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신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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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숙경(시/2016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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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토피아 신인상/시부문
김숙경
엄나무
남자의 정전가위로 마구 쳐낸다
바람 시원하고 햇볕 잘 드는 뒷산
아버지의 밑동에서 태어났다 어느 날,
남자의 눈에 들어 대문 안쪽으로 옮겨졌다
대문 밖 세상이 궁금해 팔 뻗어 손을 내밀면
잎이 무성하다 자른다
아버지의 소식이 궁금해 꽁지발 서면
담 밖은 위험하다고 철조망을 두른다
봄이면 부드러운 내 어린잎 따 나물로 무쳐먹고
여름이면 보양한다고 백숙에 넣어 끓여먹고
가을, 겨울이면 관절에 좋다며 가지 채 닳여 먹는다
애달픈 몸은 악어가죽보다 더 질겨지고
참을 수 없는 화禍는 독침보다 강한 가시를 만들었다
위로하는 빗줄기도 굳어버린 설움을 어쩌지 못한다
어이 할꼬,
끊이지 않는 욕망은 눈을 멀게 할 것이다
공기놀이
거칠어진 손 안에 다섯 알 공기의 이야기를 담는다.
외로운 공기 하나
초등학교 시절 고갯길 너머 엄마를 보내고
가난을 먹고 아파하던
가엾은 친구 얼굴이 손 안에서 출렁인다
마주 앉은 공기 둘
중학교 때 만난 단짝의 여린 몸을 짓누르는
끝없는 삶의 무게가
황톳길 거친 자갈마냥 서걱거린다
쭈뼛쭈뼛 앞 다투는 공기 셋
창살 없는 감옥 속에서도 바람처럼 자유롭던
여고시절의 웃음소리가
가을 산책길처럼 편안하고
움켜진 손 안의 공기 넷
캠퍼스를 휘감고 돌던 당돌한 미래가
허둥지둥 탈출구만을 쫓는
안개 속 사냥개마냥 눅눅하게 지쳐있다
손등 위로 올라 탄 공기 다섯
세상을 향해 창공에 오르기도 떨어지기도 하며
내가 세상의 중심이니 오방五方의 균형 잘 잡아
흔들리지 말고 살아가란다
시월에
마당을 쓴다
각기 다른 삶의 모습들을 쓸어 모은다
싹 틔우던 보드라운 햇살 한소끔
구석진 이방의 여인처럼 웅크린 바람
알록달록 흔적을 숨긴 단풍의 붉은 유혹
화려하게 꽃 피우던 현기증의 거친 숨을
내려놓은 깊숙한 시간
눈동자를 휘젓던 무수한 일상과
바스락거리는 철없는 소란에
칙칙하게 드러누운 집착을
놓아야 할 때다
바쁠 것 없는 오후
돌 틈 맨드라미는 흔들흔들 졸고
까치는 감나무 꼭대기 홍시를 기웃거린다
아침 아닌 아침
둔덕삼거리의 아파트 12층
외길이던 예전부터 고둥의 밑자락으로 들어가는 이곳은
바람결 따라 일렁거리는 나비짓
비바람 속 가지들이 힘겨루기 한다
내리 뵈는 4차선 도로는
재촉하는 밥을 먹고 출근하는 남자의 아침을
조잘대는 아이들이 피우는 한밤 웃음꽃을
기억하고 있다
너는 아침에, 나는 낮에, 또 다른 너는 밤에
주섬주섬 졸린 눈 비벼가며 각자의 아침으로 뛰어든다
현장에서 밤샘 작업하는 네겐 저녁이 아침이고
아이의 학원비를 벌겠다는 어미에겐
깊어가는 밤이 두 번째 아침이다
각자 자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그러면서 어울리는 세상
참으로 신통한 생체 리듬이다
유행가 사랑
여수행 신부네 하객 관광버스 안에서
40년 살아 온 부인을 옆에 둔 어르신
노래 몇 곡으로 러브스토리 대 방출 하신다
약속한 사람을 만나지 못해 마음만 녹고 녹였다는 눈 내리는 ‘안동역’
사랑의 마침표를 눈물로 찍고 연기처럼 영혼을 앗아가버린 ‘옥이’는
젊음과 영혼을 엮어서 사랑했던 ‘연상의 여인’이다
한 번 잡은 마이크 건넬 줄 모르고
한잎 두잎 뒹구는 ‘오동잎’으로 자신의 처량함을 노래하더니
그 시절 추억이 온다 해도 ‘사랑만은 않겠어요’ 마이크를 넘긴다
그런데 이 분 딸 다섯에 손주가 아홉이다
마이크가 돌고 돌아 부인의 선곡은 ‘당신이 최고야’
처음 만난 그 순간 내 반쪽이란 걸 알았다는
지고지순 그 콩깍지를 어이 할 거나
2절에 마이크를 받아 든 방전된 목소리의 회갑 지난 그 사내
행복하게 멋지게 아낌없이 내 모든 걸 다 줄 거라며
당신이 내 반쪽이란 걸 이제야 알았단다
<소감>
유통기한이 없는 초대장에 감사
바다를 찾는 오늘도 비가 내립니다. 비가 내리는 바다는 내림과 받듦의 자연스러운 스며듦으로 잔잔한 평화를 깨우치게 합니다.
몇 해 전에서야 비로소 어릴 적 함께 노닐던 詩가 내게 유통기한이 없는 초대장을 보내왔음을 알았습니다. 첫사랑이 그러하듯 뭉클하거나 고즈넉하거나 힘겨움에 아우성 칠 때 한두 번씩 찾아와 나를 달래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의 울림이 늘 같지 않음을 알기에 봉인된 초대를 풀고, 바닷물을 만드는 쉬지 않는 맷돌처럼 詩語들의 바다에서 긴 포물선을 그려볼 참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시심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자신을 깊이 성찰하고 인내하다 보면 시인이 되어있을 것이라는 나의 첫 떨림을 알아준 이민숙 선생님을 가슴으로 사랑하며 사랑스럽고 예쁜 ‘빗살’의 따스함은 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시는 내 곁에 있으니 시시때때로 주워 담기만 하면 된다는 신병은 선생님을 존경하고 부족하여 서툴기만 한 저의 넋두리를 과감히 선택하여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 드립니다./김숙경
<심사평>
표현력에 앞서 시를 돋보이게 하는 ‘협응協應’의 시 정신
시는 언어란 질료를 통해 구현하는 예술의 한 형식이다. 누구나 다 아는 이 명제는 그러나 그 함의가 결코 작지 않다. 우선 ‘언어’를 질료로 한다는 점에서 언어에 대한 철저한 인식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오늘날은 ‘철저한 인식’ 대신에 ‘뛰어난 감각’만을 강조할 때도 있다. 어쨌든 언어에 대한 ‘감각적 의미sense’는 남달라야 한다. 그래야만 내용을 구성했을 때 시인의 가치부여를 통과한 ‘관계적 의미meaning’가 명확해지기 때문이다.
김숙경의 작품들은 ‘소품’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소품이라고 한 뜻은 작품의 행이 짧은 단편이라는 뜻이 아니고, 나아가 일상의 아이디어 상품(가제트)들을 모아 놓은 잡화점 같다는 의미는 더욱 아니다. 적절한 용어가 생각나지 않아 소품이라 했지만, 현대사회에서 우리를 가장 괴롭히는 ‘일상성’에 대한 개성적 시각이 엿보인다는 점을 역으로 강조하고 싶었다. 일상성의 대칭을 역사성이라 한다면, 우리는 모두 역사성의 유령들에 짓눌려 있다. 최소한 시사詩史(이것도 역사이기는 마찬가지지만)적 위치 등을 따지며 언어유희에 골몰하는 것을 현대적이라 떠받드는 형태 따위가 그렇다. 그러면 무엇이 남았나?
필자는 ‘협응’의 시정신이라 하고 싶다. 시인은 「아침 아닌 아침」에서 “각자 자고, 생각하고, 행동하는,/그러면서 어울리는 세상/참으로 신통한 생체 리듬이다”라고 진단하고 있다. 잔업이나 야근 등은 필연적으로 자연이 만든 ‘아침/저녁’의 교차를 훼손할 수밖에 없는 인간적 행위다. 그 또한 환영받는 활동도 아니다. 하지만 ‘각자’의 필
요가 만든 ‘세상’이 ‘신통한 생체 리듬’을 통해 어울려 돌아간다고 보는 것은 대단한 긍정의 정신이라 할 수 있다. 세상 모든 것이 다 그럴 수는 없다. 「엄나무」에서는 “봄이면 부드러운 내 어린잎 따 나물로 무쳐먹고/여름이면 보양한다고 백숙에 넣어 끓여먹고/가을, 겨울이면 관절에 좋다며 가지 채 닳여 먹는다”는 시적 화자(어린 엄나무)의 투덜거림이 등장한다. 사람에게야 지극히 당연한 채취 행위겠지만 엄나무 입장에서는 오롯이 ‘화禍’를 당하는 것일 뿐이다. 이 두 작품의 대비에서 김숙경이 나아가야할 시 세계의 한 윤곽이 잡힌다. ‘협응’이란 사람과 사람, 자연과 자연 뿐만 아니라 자연과 사람이란 두 개의 상이한 층위가 한 생태를 이루는 것에 대한 인식이다. 이를 철저하게 밀고 나간다면 결국 물질세계와 정신세계가 협응하는 차원까지 인식의 차원이 확장될 것이고, 그에 걸 맞는 표현 전략도 수립할 수 있을 것이다./백인덕 장종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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