는 스위치는 걷다가 앙탈하다가 어느 구석 버려진 아이처럼 웅크리다가 한순간 울음처럼 사라진다.

 

스위치를 먹고 사는 족속은 스위치의 은밀한 곳만 공격한다. 스위치는 마시면 마실수록 찰랑찰랑 팽팽하게 차오른다. 마셔도마셔도 허기진 헛배를 만지작거리며 눈치도 없이 여기저기 기웃기웃 염탐한다. 바람 냄새 나는 곳이면 안방이든 주방이든 여관방이든 졸졸 따라가는 저 역마살, 누굴 닮은 식탐일까.

 

스위치는 달콤한 위험, 가벼워도 달콤하고 위험하다. 무거워도 위험하고, 은밀하면 더 위험하다. 뜨거울수록 더 위험하고 사소한 것에 들통이 난다. 사소할수록 날카롭다. 치명적이다. 바람은 바람 때문에 날아간다. 누군가 살짝 들이대면 순박한 연애처럼 피시시 바람이 샌다. 바람은 바람으로 끝이 나는, 그래도 누군가는 오늘도 봄바람을 기다린다. 숙명이다.

 

 

소감/자연의 모든 소리들 담아내고 싶어

 

이제는 그림자를 놓아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동안 나는 엎어지며 일어서며 살아가는 쇠똥구리를 안타깝게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쇠똥구리 역시 편안하게 웃으며 거울을 보듯 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내가 쇠똥구리였던가요. 사람들은 왜 총탄처럼 달려가는 걸까요. 완전무장을 하고 달려가는 걸까요. 총탄처럼 달려가던 어느 날 한 시인이 옆구리를 콕 찔렀습니다. 시를 쓰는 너의 모습이 보고 싶다면서 술 한 잔을 부어주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꽤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습니다. 이후 많은 날들을 詩를 탐해보겠다고 등불을 켜놓은 채 밤잠을 설치기도 하였습니다. 저물어 갈수록 난망입니다. 어리석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어리석음, 부족함을 사랑하고자 합니다. 세상은 사랑의 끈을 놓지 않는 그런 사람들에 의하여 그래도 살아갈 만한 것 같습니다. 저물어가는 풍경 속에서는 벌레들의 울음소리와 함께 새싹이 움트는 소리도 들려옵니다. 그 울음소리와 움트는 소리를 하나하나 구슬에 꿰어볼 생각입니다. 무거운 짐을 진 느낌입니다. 이제 또 다른 길을 향하여 천천히 바라보며 사랑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박철웅

 

 

추천평/시적 소재를 소화할 줄 아는 능력이 돋보여

 

박철웅의 시는 시적 수준이 매우 고르다. 좋은 시를 쓸 줄 아는 시인이 된다는 것은 자기에게 맞는 시적 소재로 시를 쓸 줄 아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무척 중요한 판단이 된다. 이 시인은 대체로 자기에게 맞는 시적 소재를 요리할 줄 아는 시인으로 보여 안심이 된다. 시적 소재란 대개는 시인에게 시가 될 만하지만 좀 막연한 감으로 오기 때문에 요리하기가 힘들다. 나 같은 사람도 시의 소재를 잡긴 잡았는데 알맞게 쓸 줄 모르고 욕심을 내서 실수하는 경우가 자주 있기 때문에 드리는 말씀이다. 박철웅의 작품 「두리번」과 「어쩌겠어」는 현대인의 잃어버린 나와 너를 찾아 가는 심인성을 시로 만든 것이다. ‘언어의 유희처럼 생을 유희하는 일을’ 접어두지 못하는 현대인의 무기력한 생활 습관이랄까를, 아니면 무슨 오락처럼 살아가는 삶을 시로 만든 것이다. 그 소재를 무겁지 않게 잘 소화했다. 그것은 이 시인이 시적 서술을 대화나 중얼거림에 가까운 ‘어쩌겠어.’ 라는 언어를 적재적소에 잘 동원했기 때문이다. 작품 「숭늉을 마시면서」에서는 노랗게 태운 누룽지로 만든 숭늉을 ‘한 올 한 올 풀린 물 한 잔’으로 보며 시를 이끌어가는 능력이 시적 재질이 뛰어남을 충분히 인정케 한다. 대체로 작품 「스위치」도 그렇지만 박철웅은 시를 무슨 고상하고 무거운 것이 아니라 때로는 재미있고 스피드하게, 끌고 가는 감각이 살아 있어 시단에 재목으로 추천한다./강우식(시인, 글), 장종권(시인), 고명철(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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