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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솜/시(2015년 여름호, 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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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탄
댓글 0건 조회 1,690회 작성일 15-06-11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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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상/시부문

김다솜

 

두(蠹)*

 

 

비타민, 미네랄을 갉아먹기 좋아하는 그는 우엉, 연근, 당근, 피트, 색색의 뿌리를 먹는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꽃, 풀, 잎사귀와 바람을 조각조각 갉아 먹고, 햇살도 몰래 갉아 먹는다. 과자와 불량식품이 목구멍을 갉아 먹게 하는 그는 피부를 위해 태반도 먹고, 녹용도 먹는다. 한약, 양약, 건강식품도 갉아 먹는 그는, 손톱, 발톱도 맛있게 갉아 먹는 그는, 내가 잘 먹는 소꼬리와 닭발, 족발도 뜯어 먹지 않는다. 때론 호로몬이여, 보톡스여, 사랑이여, 노래하면서 갉아 먹는 취미를 가진 나는 눈과 귀, 입을 위해 TV를 먹고, 인터넷을 먹고, 손전화를 먹고, 전자파를 갉아 먹고, 언제 내가 너를 먹었나 모른 척한다. 생명의 구원자처럼 나타난 비아그라가 사타구니를 갉아 먹는다. 온갖 냄새와 향기를 갉아 먹는 그는, 시를 쓰는 나를 갉아 먹고, 생각마저 갉아 먹는다. 나를 갉아 먹는 그림, 노래, 춤, 나를 갉아 먹는 머리칼, 나를 갉아 먹는 말, 말, 말.

 

*좀벌레처럼 아주 작은 벌레.

 

 

 

 

 

 

나뭇가지에 걸려 있던 노을이 허공으로 내려 올 때,

급탕 누르고 장례예식장 가려는데 정전이 되었다.

밖에서 놀던 따뜻한 어둠들을 위해 촛불을 밝힌다.

참고 참았던 녹들이 만든 분노,

펄펄 끓어 넘치는 용광로,

물과 불의 조화.

아버지는 스마트폰을 들고 나사를 풀고 조이고,

빨간 불을 꺼낸다. 파란불을 꺼낸다,

술 취한 사람처럼 오락가락 하다가 멈춘다

집지킴이, 그의 손, 발 씻어주며,

종일 벽에 기대 그림자를 위한

아버지를 고물상회에 보내려 해도,

그 자리, 티밥 틔우듯 펑, 펑, 터진다.

돌. 아. 간. 다.

 

새벽별 보고 출퇴근 하시던 아버지,

녹슨 아버지, 일 많이 해서 다 삭은 아버지,

도파민이 부족해서 생긴 파킨슨증후군 아버지,

당뇨와 고혈압 만들기도 하는 우그러진 아버지,

불이든, 물이든, 아버지든,

차면 비고, 비면 차는 기름통.

 

아기 돌잔치 가려고 급탕을 누른다. 펑,

향기 없는 파란 장미 잎사귀 하나 핀다.

 

 

 

 

 

오리들

 

 

착하고 일 잘 하는 대장오리의 아내는 막둥이 걱정하느라 관절에 구멍이 생겼어요. 그러다 어느 날 그녀가 파란 연기가 되어 사라지면 어떻게 되나요. 며칠은 일 잘 하던 오리 없으니 누구는 투덜대고, 갈팡질팡 어질머리를 앓고, 또 누구는 후회를 하겠지요. 대장오리는 한 달은 슬픈 표정을 하고 먼 산을 보겠지요. 그러나 머지않아 중매쟁이 오리 떼가 드나들고, 막둥이 오리는 여전히 시퍼런 물의 학교로 갔다가 물의 학원으로 갈 것이고, 그리고는 또 제각기 사느라 꿱꿱, 슬픔이 언제 왔었나 웃겠지요. 중년이 된 대장오리의 아내는 이렇게 죽은 뒤의 시간이 눈꺼풀을 바르르 떨게 하지요. 아픈 관절이 좀 쉬었다 하라지만, 그게 뭐 쉰다고 낫는 관절이 아니라는 걸 그녀는 알거든요.

 

어느 날 TV를 보다가, 추운 개울가에서 고양이가 먹다 남긴 죽은 오리가 클로즈 업 되고, 어미 깃털을 지키던 오리새끼를 한 달 동안 지켜보던 사람들, 어찌 저리 기특하냐고 웅성거립니다. 수의사가 흰 보자기로 오리 아내를 묻어 주니 그제야 발걸음 떼는 오리의 애절한 사랑을 보다가 채널을 돌리니 사람의 새해가 울다가 웃다가 합니다. 저 쪽 채널에서는 지금 오리 한 마리 똥구멍에서 나온 깃털이 바람에 나풀나풀하고 있어요. 남은 아홉 마리들은 살얼음 낀 강물에 동그마니 무리지어 그 깃털을 기다리고 있어요. 그저 밤과 낮의 순서를 기다리는 참 순진한 천년지기들, 주인이 미꾸라지로 유혹해도 나 잡아 봐라, 도망치지만 결국 오리 목소리로 유인하는 주인을 따라 집으로 들어갔어요.

IS가 뭘까요. IS가 누굴 처형했다고,

카혹, 카혹, 카혹, 차마 볼 수 없었어요.

 

물레방아 돌아가듯 나비구름 모였다 흩어지고,

나뭇가지마다 붉고 노란 물방울들이 올라옵니다.

 

 

 

 

숨바꼭질

 

 

종일 데리고 다닌 그녀를 잠시 쉬게 하고 싶었다. 두 켤레 슬리퍼 중 한 켤레를 신고 209호로 갔다가 뒤따라오는 세 명이 무엇을 신고 오는지 몰랐다. 출향문인들의 미래를 듣다보니 똑딱선이 3시라고 했다. 휴지로 209호를 정리하고 현관 앞에 서니 그녀는 없었다. 한밤중에 새재 아리랑을 부를 수도 없어 양말 신은 채로 208호로 갔다. 종일 쓴 가면을 클렌징으로 지우고, 씻고, 벗고, 잤다. 이승저승 오가다 일어나니 7시, 푹 쉬라고 둔 그녀는 나 몰래 어디를 갔는지 새 것도 아닌 것하고 숨바꼭질하기에는 이른 아침이다. 연극하듯 찾아오는 황당한 일이 어디 하나둘인가. 207호, 208호, 209호, 210호, 신발장을 열어봐도 그녀는 보이지 않는다. 사람이든 신발이든 사라지고 떠나가도 먹을 시간에 먹어야 했다. 슬리퍼를 신고 새재호텔 식당에서 북어국을 먹었다. 아침을 먹고 다시 209호를 열어보니 조금 전에도 없던 그녀는 현관에서 얌전하게 반겼다. 누군가 209호 화장실에 있었다고, 아니 그녀가 왜 그곳에? 내가 신고 가지 않은 걸 누가 신고 갔단 말인가. 208호로 자러 갔을 때 빈방을 아니 가방을 지키는 긴 부츠를 보았다. 긴 부츠에게 물었다. 209호 갈 때 뭘 신고 갔냐? 긴 부츠는 그저 배시시 웃는다. 늘 범인은 멀리 있지 않았다. 청문회 하듯 다그치니 오미자 막걸리가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몰라여, 기억이 없어여, 생각이 안나여, 쉿.

 

 

 

 

깜빡깜빡

 

 

나만 자동차 깜빡이처럼 깜박깜박 하는 줄 알았더니, 그녀도 냉장고에 넣어둔 떡국을 베란다에 갖다놓고 냉장고에서 찾느라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한다.

 

15일 친목모임 적금계좌 이체를 위해 은행 앞에서 만나자고 전화한 그녀, 내가 직원에게 주민등록증을 복사하라고 주니 도장을 두고 왔다며 탭댄스 한다.

 

현금인출기 앞에서 햇살처럼 미소 짓는 늘씬녀, 어디서 어떻게 만난 누구더라. 아지랑이 속에서 아롱거리는 반짝이는 기억, 시장에서? 어느 관공서? 어느 대학? 물음들이 등줄기를 오르락내리락한다.

 

인사하고 지나가는 뒷모습을 누구일까. 어느 계단, 어느 엘리베이터에서 보았을까. 어느 지하철, 어느 사무실에서 보았을까. 그런데 비밀번호에게 맡기고 온?

 

가스 벨브는 잠궜니. 전기장판은 껐니. 다리미 코드는 뽑았니. 수도꼭지는 잠궜니.

 

불꽃놀이 하듯 깜빡깜빡,

봄꽃 피고 지듯 깜빡깜빡.

 

 

 

 

당선소감

 

뜬구름이 파랗게 흘러간다 침묵이 흘러간다 먼 길에 동행한 것들 해, 달, 별, 나무 집 사람.....  얼마 전 까지 밟고 다니던 눈들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바람에 불려가는 낙엽처럼 이리저리 쓸리며 몰리며 비에 젖으며 오래 방황했다. 어느 날은 햇살이 찬 몸을 감싸 위로하기도 했다 문득 인연 따라 왔다 인연 따라 간다는 말이 생각이 난다 나는 무슨 인연을 따라 여기 에 왔고 또 무슨 인연을 따라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언젠가 눈물이 나지 않아 안과 갔더니 눈에 눈물이 없어 그렇다며 인공눈물을 처방받은 적이 있다 그런데 요즘 나는 별 슬플 것도 없는데 자꾸 눈물이 난다 TV를 보다가, 책을 읽다가, 또 누군가의 푸념을 듣다가 겨울 칼바람 소리를 들으며 피었을 제라늄 꽃송이를 보다가도 봄비처럼 눈물이 흘러내린다. 눈물의 홍수 속에서 당선 되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어디선가 연잎 냄새가 났다 산책길에 본 나무들, 꽃들, 새들, 출렁다리를 함께 흔들리며 건너 온 남편, 격려해준 아이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보내고 싶다 시는 내게 한(恨)이자 꿈이기도 했다 한없이 무거운 쇠구슬이며 한없이 가벼운 에드벌룬 이었다. 일단은 모처럼 날개를 접은 잠자리처럼 편안하다 나의 길이 아닌 것 같아 돌아 서려고 했던 날들이 생각난다 그 때 마다 약속이나 한 듯 나타나 용기를 주었던 귀한 분들도 생각난다 모두 고맙습니다 사실 저는 싸리나무 회초리가 필요했던 철부지 였습니다 그 철부지에게 가차없이 매를 들어주신 분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제 철없는 나를 태우고 다니느라 고단한 낙타를 좀 쉬게 해야할 것 같습니다 그의 등에서 내려 모래 없는 물의 사막을 걸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 길이 고난의 길이란 걸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추천해주신 시인님들과, 리토피아 주간님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어디선가 만났던, 만나지 못했으나 만날, 많은 시인들 그리고 좋은 시를 남기고 돌아가신 선배시인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상주, 문경 문협에서 인연을 맺은 많은 동료들 그리고 현상동인들 감사합니다

 

 

 

 

심사평

 

시인 100만의 시대라고 한다. 이 물질 만능의 시대에 아무런 경제적 효용이 없는 시인이 되려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것은 기이한 일이다. 아마 세계적으로도 유래가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또 한편 생각해 보면 물질만능의 가치관으로 너무나 혼탁해진 시대에 아무런 경제적 효용도 없는 시인이 되겠다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인 것 같기도 하다. 적어도 시를 쓰는 동안 또 시를 읽는 시간만은 생의 근원적 문제를 생각하고 존재의 경이로움에 悅樂하는 시간이 되기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시를 쓰는 일은 純粹 속으로의 투신이다. 그리하여 시인이 되는 일은 외로워지는 일이고 스스로 왕따가 되는 일이기도 하다. 처절하게 혼자가 되어야 한 줄의 시가 내게온다. 그리하여 시인이 된다는 일은 자랑할 일도 축하할 일도 사실 아니다. 나는 아직도 시를 쓰는 일을 골방에서 홀로 우는 일이라 생각한다. 시를 쓰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가? 그러면 써라. 시를 쓰지 않아도 살만한가? 그러면 쓰지 말라. 이렇게 말하고 싶다. 절박함이 없는 시는 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많은 시인들이 고리타분한 말이라 혀를 찰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 고리타분한 진리가 진짜 시가 이닐까? 각설하고 김다솜의 시는 상반되는 두 가지의 문제를 함께 안고 있었다. 첫째, 그의 시에는 계산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이미지가 갓 잡은 생선처럼 퍼득거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생래적으로 타고난 것들이다. 그것은 서툴지만 요즘 유행하는 소위 배운 시에서 자주 보이는 세련되나 왠지 기시감이 있는 그런 시와 구별되며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두 번째는 종래의 흔한 시들에서 보이는 낡은 이미지들이 긴장감 없이 툭툭 던져져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점은 많은 습작을 통해 본인이 좀 더 생각하고 고민해야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신인의 탄생을 축하하며 기억할 만한 시인으로 성장하길 기대한다./이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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