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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시(2024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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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리토피아
댓글 0건 조회 119회 작성일 24-09-15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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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옷을 널다 외 4

 

 

바람을 친다

바래고 해지고 너덜너덜한

장롱 속 헌옷

 

묵은 일기장처럼 썼다 지우고

지우고 고쳐 쓴

얼룩 고스란히 남아 있다

 

블라우스의 하늘빛은

언제 다 빠져 버렸을까,

청바지는 왜 허리통이 굵어졌을까,

절레절레 젓는 고개 따라

흔들리는 빨랫줄

 

행여 풀린 블라우스 단춧구멍에

여미고 싶은 기억들

늘어난 청바지 허리통으로 아련한 것들

새어 나가지 않을까,

 

초봄 하늬바람으로

눅눅한 하루가 뽀송뽀송 말라간다

일기장 속 색바랜 나날

빨래집게 고쳐 집어 꾸욱

눌러둔다

 

 

 

 

민들레

 

 

꽃바람 분다

노란 향기에 발걸음 세운다

 

벌나비 너울대는 저 꽃

비바람 견뎌

용케도 피워냈다

 

바람 앞에 바람개비 돌 듯

어쩌다 쉰여섯, 나는

토막 난 꿈만 꾸었다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그날 당신처럼

머지않아 저 꽃도 질 터이다

 

노랗게 꽃 진 자리 맺힌

민들레 홀씨는 날아갈 것이다

날아가 또 다른 인연을

피울 것이다

 

돌고 돌아와 어지러운 봄날

하루가 짧다

 

 

 

 

산벚꽃

 

 

산벚꽃 흐드러진 봄날

산으로 갔다는 풍문 따라갔다

 

빈 법당에 앉아 두 손을 모았다

소신공양으로

세상에 향내를 채우는 향불이 타고

어둠을 밝히는 촛불 밝았다

 

새하얀 그리움을 한 스푼 떠서

타는 속내에 섞었다

 

친구의 소식을 물을 인기척 없었다

재 너머 뻐국새 혼자

녹음기처럼 한나절 경을 읽었다

 

툇마루에 한 식경,

뉘엿뉘엿 석양을 핑계로 돌아섰다

없는 불이문 밖

돌탑 위에 돌 하나 올렸다

 

모든 게 눈 깜짝할 사이에 피었다 지는데

세상도 인연도 다 버린 친구가

제 몸 사르던 향이고 촛불이었나,

어스름이 내렸다

 

 

 

 

 

숨어 우는 봄

 

 

없는 소달구지 타고 간다

지워진 길 따라

산속 오두막 찾아간다

찔레꽃 따먹으며

아카시꽃 흐드러진 봄날을 간다

 

아지랑이 가물거린다

억울하고 답답한 세상살이

말술로 풀던

새끼 밴 암소도 팔아먹은 당신

분명 간이 부었었다

 

막내딸 머리에 나비 한 마리

앉혀 주지 않던 당신,

세상은 온통 꽃밭인데

집 비워 두고 또

어느 주막에 주저앉아 있나,

 

주인 잃은 지게는 발목이 부러지고

삽날 녹슨 지 오래

 

 

 

 

몽돌

 

 

돌 구르는 소리에 귀를 연다

갈기를 휘날리며

파도가 몰려온다

 

한나절 물멍을 때린다

몽돌처럼 세월에 씻긴 그대는

이미 희미하다

 

밀려왔던 파도는 금세

슬금슬금 빠져나간다

 

지금은 먼 그대인 듯

맴도는 갈매기 날갯짓 사이로

햇살 아득하다

바짓단을 걷어올린다

사그락사그락 몽돌 위를 걷는다

 

나도 모르게 비밀 하나 가만

지운다

 

 

 

담담한 필치로 그려낸 서정抒情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얄팍한 감성이나 자극하고, 추억 소환에 그치고 마는 그렇고 그런 시가 많다. 시절 유행 같은 현 시단의 문법에 편승하려는 듯 현학적이거나 개인적인 사설에 그치고 마는 시가 차고 넘친다. 계간 리토피아신인상에 담백한 수채화 같은 서정성抒情性 짙은 작품을 투고한 이현 시인을 선정한다.

20세기 후반의 정보화 시대를 거치고, 금세기 초에 시작된 제4차 산업혁명으로 우리는 과도하게 물질문명을 숭배하며 개인주의 늪에 빠졌다. 크기와 속도를 추구하고 보이는 것만 믿는다. 사람의 관계는 오로지 이해득실에 따르며, 우리의 은근한 정서인 정이 사라진 지 오래다. 오로지 오늘과 내일만 존재할 뿐 어제는 없다. 그러나 어제 없는 오늘과 내일이 어찌 있으랴. 이현 시인은 어제를 호명하여 내일로 가는 나침반으로 삼는다.

헌 옷을 널다외 투고된 작품 전반에 서정抒情이 짙다. 그간 우리가 까맣게 잊고 살았던, 차마 잃어버린 줄도 몰랐던 정서를 환기해 준다. 흘러간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구체화한다. 어제는 단순히 시간이 아니다. 그 안에 깃든 정서까지이다. 그가 담담한 필치로 그려낸 서정은 공감력이 크다.

투고된 작품 모두 쉬운 내용을 쉽게 쓰지 않았다. 쉬운 내용을 어렵게 쓰지도 않았다. 응모한 작품만으로 확인하기엔 한계가 있으나, 어려운 내용을 쉽게 쓰려는 의지가 확실해 보인다. 오랜 습작기를 거친 듯하여 믿음이 간다. 신인상 수상을 축하한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더욱 정진하여 세상에 시의 큰 그늘을 드리우길 바란다./안성덕, 남태식, 장종권

 

 

남모르게 품었던 꿈

 

 

아직 한참 부족한 제가 시인이 됩니다. 신인상 당선을 안겨 주신 심사위원들께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기억조차 희미하고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는 풋풋했던 어린 시절, 남모르게 마음에 품었던 꿈이 시인이었습니다. 이제는 달아나 버린 시간과 얼굴의 잔주름만 남았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것을 더욱 절실히 깨닫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설레는 시간이 바로 지금인 듯합니다.

수년 전 선향작은도서관에서 시 수업을 받던 날, 지도 작가님의 작은 격려와 칭찬이 제 인생의 방향을 바꿀 줄 몰랐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시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수필이나 소설과는 다른, 운율을 지닌 함축적인 언어로, 내 안의 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이 세상을 드러내는 시의 맛을 꾸준히 알아가는 중입니다. 시를 읽고 짓노라면 저의 존재의 품도 넓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행복합니다. 많이 행복하겠습니다.

더 진중하고 더 치열하게 쓰겠습니다./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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