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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열/시(2022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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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의 완성 외 4편
풋내기 사과에 핏줄 선 꼭지가 새파랗다
몇 번의 일기예보가 다녀갔다
빛과 그림자의 통로에 뭉친 고요가 풀릴 것이라 했다
하늘 울음을 받아먹고 체질이 싱거워질 거라 했다
파문을 가둔 얼굴에 빛의 각주가 무성하다
아직도 입맛에 맞는 재료들이 서성인다
예민한 볕을 들여 흩어진 당도를 꿰어놓아야 한다
잘 익은 표정 하나 갖기 위해
오늘 주문은 최대한 밝고 싱싱하게
바람에 흘려버리지 않게
흘려버린 것이 있으면 반드시 반환받아 구김살을 펴야 한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소리를 씹는다
휘파람의 날카로운 이빨이 박혀있다
나무 아래 짓무른 것들 널려있지만
고비를 넘긴 저것들 드디어 둥근 표정 완성이다
세 때 잠들다
새벽 5시, 주차장에 서 있는 차들을 새라고 불러야지
액셀을 힘껏 밟으면 하늘 높이 떠오르듯 붕붕 소리를 내는 새
어제를 경유하던 경기 54구 8766 칩을 매달고 있는
가슴을 열면
체납고지서 몇 장쯤 들어 있을 거야
불빛 한 점 없는 둥지
새들은 어둠에 깃을 접고 하나둘씩 늘어서지
밤새 잠을 지키느라 어둠의 눈썹이 하얗게 쌓이지
퍼덕이는 시간에 끌려다니느라 지친 하루의
주소를 클릭하면 그렁그렁
아픔 찍히는 소리가 저장되어 있을 거야
어느 골목 헤매다 왔을까 혹시
안드로메다를 찾다가 저토록 지쳐버렸을까
시끄럽던 세상 껴안고 잠들어 있는 새
모판처럼 반듯한 차선들 속으로 스르르 들어와
옆구리 맞댄 침묵을 받쳐주는 저 다정
낯선 시동 소리로 새벽을 흔들면서 투정 부리듯
꽁지에서 매연을 뿜어대고 빠져나갈 새 떼
텅 빈 둥지를 비워두고
또 어디론가 무작정 내달리겠지
밤을 삽니다
하루의 꼬리가 또 꼬리를 물고 있어요
이곳엔 매듭이 없거든요
시간의 매듭이 필요한 사람들이 밤을 사러 와요
도시가 잠이 들면
무거운 눈꺼풀을 들고 오죠
24시 편의점 안 씨는 밤을 사고팔기 위해 충혈된 잠을 뒤척여요
편의점 문을 열면 자동으로 결제되는 밤
주로 유통기한을 넘긴 사람들이나
미성년자들이 고객이죠
밤을 들고 온 중년의 사내 알맞은 표정을 찾고 있어요
참이슬과 흥정을 마치고 탁자에 삐딱하게 앉아요
질기고 고집 센 세상을 질겅질겅 씹고 있네요
불콰해진 오늘이 마주 앉아 대작해요
불편한 것 하나 없는 편의점에는
불면의 불빛이 들락거리고
라면 같은 꾸불텅한 내일을 가불하지요
삼각김밥과 사발면을 껴안고
지그재그 새벽을 챙겨 들고 문을 나서요
수없이 밤을 사들이지만 편의점엔 밤이 없어요.
지퍼
입술이 얇으면 가벼울 거라는 예상을 뒤엎고
몇 년째 침묵하고 있다
몰려온 수다들이 지나간 것들을 불러오는 동안
못 들은 척 짐짓 딴청이다
장롱 위에 놓인 단단한 가방에서
지퍼에 갇힌 이 년 전 시간이 흘러나온다
경주의 근엄한 표정과 벚꽃들의 웃음
분황사 첨성대 삼화령 손때 묻은 아기 부처의 발가락
기분 좋게 경작한 시간이 석탑처럼 쌓여있다
긴장이 흐른다
긴 세월 헤매던 길을 너무 오래 붙들고 있었나
기억이 풀리고 속도가 붙는다
마지막 정리가 가까울수록 입술 끝이 떨린다
드문드문한 지퍼의 행간에 뻑뻑한 호흡을 밀어 넣는다
벌어진 입속의 외출을 마무리한다
불쑥 방문한 목적지를 알고 있는 무례를
발설하는 중이다
터널의 시간
출구가 사라졌다
어느 날 갑자기 막혀버린 아버지의 동굴
진통제를 여러 번 털어 넣곤 했다
바람의 입질도 생략된 통로
큰소리로 여섯 자식 떠먹이던 밥숟가락이 힘없이 휘어지고
음습한 소문만 무럭무럭 울음을 키웠다
빛이 바닥을 치고 주저앉았을 때야
동굴의 속살까지 검다는 것을 알았다
몇 시인지 알 수 없는
경계를 넘어오는 통증은 예리한 도구였다
안전등을 켜도 앞이 보이지 않았다
다른 출구를 찾기 위해
병상에 묶여 인공으로 길을 만들었다
통로가 무릎을 세우기도 전에
검푸른 시간의
깊은 상처는 온몸으로 번졌다
삶의 계단을 오르던 혈관
어쩌다 마주친 희미한 빛마저 어지러워
맨발로 지탱한 몸 휘청인다
심사평
시의 ‘현장성’을 구체적으로 포착한 감각의 날카로움
세상일이 다 그렇지 않은가? 새로움이 점점 많아지고 전형화되어 일종의 보편성을 획득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사실 진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 현대시는 ‘일상시’, ‘도시시’라는 하위 장르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분기分岐 발전하면서 삶의 다양한 양태를 포획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자연/인위’의 구분을 급격하게 무너뜨린 기술의 발전과 문화적 상황 변화에 따라 도시나 일상에서의 존재 양태를 기술하는 것은 더는 새로운 시도라 할 수 없다.
허정열 시인이 포착하는 대상과 그것들과 관계하는 양상은 다분히 현대적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하기에 전혀 어색함이 없다. 가령, 「표정의 완성」의 오브제인 ‘풋사과’나 「밤을 삽니다」의 배경이자 표현 대상인 ‘편의점’이 전혀 이질적인 존재로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전형화한 일상의 인식을 비켜선 삶의 ‘구체적 양상’, 나아가 ‘현장성’을 생생하게 담보하려는 의지의 산물로 보인다. “새벽 5시, 주차장에 서 있는 차들을 새라고 불러야지/액셀을 힘껏 밟으면 하늘 높이 떠오르듯 붕붕 소리를 내는 새”(「새 떼 잠들다」)에서 드러나는 표현 의지는 시인이 일상에서 흔히 마주하는 사태를 자신의 바람에 따라 어떻게 형상화하고자 하는지 그 방향이 잘 보여준다. 지상의 인공 사물인 ‘차’를 공중을 배회할 수 있는 생명인 ‘새’로 치환하겠다는 것은 현대 도시민인 존재의 삶의 구체성을 가장 솔직하게 시인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나아가 「터널의 시간」에서 보이는 “바람의 입질도 생략된 통로/큰소리로 여섯 자식 떠먹이던 밥숟가락이 힘없이 휘어지고/음습한 소문만 무럭무럭 울음을 키웠다” 같은 부분은 대상이 늙고 병든 아버지임에도 불구하고 직설적인 감정적 반응 이전에 표현을 구체화하려는 시인의 의지를 대변해주고 있다. 친숙한 대상들을 생생한 ‘현장’에 그대로 놓고 존재의 양태로 포착하고자 하는 의지는 허정열 시인의 개성으로 오래 지속 할 것이라 예상해 볼 수 있다. 다만 시가 언어의 경제성만큼이나 시행, 즉 행과 연의 구성과 배치에도 그 개념을 적용해야 한다는 점을 세심하게 이해해주길 바란다. 나름의 ‘도시시’ 혹은 ‘현장시’를 개척해 주길 기대한다./장종권, 남태식
소감
시의 벨브를 열며
속절없이 기다려준 詩에 말을 걸어봅니다. 다른 곳에 무게를 두고 있어 詩 쪽으로 마음 기울지 못했음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오래 봉인된 시를 꺼내 들고 막막했습니다. 포기하지 않겠다던 다짐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잘 조율된 구석이라곤 찾을 수 없습니다. 묵정밭을 일구어 놓은 것 같았습니다. 넣고 빼고를 반복하는 서툰 시도의 길은 멀기만 합니다. 포기하고 있었는데 잊을만한 저물녘에 전화를 받았습니다. 기쁨보다 두려움이 앞섭니다. 결연한 마음으로 단단히 잠긴 시의 벨브를 여는 손과 마음이 떨립니다. 이 떨림의 순간을 오래 기억하며 앞으로 시에 매진하겠습니다. 꿈길 열어주신 리토피아에 감사 인사를 올립니다. 식어버린 온기를 찾아주신 허형만 선생님, 늘 곁에서 할 수 있다고 도전에 힘을 실어준 영희, 규남 언니께 고마운 마음 가득 담아봅니다./허정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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