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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경/시(2022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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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리토피아
댓글 0건 조회 106회 작성일 22-04-22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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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경(시부문) 

기억을 품다 외 4편

 

간절한 몸짓을 기억한다

짐승 같은 숨소리
내밀한 호흡
숨 막힐 듯 저며드는
효석의 달빛을 읽고 있다

파르스름한 숨소리 곁에
딸랑딸랑 방울소리
늦가을 파고든 나의 근황을 물어온다



달빛 기울어진 길 따라 흐드러진
고요한 숨결
외줄로 길어진
달 혹은 별의 화법으로
한 호흡의 메밀꽃을 기억으로 품는다

맞제 

비 맞은 버스 승강장의 낯익은 실루엣
아직은 봄비가 차겁다
얼마나 기다린 건지
차가운 밤공기와 비와
사람들의 졸음냄새가 훅 다가선다

‘비 오는데 왜 나왔어’
‘맞나 그래도 비 오는데 어찌 집에 있겠노’
‘언제 올지 알고 기다리나’
‘맞제 니도 엄마 되면 안다’

버스 안을 맴돌던 냄새가
찬 공기와 함께 번져온다
우산을 잡은 내 손을 감싸는 두툼한 손
따뜻하다

엄마 맞네





로드킬Road Kill

어딜 가려던 길이었니?
꼭 그 길로 가야 했니?

매캐한 안개를 덮고 누운
너의 남은 온기 위 까마귀 한 마리
조문객으로 남아 너와의 인연을 갈무리한다
오가는 차를 이리저리 피하다
너에게로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바람이 되고 싶었니?
그 길이 되고 싶었니?

.
바람에게 길을 묻다 함께 사라져간
그 길,
오늘은 내가 달린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가 눈에 맺혀온다





강 빛은 고왔다



어스름한 새벽
한 사람
강가에 머물러 눈물 흘렸나보다
알알이 헤일 수 없는 슬픔
삼킨 눈물 쏟았나보다

.
저만치에 또 한 사람
강가에서 눈물 덮었나보다
시려서 슬퍼서
처연한 눈물 감싸 안았나보다

.
그 사람
새벽 강 아린 내게로 와
눈물을 닦아내나보다
.
어스름 새벽
그 강빛
강가에 머물었던 한 사람이 
참으로 고왔나보다





여수旅愁



해질 무렵 여수를 향해 길을 나선다
퇴근길이 분주하다
문득,
돌아갈 길을 찾아 분주했던 스무 살의 내가 보인다
차창을 스쳐 사라지는 노을이 붉다
썰물로 만난 우리는 서로에게 제 몸을 맡길 수 없어
오롯이 홀로 남겨지다
밀물이 들 때쯤 만난 우리는 그리움을 앞세우고서야
비로소 한 호흡으로 마음을 나눌 수 있었다
어느덧 쉰의 나,
열심히 살다 흔적 없이 사라지는,
사라지며 아름다운 여운으로 남을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살랑살랑 봄바람소리로 왔던가
찰랑찰랑 파도소리로 왔던가
밤바다 윤슬로 왔던가
한 쪽을 바라보고 바다에 기댄 골목들이
가만히 어깨를 내어준다
가만히 서로를 닮아가는 여수를 향해 선다





심사평

순수하게 표현된 자아 성찰의 ‘맹아萌芽’를 위해



시가, 정확하게 시 창작이 어떤 ‘염원念願’이 되는 이유는 말 그대로 천차만별, 각양각색일 것이다. 다만 일반적 이해를 위해 갈래지어 보면, 하나는 ‘표현의 욕구’다. 굳이 소통을 지향하거나 어떤 내용(의미)에 대한 천착穿鑿 이전에 자기 자신을 스스로 풀어내고 싶은 바람이다. 다른 하나는 바로 ‘의미의 소통’이다. 자신의 사유 결과와 발견, 혹은 관찰의 의미를 공표함으로써 공유하고자 하는 의도다. 마지막으로는 시작詩作을 자기 성찰의 계기로 삼아, 늘 돌아보고 경계하기 위해서라 할 수 있다.
최미경 시인의 오랜 습작 기간은 ‘표현의 욕구’가 ‘의미의 발산’을 지나 비로소 ‘자아 성찰’의 단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달리 말해, 시인이 구사하는 시어가 의도하고자 하는 의미와 제대로 결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시인이 “달빛 기울어진 길 따라 흐드러진/고요한 숨결/외줄로 길어진/달 혹은 별의 화법으로/한 호흡의 메밀꽃을 기억으로 품는다”(「기억을 품다」) 라고 스스로 밝혔듯이 ‘한 호흡의 메밀꽃’(그것이 꼭 이효석의 것일 필요는 없다)이 “달 혹은 별의 화법”(여기서 화법은 분명히 ‘.法’이거나 ‘話法’이겠지만)으로 드디어 형상화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다시 ‘기억’의 내용으로 만든다. 다른 작품, 「여수旅愁」는 남도의 지명인 ‘여수麗水’를 단순히 음차한 것이 아니라, 시인 자신의 기억과 현재 사이를 조율하면서 ‘봄바람’, ‘파도’, ‘윤슬’처럼 늘 있었던 것이 새로운 의미의 동반자로 바뀌는 모습, 혹은 바람을 보여준다.
굳이 여러 이론이나 대가들의 언급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이제는 미래가 사실은 오래된 과거의 연장선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다. 최미경 시인은 ‘기억’을 시작의 초석, 혹은 회귀해야 할 기원으로 여기고 있다. 거기, 즉 기억 속의 세계에는 여러 근원적 심상心象이 아직 날 것인 채로 남아 있다. 여기에 접근하는 자세로 자아 성찰이라는 겸손한 자세가 엿보인다. 다만 아쉽다면, 너무 곱고 순한 결의 어휘로 풀어내고자 하니 의미가 깊어지는 게 아니라 내용이 단조로워지는 부작용이 있다. 어쩌면 시인의 창고에는 순수한 마음보다 들끓는 어휘들이 더 많이 쌓여있는 게 바람직할지도 모른다./장종권, 남태식





수상소감



아직 이릅니다. 얇은 옷을 입기에도 따뜻한 겨울입니다. 외투를 벗지 마라는 잔소리에도 아랑곳없이 봄의 곁을 기웃거립니다. 쉬폰 원피스를 입어도 된다고, 추워도 봄이라고 체크 코트를 벗어던지는 봄의 몸짓에 남쪽 창을 엽니다.
기다린 봄, 나를 열었습니다. 부산 가덕도에서 그리워했던 하늘과 여수 자산공원에서 품었던 바다가 온전히 내 것이 되어줍니다. 쓸쓸함에 시詩를 쓰고 싶었고, 그리워서 시인詩人이 되고 싶었습니다. 오래오래 그리움으로만 품었던 마음을 꺼내 메고 평생교육원 문예창작반에 들어서는 그 날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강의는 늘 새로웠고, 막연하던 시창작에 많은 위안과 다독임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길이었습니다. 환한 길이었습니다.
길을 읽고 길을 쓰고 길을 그리면서 길에서 사랑하고 길에서 떠나고 길에서 생각하다 길에서 시를 만났습니다. 늦었지만 어떤 날, 어느 시간, 어느 기억, 어느 한 켠에 웅크려 있을 나의 시를 만나기를 바라면서 이제 다시 시작합니다.
계절도 시詩도 나에게는 아직 이릅니다만, 그럼에도 따뜻한 곁을 내어주신 리토피아와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다양한 화분에 다양한 꽃을 피워 믿음에 보답하겠습니다./최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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