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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규-제11호 신인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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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리토피아
댓글 1건 조회 3,286회 작성일 03-07-25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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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규-제11호 신인상(시)

1960년 경남 남해 출생
동아대학교 상경대 중퇴
농협 18년 근무
경남 남해군 고현면 이어리 508
(055) 864-4712  011-9554-4712
parkjounggyu@hanmail.net


놋그릇 외 4편



토막난 김밥 세월 한쪽 집었더니
거미줄의 종놀음을 하던 늙은 놋갓쟁이
혼을 빚은 얼굴 부엌 찬장 속에서
버린 시간 쉰 밥풀처럼
출출 헐어 떨어뜨립니다.

할머니 시집 올 때 할아버지 입에 맞게
새색시 아린 젖몸살 수줍게 다듬어
품고 왔다는 보송보송 부드러운
구릿빛 살결이 정겹게 넘쳐납니다.

아버지 비운 죄송스런 아랫목
촉촉이 땀에 지친 그리움의 씨를 밴
어머니의 아랫배같이
추억 속 주름을 만들면서      
한땀 한땀 수놓아간
기다림의 고통 수북한 그릇입니다.

신혼 적 아내의 젖빛 가슴처럼
빛 바랜 세월 살살 문지르니





금빛 살결 속에서 가족들의 족보가
반짝반짝 펼쳐집니다
할아버지 아버지 혼이 묻어나옵니다
할머니 어머니 정 가득 넘쳐옵니다.

눈송이 같은 하얀 밥알 꾹꾹 눌러
사랑 가득 담아주시던 젖무덤 같은
어머니 가신 화사한 저승집
울타리에 피어나던 진달래꽃
아름송이 담겨 향기를 피웁니다.




농부의 방



밤하늘에
밤송이 같은 달님이
개구리 합창소리 화음에 반해
동그라미 가진 별님 불러 방울방울
논갈이한 물논에 와 목욕을 합니다.
별님이 맹글은 논둑길을
논물근심 이고 달리는
농부의 자전거 바큇살 소리 맞게
물 위의 달님이 논두렁을 따라 달립니다.
가을이 오면 황금빛 나신으로
농부의 가슴을 출렁일 신방에
달님이 다소곳이 이부자릴 폈습니다.
달님처럼 별님처럼 그렇게
들녘은 농부의 부푼 꿈이 됩니다.
세상의 높낮이가 논물처럼 평온합니다.
달님이 가져온 넉넉한 들판에
늦은 밤이 졸음 가득한
피곤을 보내옵니다.



폐 가



아파트로 팔려간 암소의 울음소리가
텅 빈 외양간에 메아리치면
이끼 낀 구유에서
모락모락 김을 세운 여물들이
주인을 반기며 우우 일어납니다

잡풀 무성한 마당에 나뒹구는
신발의 주인은 어디로 갔을까
자본에 무릎 꿇은 녹슨 호미 한 자루
덕이 누이 도회 가며 남겨둔
가슴을 핥고 있습니다

구들목 화롯불에
장죽 탕탕 두드리던 노인
가는 길 따라나선 삽살이가
고갯마루 미루나무 유혹에 빠져
영영 돌아올 기약이 없습니다

구멍 뚫린 창호지의 등짝같이
으스스 농심(農心)을 저려오는
뼈 앙상한 장지문이





쿵, 쓰러질듯 힘겹게
농촌을 보듬고 울부짖습니다

촌로(村老)의 깊어 가는 이맛살처럼
박넝쿨만 널린 폐가의 지붕 위에
슬픈 호롱박 하나,
무심한 하늘을 자꾸만 끌어내립니다.





하얀 고무신



어머니께서,
씨암탉 한 마리 바구니에 담아
사립문 열고
장 보러 가시는 길은 따뜻했다
햇살 밟는 징검돌 같은 발자국을
삽살개가 촐랑촐랑 건너며 갔다.

산들바람 간질이는
양지쪽 토담 아래 앉아
사금파리 바늘하여 흙마당을
한올 한올 뜨개질해
수십 켤레의 고무신을 만들면서
콩닥콩닥 뛰는 가슴 한없이 달랬다.

점심나절 어머니가 차려놓은
다박고구마 서너 개 먹지도 못 했다
천사처럼 고운 어머니가
하얀 고무신 앞세우고 골목길 돌아올 때
발바리 꼬리 넘치는 기쁨
목에 걸고
딸랑딸랑 그림자를 흔들며 왔다.





염소 몰고 뒷동산 오를 때도,
학교 가는 돌밭길도 신지 않았다
껴안고 뒹굴며 걸어온 인생길
삶의 방향까지 인도해 온 하얀 어머니.

귀밑머리 허옇게 바랜 세월
구릿빛 자궁 바구니 속에
젖은 눈시울로 잉태한
까까머리 그립다.








발자국들이 쌓이고 쌓여
지층을 이룬 발자국 위에
허깨비처럼 눈알만 번득이며
얼굴이 없는 길이
허겁지겁 달려옵니다.

발자국들 나란히
사이좋게 걸려있는 절벽,
푸른 비늘 무겁게 뒤채면서
숨쉬고 있는 삶의 바다에도
발자국들의 앙상한 뼈대가
온통 길 위를 붕붕 떠다닙니다.

낡은 나이테 침침한 몸 속
곰팡이와 바퀴벌레 발자국이
우심실 좌심방의 교차로에 부딪쳐
광란의 혈투를 벌이고
내 눈알을 밟고 지나가는 발자국은
술 취한 뺑소니 기사처럼
허둥지둥 막다른 내장으로 질주합니다.






발자국들 가득 실은
공원묘지에도 못 갈 영구차가
발자국 쌓인 발자국 위를
음주에 과속까지 곁들인 길이
이윽고 찌꺼기들을 토해냅니다.

멀미가 두겹 세겹으로 겹친 내가
찌든 발자국들 내려놓고
현기증을 털면서
산새소리 춤을 추는 숲속 길을
가볍게 걷고파.



▮당선소감


조류에 떠도는 해파리 되어 물 속 길을 긴 여정 불빛 하나 찾아 걸어 왔습니다. 문명이 낳은 온갖 잡동사니 틈을 헤집고 강 건널 징검돌 하나 찾아 왔습니다. 가슴 아린 동짓밤을 천 일 간 보듬고 앓았답니다. 이제 놓아줄까요. 나의 가슴 절인 바다 위에 처녀 항해를 시작해볼까요. 풍랑과 어둠과 반짝이는 햇살에 낙오된 눈 바랜 싹들을 향해 나의 작은 바다에 본래의 소금 3.5%를 섞어볼까요. 삶에 곪아터진 수많은 언어들을 하나씩 둘씩 주워내 바다쌈지 속에 꼬깃꼬깃 절였다가, 병든 흔적들과 시간 속에 버려지는 슬픈 불행들의 치유를 위한 재생병원 행 달구지로 쓰일 수만 있다면……. 하늘을 날아오른 물보라, 이름 없는 잡초 이파리의 종이 된 아침이슬, 망망대해 누워있는 거대한 바닷물-모든 존재의 원초적 가치들, 높낮이의 생명 값을 인간이 매길 수 없는 세상으로 나의 갓 절인 단어들을 쏟아 붓고 싶습니다.
내 마음의 엄지와 검지 사이에서 시인의 펜이 졸지 않고 사색할 수 있도록 소중한 기회를 주신 리토피아 가족들과 심사위원 님들께 가슴 꿇어 감사 드립니다. 아울러 햇병아리 항로에 언제나 반짝이는 등댓불이 되어 솔깃한 언어들로 치장한 팔(손)등(병)신 되지 않게 길라잡이하소서.
어머니 감사합니다. 나의 가난하고 피 짙은 형제들, 자랑스런 두 아들, 예쁜 아내 모두 모아 사랑합니다.박정규․1960년 경남 남해 출생




▮심사평


박정규의 시는 향토적 정서가 강하게 배어있다. 「놋그릇」, 「농부의 방」, 「하얀 고무신」 등과 같은 제목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그의 시는 대체로 농촌생활의 일상적 정경을 소재로 삼는다. 그가 그린 풍경 속에는 ‘씨암탉 한 마리 바구니에 담아 / 사립문을 열고 / 장 보러 가시는’ 우리네 어머니가 있고,‘구리 빛 살결’로 그을린 할머니의 노동이 스며 있으며, ‘논물 근심 업고 달리는’ 농부의 자전거 페달 소리가 있다. 그것은 가난하고 어렵지만 따뜻한 인간의 정이 녹아있는 세계이다.
박정규에게 있어 농촌은 직접적 체험이 녹아있는 현장이며, 구체적 현실이 작동하는 살아있는 대상이다. 거친 바람과 쿰쿰한 흙냄새, 땀과 온기가 배어 있는 농촌 체험이야말로 그의 시를 단단히 받치고 있는 뿌리이다. 그것은 ‘땅’과 더불어 살아온, 또 살아가고 있는 오늘의 사람들의 모습이다. 이는 농촌의 향수와 그리움만을 자극하는 단순한 과거 지향의 시가 아니라는 점에서 희망적이다. 그는 애써 자연 친화적인 삶, 농촌의 힘겨운 현실, 이웃과 함께 하는 공동체의 소중함을 강조하지 않는다. 다만 그는 이 모든 것을 진솔하게 묘사할 뿐이다. 때문에 그는 관념화된 가치와 추상화된 이념에 쉽게 매몰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심사위원들은 그의 시인으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박정규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분쟁이 아닌 공존으로, 경쟁이 아닌 조화로운 삶으로 이끌고자 한다. 그것은 파행과 균열로 치닫는 도시적 삶에 길들여진 우리의 의식을 맑게 정화시키며 이기심과 불신이 가득한 위선적 세계를 반성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그의 시는 농촌의 소박하고 정직한 삶의 모습을 과장하지 않고 쉽고 정직하게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시의 수준이 고르지 못 하다는 점, 간혹 반복적이고 설명적인 표현이 발견되는 점은 아쉬움을 남긴다. 이는 시의 완결성과 긴장감을 감소시킨다는 점에서 경계해야 할 것이다.     ▮리토피아 편집위원 일동

[이 게시물은 리토피아님에 의해 2024-04-25 16:31:08 신인상수상자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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