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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선/시(2022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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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리토피아
댓글 0건 조회 95회 작성일 22-09-26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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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길 외 4편



오랜 망설임
주저하는 더듬이 위로
문득 바람이 인다
발바닥이 움찔했다
 

태초의 신호
끊임없는 질문에
나무는 몸이 간질거렸다
가지가 조금 흔들렸다
땅이 꿈틀거렸다
손끝이 떨려왔다
 

고요한 전진
한 걸음 한 걸음이 떨림이다
꿈의 이륙이다




볼펜이 달리다



볼펜이 달린다
꼬물꼬물 검은 발자국이 줄 맞추어 간다
열여덟 언니야
선착장을 때리는 겨울파도를 싣고 달린다
촛불처럼 일렁이는 뽀얀 눈물로 달린다
그리운 화야
그르니에의 보로메는 왜 늘 그곳에만 있었을까
카바피의 이타카에는 왜 늘 내일 도착해야 할까
헤매느라 뭉쳐진 발자국에서 꽃은 피어나고
멈춰 서 두 줄 박박 긁던 자리에서
나무가 자라고 산맥이 뻗는다
사랑과 슬픔은 본디 한 몸이라
눈물은 빛나고
물기 가득한 아침 풍경이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말한다
바람에 뒹구는 낙엽처럼
뜨겁게 살다간 이는 가볍다
씨앗 품은 겨울비가 한두 방울 내리고
볼펜이 눕는다
씨앗처럼 적막 속으로 든다 




낯선 독서



언젠가 너를 읽은 적 있다
2년 전인가, 3년인가
아니 그보다 더 오래인가
너를 읽겠다고
사람들 입 다투어 말할 때
그들 틈에 섞여 만개한 너를
한 번 읽은 적 있다
펜으로 밑줄 긋듯
꾹꾹 눌러댄 셔터 몇 컷으로
너의 전부를 담았다고
불쑥 아는 체했다
 

이제
바람이 놓고 간 햇살에
섬진강은 묶었던 손을 풀고
언 땅 아래 꼼지락거리는
필사筆寫의 발가락
할퀴고 뜯겨 숨죽인 채 굽어가는 잔등
잠 못 들어 깊어가는 눈동자
속울음 삼키다 마침내 터져 나온
망울 망울들
 

다시 읽는다는 것은 다시 사랑하는 일
눈이 녹고 비가 내리는
매화밭에서
안으로
안으로 스며드는 고요한 향기
낯설게 다가오는 너를 다시 읽는다




패턴을 잃다



인생이 스펙터클해요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위층 아이의 느닷없는 한마디


휴대폰 패턴을 잊어버렸어요


저런,
패턴을 놓친 너는
어떤 스펙터클을 목격했을까
알람 대신
발부리에 채인 돌멩이의
그 당황스런 신호를 알아챘을까
블루라이트 대신
발 저는 길고양이
그 불안한 눈빛을 읽은 것일까


패턴을 쫓느라
무궁화 2호칸처럼 살아온 나는
50년 만에
패턴 잃은 아이를 처음 만났고
너는 그 나이에
패턴 따위는 잊어버렸으니


나는
네 인생의 스펙터클을 기웃거려 보는 것이다
 



소풍



아기별의 수정 구슬
연잎 위로 데구르르
거미 한 마리 슬그머니 긴 다리 거두자
강물 소리 밀려온다
불시착한 수만 년의 신호에
온밤이 흔들렸다
 

비구름이 쉬어간 자리
반짝 빛이 든다
진창 위에 뿌리를 둔 연분홍
아이들 웃음소리에 화들짝 깨어난다
앞산에 안긴 새소리
푸른빛 맑은 안부를 전한다
 

프사만으로도 휘둘리는 마음
너처럼 맑아질 수 있을까
연잎 위 우주 하나 고요히 출렁인다 




심사평

시작詩作의 어려움에 대한 방법적 성찰省察



어느 정의(定義)도 만족스러울 수는 없지만, 지난 세기의 존재론적 사유와 토의를 근거로 제시할 수 있기에 우리는 ‘시인은 언어로 인해 발생하고 언어 속에서 부재의 방식으로 존재한다’라고 말할 수 있다. 어려운 무슨 ‘논論’을 펼치려는 게 아니다. 누구는 시적 소재와 계기에서 의의를 찾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작품이 담아내고자 했던 사상과 주제의 심원深遠과 진정성에 의의를 두기도 한다. 누가 뭐래도, 한 사회문화에서 동시대의 스펙트럼이 이처럼 다양하다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 이해할 수밖에 없다.
고요(김미선) 시인은 시 쓰기가 훼방 되었다고 생각한 그 순간이 오히려 다른 방향과 질감으로 시 쓰기가 저절로 열리고 있음을 능숙하게 포착하고 있다. 그 순간은 “오랜 망설임/주저하는 더듬이 위로/문득 바람이 인다/발바닥이 움찔했다”(「달팽이 길」)처럼 타인의 감각으로는 절대 포착할 수 없는 미세한 자각自覺으로 그리기도 하고, “아기별의 수정 구슬/연잎 위로 데구르르/거미 한 마리 슬그머니 긴 다리 거두자/강물 소리 밀려온다/불시착한 수만 년의 신호에/온밤이 흔들렸다”(「소풍」)처럼 깨어있거나 기다린 누구나가 지각할 수 있는 사건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시인이 그런 순간, 즉 시적 계기가 불시에 찾아든다는 것을 잘 인식하고 그 순간을 포착하고자 시도를 거듭한 반증이라 할 수 있다.
시인은 이 시적 순간의 포착에 만족하지 않고 한 단계 더 나아갔다고 보인다. 사실 아직 여기에 열중하고 있다면 시인의 가능성은 언제나 잠재성으로 ‘맹아萌芽’ 상태에서 성장의 원상태로 되돌아가는 ‘패턴’을 계속해서 보여 줄 뿐일 것이다. 하지만 시인은 「볼펜이 달리다」에서 “그르니에의 보로메는 왜 늘 그곳에만 있었을까/카바피의 이타카에는 왜 늘 내일 도착해야 할까/헤매느라 뭉쳐진 발자국에서 꽃은 피어나고/멈춰 서 두 줄 박박 긁던 자리에서/나무가 자라고 산맥이 뻗는다” 진솔하면서 원대한 자문자답을 드러낸다. 또한 「패턴을 잃다」에서는 핸드폰의 패턴을 잊은 아이를 등장시켜, “알람 대신/발부리에 채인 돌멩이의/그 당황스런 신호를 알아챘을까/블루라이트 대신/발 저는 길고양이/그 불안한 눈빛”이라는 대비를 선명하게 표현한다. 이를 통해 ‘잊다/잃다’처럼 우리가 쉽게 사용하는 언어들이 그 친연성보다 사실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는 문제를 제기한다.
시인은 시작의 어려움을 진솔하게 드러냄으로써 시작했다. 그런데 이 시작始作은 시 쓰기에서 아무것도 보장해주지 않는다. ‘시인의 보로메와 이타카’를 언어로 건설한다는 의지, 그러나 거기에 ‘나’는 존재할 수 없다는 인식으로 오래 항해航海하길 기대한다../장종권, 백인덕, 남태식.




소감

삶의 소중한 순간을 함께했던 사람들과의 결별,
끝이 확실한 이별로 오래 쓸쓸하던 시절에
텅 비어가는 마음을 채워준 건 한 줄 시詩였습니다.

시를 읽으면서 마음에 틈을 내고

시를 쓰면서 그 틈으로 나를 들여다보고
시를 다듬으면서 나를 다듬어 가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씨앗 하나를 품고
은밀하게 아프다가 설레다가
마침내 환희로 터져 나오는 기쁨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거칠고 투박한 언어를 따뜻한 미소로 품어
부드러운 새순으로 거듭나게 해 주시고
시 쓰는 행복을 알려주신 신병은 선생님과
늘 함께 동행해 주는 문예창작반 문우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아직은 부족하고 아직 깊지 못한 저의 시를 거두어 주신
리토피아 심사위원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응원 아끼지 않는 가족들과도 이 기쁨을 함께 나눕니다.


많이 부족하고 살아가는 일이 빚이라
어제는 자연에서, 오늘은 또 누군가의 지나간 말들을 빌려 시를 쓰고 있습니다.
내일은 온전히 나와 하나 되길 바라며 정진하겠습니다.
더 열심히 쓰겠습니다./고요(김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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