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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혜-제7호 신인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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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리토피아
댓글 0건 조회 2,313회 작성일 03-07-25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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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혜-제7호 신인상(시)

경북 봉화 출생
1977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침향 동인
2002년 리토피아 신인상


알레르기 외 4편


해마다 그 자리에
한 여자가 서 있네
햇살이 메마른 가지를 긁으니
벌겋게 보고싶다는 말이 흩어지네
바람이 수없이 회초리 되어 지나 간
그늘이 부풀어오르네
꽃이 된 자리마다 병이 도져
봄이 오면 여기 저기
미치도록 가렵다는 전화가 오네
불꽃같은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고 싶었던 곳이
여기다 여기다 하면서
가시를 품은 향기가
눈물처럼 쏟아지는 골목
이제는 지나갔겠지 눈을 뜨면
징그러운 그리움 아직도 밟고 섰네
달려왔다 지워지는 물결이 보이네
몇 번을 더 앓아야 하는 지
왜 이렇게 가려운지



허망함만 배가 불러
바다로 뛰어들 뿐
푸른 살에는 아무런 흔적이 남지 않네



염색을 하면서


광산촌 아이들은 그림을 그릴 때 강을 검은 색으로 칠한다고 했던 사람에게
광산촌 아이였던 나 한번도 강을 검은 색으로 칠한 적이 없어서 괜히 미안했었네
도화지위엔 언제나 파랗고 긴 강이 흐르고 있었어

황지중앙초등학교 동문체육대회 열린다고 영월 상동 지나 태백 가던 길
폐광이 된 함태광업소 앞 노란 꽃들이 피어 있었네
버려졌던 한 무더기 상처가 길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었어

검은 강 검은 지붕 사라진 마을
삼십 년이 지난 줄도 모르고 저탄장 근처 어두웠던 집 잃어버린 길을 찾다가
여기가 어딘가 곱게 물들이지 못한 지난 날이 하얗게 지워지고
파랗고 긴 강이 진짜로 흐르고 있었어

어디로 숨었을까 오지 않은 아이들과
가슴 속 어둠 실어 나르던 수많은 갱도
공을 차다가 줄다리기 하다가 모여
입 다문 산을 배경으로 서둘러 사진을 찍었어

오늘 내게로 온 사진 속 낯선 풍경 들여다보며 염색을 했어
새치커버용 짙은 갈색으로
하얗게 솟아나는 흰머리 혼자 칠하며 괜히 부끄러웠네
늘 다른 색으로 숨겨야 했던 질기고 긴 절망이
이제는 검은 색으로 흐르고 있었어



마을버스를 기다리며


지나가네
미친 바람과
지친 비와
한 떼의 부질없음이
길이 없어
뛰어 내려
아스팔트를 치고 사라지네
떠난 자리
물이 고이고
파문만 꽃처럼 피었다 지네

남겨지네
신문 한 장과
거부하는 현수막과
뛰어내리지 않으려는
나와
독이 잔뜩 오른 가로수
그 사이로
돌고 돌아가야 하는
빤히 보이는 길이
모두 젖어서
더욱 구질구질해지네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어제 자전거를 타고 비디오 빌리러 갔었어요
여름 저녁이었어요
가로수 아래 풀들이 제멋대로 자라고 있었어요
누군가 내 얼굴이 어디서 많이 본 듯하다고 말해
어디서 보았을까 생각하다가 비틀거렸어요
가는 길에 신호등 하나가 더 생겼어요
사는 것이 점점 경사가 심해 오르기가 힘이 들어요
자전거에서 내려 지그재그로 걷다보니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 나왔던 아이가
달려간 길이었어요
그 이란 감독 이름이 또 생각나지 않아요
오늘 비디오를 보다가 중간쯤에서 생각났어요



실내를 위하여


손때 묻은 세월을 뜯어보니
썩고 금이 간 시멘트 벽
쉽게 속이 드러나도
겉으로는 틈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연한 살구빛 벽지의
잘려진 무늬를 맞춰
작은 방 네 벽을 다시 봉했다
숨길 수 없는 누수로 얼룩졌던 천정
슬쩍 높아지고
쓸데없이 못박았던 자리 지워졌다
뜯어보기만 할 뿐
어딘가 금간 마음의 벽 하나
봉하지 못하고
낮은 스탠드를 켰다
아늑한 실내
차 한잔 앞에 놓고
길게 몸을 파묻으니
유리병에 입이 터지도록 꽃이 피어나고
네 벽은 밤새도록 단단한 껍질이 되어 주었다

  
<수상 소감>

  어느 일요일 아침,
  무심코 창 밖을 보다가 벌떡 일어나 혼자 소리친 적이 있었다.
  하늘에 희미해진 보름달이 아침 햇살에 반사되어 잠시 붉게 빛났다가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면서.

  무심한 일상의 경이로움으로 빛나는 것들이 이제 내 것이 아니었을 때
사라지는 아름다움 가슴에 담아두고 싶은 그 눈물겨운 아쉬움이
절망과 게으름에서 일어나 혼자 소리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내 오래 된 꿈 하나 그렇게 다가왔다.
  부족한 제게 힘이 되어주신 리토피아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심사평>

  새로운 문법 가능성 보여

  탈색된 꿈과 외부로부터 소외된 내적 의식이 장성혜의 시를 태동케 하는 동력이라 할 수 있다. 이때 시마다 드러나는 자의식이 예사롭지 않게 읽힌다.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며, 그것을 다시 밀봉해버리려는 과정 속에서 그는 더욱 적나라한 자기와 만나고 있다. 다른 색으로 덮어버리고, 뛰어내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동안 자기의 실체가 더욱 분명해지는 아이러니 속에 장성혜의 시적 인식이 가로놓여 있는 것이다. 이는 밖을 향해 솟구칠 수 없는  세계와의 갈등을 암시한다. 나갈 수 없는 자기와 드러나는 자기, 그리고 그것은 막아서는 자기와의 긴 싸움이 자아와 세계와의 새로운 문법을 만들 가능성으로 내비친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의 의미가 보다 구체적으로 형상화될 때 시적 긴장이 보다 강렬해지리라 생각한다. -편집위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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