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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하/시(2021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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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리토피아
댓글 0건 조회 86회 작성일 21-09-29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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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든 꽃에 물을 주다 외 4

신은하

 

 

산세베리아 꽃이 피었습니다

아니, 저 홀로 피었다가 시들고 있습니다

어머나, 미안해라

세탁기 옆 귀퉁이 절로 무심해

먼 이국의 아파트 베란다에 갇힌 산세베리아

누굴 기다려 꽃 피워 올렸나

이쁘다고, 고생했다고 웃어주었다면 덜 외로웠겠지

, 난 왜 맨날 까먹고 놓치고 실수연발일까

도대체 잘하는 게 뭐야

갑자기 자책이 위험수위에 올라 브레이크를 겁니다

즐거운 삶은 자신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화분에 사는 아이더러 고생도 시키고

아예 보내버린 적도 있지만

다 제 복대로 살다 가는 것, 인연도 거기까지인가 봅니다

그래도 산세베리아에게 미안합니다

저 아이 시들어 가는 모습에서

머잖아 내 저문 날들 언뜻 스쳐가는데

은은한 향이 코끝을 간질입니다

뒤늦게 시든 꽃에 물을 주고

추울까봐 거실로 옮겨 주었습니다

 

 

 

 

 

이름을 불러주세요

 

 

생강나무꽃

산수유꽃 헷갈리신다고요?

그대와 내가 닮은 듯 다른 것처럼 저들도 그렇지요

꽃이라고만 불러도 즐겁지만

이름 한 번 불러주세요

계절마다 다른 얼굴 눈 한 번씩 맞추실까요?

저만치서도 한눈에 반가운 그대와 나처럼

정분나도 좋아요

그대의 이름을 불러서 나의 마음을 부릅니다

이 꽃 저 꽃 뭉뚱거려 제비꽃도 좋지만

남산제비꽃 흰뫼제비꽃 살뜰히 부르면

우리 서로 맑아지는 꽃이니

잘못 불러도 괜찮아요

아무개야하고 부르면

갑자기 뒤에서 하고 대답하겠죠

만나면 이름 불러줄 그대 때문에 설레는 오늘

날씨가 참 좋습니다

 

 

 

 

탁발

 

 

누린내 나는 누리장나무가

장마 틈틈이 햇살 부스러기 모아 일제히 꽃 피웠다

폭죽처럼 터지는 연분홍 꽃나무에 끌려

멈칫거리던 발걸음

냄새 맡고 찾아온 벌 나비 팔랑거림에

제대로 붙잡혀 들여다보고 들여다본다

삼시세끼 착실히 챙겨도 늘 배고픈 중생은

꽃들의 몸짓이며 날개 달린 것들의 연애질조차

왜 그리 그리웠던지

한 번 보고 오면 며칠은 견딜만하였다

허기져서 다시 찾을 때마다

제비나비 작은 멋쟁이나비 등에 꿀벌들도

바랑 가득 채우고 떠나는 길

꽃들도 합장하고 배웅하더라

내 아무리 금강경 한 구절 외워 읊어 준들

날것들의 공치사에 밀리는데

솔직히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까지만 귀동냥했으니

그저 오래오래 이쁘게 살다가 성불하시라고

사랑 가득한 눈길만 몇 됫박 퍼주고 왔다

 

 

 

 

 

단오풍정의 동자승처럼

 

 

작은 개울만 보면 잠복하지만 어제는 허탕 치고

오늘도 그 자리 서성이는 그녀의 친구는 달용이*어요

여자는 달용이의 고성능 눈과 재주를 빌려

남의 목욕 장면을 엿보는 습관이 있어요

못된 버릇이 생겼다고 스스로 말하지만

좋아라 웃으며 반성의 기미조차 없네요

혼자 보기 아까워 동영상이며 사진을 공유하면

소란한 목욕탕만큼이나 시끌벅적한 이야기방에서

1번 고양이 세수는 양반이고 너무 대충 씻는다

2번 하도 촐랑대서 물만 뿌리고 얼굴도 못 봤다

3번 에미가 조기교육을 잘해서 칼칼이 잘 씻는다

4번 발만 적시고 가는 놈도 있고 목욕할 때 성격 보인다

5번 볼수록 귀여워 눈을 뗄 수가 없다

박새랑 곤줄박이랑 붉은머리오목눈이

솜털 보송한 아기새들까지

번갈아 들며 몸 씻는 작은 웅덩이

물 튀기며 날아갈 때까지 넋 놓고 보다 흠뼉 젖었죠

새들도 제 둥지로 돌아간 밤인데요

윤슬인 듯 별빛인 듯 마음 반짝거리는 꿈길에서

내 작은 날개로 찰방찰방 물장구치며 놀았답니다

 

* 달용이-그녀가 달랑달랑 애용하는 카메라의 애칭.

 

 

 

 

 

무슬목에서

 

 

해안선 따라 도래솔처럼 늘어선 송림이 바다를 지킵니다

송림을 지나면

얼굴만 하고 두루뭉술한 돌덩이들이 웬만한 파도에도 의젓하고

물가에는 공깃돌이랑 조갑지가 파도랑 놀며 짜그락댑니다

봄이면 갯메꽃, 갯완두꽃 포복하며 돌 틈 헤집고

가을이면 순비기나무꽃 물빛으로 피어나는 그곳에 가면

낭자머리에 은비녀 꽂은 자그마한 노파가

국그릇처럼 넓적한 몽돌을 고릅니다

어머니

시어머님은 물김치를 즐겨 담그셨지요

마늘, 생강, 풋고추 돌확에 득득 갈아 새로 담근 김치, 익은 김치

누름돌 하나씩 들어간 항아리마다

뽀글뽀글 거품을 내며 맛 깊어가던 동치미, 돌산갓물김치

어느 날 일곱살배기가 눈 동그래 묻기를

할머니는 왜 김치에 돌멩이를 넣어요?”

아아~그건 김치맛이 도망갈까봐 돌로 눌러 놓는 거야

고개를 젖히며 깔깔거리는 아이를 보며 셋이 함께 웃던 그 날은

아스라히 멀어지는데

넓적하고 반질거리는 몽돌을 보면 늘 어머니 생각 납니다

마흔을 바라보는 젊은 아낙 홀로 오십 평생

자꾸만 흩어졌을 마음을 붙잡던 누름돌은

사남매를 향한 모정이었겠지요

왠지 뒤숭숭하고 부잡한 며느리는 당신의 멍에라도 물려받은 척

엄살 떨며 누름돌도 몇 개 키우는데

엄마, , 꽃이라 이름 지었답니다

 

 

 

 

 

심사평

재현의 묘미妙味를 찾아가는 열정의 산물들

 

 

시의 근간根幹 혹은 개성의 시발점始發點엔 무엇보다도 열정이 도사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여기서 열정은 자기로부터 분출하는 생기生氣를 충분히 끌어올리는 것과 그 기운이 외부 환경(세계)과 접촉하자마자 뿔뿔이 흩어져버리는 사태를 제어하는 힘 이란 의미를 동시에 함축한다. , 열정은 힘이자 기술인 셈이다.

신은하 시인은 근래 보기 드물게 시작詩作과 그 이상으로 초과하는 열정을 그대로 갈무리해서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을 드러낸다. 이는 시인의 평소 태도, 사실 생활 태도나 습관을 불필요하거나 언급될 가치가 없다. 다만 태도는 사물과의 관계만을 함의한다. 시인은 단오풍정의 동자승처럼에서 작은 개울만 보면 잠복하지만 어제는 허탕 치고/오늘도 그 자리 서성이는 그녀의 친구는 달용이어요/여자는 달용이의 고성능 눈과 재주를 빌려/남의 목욕 장면을 엿보는 습관이 있어요라는 진술을 통해 달용이라 명명命名된 카메라를 소개하고 있다. ‘눈과 재주를 빌린다는 표현도 나오지만, 시인은 그것의 사양과 모델명, 가격 등을 전시하는 대신 그냥 이름짓기를 통해 현실의 재현 수단이 아닌 재현의 동료로서 사물을 초대한다. 이는 이름을 불러주세요에 집약된 형태로 드러나는데 그대와 내가 닮은 듯 다른 것처럼 저들도 그렇지요/꽃이라고만 불러도 즐겁지만/이름 한 번 불러달라는 주문은 사물을 피사체, 그러니까 재현의 부분적 장식품처럼 생각하지 않겠다는 시인 특유의 방법을 드러낸다.

시인은 무슬목에서를 통해 세대를 이어 전해지는 살핌과 돌봄의 가치를 형상화하면서 동시에 넓적하고 반질거리는 몽돌을 보면 늘 어머니 생각납니다/마흔을 바라보는 젊은 아낙 홀로 오십 평생/자꾸만 흩어졌을 마음을 붙잡던 누름돌은/사남매를 향한 모정이었겠지요/왠지 뒤숭숭하고 부잡한 며느리는 당신의 멍에라도 물려받은 척/엄살떨며 누름돌도 몇 개 키우는데/엄마, , 꽃이라 이름지은 자신의 의지를 피력한다. ‘신의 멍에는 지상의 인간에게 정말 무거운 표현이지만 시인은 엄마, , 이라는 자신만의 누름돌을 사용해 그 멍에를 시적 환희로 바꾸고자 한다. 그 도정에 힘찬 박수를 보낼 것이다./장종권 남태식 백인덕

 

 

 

수상소감

혼자만의 비밀이었던 습작노트

 

 

소녀 때부터 시가 곁에 있었습니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소녀의 외로움을 덜어주던 친구는 아무도 모르는 혼자만의 비밀이었는데요, 습작노트가 두꺼워질 수록 읽어줄 누군가 그리웠지요.

 

되지도 않은 시에 이름을 걸고 세상에 내놓는 일은 청개구리가 보호색을 버리는 것만큼 위험해 보입니다만, 읽고 있던 시 한 편이 제 손 잡아주던 기억이 저를 꿈틀거리게 합니다.

 

주저앉은 자리에서 웃으며 일어서게 하던 그런 힘이 제 시에도 깃들기를 바랍니다. 아직은 미치지 못함이 부끄러워 쭈뼛거리는 저를 손 내밀어 이끌어주신 분들의 큰 뜻을 헤아려 열심히 시심을 가꾸어 가겠습니다.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신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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