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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선(시/2020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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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상(시)
김동선
여운 외 4편
그네를 타던 아이가 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그네를 버리고 달려가다가 멈칫하더니
아쉬운 듯 뒤돌아와 힘껏 그네를 밀어 올리고
아파트 입구를 향해 사라지는데
그네는 저 혼자 한참 더 흔들리고
옥상 끄트머리에 걸터앉아
흰 줄을 긋고 사라진 비행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새가
부르르 깃털을 흔들 때마다 노을은 더 붉어지고
절 마당 연등도 덩달아 붉은 물이 들고
아버지 임종 전날 잡은 손에 남아있던
온기를 아직 기억하는데
조금 더 힘주어 잡았으면 주름을 타고 흐르던
마지막 말들을 탁본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동안 고마웠다
잘 있거라 나 먼저 가마
창밖 어두운 하늘도 아쉬운 듯
붉어진 담쟁이 멱살을 잡고
오래오래 흔들고 있었는데
구부러진 날들
언제부터 엄지손가락이 구부러졌는지
바로 세울 때마다 탕탕 통증이 밀려온다
늦가을 구멍 파고 양파를 심는데
구부러진 모종은 똑바로 서지 못한다
의기소침 구부러진 것들을 위해
엄지손가락을 함께 묻고 토닥거린다
새봄이 되면 춥고 아픈 기억을 털어내고
튼실한 손가락이 돋았으면 좋겠다
의사는 방아쇠 수지라는 처방을 내렸고
똑바로 서지 못한 것이 부끄러울 때마다
나는 주먹을 움켜쥐고 살았다
엄지 척 ‘최고야’를 외치던 시절이 그리울 때는
손가락을 잘라버린 친구와 술을 마셨다
비 오는 밤이 깊으면 뼛속까지 시리다고
뒷동산 늙은 나무도 구부정하게 돌아앉는데
가슴 짝 펴고 바람을 안아주던
시절을 그리워할 뿐
벌떡 일어서지 못하는 노구가 부끄러웠다
밑에서부터 밀어 올리는 신경 줄이 막혀
한 번 구부러진 산길은 펴지지 않고
늙은 산은 푸른 빗물에 몸을 담그고
새순이 돋아날 때를 기다리는지 미동도 하지 않는다
나도 차라리 굽은 손가락을
잘라버리고 싶은 날들이 있다
한 방
지금은 아닐지라도
누구나 한 방은 있다
담장 너머 손바닥 선인장은
늘, 구름 엉덩이를 찌를 수 있는
가시가 있다
벌레를 삼킨 모과는
툭, 골목길을 걷어차고 사라지고
살찐 새의 식탐이 중심을 흔들어도
전깃줄 위에서 아슬아슬
균형을 잡은 잠자리
살금살금 다가온 손가락쯤은
빙글빙글 한 방에 뒤집을 수 있는 눈이 있다
말벌은 무수히 날개를 털어
노란 화점을 정조준하고
안성천 늦가을 갈대는
구름을 향해 일제히 목을 꺾어
무심한 척 바람의 어깨를 벤다
빗물로 쓴 일기
새벽부터 비가 내려
게이트볼장 지붕을 미끄러진 비가
배수관 속 어둠을 밀어내는 소리
여기는 오래전부터 내 자리였어
맨드라미 붉은 목젖을 젖히고
당당하게 허파 속을 파고든 비가
흄관을 역류해 맹지를 덮친 비가
옥천 둑을 무너뜨리고 키득거리지
양계장 노란 병아리 깃털을 적시고
파출소장과 방범 대장을 소환한 비는
순찰차 바퀴 어깨를 움켜잡고
안전화 발목을 꺾어 흔들며 노래 부르지
가뭄의 뒤통수를 후려치고
잿빛 구름 아래 숨어 들깨 순을 지르고
노루 털보다 가느다란 비가
칼국수처럼 퉁퉁 불은 비가 내리지
폭염을 견딘 논둑도 여지없이 무너트리고
허기진 오후를 구석구석 채우지
알량한 자존심도 버린 면사무소
마당을 점령한 비를 돌려세운 불안한 오후
후두두 후두두
갑자기 뒤돌아 또다시 흐느끼는 비
울다가 지쳐 제 몸을 할퀴고
몸부림치다가 스르르 무너져
비로소 순해진 비가 내렸지
그늘
어머니는 아침부터 그늘 타령이다
하루가 다르게 크는 자작나무
그늘 들면 되는 곡식이 없다고
잡초를 뽑는 내내 그늘 탓은
무너진 담장 사이로
스며들어올지 모르는 흉측한 소문을
밀어내는 주문 같은 것이다
남자 그늘이 있어야 든든하다며 어머니는
온종일 그늘을 들어내다가
아예 나무를 베어 버렸지만
중풍에 쓰러져 돌아가신 아버지는
꿈에도 보이지 않았다
│심사평│
일상 소재를 시로 변용하는 숨은 솜씨의 매력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현재 한국 시단은 가시적으로 확인되는 외형적 팽창만큼(대립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뚜렷하게 구별되는 몇 가지 양상으로 갈라져 있다. 그중 하나는 사유와 언어의 관계를 중심으로 존재의 양상을 탐구하는 것인데, 과거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 근거가 철학이기보다는 문화적 현상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작품들은 대체로 관념적이거나 사변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아직도 난해하다는 독자들의 불평에 직접 노출되기도 한다. 다른 하나는 시의 기능과 효용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면서 민족, 문화, 사회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발전을 이끄는 것을 목표로 하는 양상이다. 이들 작품은 출발의 근거가 확실하고 비교적 목적이 뚜렷하기 때문에 시대적 소명과는 부합하지만 문학 외적인 영향으로부터 생각만큼 자유롭지 못하다는 한계도 분명히 드러난다. 마지막으로는 현대의 제 양상을 개인에게 부과된 짐이거나 기회로 여기고 ‘생생한 현실’이라는 의미에서 일상을 소재로 하여 자신만의 감각적, 의미적 세계를 확장, 개선하고자 하는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소개하게 된 김동선 시인의 경우 마땅히 마지막(그러나 시단에서 가장 광범위한) 유형에 속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비교적 완숙한 나이에 그동안의 습작을 가다듬어 선보이는 것이므로 치기와 패기 같은, 혹은 세계와의 대결이나 운명과의 사투 같은 근사한 수식어를 덧붙일 수는 없을 것이다. 시는 언어로 장식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통해 발현發顯되는 것이기에 작품 자체가 자기의 수사나 기교를 단숨에 뒤집어엎을 수도 있다. 「한 방」이나 「구부러진 날들」 같은 작품은 마치 시인의 현 처지를 드러내는 것 같지만, ‘선인장’, ‘잠자리’, ‘갈대’ 등이 동원되고, 잘 굽지 않는 손가락을 통해 그 손이 거느려왔던 일종의 상징들을 다 게워내듯 살펴보는 것 등은 시인의 습작이 단순한 수법의 연마에 그치지 않았음을 여실히 반증한다. 또한 「여운」과 「그늘」 같은 작품은 ‘아버지’, ‘어머니’란 가장 절실하고 시적인 대상을 향하면서도 ‘그네’와 ‘그늘’이라는 비교적 대상을 통해 우회함으로써 지나친 감정이입을 스스로 통제했다는 점도 높이 사야 할 것이다.
김동선 시인은 비록 자신의 생활과 관련한 어찌 보면 작은 범주를 지녔지만 이를 찬찬히 자세히 나름의 질서에 따라 보는 법을 익히 알고 있는 듯하다. 이 탐색의 정신은 감각적 욕망에 휩싸인 세계 일주보다 더 치열하게 생을 재구성할 수도 있다. 빠짐없이 보려는 노력과 함께 다시 보려는 노력을 더한다면 분명히 개성적 시인으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심사위원 백인덕, 남태식, 장종권(글)
│수상소감│
詩가 꿈과 희망이었던 시절은 화석이 되었다.
불화와 불안의 단초였다.
껍데기만 더듬거린 시간 낭비였다고 자책하던 詩.
한때 내 지루한 생의 입구이자 출구였던 너 앞에 다시 선다.
너로 인해 위로받고, 풍요롭고,
밤이면 숙면에 들 수 있기를 소망한다.
공무원이라는 긴 마라톤 코스를 돌아 결승선이 눈앞에 보인다.
잘 살았다는 안도감에 털썩 주저앉고 싶을 때,
이제 겨우 반환점이라고 알려준 윤병주 시인께 고맙다.
나에게 시와 시집은 늘 짝사랑이었고 막연한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그때 훅, 나를 흔들어 놓은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라는 이명.
지친 몸과 마음을 흔든 피리 소리에 홀린 듯 금단의 선을 넘는다.
아마 지금보다 더 즐겁고 행복할지 모른다고
리토피아 한 자락을 흔쾌히 내어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린다./김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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