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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수경/시(2021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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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탄
댓글 0건 조회 104회 작성일 21-03-10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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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두다


빨래줄에 색 달아난 바짝 마른 무청이
너덜너덜 집게에 묶여 있는 심보다
사방을 둘러봐도 운동장 한가운데
그림자 같은 시간에 갇혀 있다가
허공에 휘청휘청 헛손질만 하는 내게
만원의 사랑이 왔다
천대전송, 라울, 취설송, 방울복랑, 펜덴스다
젖살이 미쳐 못 빠져나간 통통한 볼은
발그레 봄이 올라앉았다
봉인된 마음속 이야기를 떠듬떠듬 건네 본다
마주보고 앉아 첫눈을 맞추며
안부를 묻는 첫시간을 가졌다
모든 것으로 갇혀 있어
사막여우의 마른 울부짖음 같은
마음을 다독여 주는 저들에게
가만히 어깰 기대어 본다



여수는 꽃돔이 산다


심해는 소리 없는 전쟁터다
단단하지 않으면 살 수 없고
드세지 않으면 버틸 수 없다
웃음 헤프면 이놈저놈 달겨들까 봐
뾰로통한 입,
철갑을 두른 비늘,
바다를 가를 기세로
칼날 같은 지느러미를 세운다

작은 몸집에서 나오는 다부짐
어찌나 악착같이 바닷길을 내고 살았는지
살결이 비단이다
작아도 버릴 것이 없는 알짜배기
꽃돔의 초롱한 눈망울과 봉긋한 입술을 닮은
그 앙큼한 여인의 부엌
숨겨둔 샛서방을 생각하며
석쇠가 벌겋게 달아오른다

흠,
냄새가 난다



마스크 안에 갇힌 공원


쏟아져 내린 가을을 한 움큼 움켜쥐었다

놓아야 취할 수 있다는 말
빈 손 빈 마음일 때 공기처럼 가벼워진다는 말
한 번 버리면 버릴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는 말
그러니까 그렇다는 말
그냥 말이라는 말

버둥대는 낙엽을 놓아 주었다
욕망도 미움도 자괴감도
바람 따라 떠도는 나뭇잎 등에 업혀 보낸다

살짝 열린 가방 속에 낙엽 한 장이
도둑처럼 들어와 앉아 있다
당당한 몸짓에 마음이 녹아내리는,
가을볕이 따스한 오후 한나절이다



어떤 통섭 이야기


개,
꼬리 흔들고
맑은 소리 컹컹 짖으면 반갑다는 인사
똑바로 눈 마주치면
누런 이빨 드러내고 맞장 뜨자고
잇몸이 코끝으로 상승 그 녀석 혈압은 고혈압

고양이,
꼬리 흔들면 맞짱 뜨자는 것
동그란 눈 터질 듯 쳐다보면
친근감 표시 그 녀석 혈압은 저혈압

목줄 풀린 개와
대책 없이 마주친 상황에서
눈 깔아야 하는데
똑바로 쳐다보다가
개는 고혈압 나는 저혈압

이해하지 못해 알지 못해
나만 고집하고 있는 삶

눈맞춤 눈 높이
개소리 고양이 소리에도
딱 맞는 몸짓으로 서고 싶다



그림 내 마음대로 읽기


돋보기 너머로 미술관에 걸린 그림 앞에 선다
저절로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팔짱 낀 머릿속은 온갖 물음표만 너울댄다
보이지 않은 것들에 대한 불신
손에 잡히지 않으면
믿고 싶지 않은 오만과 편협이
원안에서 제자리걸음만 하게 한다
다른 사람의 의도를 읽어 내는 것은
아침을 깨우는 새들의 방언을,
암술과 수술이 버무려진 꽃의 은밀한 거래를,
바람이 귀 볼까지 와 전하는 말을,
들을 줄 아는 맑은 귀를 갖는 일이다
세상 속 온갖 소음을 걸러 내는 일이다  
심장 두근거림이 안에서가 아니라
밖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란 걸
알아 가는 것인가 보다



심사평
시의 본질과 지향에 대한 충실한 인식 돋보여


근래 시가 산문화, 의식화하는 경향을 바라보는 우려의 시각이 있다. 산문화는 시에서 진술이 강화되거나 알레고리가 중심 기법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시가 자꾸 길어지는 것과 산문적 특징인 ‘계기성契機性’에 손쉽게 의지하는 경향을 말한다. 시는 최소의 어휘를 사용해 최대의 효과를 빚어내고자 하는 특징적 글쓰기다. 즉 가능한 모든 어휘를 동원해 의미를 형성하고자 한다면 굳이 시라는 장르를 고집할 이유가 없다. 더불어 ‘의식화’의 문제점은 정신분석의 ‘무의식’이나 기호학의 ‘언어의 작용’을 의식적으로 시적 의미의 형성 이외의 목적으로 차용借用하는 데서 생긴다.
서수경 시인은 앞에 언급한 두 가지 문제점에서 가장 정석적인 해결 방안을 보여준다. 사실, 가장 시적인 자세와 지향을 지녔다고 보인다. 시인은 최대한의 생략과 비유을 통해 시적 의미를 생성하고자 한다. 가령, 「여수에는 꽃돔이 산다」에서는 ‘꽃돔과 그 앙큼한 여인’의 비교를 통해, 「어떤 통섭 이야기」에서는 ‘개와 고양이’가 ‘꼬리’를 흔드는 이유가 다름을 비교를 통해 드러낸다. 적절한 어휘의 선택과 압축은 시작詩作의 출발점일 뿐이기에 시적 개성이 드러나는 부분이라고 하기에는 비약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시인은 심사 대상인 겨우 몇 편의 작품을 통해서도 그것이 곧 자신만의 특징, 시적 개성으로 형성될 것이라는 점을 충분히 보여준다. 시인은 「마음을 두다」와 「그림 내 마음대로 읽기」 등을 통해서 ‘마음’의 변화를 ‘통섭’의 가치 아래서 탐색하는 자세를 보여준다. 이 작업의 가치가 신인으로서 시인의 개성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장종권 남태식 백인덕(글)


당선소감
나 자신을 가르치는 마음으로 시를 쓰자


눈이 녹기 전 눈 속에서 꽃을 피워낸 노란 복수초가 주변의 눈을 열기로 녹여 내듯이 부질없는 욕심을 내려놓고 있을 즈음, 기쁜 소식이 들려와 얼어붙은 마음이 녹아내립니다. 시인이라는 명찰보다도 명분 있는 마음으로 시를 쓸 수 있겠다 싶습니다. 전남대학교 여수평생교육원 문예창작반에서 “시 줍는 법과 시 먹는 법” 시 창작 강의를 들으며 눈과 마음으로 잘 들여다보는 법과 통찰과 통섭의 안목을 배웠습니다. 나의 잠자는 오감과 육감까지 일깨워주는 명쾌한 강의시간이 생각납니다. 조금은 늦은 나이지만 사회복지과를 졸업 후 소외계층의 어르신들을 돌아보는 일을 하면서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두서없는 소리인 것 같아도 귀 기우려 들어보면 그분들의 삶이 함축된 시의 한 구절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먼저 나 자신을 가르치는 마음으로 시를 쓰자! 누구나 읽고 공감이 되는 인생을 이야기하는 어르신들의 이야기, 우리 사는 이야기, 읽다 보면 마음이 뜨거워져 데일 것 같은 따뜻한 시를 쓰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제게 시를 쓰는 일은 꿈을 이루는 과정이면서 늦은 나이에도 할 수 있는 소중한 도전입니다.  숨이 턱 막힐 것 같은 어려운 시기에 그것도 새해 들어 파랑새가 전해 준 가슴 벅찬 기쁜 소식에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특히 리토피아로 등단할 수 있음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성실한 자세와 따뜻한 마음으로 시를 쓰는 시인이 되겠습니다. 부족한 저의 시를 다독여 주신 심사위원님께 머리 숙여 감사 말씀 올립니다.감사합니다./서수경

[이 게시물은 리토피아님에 의해 2024-04-25 16:32:35 신인상수상자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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