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신인상
- 신인상
- 수상자
- 투고작
김영덕/평론(2014년 가을호)
페이지 정보

본문
닫힌 세계를 초극하는 시적 구도: 김구용의 연작시 송백팔
김영덕
1. 고정관념의 현실세계를 무화시키는 환幻의 시적 진실
십여 년에 걸쳐 심혈을 기울여 쓴 백팔 편 연작시의 첫 머리에 자신의 명문銘文에 사용하면 좋을 것 같은 시詩를 올려놓은 시인이 있다. 김구용이다. 명문은 그의 시비詩碑에 새겨질 수도, 묘비墓碑에 새겨질 수도 있다. 이승과 저승을 초현실적으로 자유롭게 넘나들며 우주의 시작과 끝, 삶과 죽음의 문제에 천착했던 김구용 시인에게 묘비는 이승과 저승의 교량이며, 묘비명은 사후세계의 노정이자 이정표다.
가끔 볼 것이다,
검은 머리가
찬란히 변하는 奇蹟을.
成熟하는 생각이
세상을 뜨락으로 거느려
行爲는 빛이 되어
말씀은 산들바람,
虛脫로서
별星나라들과 오간다.
無理는 有理한 문을 여는데
나의 오래인 慣習은 옳지 않았다.
路程은 가면서 돌아온다,
보면 없어지나
아니 볼 때 나타나는
蓮꽃다이.
-「頌百八 제1편」 전문
첫 연에서, 이미 죽음을 경험해 본 시인은 자신의 무덤을 찾아온 후학들에게 ‘자네의 검은 머리가 찬란히 변하는 기적을 나는 가끔 볼 것이네’ 라고 말한다. 여기서 검은 머리는 고정관념이자 흑백논리의 메타포로서 한계의 은유다. 시인은 상대방의 그 완고하게 검던 머릿결이 형형색색 여러 갈래로 찬란하게 바뀌어가는 흔치 않은 기적을 ‘가끔’ 볼 것이라고 했다. 사실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가끔 발생하는 사건은 기적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일상으로 수렴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시인은 그 기적을 “가끔 볼 것이다”고 말한다. 이 때 시인의 시간 개념은 이미 지구를 떠났다. 도끼자루 썩는 줄 몰랐다는 그 이야기 속 신선의 경지를 떠올린다. 광대무변의 시공간인 우주에서 보면 매우 작은 티끌 같은 지구라는 행성, 그 중에서도 아주 작은 한반도가 세상의 전부인 줄 알고 좁은 사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하여 김구용 시인은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재미있는 물음을 제기할 수 있다. 왜 머리카락은 꼭 검은색이라고만 생각하는가? 이것이야말로 고정관념에 불과하다. 세계화시대를 살고 있는 현실에서 다인종, 다민족, 다문화 사회를 살고 있는 세계인들의 머리카락 색은 각양각색이다. 말하자면, 어떤 대상을 우리에게 익숙한 고정된 것으로만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사유를 스스로 좁히는 셈이다.
여기서, 시인은 우리에게 ‘자네는 빛처럼 밝고 긍정적인 행위와 산들바람 같은 반전의 상큼한 말’로써 세상을 ‘섬돌 아래 조그만 뜨락으로 거느릴 수 있다’고 조언한다. 첫 행에서 상대를 다그쳤던 만큼 이제 따뜻한 대화를 시도하며 위로한다. 고정된 사유의 감옥에 늘 갇혀 있지 말고, 그것을 깨고 나오라고 손짓한다. 그리하여 ‘나’를 통해 스스로를 자유로운 영혼으로 만들며 고달픈 현실과 유리시킨다. 연꽃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부처처럼 우주보다 큰 연화좌 세계를 연다. 세상은 부처님 손바닥 안이다. 그래서 빛과 같은 행위와 산들바람 같은 말씀으로 세상을 뜨락으로 거느릴 수 있다. 요컨대 검은 머리가 찬란히 변하는 기적과 같은 성숙한 생각이 존재의 의미이자 증거물이다.
둘째 연에서 시인은 스스로 “虛脫로서/별星나라들과 오간다’고 했다. 죽음 이후, 자신을 철저하게 비우고 또 온전히 벗어난 후, 즉 허탈을 이룬 후 비로소 별나라들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게 되었다는 자신의 경험을 들려준다. 유리가 유리한 문을 열지 않고 무리가 유리한 문을 연다는 것은 ‘기회의 창’을 열기 위해서는 세상의 상식과 관습, 그리고 논리 따위는 쓰레기통에 던져버려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럴 때 “나의 오래인 관습은 옳지 않았다”고 토로하며 시인 스스로도 부지불식간에 붙잡고 유지하고 있었던 관습이 죽고 나서 보니 틀린 것이었다는 시인의 고백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가면서 돌아오고 보면 없어지나, 아니 볼 때 나타나는 인생의 노정은 신기루 같은 것이고 참으로 허망한 것으로써 “연꽃다이”에 의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이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이다.
그런데 이 「제1편」은 아일랜드 출신의 영국 극작가 조지 버나드쇼의 유명한 ‘묘비명’을 환기시킨다. 버나드 쇼의 ‘묘비명’ 전문은 아래와 같다.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보통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또는 ‘오래 살다가 내 이런 꼴 당할 줄 알았다.’ 정도로 번역되어 소개되고 있지만, 버나드 쇼는 이 묘비명을 쓰면서 결코 자신의 지나온 삶을 후회한 것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이 지닌 우유부단함에 대한 회한을 토로한 것도 아니다. 그는 먼 길을 가는 길손이 주막이나 여각에 잠시 들러 여장을 풀듯, 인간은 지구라는 이 행성에 잠시 머물다 가는 나그네 같은 존재일 뿐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따라서 둘째 줄 AROUND 다음에 ‘THIS PLANET’이 생략되었다고 보는 게 이 묘비명의 맥락에 한층 어울린다.
한 인간의 삶과 죽음은 자신에게 가장 크고 중요한 사건이지만, 우주의 순환 질서에서 보면 나뭇잎이 돋아나서 자라고 다시 낙엽이 되어 떨어지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고, 허무할 것도 없는 지극히 자연스러우며 반복적인 일련의 일들 중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을 그는 이 짧은 문장을 통해 말한다.
하지만 한 생애를 풍미했던 버나드 쇼도 여기까지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죽음의 의미까지 설명한데서 한 발짝도 더 나가지 못했다. 이에 반해 시인 김구용은 죽음 이후의 경험도 들려준다. 허탈로써 별나라들과 오간다는 자신의 근황까지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김구용 시인의 삶과 죽음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이러한 시적 상상력은 그의 시 세계의 중요한 바탕을 이루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意味 없는 의미,
공간은 作動한다.
자유로이
나뭇가지를 뻗는 空間은
밤중에 지나온 소리,
죽음에서 탈출하는 硏究발표이다.
초록빛 비雨에서
꽃女가 온다.
거문고의 흐름은
나부끼는 肉身,
사랑의 비밀인
波濤는 불火,
하늘의 會議場에
갖가지 물고기들은 모이어,
말馬들은
바다 밑의 밭을 가꾸어
가난이 사라지는 새벽,
자고로 태양은 가슴마다 脈搏하였다.
異質들은 수시로 가치에 있어 하나였다.
매력이란 간혹 분석할 수 없는 것
虛無는 茂盛하여
성숙하는 골짜기에서
헤밍웨이가 마지막으로
獵銃을 쏜 標的은
달려오는 자기 葬儀車였다.
葡萄빛 뱀은 순간
사막에서 타버렸다.
웬일인가.
거울에서는 입口이 없는 얼굴과
하늘빛 時計가 서로 속삭인다.
자네가 아는 것만 아는 한
그 외는 모를 것이다.
-「頌百八 제8편」 전문
이 시는 얼마 전 사망한 남미 출신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대표작 백년 동안의 고독One Hundred Years of Solitude에 나타나는 이른바 환상적 또는 마술적 사실주의Magical Realism를 환기시킨다. 세 번째 연에서 시인은 바닷물에 있어야 할 물고기들이 하늘의 회의장에 모이고, 땅을 박차고 지축을 흔들며 대지를 질주해야 할 말들이 바다 밑의 밭을 가꿀 때 가난이 사라진다고 했다. 이것은 현실세계의 인과법칙에 매몰되어서는 이해할 수 없는 시적 서사다. 이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의미 없는 의미/공간은 작동한다.”에 담겨 있는 김구용 특유의 초월적 심상을 헤아려야 한다. 어떤 고정된 것에 대한 편견과 아집에서 벗어나 대상이 지닌 참의미와 무한 자유의 경지를 추구하는 것은 대상들 사이의 고유 경계를 무화시키고 서로 스며들고 때로는 고유의 삶의 경계마저 전복되는 환幻의 세계가 지닌 시적 진실이다. 비록 김구용의 시에는 이러한 환의 세계와 대립되는 현실세계의 부정이 전면화되고 있지는 않으나 현실의 모순과 억압으로부터 놓여남으로써 무한 자유의 세계를 추구하는 환의 시적 진실은 마르케스와 또 다른 환상적 사실주의로 이해할 수 있으리라. 마지막 행에서 “자네가 아는 것만 아는 한/그 외는 모를 것이다”라는 시구의 함의가 예사롭지 않은 것은 이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2. 시대의 질곡을 회피하지 않은 시적 상상력
김구용 시인은 1922년생이다. 그야말로 “나라 없는 백성으로 태어나서/半국민으로 떠나갔던”(「제25편」) 세대다. 일제의 식민지 지배가 시작되고 10년 남짓 지난 시점이다. 김구용 세대의 자의식이 형성되던 시절은 군국주의 일제의 전선戰線이 만주와 중국, 버마, 인도네시아와 남방제도까지 넓어지면서 군수물자가 부족해져 각종 수탈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김구용이 20대 초반이 되자 태평양전쟁의 전운이 짙어지면서 일제의 징병과 징용은 더욱 노골적이 되었다. 김구용은 이 무렵 일제의 징병을 피해 산사에 은신한다. 청춘의 꿈을 펼쳐보기도 전에 세상과 우호적이지 못한 삶의 노정에 내던져진 것이다. 이후 일제의 패전으로 획득된 독립과 해방공간은 좌우의 이념 대립으로 골육상쟁의 비극을 잉태한 스산한 시대였다. 결국 삶과 죽음의 택일이 강요된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김구용 세대들은 다시 정규군에 징집되거나, 국민방위군(남) 또는 의용군(북)에 편성되어 생사의 기로를 무수히 넘어야 했다. 전쟁이 끝났을 때 그들은 30대 중반에 접어들고 있었다.
비는 속삭인다
열이 높은 病室에서
머나 먼 落葉松에서도.
비는 告한다
知的 高架道路는
鐵製十字架,
녹쓴 이마에
흐르는 피는 加速化한다.
<사람 살리오>
<그건 어느 나라 말인가요>
비는 내리는데
騷音이 점점 깊다.
患者는 搖籃한다.
비는 계속 온다.
他人의 피에서 나타나는
너의 삶이나 또는 죽음에
그림자는 엎드려 기도를 드린다.
바닥은 얼어붙은 해日,
그대로 不在의 내용이었다.
비는 떠나간다.
칼은 죽이기도
살리기도 한다.
그럼 寶배로운 손手이란
무엇인가.
-「頌百八 제19편」 전문
김구용 세대가 겪은 시대의 질곡은 그의 시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식민지 시대에 이은 해방공간의 이념적 혼돈, 그리고 이어진 한국전쟁의 비극은 김구용으로 하여금 삶의 현실을 어떻게 초극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천착하도록 한다. 그런데 우리가 오해해서 안 될 것은 이때 삶의 초극은 삶의 현실과 무관한 관념의 성채에 갇힌 그것이 아니라 삶의 현실과 밀접한 관계 아래 추구된다. 삶의 구체적 현실을 외면한 삶의 초극은 한갓 포즈에 불과하다. 김구용의 시를 이해할 때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 그럴 때 다시 강조하지만, 김구용의 시에서 보이는 삶과 죽음, 피血, 빛과 어둠에 관한 천착을 온전히 헤아릴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그의 시에는 계절적으로는 겨울, 지리적으로는 섬, 그리고 사물로는 거울이 유난히 많이 등장하는가 하면, 경제발전과 관련한 선, 후진국도 자주 등장하는데, 이러한 심상들과 그가 겪은 시대적 질곡이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령, “말씀에도/후진국이 있나/어제와 내일은/거울에서 한 몸이나/미움은 사라지면서 봄 종소리”(「제2편」), “밤마다 눈뜨는 방황은/수많은 산이 우는 소리”(「제4편」), “내리는 비는/절교 사이에서/깻잎들로 자라는데/잠에서 깨어난 의자가/방 문을 열고 나온다”(「제6편」)와 같은 일련의 시구에서 표상되는 심상, 특히 「제19편」이 비에서 시작하여 비로 끝나는 것은, 그가 겪은 시대적 질곡과 그의 시가 맺는 관계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흥미로운 것은 그의 108편 중 18편에 비가 소재로 등장한다. 여기서, 비는 세상과의 자유로운 소통이기보다 차단 및 타인과의 관계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으로, 자신의 내면만을 끊임없이 파고드는 심상이다.
김구용의 이 같은 시적 상상력은 그와 동세대의 작가 손창섭의 우중충한 소설 속 풍경과 겹친다.
‘그 뒤 원구가 처음으로 동욱을 찾아간 것은 사십 일이나 계속된 긴 장마가 시작된 어느 날이었다. 동래東萊 종점에서 전차를 내리자, 동욱이가 쪽지에 그려 준 약도를 몇 번이나 펴 보며 진득진득 걷기 힘든 비탈길을 원구는 조심히 걸어 올라갔다. 비는 여전히 줄기차게 내리고 있었다. 우산을 받기는 했으나 비가 후려치고 흙탕물이 뛰고 해서 정강이 밑으로는 말이 아니었다. 동욱이가 들어 있는 집은 인가에서 뚝 떨어져 외따로이 서 있었다. 낡은 목조 건물이었다.’
―손창섭의 「비오는 날」
비록 장르는 다르지만 그 정서는 비슷하다. 한국전쟁 이후 혼돈의 현실과 이렇다할 전망이 보이지 않는 암울한 현실 속에서 짙게 드리운 환멸과 우울 및 비애의 정서는 이들 세대를 감싸고 있는 현실 그 자체인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시대 현실에 놓인 그들의 작품에는 우울하고 무력한 청년의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부끄러운 과거, 고달픈 현재, 암울한 미래는 김구용 세대의 예술적 상상력이 어떻게 해서든지 맞대면해야 할 과제들인 것이다.
3. 구원의 피안을 찾아가는 외로운 여정
김구용의 시는 대체로 비와 전쟁, 그리고 여성이라는 큰 프레임으로도 구분될 수 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송백팔 중 18편은 비를 소재로 하고, 전편에 걸쳐 전쟁의 상흔이 흐른다. 그러면서 구원의 상징으로 여성(아내)이 자주 등장한다.
아내는 혼자서 새벽녘에
三백년 뒤의 産婦人科 병원으로 갔다.
이윽고 소리가 문에 비雨를 뿌린다.
얼룩진 유리창은
港口의 배腹 바닥,
수많은 流刑으로 일렁인다.
전화벨이 울리자
카페트에서
까마귀 떼는 날아오른다.
<자물쇠로 잠근 짐짝마다
여보세요, 얼굴이
열두 개씩 들어 있군요>
꿈은 계속 폭탄을 투하한다.
병원에서는 아직 기별이 없는데
저만치서 늙은 海岸이 웃는다.
- 「송백팔 22편」 전문
이 시에서 김구용 시인은 “아내는 혼자서 새벽녘에/三백년 뒤의 産婦人科 병원으로 갔다”고 했다. 새벽은 어둠이 빛으로 변하는 시간이다. 다시 말해 한 패러다임으로부터 다른 패러다임으로 바뀌는 전환점이다. 이 패러다임의 전환을 산부인과에서 맞이한다. 진부한 얘기일지 모르지만, 산부인과는 새 생명이 태어나는 곳으로, 말하자면 이곳은 신생의 성소聖所다. 또한 이곳은 새 생명을 통해 새로운 생명의 기운을 얻고 삶의 활력을 되찾는 곳이기도 하다. 즉 산부인과는 출산과 구원의 메타포로서 기능을 한다. 산부인과가 이러한 심상을 지닐 때, 아내는 그곳에서 부처님을 맞을 수도 있고, 구세주를 맞을 수도 있다. 아니면 ‘아침을 몰고 오는 분’을 출산할 수도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여전히 비가 내린다. 불길한 까마귀 떼는 날아오르고 꿈속에서는 계속 폭탄이 투여되는 아수라장이다. 이 시의 화자는 절해고도로 유배를 가는 초라한 행색의 선비와 같은 심정이다. 병원에서는 아직 기별이 없다. 당연한 일이다. 그곳은 “삼백년 뒤의 산부인과 병원”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을 수는 없다. 멀지 않은 거리인 “저만치서 늙은 해안이 웃는” 모습이 바야흐로 시야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흙에서 싹은 솟아나
불火은 피血로서 순환하는데
쇠鐵는
언제면 音樂으로서 結婚하나,
우선 아무것도
않는 일을 試圖해 본다.
그래서 몸살은 길路이 되어
珊瑚가지마다
별星들이 맺는 남쪽 노래였다.
집안을 잘 가꾸는
아내 때문에
도박은
거짓말을 한다.
장마비가 계속 내린다.
본다, 잠시나마
내일의 十字架는
믿을 수 없는 일이다.
말씀은 點만 두어
제각기 흩어지지만
그의 눈眼과 그녀의 눈은
하나로 密接한다.
-「송백팔 제 12편」 전문
이 시에서 시인은 구원은 믿을 수 없는 “내일의 십자가”’에 있지 않으며, 말씀도 다만 점點만 둘 뿐 제각기 흩어져 믿을 것이 못되지만, 그의 눈이 집안을 잘 가꾸는 그녀의 눈과 “하나로 밀접”함으로써 결국 그녀를 통하여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단언한다. 구원은 시인에게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흥미로운 것은 김구용의 시적 구원이 ‘아내’의 심상과 연관되고 있다는 것이며, 이는 새 생명을 잉태하고 낳는 대지모신大地母神의 원형 심상과 무관하지 않다.
4. 미래의 독자를 향한 시적 타전
김구용은 지구라는 행성에서 20세기를 살다 갔지만, 그의 시는 시대를 초월하여 모든 시간을 아우른다. 20세기 중반, 두 번의 전쟁을 겪으며 그 속에 던져진 삶을 주요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전 세계의 모든 시대에도 통용되는 보편성을 갖고 있다. “어제와 내일은/거울에서 한 몸身”(「제2편」)이듯이 삶과 죽음을 현실이라는 거울에 투영된 한 몸으로 보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김구용의 시가 난해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詩는 意味를 거부하며/月蝕하는 港口”(「제2편」)라고 했다. 의식과 무의식 세계가 중첩되며, 그 두 세계를 빈번하게 넘나들었기 때문이지, 크게 어려울 것은 없다. 다만 상징적 언어들이 많이 사용되고 다소 이질적인 요소들이 조금 거칠게 결합된 점은 눈에 띈다. 그렇다고 이유 없이 난삽하다고 치부할 일은 아니다.
분명한 것은 그가 20세기 한국의 시단에서 매우 독특한 마술적 리얼리즘을 지향하는 한편, 초현실주의적 시세계를 개척하고 그 지평을 활짝 열었다는 것이다. 그는 스스로 독자들이 아직 사유의 감옥에 갇혀있는 지금보다 삼백년 뒤의 후세에 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며, 삼백년 뒤의 독자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시의 의미를 타전했는지도 모른다.
□ 추천사
김영덕은 평론 「닫힌 세계를 초극하는 시적 구도 : 김구용의 연작시 송백팔」에서 김구용의 시세계를 대상들 사이의 고유 경계를 무화시키고 삶의 경계마저 전복시키는 幻의 세계라 분석하는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김구용은 식민지 시대 이후 해방 공간의 이념적 혼돈과 한국 전쟁의 비극 속에서 삶의 현실을 어떻게 초극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천착하고 소통이 단절된 현실을 조명할 뿐 아니라 시대적 질곡 속에서 겪는 내적 갈등을 그려내고 있음을 분석하고 있다. 이 글은 김구용의 갈등과 혼란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이 경험하는 갈등과 혼란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지적하며 이것이 이 시대에 김구용 시를 읽어야 하는 이유라 설명한다. 김영덕의 평론은 본격적인 김구용에 대한 비평이 활발하지 않은 현실에서 의미있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김구용의 시에 드러나는 갈등과 혼란을 시대의 현실 속에서 읽으려 한 시도와 이 갈등과 혼란을 이 시대의 현실로 연결시키고 있는 점을 주목하였다. 또한 최근 비평이 일반 독자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현실을 볼 때 평이한 언어로 일반 독자에게 다가가 김구용 시의 이해를 돕고 있다는 점이 장점이라 할 수 있다.
다만, 비평의 언어를 보다 엄밀하게 사용해야 하고, 텍스트가 지닌 안팎의 의미를 좀 더 깊이있게 풀어내는 작업이 요구된다. 비평은 개별 작품에 대한 참신한 해석뿐 아니라 텍스트와 텍스트간의 상호작용을 읽어내는 힘이 주요한 장르임을 주지한다면 보다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앞으로 부단한 정진을 기대한다.
- 추천인 : 강우식(시인), 권경아(평론가), 장종권(시인)
당선소감
엊그제 기변을 한 내 휴대전화에 책처럼 비닐 커버를 씌워놓으니 영락없이 초등학교 때 개근상으로 받은 콘사이스 국어사전을 닮았다. 손에 착 감기는 그 안온한 감촉까지 닮았다. 요즘 아이들이 스마트폰에 코를 처박는 것처럼 골목에서 아이들과 바쁘게 뛰어놀면서도 나는 그 사전에 자주 코를 처박았다. 사전의 사전적 의미는 ‘그 나라의 국민들이 쓰는 말을 모아 일정한 순서로 배열하고 뜻풀이, 어원, 품사, 다른 말과의 관련 따위를 풀이한 책‘이다. 사전에는 정말 없는 게 없었다.
사춘기 시절에 문학을 꿈꾸었다. 우물쭈물하다가 남들처럼 ‘희소한 자원의 최적배분’에 대하여 고민하는 공부를 하고 대학을 졸업하는 길을 나는 선택했다. 제4공화국 시절, ROTC출신 장교로 최전방에서 독일병정처럼 군복무를 했다. 여자 친구가 생겼고 결혼을 했다. 산업사회라는 익명의 숲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다. 30년이 지났다. 나머지 삶도 그렇게 흘러가지 싶었다. 일상은 단순했고 편안했다. 그러나 나는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을 끝내 버리지 못했다. 그것이 설령 가시밭길이라도.
많이 부족하다는 걸 안다. 부족한 나에게 기회를 주고 일으켜 세워주신 리토피아/아라문학 장종권 주간님과 막비시동인 그룹, 그리고 고명철 교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내친김에 소처럼 우직하게 앞만 보고 정진할 것을 약속드린다. 끝으로,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노부모님과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지만 소중한 내 아내와 든든한 큰 아들 내외, 또 뒤늦게 문학수업을 하도록 동기를 부여해 준 뉴욕주 변호사 작은 아들과 고3 막내딸에게도 고마움을 표한다.
약력
1955년 인천 출생. 인하대 졸업, 연세대 MBA과정 수료. 대한항공 및 아시아나항공 근무. 현 잉글우드커뮤니케이션 대표
- 이전글정무현(기재)/시(2014년 가을호) 14.08.22
- 다음글허문태(시, 2014년 여름) 14.06.05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