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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옥/시(2024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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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옥
땅꽃 외4편
꿈틀대며 부풀어
머핀처럼 쩍쩍 갈라지는 소리
이 밭에서도
어영차
저 밭에서도
어영차
봄을 들어 올리는 기합소리
두더지들의 쑥떡거리는 소리
쑥, 냉이, 쑥부쟁이, 달롱개……
와글와글
땅이 일어선다
땅꽃이 핀다
은어
섬진강 은어가 벚꽃길 따라 올라왔어
향긋한 수박향에
벌써 여름인 줄 속을 뻔했었어
하얀 비늘들이 섬진강 물빛을 가릴 때
은어도 꽃드레스 입고 춤을 추었어
초록 잎사귀가 바스락거리며 귀를 간지럽혔어
지금이 여름이라고,
바다로 가야 한다고,
까만 콩벌레 주렁주렁 떨어지던 날
맨발의 은어는 온통 버찌로 물들었어
제 몸을 다 덮어버린 버찌은어는
섬진강을 떠나 바다로 가기로 했어
제 몸색 같은 짙은 바닷물을 몸의 기억으로 여겼거든
바다로 가는 동안
짠기에 속살 붉은 버찌 살이 다 보였어
쓰라렸어
그래도 제 고향인 양 바다에 몸 담궜어
서서히 쪼그라들던 은어는
그 이후로는 아무도 못 봤어
섬진강에서도 바다에서도 말이야
딱따구리
한방에 해결
원 플러스 원이 이만할까
살랑대는 바람이 초록 사이를 걸어와
사뿐히 앉은 햇살과
소담한 얘기로 밥상 차린다
식곤증이야 바람그네에 앉으며 되지
나무가지 옆 숨도 쉬지 않은 한 모퉁이
습하고 그늘져
녹을 듯한 더위에도 이만하면 안성맞춤
숨죽여 사는 한 생은
이생에서 다음 생으로 무사히 건넜을까
딱따구리 고단한 부리가 쉴 새 없다
청명한 음파로 퍼뜨린 소리
산 하나 둘러맸다
낙화 매미
왕벌이 한 마리 나비 된 매미를 덮쳤다
하늘로 드러낸 배
겹겹의 파장으로 더 넓은 세상 꿈꾸다
그만
바람이 되었다가
허공이 되었다가
구름이 되었다가
쓸쓸한 한 호흡의 마지막 제 숨을 들여다본다
거푸집의 몸으로
속 다 비워 한 생을 노래했건만
그래도 보시할 게 있어
한 마리 나비 되어 날아올랐지
눈 뜬 한낮의 해탈이었어
판장에서
만선의 뱃머리에
덩더쿵 쿵따쿵
휘모리장단에 갈매기 따라오고
새벽안개 속
바다와 하늘 중간 어디쯤
찢어진 어망 사이로 매달려 와
펄떡거리던 심장은
지친 날개 쉬려 판장에 누웠나
여생을 비워낸 가벼움으로
자갈치 귀퉁이에서
파도 냄새 찍으며
깊은 바다 풀어내고 있다
쇼ㅣㅁ사평
소리 없는 웅변
2024년 《리토피아》 겨울호 시부문 신인상에 「땅꽃」 외 20편을 응모한 김정옥 시인을 선한다. 응모한 작품 모두에서 일관된 시적 수준을 보여주었을 뿐 아니라 인류의 당면문제인 환경과 기후 문제에 관한 작품이 심사자들의 눈길을 붙잡았다.
시의 사전적 의미를 증명하듯 개인적 서정이 다수였던 시대를 지나 웅변식, 대자보식 사회·현실 참여시가 주류였던 때가 있었다. 이제는 인기주의에 편승한 그렇고 그런, 그만그만한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오늘날 지구촌 곳곳의 기상이변은 경고를 넘어 이미 현실이 되었다. 유례 없는 홍수와 가뭄, 산불이 생명을 앗아가고 있다. 빙하가 사라지는 등 오존층 파괴로 인한 재해가 속출하고 있다. 끝을 모르는 인간의 탐욕 탓이다. ‘인류세’, 인간의 행위가 지구 환경 변화에 영향을 끼친다는 2001년 네덜란드 화학자 파울 크르첸이 주장한 학설이다. 환경 변화와 기후 위기는 이제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모두 환경과 기후 변화에 눈감아서는 안 된다. 귀 막아서는 안 된다. 김정옥 시인이 ‘두더지’, ‘쑥’, ‘냉이’, ‘쑥부쟁이’, ‘달룽개’를 호명한다. 그들의 눈부신 생명력을 ‘땅꽃’이라 부른다. 점차 사라져 간다는 은은한 수박향 나는 섬진강 은어를 주시한다. 세상은 우리 인간의 것만이 아니라고 소리 없이 웅변한다. “청명한 음파로 터뜨린 소리/산 하나 둘러맸다”며 딱따구리처럼 “고단한 부리 쉴 새가 없”다.
시는 거창한 구호가 아닐 터이다. 김정옥 시인처럼 조금 겸손해지는 일이 시의 시작일 터이다. 등단을 축하한다. 세상은 넓고도 넓다. 시의 터전이 삶의 터전을 넘어 더욱 풍성하기를 바란다./안성덕, 남태식, 손현숙
본격적인 글쓰기의 시작
2021년 3월 2일 광양시 다압면에 첫 발자국을 찍었습니다. 낯선 곳에서 한 편의 시를 읊음으로써 하루하루 잘 견디어 왔습니다. 최미경 선생님 덕분에 여수전남대학교 평생교육원 문창과정에 발을 들여놨습니다.
여수까지의 왕복 3시간 넘는 거리지만, 오가며 길 위에서 최미경 선생님과의 대화는 또 다른 수업처럼 알차고 고마웠습니다.시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저에게 하나하나 일러 주시고, 지칠 때면 보약까지 챙겨주시면서 기운 북돋아 주셨지요. 감사드립니다.
신병은 선생님 수업을 듣게 되면서 시를 마냥 어렵게 생각했던 무거운 마음이 조금은 내려앉았습니다.
시는 늘려져 있고, 주우면 되는 거고, 안 보이면 책을 펼치면 또 그곳에 있다고 하시는 너무나 편하게 강의하심에 흡수되었습니다. 첫 강의가 잊히지 않습니다. 수업 가는 동안 둘이 나눈 대화가 수업 내용으로 나와 깜짝 놀랐고요. 그 횟수가 잦아서 선생님께서 우리 차에 도청 장치까지 달아 놨을 것이라는 추측도 했습니다. 아니면 달님이 일러 줬거나 말이죠. 늘 부족하지만, 이 모습도 감사합니다. 시는 저에게 또 다른 도전이었습니다. 도전에 용기 주신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등단은 본격적으로 글을 쓰는 시작임을 알린다고 생각하고 다시 출발점에 섰습니다. 많은 작품 중에서 저를 선택해 주신 리토피아 심사위원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질문 하나에 시 한 편이라는 선생님 말씀 새기면서 제게 자주 질문하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가슴 벅찹니다. 고맙습니다./김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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