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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오영/시(2020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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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 깎는 밤
깎으면 어느새 또 그만큼 자랐다
앞마당 풀이, 내 열 손가락의 손톱이 그랬다
일찍 와,
새벽녘의 배웅까지 안주 삼았는지
늦도록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소파의 온기가 식어가는 동안
끼이익,
마감 뉴스에선 여러 건 교통사고가 났다
급브레이크 소리가 모니터를 깨트리고
거실 바닥에 핏방울을 튕겼다
바짝 깎으면 깎을수록 손가락은 더 아팠다
맞은편 식탁 의자를 치워버려도
눌러앉은 그는 치워지지 않았다
잘리면 또 밀어 올리는 손톱처럼 자꾸
눈앞에 어른거렸다
한밤중 꿈 깨어
종일 자란 기억을 바짝 깎는다
차 조심해!
아이에겐 물리도록 하는 말
왜 아꼈을까,
밤중에 깎으면 복 달아난다는 손톱, 습관처럼
너무 짧게 깎는지
열 손가락 끝에 피가 맺힌다
누군가 내 안에
있어도 있는 게 아니라는 말
언덕의 이유는 내리막에 있는 것처럼
눈꺼풀이 열렸다 닫히는 사이
아무 일 없는 듯
속도에 치인 고양이처럼 누워
코스모스 붉은 꽃잎 헤아린다
아홉 시 뉴스는
절벽으로 사라진 여성성에 대한
소식을 전하고
피기 싫은 죽음이 너무 많다며
철없는 꽃들을 탓하던 나는 궁구한다
차가운 수술대에 누워, 있어도
없는 것처럼 사라진
세월의 자궁에 대해
찰거머리
못줄잡이 외장치는 소리, 굽은 등이 굽실거릴 때마다 남실남실 채워지는 무논, 한 발 두 발 물러서는 욕심 많은 어머니 한 배미 가득 뒷걸음질
논두렁에 나는 누런 씀바귀꽃처럼 피어, 어머니 종아리에 들러붙은 시퍼런 허기에 몸서리치네 사금파리로 땅바닥을 파던 손가락에 붉은 피
날품을 파는 아니 아니 찰거머리에게 피를 파는, 이제 그만 팔아도 사나흘은 어지럽지 않을 텐데, 저 저 피비린내
자꾸만 못줄에 밀려나는, 목이 쉬어 불러도 대답 없는 귀먹은 어머니, 저 찰거머리, 저 멍에, 울먹울먹 나는 자꾸만 뒷걸음질 치네
엄마! 엄마 왜 그래! 외장 치며 딸아이가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겨우 떼어낸, 꿈이었네
패
구부정하게 오는 저녁
흔들리는 삼십 촉 백열등 벗 삼아
어제처럼 패를 뗀다
야, 요거 봐라
임도 보고 꽃도 보네
오늘은 잠속이 좋을랑갑다
화투장 속 임을 안고
저승에서 온 어머니인 양 반긴다
구순의 허리가 빳빳해진다
유월 목단이
덩달아 환하게 핀다
팔광도 꿈결 흑싸리 같은 것이라며
그믐달은 서산을 넘는데
끝내 흩트려버릴 수 없는 아버지의 패
호시절 다 보낸 풀기 없는 손에 쥔
풍 맞은 시월 단풍이 진다
유전
저승꽃이 손등에 돋는 아침,
냄비 속 계란 부딪는 소리는 구구거렸습니다
아니, 벌써 가야 할 시간이냐?
새마을호처럼 내달린 시간이 야속하기만 했지요
마지못해 채비하는 나를
당신은 애써 외면했지요
정류장 가는 길목 구멍가게
그날도 사이다 한 병을 사셨던가요?
용산행 비둘기호처럼 느렸던 시절
집 떠날 때나 먹을 수 있었던
삶은 계란 손에 쥐고, 어머니
장승처럼 서 있는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뒤로도 얼마나 더 내 뒤에 서 계셨는지
기일 아침에 헤아려 봅니다
내 손등에 핀 꽃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삶은 계란을 먹는 아들에게
물 한 컵을 따릅니다
심사평
일상의 이면裏面을 탐색하는 날카로운 시각
최근 새로 등장하는 시인들의 일반적인 추세는 시를 장형화, 산문화하는 것이다. 현대시의 최대 강점 중 하나인 알레고리를 풀어 일종의 스토리텔링을 시도한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이런 추세의 작품들은 시에 대한 기본적 정의, 또는 신뢰를 종종 무너뜨리곤 한다. 시는 언어의 경제성이 가장 우선하는 글쓰기 양식이라는 점이다. 짧다고 다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반대로 길다고 다 무겁거나 의미 있거나 형상화에 성공했다는 보장도 없다. 오히려 언어의 경제성, 압축과 생략을 간과하면서 작품을 말 그대로 맹탕을 만들어버리는 경우가 더 많아지고 있다.
이번에 심사에 오른 전오영 시인은 대상이 된 다섯 편의 작품이 하나같이 탄탄한 시행과 연으로 구분, 구성되었다. 이 말은 풀어보자면, 언어를 매우 경제적으로 사용했다는 것이고 이는 곧바로 시인이 압축과 생략, 이를 통한 리듬의 생성까지 다 가능한 수준에 도달했음을 반증한다. 나아가 이런 형식적 요소가 개별 작품들의 주제와 긴밀히 결합하여 생생한 시적 의미를 밀도 있게 구조한다는 점도 돋보였다.
전오영 시인은 일상에서 예사롭게 경험하게 되는 사건을 시인의 몸의 체험으로 치환하면서 습관적 인식이나 ‘아비투스’를 넘어서는 개별, 개성적 인식을 획득하고자 시도한다. 가령, 「누군가 내 안에」에서는 “차가운 수술대에 누워, 있어도/없는 것처럼 사라진/세월의 자궁에 대해” 궁구하는 의식과 의식의 겉에서만 흐르는 사건들의 부조화 내지는 긴장을 “있어도/없는”의 행 갈이로 나란하지만 다른 음조로 빚어낸다. 또한 「손톱 깎는 밤」에서는 남편의 늦은 귀가라는 일상 사건을 소재로 해서 “한밤중 꿈 깨어/종일 자란 기억을 바짝 깎는다/차 조심해!/아이에겐 물리도록 하는 말/왜 아꼈을까,/밤중에 깎으면 복 달아난다는 손톱, 습관처럼/ 너무 짧게 깎는지/열 손가락 끝에 피가 맺힌다”는 색다른 체험으로 전환하고 있다. 뒤숭숭한 꿈의 내용이 종일 자란 기억, 손톱처럼 무심히 버려두었던 것(대상)에 대한 인식, 그리고 모든 것 혹은 모두에게 그렇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 사실을 시인 자신의 몸의 기억, ‘열손가락 끝에 맺힌 피’로 시상을 자연스럽게 이어가면서 그때마다 전치하는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다. 즉, 순간적인 일상의 확인이나 깨달음이 아니라 그런 사실들을 몸에 각인하려는 의도에서 개별 작품들이 탄생하고 있다고 보인다. 좀 다른 계열로 ‘어머니’와 관련한 여타의 작품들 「찰거머리」와 「유전」 등은 직접 지시로 ‘몸의 기억’을 형상화한다. “자꾸만 못줄에 밀려나는, 목이 쉬어 불러도 대답 없는 귀먹은 어머니, 저 찰거머리, 저 멍에, 울먹울먹 나는 자꾸만 뒷걸음질 치”(「찰거머리」)는 내용은 비록 꿈이지만, ‘찰거머리’의 강한 상징성을 통해 그것이 몸에 각인된 깊은 연민의 고리임을 그대로 드러낸다. ‘어머니-나-딸’로 이어지는 계보도 그 상징을 더 강화하고 있다.
전오영 시인은 시에 대한 기본 이해에 충실하고, 시상의 전개에 무리가 없으며 시적 지향의 탐색 시도 또한 치열한 것으로 보인다. 일상에서 소재를 발견하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또한 큰 함정이 도사리고 있음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시인으로서 더 넓고 예리한 시각을 계발한다면 이는 극복할 수 있는 문제고 시작 활동 내내 부단히 수행해야 하는 작업일지도 모른다. 활발하게 활동해서 빠르게 자신의 시 세계를 구축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장종권 백인덕 안성덕
당선소감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세계는 어떤 곳일까
산다는 것은 과연 무얼까. 자문할 때가 많았다. 내 생각이 사는 것인지, 내가 인식한 세계가 사는 것인지, 그리고 내가 인식하지 못한 세계는 또 어떤 곳인지. 주변은 죽음을 앞둔 병동처럼 스산했다. 그럴 때면 무엇인가 써야만 했다. 아름다움은 유치했다. 늘, 그 배면이 궁금했다. 삶을 있게 하는 죽음의 이중성이 부러웠다. 그래서일까, 내 시편들은 죽음 너머이거나 가까운 것들을 통해 먼 곳을 이야기한다. 내일도 그럴 것만 같다. 오늘을 감사해야 할 이유다. 이면의 궁극으로 이끈 배귀선 교수님과 문우들 그리고 나를 기억해주시는 분들과 심사로 닿은 인연을 가슴에 새긴다./전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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