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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시현/시(2015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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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탄
댓글 0건 조회 1,788회 작성일 15-09-22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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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시현

낚시 일기, 하루를 건져내기

 

 

성경과 금강경 사이에 겨드랑이 털처럼 하루가 끼어 있었다

메마른 공책은 오후 세시 쯤 갈증에 몸서리쳤다

낡은 노트에 흠뻑 기억을 적셔주었다

시간이 흐르고 봄이 찾아오면 악몽에도 꽃이 피도록

 

오래된 별들이 쏟아졌다

사각의 평면에 갇혀있던 별들이 속삭이고 더듬으며

지샌 낱장들의 지능

과거는 용(龍) 문신같이 남겨져 가슴을 철렁이게 했고

표백된 별들이 심장의 비포장도로를 착실히 걸었다

 

달포 전의 시간들이 한 페이지씩 아침을 뚫고 나왔다

김장배추로 절여지던 추상적 기다림

이젠 포화처럼 묽은 연기만 뿜으며 어제 속으로 사라졌다

농협 간판이 택시 경적에 걸려 넘어지던 오후에도

현금 입출금기는 입금된 기억들을 토해내기 위해 긴 줄을 섰다

전화벨 소리는 정류장 빈 칸막이를 뚫고 어슬렁거렸고

이번 명절에도 고향으로 가는 페이지는 침묵했다

사라지는 자유는 머무는 곳마다 하얀 재를 뿌리며

서성이고 있었고

먼저 떠나는 이들의 차표마다 저녁노을이 검표(檢票)에 나섰다

 

밤새 침이 밴 일기장엔 단정치 못한 시간들이 허우적거리며

고단했던 낮의 시그널을 토해내고 있었다

마사지 가게 침대가 소시지처럼 윤기를 머금고 굽어보였고

버스운전사는 거꾸로 앉아서 운전대를 잡고

승객들의 표정을 독해하며 세상의 어둠을 유영하고 있었다

일기장이 바람결에 펄럭일 때마다

나의 조연(助演), 그 붉은 하루가 얇은 이불로 나풀거렸다

오늘 쏟아 낸 아라비아 숫자와 검은 활자를 한 그릇이나 퍼담을 수 있었고

나의 하루는 보리밥 한 덩이처럼 푸석푸석해져서

하루를 끓일 때마다 어둠 속에서 늘 죽이 되곤 하였다

 

 

 

 

손톱

 

 

자고 나면 귀신처럼 자라난 손톱이 있었네

죽어서도 당분간 길어진다는 손톱의 유전자가

단심재판의 판결문같이 암호로 해독될 때,

속살이 도난당해 껍질만 남은 낱말이 유일한 웅변이었을 때,

어두운 신비로 감싸진 것이었네

 

하늘에서 빗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곳으로

슬픔의 단어들을 찾아 헤매었으나

세상의 아픔을 방어하기엔 너무 나약한 너의 무기,

해체만이 살길이다

 

허공의 혈관을 건져내기 위해

발톱이 거세된 직립보행의 삶은

탕진의 숲으로 걸어가고 있었네

 

앞발의 슬픔 위로 쏟아지던 별들

손톱으로 긁어보았네

죽어서 저 빈 곳의 별이 된다는 위로의 말들

손톱에 낀 때라고 믿었네

 

뼈가 죽은 음악은

아무도 건져보지 못한 어둠 위에 검은 건반으로 내리고,

육지 끝보다 더 단단한 낭떠러지를 잡고

통행금지된 기억은 손톱으로 자라 울먹였네

매니큐어에 봉인된 범죄의 흔적 뒤로 오늘도 손톱이 자랐네

 

 

 

 

어떤 배우의 연기

 

 

납빛 여우털 같은 하늘이 내려앉던 날

 

파르스름히 머리 깎고

파리한 全 生 짊어지고

대사 속으로 엉금엉금 기어들어가 보지만

존재와 의식의 불일치

 

뱃가죽엔 힘이 없고

무대가 질식시켜버린 달셋방의 思想

 

자본의 논리 앞에 불어터진 라면발 앞에서

나의 연기 株式은 연일 하종가

 

밧줄을 매는 실제연기에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먹혔다

 

理想은 그렇게 겨우 정리되었다

 

 

 

 

판타지 없는 세월의 주름

 

 

불 꺼진 판타지의 방문을 삐걱거리는 기다림으로 열어요

길었던 하루는 세금고지서 위로 휙 지나갔어요

불치의 종양보다 깊은 후안무치한 이익의 무게가

박애의 분장을 하고 TV 뉴스 속에서 뛰쳐나와요

앙상한 내 가슴으로 허락도 없이 막 들어와요

오늘도 하얀 막대기 같은 목숨들 많이들 속이고 많이들 죽어요

부족한 사랑은 말랑말랑한 보석으로 완치돼요

그 와중에 허약한 내 시간들은 불안한 임금에 조종돼요

어떤 기준인지 동의할 수 없지만 책장에 몇 권의 위인전기가

어둠 속에서 날 보고 히죽히죽 웃어요

그렇게 사는 게 아니라고,

中東에서만 전쟁이 나고 사람이 죽는 게 아니었어요

쪼들림과 살면서 돈을 셀 줄 몰라요

차리리 가면을 사서 써야 해요

대들어보니 만만치 않아요, 각자 神을 불러서 면담이나 해볼까요

그럴 때마다 주름이 생겨요

 

짐승보다 오래 살다보면 역한 냄새가 나고 추해진대요

원하는 것들은 무엇이건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려요

소중한 것들은 무엇이나 단명해요

바늘귀도 어둡고 잔글씨도 미간을 찌푸려야 하는 날이 오지요

아침에 다짐한 말을 숯검댕이처럼 잊었다가

일을 그르치고 난 다음에도 아지랑이같이 가물가물한 날이 오지요

 

혈육이라도 영영 떠나는 날이 되어서야

영원의 신화조차 금이 간 밥주발이었단 걸 알게 되지요

옷을 정갈히 장만해 다림질하고 나서는 날이 다반사일까요

넥타이를 풀어요

가족은 따뜻하기만 하고

친구의 맹세는 믿어도 되는 걸까요

지진이 땅위에 올려놓은 사람의 집들을 흔들어 허물 듯

세월은 삶에 세워놓은 지붕을 예고 없이 날려버려요

이제 떠나요, 즐거운 여행이 아닐지라도,

햇살이 사라지고 꽃잎이 잠깐의 화려함 뒤로 숨듯

당신도 나도 세월의 무한한 병풍 속으로 숨어버려요

세상의 허방다리에 빠지고 빠져도 여기까지 애닯게 걸어왔으니

이제 팔폭 병풍 뒤 서늘한 곳에 누워 껄껄껄 세상웃음 소리나 들어보아요

 

 

 

 

음력 오월 초하루

 

 

콩이파리도 배를 뒤집는다

아침부터 東窓에 햇살 따갑더니

버찌는 가문 흙 바닥에 검붉은 피 쏟아내고,

일거리 없는 병약한 사내들 가르마 타고

세상의 혈관으로 흐르려

약속 없이 문밖을 나선다

 

7자로 꼬부라진 벽촌 노인 오일장 보고

버스 기다리는 사이

두어 대 타기도 전에 지난 세월처럼 휘잉 가버린다

잡지도 못한 버스

애원을 뿌리치는 차가운 손처럼 디젤 연기만 시커멓게 싸질러 놓고

 

안방 벽 액자에 이태를 소식조차 없는 아들이 걸려서

하얀 이 드러내며 웃고,

일소(牛) 만한 근심이 쪼그라든 어깨에 출렁인다

 

술 취한 마른 바람, 가슴팍에 젊은 날 서툰 애인처럼 끈적대고

생담배가 바들거리며 때 낀 안경 속으로 타들어간다

 

 

 

당선소감

어제도 오늘도 빈 병에 바람이 불었다.

내 삶은 늘 바람과 직면했고 불안했다. 그러나 詩를 대할 때 살아있음이 행복했다.

오래 전 철학자 강신주의 책을 읽다가 나는 형언할 수 없는 솔직함, 벌거벗음과 만났다. 명나라 철학자 탁오 이지 선생의 <속분서>에서 이런 대목을 인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이 오십 이전의 나는 정말로 한 마리의 개에 불과했다. 앞의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나도 따라서 짖어댔던 것이다. 만약 남들이 짖는 까닭을 물으면 그저 벙어리처럼 쑥스럽게 웃기나 할 따름이었다.’

인간의 마을에 태어나 그간 나는 수많은 타인의 수고와 대자연의 살점을 훔치며 가슴과 머리와 몸통을 키워왔다. 탐구라는 이름으로, 창작이라는 이름으로, 생존이라는 슬픈 이름으로……

그러나 이제 文才가 가난한 나에게 <리토피아>가 이렇게 길을 열어 주었으니, 먼지를 털어내며 살아있는 정신으로 남아 겸허히 배우고, <리토피아>의 일원으로서 세상의 잘고 허름한 것들과 마음을 나눠볼 작정을 한다.

나는 언제 나 자신으로 깊이 살 수 있게 될 것인가?

내가 보낸 시절은 겨울날 눈발로 갈 길을 미끄럽게 해 놓았고, 북풍이 남아 내가 가 닿아야 할 강 언저리조차 얼려 놓았다. 그러나, 그 길을 걷고 강을 건너야 봄의 가녀린 기운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미끄럽고 위험한 길일 것이다.

나는 남은 길을 걸으며 개처럼 짖거나, 아니면 사람의 말을 해가야 할 것이다.

나의 모자란 문학을 어둠에서 건져 햇빛을 보게 해 주신 <리토피아> 장종권 선생님과 심사위원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심사평

일상의 압박(壓迫)을 시의 추력(推力)으로 바꾸는 법

지금 이 순간에도 각양각색의 ‘시(작품)’들이 쏟아지고 있다. 물론 그것들이 모여 ‘시(개념)’를 변화시키고 확장한다. 특히 현대적 의미에서 오늘의 시가 ‘일상’을 주요한 소재로 삼는 것은 얼핏 다른 두 가지 방향에서 다 생각해 볼 수 있다. 한 방향은 외적 자극으로서 소위 세계가 자아(퍼소나)에 가하는 압박이 대부분 ‘일상성’에서 비롯한다는 자각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자아를 불안으로 요동케 하는 내적 자극이 또한 습관으로 침윤된 일상의 흔적들이기 때문이라는 자각, 또는 발견에서 기인한다. 이는 오늘 ‘시는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가치와 효용의 문제와 결합되어 시적 태도의 중요한 부분을 결정한다고 할 수 있다.

강시현은 피투(被投)된 존재의 개인적 좌절과 소외를 시간이라는 모티브를 중심으로 지나친 자기 현시 없이 형상화해 보여주고 있다. “밤새 침이 밴 일기장엔 단정치 못한 시간들이 허우적거리며/고단했던 낮의 시그널을 토해내고 있었다/마사지 가게 침대가 소시지처럼 윤기를 머금고 굽어보였고/버스운전사는 거꾸로 앉아서 운전대를 잡고/승객들의 표정을 독해하며 세상의 어둠을 유영하고 있었다/일기장이 바람결에 펄럭일 때마다/나의 조연(助演), 그 붉은 하루가 얇은 이불로 나풀거렸다”(「낚시일기, 하루를 건져내기」)는 일견 그로테스크한 탄식은 자연적 질서로서의 시간의 흐름을 제외한 내면적 욕망의 좌절을 드러낸다, 즉 “자고 나면 귀신처럼 자라난 손톱”(「손톱」)처럼 무용한 것들만 성장을 이룩하고 생은 결국 “원하는 것들은 무엇이건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리고 “소중한 것들은 무엇이나 단명” 하는 세계에서 “아침에 다짐한 말을 숯검댕이처럼 잊었다가/일을 그르치고 난 다음에도 아지랑이같이 가물가물한 날”(「판타지 없는 세월의 주름」)이 올 것이라는 사실만이 분명하고 확실한 비전 부재의 비극적 상황을 드러낸다. 다섯 편의 작품이 한결 같이 이런 비극적 인식을 토대로 하고 있음도 주목된다.

오늘, 시가 왜 필요한가? 라는 질문에 강시현 시인은 나름의 대답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습관이란 과거로부터 재현되는 것이지만, 우리가 미래에의 기대에 대한 인식 없이 그것을 자꾸 재인(再認)할 때 결국에는 일상에 함몰될 수밖에 없다. 이런 일상적 함몰에 저항하는 방식으로서 습관의 흘러넘침을 통해 얼마간 환각의 세계를 그려내는 것도 시인의 몫일 수 있다. 이를 추력으로 더 깊고 넓은 시의 경지를 이룩해 나가길 기대한다/장종권, 백인덕(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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