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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호경(2017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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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탄
댓글 0건 조회 814회 작성일 17-07-15 09:33

본문

명호경홈피2.jpg


│시부문│

꽃들의 다툼 외 4편

명 호 경



햇살 좋은 어느 날
두 며느리가
목련과 매화 중 어느 꽃이 먼저 피는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가곡 목련화에서
봄의 전령으로 표현하고 있으니
분명 목련이 먼저 온다고 말하자
설중매화雪中梅花라고
눈 속에서 피는 꽃인데
봄의 시작은 매화부터라고 우겼습니다


결론이 나질 않자
그럼 시어머니께 물어 보기로 했는데요
“어머님, 목련이 먼저 피지요?”
“어머니, 매화가 먼저 피잖아요? 그렇죠?”


잠시 고민을 하시더니
“내 얼굴 저승꽃은 지난겨울부터 피어 있었니라”


세 여자가 서로를 보고 깔깔대며 웃는 사이
봄은 사립문 앞에서 아른거렸습니다





어머니의 난중일기亂中日記



산에서부터 소나무가 쳐내려오고
마을 쪽에서부터 대나무 밀고 올라오고
유자밭이 진퇴양난이다
성근 두충나무 방호벽을 뚫고
가장자리는 대나무 첨병들이 점령하자
유자밭을 지켜내겠다는 일념으로
노모는 낫을 들고 올라갔으나
웃자란 잡초들의 저항에
낫질할 엄두조차 내질 못하고 내려오고 말았다
놉을 사려해도 젊은 사람이 마을에 없다는 현실에 시름하다
봉화를 대신한 휴대폰을 들고
만만한 막내아들에게 지원요청을 한 후
주말에 내려가 풀을 베겠다는 약속을 받아내신다
토요일 내내 예초기 굉음이 유자밭을 지배하고
대나무와 어린 소나무 밑둥이 잘리며 내는
단말마의 비명이 끊이질 않았다
포연탄우砲煙彈雨 시간이 지나고
유자밭이 본래의 모습을 되찾자
이내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시며
고생했다는 말과 함께 아들에게 수건을 건네시는데
노모는 내년 봄까지는 휴전을 이어갈 것이다
잡초들이 차지했던 자리마다
유자나무는 푸른 햇살을 받으며 노란 꿈을 키우다
은은한 향을 바람결에 풀어놓을 것이다






나비, 검은 무늬를 지우다



마늘쪽 같은 불알을 흔들며
능숙하게 돌담을 타고 넘는 노랑무늬 고양이
앞마당을 마치 제집처럼 어슬렁거리는
보무도 당당하다
대문밖에 있던 놈은 등치가 커지자
우리 집 마당을 허락도 없이
자신의 영역으로 등기하고선
처음엔 나비 밥그릇을 노리더니
보름 전부터는 몸을 탐하기 시작했다
놈을 완강하게 거부하던 나비가
며칠 전 대가리를 바닥에 문대는 틈을 타서
잽싸게 나비목덜미를 물며 덮쳤는데
나비 울음이 처절해 괴기스럽기까지 했다
그날 이후 놈은 앞마당에 상주하며
기둥서방 노릇을 하는 꼴이 볼썽사나워
헛 돌팔매질로 쫓아 보았지만
금세 돌담을 타고 다시 넘어 들어와
나비 밥그릇에 코를 처박는다
그 순간, 나비가 놈의 곁으로 다가가
몸을 부비며 얼굴을 핥아준다
나비는.이제 곧 검정무늬를 지우고
노랑무늬 새끼를 낳을 것이다





똥꽃



도로변 노랑이 화사하다
여름코스모스라고도 불리는 금계국을
이름을 알기 전에는 그냥 ‘똥꽃’이라 불렀다


옆집 정훈이 아빠가 현장근무 중
노란 꽃무리에 숨어 급히 똥을 누었고
그냥 나오기도 머쓱했던지 금계국 한 다발을 꺾어와
정훈이 엄마에게 한 쪽 무릎을 꿇고 내밀었다


남편에게 받은 첫 꽃 선물이라며 활짝 웃으며
그 중 몇 송이를 내 아내에게 건네주었다
노란 꽃 사이에서 엉덩이를 까고
아랫배에 힘을 주며 꽃을 꺾는 모습을 연상하며
우리 부부는 한참이나 깔깔거렸다


해마다 군락을 넓혀가는 금계국 꽃무리를 보면
가부장적 근엄한 모습에 기골이 장대한
정훈이 아빠 똥거름 효과가 아닐까 싶어
도로변 샛노란 금계국 모습에 취하다가도
코를 갖다 대는 것이 망설여지는 것도
다 그 때문이다





얀바구 같은 놈



까마득한 옛 추억 속 어른,.호성이 형네 머슴 얀바구 아저씨는.지능이 약간 부족했지만 아이처럼 순수했다 동네서 먼 범바구 넓은 밭을 갈아야 하는 날, 주인아주머니는 도시락 싸 주셨는데 시간 개념은 없고 먹성만 좋았던 얀바구 아저씨는 점심때도 되지 않았는데 도시락을 미리 먹고 해가 떨어지기 전에 배고프다며 집으로 오기 일쑤였다 주인아주머니는 궁리를 거듭하시다 여수로 가는 여객선 신라호가 창포마을 끝단을 통과할 때가 정오라는 것을 떠올리시고 “얀바구, 신라호가 창포 앞을 지날 때 점심을 먹소”라고 알려주었고 그 이후로는 얀바구 아저씨의 점심시간은 일정하게 되었다


얼마 후, 먹성 좋던 사람이 도시락을 먹지 않고 그대로 가져오자 주인아주머니는 어디가 아프기라도 한 건지 걱정이 되어 물었는데 “오늘 신라호가 창포 앞을 지나가질 않았어라”라고 대꾸하더란다 그날은 바람이 많이 불어 풍랑주의보가 발효되었고 여객선 신라호는 출항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우리 마을에서는 융통성 없는 사람을 빗대 “얀바구 같은 놈”이라고 비아냥거렸는데 계산적이고 약삭빠른 사람이 넘쳐나는 오늘, 얀바구 아저씨가 그립기도 한 것을 보면 “얀바구 같은 놈”은 비난이 아니라.찬사였던 것이다.





소감

세상을 밝게 담아내기 위해 노력


나무들이 푸른 그늘을 늘려가는 5월은 참 좋은 계절입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적당한 기온에 습도, 바람까지 모두 축복입니다.  그래서 퇴근을 한 저녁이면 집주변 수변공원도 걷고, 바닷가에서 파도소리를 한참동안 듣고 오는 요즘입니다. 이 좋은 계절에 계간지 리토피아 신인상 당선이라는 행복한 소식이 날아들었습니다. 지난 세월에 불만이 많았던 것을 고백합니다. 제 추억의 대부분은 세상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했으니까요. 우리시대 흔한 가난이었겠지만 청소년기를 비참하다는 생각만으로 보냈으니까요. 부정이라는 단어가 마음속에서 암울한 불행을 키우던 시절, 글을 통해 속에 있는 얘기들을 긁적이면 위로가 되었던 사실을 기억해내고 전남대학교 평생교육원 문예창작반에서 수학하며 세상을 보는 눈도 점차 따듯해지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지난날 고달픔은 현재의 사소하고 보편적인 것들까지 모두 기쁨이 되고 행복을 만끽하게 하는 과정이었다는 사실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격려해 주시고 글 쓰는 즐거움을 알려주신 신병은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오탈자를 귀신같이 잡아 내 잘못알고 쓰는 표현을 짚어주신 백학근 대표님, 그리고 칭찬일색으로 글쓰기를 독려해 주신 사홍만 장흥군 수협 조합장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시는 따듯한 시선으로 세상을 향한 소통이어야 하며 어둠마저 밝음으로 승화되어야 글도 인성도 긍정성이 커진다고 알려주신 안병선 시인님을 비롯한 함께 수학하는 전남대학교 문예창작반 여러 문우님과도 이 영광을 나누고 싶습니다.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도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앞으로는 세상을 보다 밝게 담아내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많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끝으로 등단의 기회를 주신 리토피아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앞으로 누가 되지 않도록 가일층 노력할 것을 약속드립니다.감사합니다./명호경




심사평

모티브가 시적 형상화에 미치는 영향 정도를 잘 보여준 수작들


시적 계기라 하면, 무언가 심오하거나 대단히 복합적인 사건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 혹은 그 반대의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떤 역사적 사건에 대한 거시적 명제를 담아내는데 성공한 작품이라 할지라도 시적 계기는 지극히 사소해 보이는 일상적, 개인적 체험에서 출발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뒤집어 말하면, 사건 자체에 기대는 작품들은 시적 형상화에서 거의 실패할 확률이 그만큼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명호경의 작품들은 하나 같이 우리 주변에 흔히 있을 법한 사소한 사건들을 계기나 소재로 삼아 형상화 하고 있다.  그만큼 친숙하고, 정겹기까지 하다. 그러나 섣불리 진부하다고 비난할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있을 법’하기만 할 뿐,  실제로는 독특한 개인적 체험에서 출발했기에 유일한 사건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꽃들의 사건에서처럼 지기 싫어하는 동서지간의 낮은 강도의 ‘말싸움’은 흔하지만, ‘봄의 전령’ 이 매화냐 목련이냐 하는 구체적 정황은 결코 흔하지 않다. 게다가 ‘시어머니’에게 그 결론을 맡기는 경우도 일상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작품들은 하나 같이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미세한 사건들을 소재로 전개된다. 유자밭의 잡초 베기나, 앞마당에서 벌어진 ‘나비’들의 다툼과 화해(?)도 그렇다. 그래서 작품을 읽고 있으면 부지불식간에 엷은 미소를 짓게 된다. 하지만 명호경의 진정한 힘은 그가 발견하고 기록해두었던 계기들을 형상화해서 종국에는 오늘의 시적 명제로 만드는 그의 잘 다듬어진 인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얀바구 같은 놈」에서 명징하게 드러나는데, 어린 날 ‘융통성 없는 놈’의 대명사였던 ‘얀바구’가 오늘에는 ‘찬사’로 들린다는 데서 자연스런 공감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이는 시적 계기와 형상화와 명제적  진술이 체계적으로 확립된 시인의 능력을 대변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장종권, 백인덕(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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