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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현(2012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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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탄
댓글 0건 조회 1,332회 작성일 12-09-06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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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시부문)

이외현

 

모감주나무 외 4편

 

 

연초록 꽃대에 황금 불상이 정좌하여 예불을 드린다.

날아오르는 새의 발톱에 찍힌 나무가 파르르 떤다.

가지를 떠나는 부처들이 황금꽃비 되어 내린다.

꽃 진 자리에 청사초롱 꽈리 봉인된 자궁을 단다.

해가 말아 올린 속살에 알알이 초록 사리가 박힌다.

바람이 설레발치다가 뒷발로 꽈리자궁을 걷어찬다.

떼구르르 설익은 염주 한 알이 개똥밭을 구른다.

 

 

 

 

 

알츠하이머․1

 

 

텅 빈 논 허수아비 위로 싸락싸락 눈이 내렸단다.

아궁이에 묻어 둔 군고구마가 생각나는 날이었지.

허수아비 발목까지 싸락눈은 쌀알쌀알 쌓이고,

부러진 팔은 고드름을 매단 채 단단해져 갔지.

아궁이에는 재투성이 노란 고구마가 뒹굴고 있었어.

가마솥에는 소에게 줄 여물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지.

갈라져 터진 껍질 속에 샛노란 호박이 숨어 있어.

모락모락 김이 나는 쇠죽은 여물통이 제 격이야 .

 

누군가 기억을 훔쳐 달아나려고 해.(막아야 해)

쓰레기통에 버려졌어.(잘라낸 기억이)

배시시, 웃음이 나.

 

생쥐가 요리사의 머리채를 쥐고 마녀의 음식을 만들어.

개미가 하얗게 쓴 글을 시인이 까맣게 베끼고 있군.

의사는 주방기구로 번개에 감전된 뇌를 열고 있어.

주방에서는 자르고, 뚫고, 깁고, 수술하느라 분주해.

껍질이 벗겨진 알맹이에 듬성듬성 실밥들이 보여.

알전구에 수술용 모자를 쓴 동공 풀린 사내도 보여.

 

따뜻한 아랫목이 생각나는 여름밤이었지.

시원한 죽부인이 생각나는 겨울밤이었나.

 

 

 

 

 

알츠하이머․2

 

 

금순아 어딨냐, 니가 너무 배를 곯아서 배가 자주 아픈갑다. 요즘은 집에 통 오질 않아. 오늘도 기차역에서 자려는가 보다. 금순이를 찾아야 해. 아범아, 가자. 금순이가 기차역에 배 아파 낳은 아이들이 많아져서 눌 자리가 없다는구나. 동네마다 역을 만들어야 해. 내일은 철도공사에 댕겨와야겠다. 아범아, 통장에 돈이 얼마나 있는지 확인해 봐라. 내일은 인부를 사서 집 근처에 역을 하나 짓자꾸나. 금순이하고 애들이 집에서 왔다 갔다 할 수 있게. 어멈아, 먹을 것도 챙겨라. 국도 여러 솥 끓이고 밥도 넉넉히 해라. 서둘러라, 찾으려면 여러 역을 가봐야 허니께. 엄니, 제가 금순이 손 꼭 붙들고 올께유. 굶기지 않을틴께 걱정마셔유. 금순아, 꼼짝 말고 역 앞에 있거라. 오래비가 먹을 거 구해 올팅께. 얘들아. 서둘러라. 우리 금순이 배고프것다. 어여 가자. 어여.

 

 

 

 

 

사이코시스

―형상기억합금

 

아침에 부스스 파놓은 이불 동굴로 기어들어요.

누워서 전기장판의 죽은 심지를 빨갛게 살려내요.

 

참 따뜻하고 편안해요.

이불이 내 몸을 기억해요.

 

개미가 심장을 깨물어 가끔 기억이 깨져요.

개미를 손가락으로 튕겨 책상 밑으로 보내요.

 

다시 따뜻하고 편안해요.

고맙게도 이불이 날 기억해요.

 

기억의 먼지가 캡슐이 되어 우주로 날아가요.

캡슐이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미아가 되어요.

 

하암, 따뜻하고 졸려요.

여전히 이불이 날 기억해요.

 

우주에서 튕긴 캡슐이 점점 추락하고 있어요.

태평양 근처에서 먼지 팝콘이 팡팡 터져요.

 

불꽃놀이가 시작 되었나 봐요.

이불솜이 구름 위로 슝슝 날아올라요.

 

구름 위에 개미가 내려다봐요.

개미가 새를 따라 날아요.

 

눈꺼풀이 구름 위로 올라가요.

따뜻한 솜털구름이 아직도 나를 기억해요.

 

 

 

 

삿갓팬션

 

 

워낙 외진 곳이라 설명 드려도 찾기가 좀 힘들 텐데요.

자동차로 한참을 올라오시다가 좌측 길로 꺾어 들어오시면,

버섯마을 어귀에 눈이 부리부리한 벅수머리가 서 있고요.

거기서 마을 세 개를 더 지나 좌회전, 우회전, 우회전, 좌회전,

좌회전해서 30미터쯤 가면 회양목 울타리가 빙 둘러쳐진 집입니다.

앞마당에는 돌로 메운 우물이 있고 뒷곁에는 묵정밭이 있습니다.

마당 옆으로는 노루오줌 같은 도랑물이 갈지자로 흘러가고 있지요.

 

잡초가 웃자란 밭두렁에서 뭉게구름이 뻐끔담배를 피우고 있는,

이곳의 행정구역상 주소를 말씀 드리자면,

우주국 은하도 태양군 지구면 봉분리 18번지입니다.

굳이 나비에게 물어 보시겠다면 지구까지는 잘 안내하겠지만,

길을 잃을 수 있사오니 지구에 와서는 다시 전화를 주십시오.

전화번호는 공팔공 팔베개 천사를 걸어 김삿갓을 찾으면 됩니다.

쇼핑호스트가 봉분에 나와 있는 김삿갓을 방송으로 불러줄 겁니다.

 

전화를 주시면 득달같이 모시러 가겠습니다.

삿갓팬션은 언제나 여러분을 왕처럼 모시겠습니다.

혹여 살면서 남에게 못할 짓을 하신 분들도 신분을 세탁해서,

천국행 열차표를 끊어줄 수 있는 특급매니저 김삿갓입니다.

꽃상여를 빠르고 안전하게 모시는 여러분의 나비가 되겠습니다.

빨리 전화하십시오. 몇 자리 남지 않았습니다.

예약하신 분에 한해 특별히 삿갓모양의 봉분을 만들어 드립니다.

 

환절기 때는 성수기라 방이 없을 수 있으니 지금 바로 예약하세요.

이제 두어 자리 남았습니다. 죽지 않았다고 망설이지 마십시오.

내가 갈 곳은 내가 마련해야 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당신이 마지막 천국행 티켓의 주인공이 되십시오. 매진 임박.

 

 

 

 

소감/누에가 명주실을 뽑듯 아름다운 시를 쓰고파

 

어릴 적, 외갓집에 놀러갔을 때 친구들과 뽕나무에 열린 오디를 따먹으며 대숲에 있는 잠실에 가본 적이 있다. 네모난 나무판에 통통하고 징그럽게 생긴 누에 수 백 마리가 굼실대고 있었다. 뽕잎을 덮어주자 사각사각 순식간에 갉아먹었다. 친구들은 깔깔깔 웃으며 박수를 치고, 손으로 덥석 집어 내게 만져보라 했지만 나는 소름이 돋아 저만치 달아났던 기억이 있다. 누에가 명주실을 뽑아내는 귀하신 몸이란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 친구 따라 잠실을 엿보듯 ,시가 뭔지 어깨 너머로 엿보다가 뽕잎을 갉아먹는 누에가 되었다. 내 몸에서 실을 뽑을 차례이다. 정성스레 한 땀 한 땀 시를 수놓으려 한. 부족한 저를 추천해주신 강우식, 고명철 선생님께도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나를 지켜봐준 가족과, 늘 함께할 수 있어 행복한 막비동인들과도 기쁨을 나누고 싶다./이외현

 

 

 

추천평/억지로 쥐어짜지 않는 편안한 시

 

이외현의 「모감주나무」 기타 시편을 읽으면서 나는 솔직히 시에 대해 이런저런 긴말을 늘어놓고 싶지 않았다. 나는 되도록 시단에 첫발을 디디는 시인들의 시를 유심히 보는 편인데 그들 시인 중에서 시를 이끌어가는 능력으로 상상력이 풍부한 시인이냐 상상력이 부족한 시인이냐를 많이 보는 축에 속한다. 가령 상상력이 풍부한 시를 만나면 나는 이 시인은 앞으로 시를 억지로 쥐어짜듯 만들지 않고 잘 쓰겠다는 여유로움을 느끼게 되는데 이외현의 작품이 그러하다. 「모감주나무」에서 꽃을 황금부처로 보고 날아오르는 새의 발톱에 찍힌 가지의 미세한 움직임에서부터 시작되어 개똥밭에 구르는 염주 한 알로 끝나는 그 과정을 보면 상상력이 하나의 어색함이 없이 자연스럽게 춤춘다 할만하다. 그러면서도 별 의미나 내용이 담기지 않아 보이지만 읽는 이에 따라서는 불가의 윤회연기설 같은 상당히 알찬 내용도 읽어낼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하겠다. 고령화 사회로 진행됨에 따라 점점 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제기되는 알츠하이머를 시로 쓴한 「알츠하이머」는 이 시인이 우선 소재를 상당히 잘 선택했다는 느낌이다. 알츠하이머가 원래 시 같은 병이라는 것도 그러하고, 연작시로 한 권 분량의 시집이 될 때까지 이끌고 가기만 한다면 시단에 큰 반응을 일으킬 수도 있으리라고 본다. 「사이코시스」, 「삿갓패션」의 상상력이 잘 배여 있으면서 시가 좀 풍자스럽게 이끌어가는 점도 이 시인이 살리면 좋을 장점이라고 여겨진다./강우식(시인, 글), 장종권(시인), 고명철(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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