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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옥/시(2023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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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리토피아
댓글 0건 조회 9회 작성일 25-05-07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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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상(시부문)

서정옥



재관이네 고목단감나무 외4편




재관이네 오래된 단감나무에 여름에는 보이지 않던 단감이 꽃처럼 열렸다. 동네 한가운데 재관이네 담장 너머로 단감나무 가지가 길게 뻗어내린다. 푸른빛 짙은 여름부터 붉게 물든 가을까지 시도때도 없이 다니는 길목이다. 담장 너머 기린목이 되어 맴돌던 어릴 적 친구들 얼굴이 하나둘씩 달려있다,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떨어져 깨어진 단감마저도 달빛에 환히 빛이 났다. 어머니 손목 잡고 당숙모집 기일에 다녀오는 밤에는 더욱 환한 얼굴이었다. 재관이네는 모두 도회지로 떠났고 집은 비어 마을 공동주차장이 되었다. 재관이네 식구들은 없어도 언제나 오래된 단감나무가 홀로 서서 손을 흔든다. 동네 꼬마 녀석들의 추억이 주렁주렁 열려 오가는 사람들의 안부를 묻는다.







나팔꽃




바람이 어깨를 기대고 햇살이 종일 드러누우면,

새들은 부러질 듯 부러지지 않는 날개를 얹는다. 


기다림이 길어지는 동안에도 기도는 뜨거워지고,

만지면 터질 것 같은 상처는 갈수록 더 위태롭다.


담장 위로 하늘과 맞닿은 생명줄이 팽팽해지면,

세상의 모든 기도들 일어나 이 넝쿨에 매달린다.







밥솥 안에 있는 얼굴들




솥뚜껑을 열면 하얀 쌀밥이 가득하다.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얼굴도 들어있다.

언니 오빠 동생의 얼굴도 들락거린다.

가끔은 고모 삼촌 숙모 얼굴도 보인다.


하나둘씩 들락거리는 그리움을 밥그릇에 퍼담다 보면 상쾌한 노래소리 들려온다. 아무리 들어도 싫증나지 않는 새들의 노래 바람의 노래 햇살의 노래가 아침을 연다. 






다인실 생활



뭐시기 아부지, 뭐시기 아부지,

어둠 사이로 밤을 깨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뭐시기 아부지, 콜록콜록 화장실에 가요.

응 그래 알았소.

으으차차 드르르 드르륵 사르르 

잠든 밤을 깨운다.


뭐시기 아부지 나 물 좀요.

응 응, 그래 여기 있소.


뭐시기 아부지 나 화장실요.

뭐시기 아부지 나 물요.

으응, 알았소.


뭐시기 아부지 이름 사이로 조는 어둠이 

하얗게 지나간다.

뭐시기 엄마는 세월을 물고 

뭐시기 아부지는 쩔쩔맨다.






딸에게서 엄마의 향기를 읽는다



하늘 아래 점 하나 찍고 내려온 

선녀 같은 너랑 하늘을 나른다.

바다 위 구름 아래로 조각 같은 

작은 집들과 섬, 섬, 섬을 본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것들이 

제 자리에 서있는 제주도 간다.

물에서 만난 우리는 서귀포 어느 

펜션에서 야외풀장을 즐긴다.

딸이 엄마를 이끄는 시간만큼의 

세월이 흐르고 너는 자랐다.


백야기오름을 오르며 엄마는 

겨울꽃이었다를 외치고 외친다.

모진 세파의 시련과 아픔을 이기며 

견디며 핀 겨울꽃들이 있다. 

피었다 지고 다시 피는 동백꽃 닮은 

어머니를 소리쳐 부른다.

어머니는 모진 고난과 시련 속에 

피어난 그리운 꽃 동백이다.

하나밖에 없는 딸에게서 

그리운 내음 어머니의 향기를 읽는다





심사평

단련된 문장과 호흡에 기대



시는 소재가 생명이다. 주제를 의식하는 순간 이미 시는 엉뚱한 길로 빠져들기 십상이다.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말로 뱉어내지거나 문장으로 조합되는 순간 시에서 멀어지고 산문의 지경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많다. 시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 말하는 대신 길가에 핀 들꽃 한 무더기 꺾어 내미는 모습일 때 독자들에게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갈 것이다.


서정옥의 시는 모든 사람들이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고향과 가족, 그리고 자연과 사람이 소재다. 시의 소재가 독특하거나 사유적이거나 할 필요는 없다. 누구나 접근하고 느끼고 감동하는 주변에서 소재를 얻어 따뜻하고 즐거운 맛을 선사한다면 그것이 곧 편안한 공감을 받을 것이고 건강한 치유력을 상승시킬 것이다. 요양원 「다인실의 생활」에서 노부부는 부부로서의 가장 어려운 고비를 극복하며 마지막 최선을 다하고 있다. 희망은 없다하더라도 인간이라면 이래야 하지 않겠느냐, 라는 호통소리 같다. 이것이 인간의 마지막 모습이어야 한다는 시인의 뜨거운 논리가 숨어 있는 것이다.


시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 어려울 필요가 없다. 시 문장을 제대로 만들어갈 때 독자들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서정옥 시인의 단련된 문장과 호흡에 가능성을 건다./장종권, 김유석, 남태식. 






당선소감

할머니 토닥이시던 손길 떠올라



따스한 햇살이 비치니 바람이 문을 두드립니다. 영혼을 깨우는 시가 날아와 향기를 안겨다 줍니다. 하늘이 깨끗한 도화지를 펼치니 그 위에 시를 그립니다. 한 땀 한 땀 수놓는 코스모스처럼 흔들립니다. 모카커피 향기처럼 은은하게 내면의 샘을 팝니다. 


리토피아 등단 소식에 감회가 새롭습니다. 어릴 적 할머니께서 잘되라고 토닥이시던 손길이 떠오릅니다. 건강을 물려주신 부모님, 육남매가 있어 항상 행복합니다. 송수권 교수님과 김길수, 허형만, 장윤호 교수님 고맙습니다. 함께하시는 존경하는 문우님들께도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부족하기에 거북이처럼 천천히 배움을 이어올 수 있었습니다. 기쁘지만 소감문이 한편 어깨 위로 무게감을 느끼게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 노력하며 향기로운 삶의 시를 지어가렵니다. 


격려해주며 항상 수고하는 남편과 가족들에게 늘 고맙습니다. 용기를 북돋아 주는 자녀들과 지후도 더욱 사랑합니다. 따뜻한 손길을 내어주신 리토피아 관계자님들께 고맙습니다. 제 시를 좋아해 주시는 이웃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열린 시야로 사물을 보며 지혜의 샘물 퍼 올리는 시를 짓고, 제게 있는 큰 사랑도 시가 되고 노래가 되어 부르렵니다./서정옥 




2021년 《순천문학》 신인상 수상. 시집 『엄마는 겨울꽃이었다』, 『눈으로 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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