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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상반기 신인발굴]_소설_윤수빈_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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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349회 작성일 17-03-09 02:00

본문


 <소설 부문> 


성명: 윤수빈

성별: 여

연령:  20세

주소:  광주 광역시 서구 화정동 832-21번지 1

연락처: 010-4608-2061








 눈 먼 빛의 이면





 

#1 : 1130

한적한 바닷가의 시골마을, 이따금씩 개 짖는 소리만 정적을 깰 뿐 한 없이 조용한 마을에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따스한 햇살에 꾸벅꾸벅 졸고 있던 수홍이 화들짝 놀랄 만큼 경찰서 문을 세게 열어젖힌 아주머니의 얼굴에는 공포가 한가득 서려있었다. 아직 잠이 덜 깬듯한 수홍은 그 표정을 보지 못한건지 입가에 침을 닦아내고서는 영 멍한 목소리로 아주머니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무슨 일..”

 

말 끝을 흐리는 수홍을 곧바로 경찰임을 알아 본 아주머니의 얼굴이 잠시 화색이 됐다가, 다시 창백해져선 수홍의 소매 단을 붙잡고서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저어기. 바닷가에, ? 바닷가에. 사람이, 사람이 죽었으이.”

? 사람이요?”

 

가끔 주민들이 다투거나, 노상방뇨로 잡혀올 일 밖에 없었던 경찰서에 아주머니의 말은 꽤나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벙져있는 수홍의 뒤로 아까까지만 해도 누가 들어오던 말던 상관없다는 듯 턱을 괴고 자신 할 일만 하고 있던 도혁이 벌떡 일어나 아주머니의 앞으로 나섰다. 사색이 된 아주머니의 표정을 보고 거짓말은 아니라고 판단한 건지 도혁이 벙져있는 수홍의 어깨를 정신 차리라는 듯 한번 치고서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사람이요?”

하모, 그렇다니까. 저기 바닷가에..!”

안내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도혁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인 아주머니와 카메라와 장갑을 챙긴 도혁이 경찰서 문을 열고 나가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수홍이 재빨리 뒤를 따라 나갔다.

 

*

 

얼핏 보기엔 전혀 아무런 외상없이 누워있는 여자의 얼굴이 하얗다 못해 창백했다. 혹시나 하여 손목의 맥박을 재보았지만 역시나 뛰지 않는 심장에 수홍이 한숨을 쉬고는 손목을 내려놓았다.

 

사망하셨어요.”

 

사망했다는 수홍의 말에 모여 있던 주민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웅성거리는 주민들은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 건지 묵묵히 사진을 이리저리 찍어대는 도혁을 보고 있던 수홍도 도혁의 옆에 쭈그려 앉아 시체를 살펴보았다. 서울에서 온 분은 다른가보네. 이런 사건도 묵묵히 조사하시는 걸 보니. 혼자 생각하며 시체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조심스러운 손길로 그녀를 죽음까지 이르게 한 원인을 찾으려 옷을 들춰보던 수홍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으악!”

 

오른팔의 소매 단이 왼쪽과 다르게 너덜너덜하게 늘어져있어 이상하게 생각한 수홍이 소매를 살짝 들어 올리자 도저히 눈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흉측하게 난도질되어 떨어질 것 같은 살점들이 보였던 것이다. 겁을 먹은 수홍에 카메라를 들고 있던 도혁이 수홍을 따라 소매 단을 들춰보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지독하네.”

 

낮게 중얼거리던 도혁이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탁 트인 바닷가, 겨울로 접어들 쯤이라 관광객 하나 없고, 올해 따라 극심인 추위 덕에 주민들도 자신들의 집에 들어가 통 나오질 않는 이 시기에 목격자가 있을 리 없었다. CCTV도 몇 대없는 촌구석이라 증거를 확보하긴 더더욱 어려울 것이고. 이런저런 생각에 머리가 아파진 도혁이 앓는 소리를 내며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수홍이 시체의 얼굴을 한참동안이나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아까 본 상처가 그렇게 충격이여서 정신을 못 차리고 쳐다보나 싶어 도혁이 수홍의 어깨를 한번 툭 치고서는 입을 열었다.

 

인마, 정신차려.”

 

도혁이 자신을 건드린걸 아는건지 모르는건지, 아까 그 자세로 계속 얼어있는 수홍에 왜 그러나 싶어 다시한번 수홍을 툭툭 건드리자, 그제서야 도혁의 손길을 느낀건지 도혁을 바라보는 눈에 도혁이 한숨을 쉬어보였다.

 

넌 무슨 시체를 그렇게...”

“... 아는 사람 같아서요.”

 

아는 사람 같다는 수홍의 대답에 도혁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물론 자신보다 이 마을에 먼저 왔으니 아는 사람이 많을 수도 있다만, 여름이면 덥다고 겨울이면 춥다고 온종일 서에 틀혀박혀 있는 수홍이 얼굴을 안다는 건 꽤 드문 일이었다. 시골 촌구석에 몇 안 되는 가옥을 오자마자 다 외워버린 도혁과는 달리 아직도 다 외우지 못한 수홍이었으니.

 

, 몇 일전에 순찰 돌고 있는데 술을 꽤 마신건지 막 비틀거리면서 저한테 다가오더라고요.”

그 사람인 것 같다고?”

아마도요. 얼굴이 잘 기억 안 나긴 하는데. 저한테 막 오빠거리면서.”

 

말을 이어나가던 수홍의 얼굴이 돌연 붉게 달아올랐다. 어버버거리며 다음에 일어난 일을 쉬이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것을 보니 대충 짐작이 가 고개를 끄덕이던 도혁의 시선이 다시 시체로 옮겨졌다.

 

그 년이네, 그 년이야!”

 

시체를 보며 한참 누군지 생각하던 도혁의 귀에 날카롭게 소리치는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박혔다. 뒤를 돌아보니 아까까지 시체를 주시하며 웅성거리던 무리 중 한명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시체를 손가락질하며 임시로 쳐 놓은 폴리스 라인을 넘어갈 듯 잔뜩 성을 내며 빽빽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전에 그으, 있잖혀! 이새댁네! 이혼시킨 그 년!”

 

한 아주머니가 소리를 지르며 말하자 주변에 있던 주민들도 이제야 기억이 난다는 듯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수군대기 시작했다.

 

그려, 그 년이 맞네.”

오메... , 김 씨네도 된통 당하지 않았어?”

꽃뱀이여, 꽃뱀!”

쯧쯧. 언젠가 천벌 받을 줄 알았재.”

 

웅성거리던 소리가 점점 커지자 잠자코 듣고 있던 도혁이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메모를 빠르게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꽃뱀. 김 씨네. 이 새댁. 이혼. 사람들을 홀린 댓가라는건가. 수첩에 적은걸 바라보던 도혁이 점점 거세지는 주민들을 진정시켰다. 여전히 시체의 얼굴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고 있던 수홍도 도혁을 따라 주민들을 하나 둘 돌려보내기 시작했다.

 

*

 

시체 방금 수거해갔답니다, 형님.”

 

수홍이 경찰서 문을 열고 들어오며 말했다. 아까 찍은 사진들을 컴퓨터에 백업해놓고 있던 도혁이 수고했다. 라며 짧은 대답을 하고서 모니터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런 도혁의 눈치를 살살 보던 수홍이 자신의 의자에 걸터앉고는 조그맣게 입을 열었다.

 

“... 커피 한잔 타드릴까요.”

, 부탁해.”

 

복잡한 일이 있으면 꼭 커피부터 찾는 도혁을 모를 리가 없는 수홍이 눈치껏 먼저 물었다. 대답을 하면서도 여전히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도혁에 언제부터 일을 저렇게 열심히 하셨지. 라는 표정을 짓던 수홍이 커피포트에 물을 올렸다. 곧 물 끓는 소리가 들리고, 한참의 정적 끝에 도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수홍아.”

, 형님.”

너 내일 주민들 조사 좀 다녀와라.”

 

무섭도록 진지해진 도혁의 표정에 차마 싫다고 말하진 못하겠는 건지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고선 종이컵에 물을 따르는 수홍이었다.

 

#2 : 121

비라도 오면 비 온다는 핑계라도 대고 안 가려고 했다만, 오늘따라 유난히 햇빛이 쨍쨍 찌는 듯한 느낌에 툴툴거리던 수홍이 다시금 모자를 눌러썼다. 그다지 큰 마을이 아니라 조사해야 할 집이 몇 군데 안 된다는 것이 위로 아닌 위로였다. 어제 도혁이 쥐어준 수첩과 펜을 들고서 느릿느릿 걸음을 옮겨 오토바이에 올라탄 수홍이 한숨을 쉬었다. 벌써부터 피곤한 느낌에 머리가 아파왔지만 어쩌랴, 이게 자신이 해야 할 일인데. 침울한 표정으로 오토바이에 시동을 거는 수홍이었다.

 

*

 

주민들에게서 얻어 낸 정보는 어제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 년이 꼬셔서 이 새댁이 이혼했다. 김 씨네도 돈을 뜯겼다. 그런 짓을 하고서도 마을에 붙어있었다. 참 뻔뻔한 년이다. 어떤 집은 욕설이 너무 심해 괜히 왔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고개를 설레설레 젓던 수홍은 피곤에 찌든 몸으로 기지개를 한번 켜고서 마을 지도를 확인했다. 남은 집은 두 집. 빨리 해치우고 서에 가서 몸 좀 누이고 싶다는 생각에 오토바이에 빠르게 올라탔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어느 한 집 앞에 도착한 수홍이 마을 지도를 보며 목적지가 맞는지 확인 하고서 굳게 닫힌 대문을 쾅쾅 두드렸다. 설마 집에 안 계시진 않겠지. 라는 수홍의 걱정과는 달리 꽤 쌀쌀한 날씨임에도 반팔을 입은 중년의 남자가 대문을 열었다.

 

경찰입니다. 박중원씨 맞으시죠?”

 

신분증을 내밀자 아, 하고 작게 탄식을 내뱉더니 문을 활짝 여는 박 씨의 오른팔에 꽤 깊게 난 듯 한 상처가 보였다. 수홍의 머릿속에 순간 시체의 난도질당한 오른팔이 스쳐지나갔다. 자연스레 오른팔에 고정된 시선에 수홍의 생각을 알아차린 건지 연신 손을 내젓는 박 씨였다.

 

어유, 선생님이 무슨 생각을 하시는 진 모르겠지만 제 팔로는 그런 짓 못합니다. 가만히 있어도 얼마나 아픈데요.”

 

박 씨의 말에 수홍의 고개가 자신도 모르게 살짝 끄덕여졌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도 과거 범인을 잡다 생긴 오른팔의 상처가 아직도 이따금씩 쿡쿡 쑤셔오기 때문이었다. 그럴때면 도혁이 진통제를 가져다주긴해도 여전히 아픈게 사실이지만. 하지만 저 팔의 상처가 사람을 죽일 수 없는 만큼의 아픔을 가져오는지는 아무도 모를 터. 날카로운 눈빛으로 박 씨를 바라보던 수홍이 수첩을 꺼내고서는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사건은 언제 들었으며, 몇 시경엔 어디에 누구와 있었는지. 하지만 이 집을 오기 전에도 늘 그랬듯 알리바이는 모두 확실치 못했다. 홀로 집에서 계셨다는 분들이 대다수였으니. 간단한 질문들을 마친 수홍이 살짝 고개를 까닥하며 수고하셨습니다. 라는 간단한 인사를 하자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급하게 집으로 들어가는 박 씨를 본 수홍의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된 건지 수첩을 꺼내 박 씨에다 별표를 몇 개나 그린 수홍은 다시 오토바이에 몸을 실었다. 드디어 한 집 남았다. 한 집밖에 안 남았다는 생각에 절로 미소가 나와 콧노래까지 부르며 오토바이를 몰던 수홍이 멈춘 곳은 뭔가 을씨년스럽게 잔뜩 자란 넝쿨이 온 벽을 뒤덮고 있는 집 앞이었다. 몇 번이고 지도를 확인하던 수홍은 여기가 목적지가 맞는다는 것을 깨닫고는 살짝 겁먹은 표정으로 대문을 두드렸다.

 

계십니까!”

 

곧 무표정, 아니 화났다고 하는 편에 가까운 얼굴을 한 남자가 대문을 살짝 열어보였다.

 

김무한씨 맞으시죠. 경찰입니.”

아요. 무슨 일이오.”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말꼬리를 잘라먹고는 신경질적으로 대답하는 김 씨에 수홍의 얼굴에 당황스러운 기색이 떠올랐다. 수홍을 한번 눈으로 스캔하더니 혀를 차는 김 씨의 행동에 수홍이 더욱 당황한 것은 말 할 필요도 없고.

 

보나마자 저, 그 일 때문에 온 것 같은데. 난 경찰이 제일 싫고, 대답해 줄 것도 없고 대답할 의무도 없으니 다시는 찾아오지 마쇼.”

 

수홍이 미처 뭐라 할 틈도 없이 자기 할 말만 하고는 문을 쾅 닫아버리는 김 씨에 벙진 표정으로 있던 수홍이 뒤늦게 신경질을 내며 발을 쾅 굴렀다. 무슨 저런 사람이 다 있어! 지나가다 봤을 때 제 인사를 고의로 무시하는 게 보이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한참을 씩씩거리던 수홍은 수첩에 김씨, 조사에 응하지 않음. 을 적고서는 신경질적으로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

 

수홍의 수첩을 건네받은 도혁의 표정이 어두웠다. 아마 쓸 만한 정보가 없어서겠지.

 

“CCTV를 확인 해봤는데, 몇 대 없어서 그런지 피해자도, 가해자로 보이는 사람도 하나도 안 찍혔더라. 네가 아까 말한 그 날 그 여자 부축한 거랑, 농락당한 거 빼곤.”

 

도혁의 말에 수홍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런 수홍을 바라보던 도혁이 한숨을 쉬더니 자신의 머리를 감싸 안았다. , 이놈의 촌구석은 왜 CCTV도 없어가지고는. 분명 자신이 본디 일하던 곳 같았으면 이미 CCTV 먼저 확인할 수 있었을 터.

 

형님이 있던 곳은 CCTV가 많았죠?”

. 평소엔 쓸데없이 많다 투덜거렸는데 여기는 존나게 없어서 탈이네.”

 

도혁이 터지기 일보직전임을 알아챈 수홍이 급하게 커피포트에 물을 올렸다. 물이 끓는 소리와 함께 도혁의 머리도 점점 아파오기 시작했다.

 

#3 : 123

이제껏 적은 것을 검토하던 도혁의 귀에 수홍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오늘 나온 부검결과를 가지고 온 거겠지.

 

시체에서 정액이나 다른 DNA는 발견되지 않았대요. 제가 깜빡하고 장갑을 끼지 않아서 지문 몇 개 남은 것 빼고는.. 난도질은 죽고 나서 한거라네요. 살아있을 때 말고.”

 

자신의 잘못을 아는 건지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는 수홍에 수첩만 주시하던 도혁의 고개가 절로 들렸다. 살아있을 때 말고, 죽었을 때? 왜 하필?

 

양심에 찔렸던 건가, 아니면 뭐 표식이라도 남겨두고 싶었나?”

 

도혁의 말에 어깨를 으쓱하던 수홍이 도혁의 앞에 서류뭉치들을 내려놓았다. 꽤 많은 양의 서류들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 날카로운 눈빛으로 서류를 집어 살펴보던 도혁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런 도혁의 모습에 뒷머리를 긁적이던 수홍이 도혁의 앞에 시체에 있었던 상처를 여러 각도에서 찍은 사진들을 내려놓았다.

 

꽤 날카로운 물건에 찔린 것 같고, 정확히 급소를 한 번에 찔러 넣었대요.”

급소.”

 

중얼거리던 도혁이 수첩에 급소라는 글자를 적어 넣었다. 정확히 급소를 한 번에 찔렀다. 이 말은 즉슨, 사람의 급소가 정확히 어딘지 알고, 계획적으로 범행을 준비했다는 말이 된다. 그 자리에서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으면 한 번에 찔러 넣진 못했을 터이니. 연필 뒤꽁지를 잘근잘근 씹으며 고민하는 도혁의 앞에 수홍이 다른 사진들을 내려놓았다.

 

별다른 타박상이나, 저항의 흔적, 묶어놓은 흔적 같은 것도 없어서 면식범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어요.”

 

수홍의 말을 듣던 도혁이 이번엔 급소라는 글자 옆에 면식범이라는 글자를 적어 넣었다. 가만, 이런 사건이 옛날에도 있었다고 한 것 같은데. 수첩에 적은 단어들을 쭉 훑어보던 도혁이 자신이 이곳에 처음 왔을 때 읽었던 사건 파일들을 머릿속에서 되짚었다.

 

수홍아.”

, 형님.”
, 옛날에 일어난 살인사건 모아둔 파일 가져와 봐.”

 

도혁의 말에 곧장 서류철을 뒤지던 수홍이 한 파일을 꺼내 도혁에게 내밀었다. 파일을 수홍에게 받아 한 장 한 장 빠르게 넘겨나가던 도혁이 곧 자신의 머릿속에 스쳐간 사건을 발견한 건지 넘기던 손짓을 멈칫하고서는 파일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사건이 자세히 기록된 페이지를 꼼꼼히 읽어보던 도혁이 수첩에 빠르게 글자를 적어 내려갔다. 면식범, 난도질, 오른팔, 급소, 날카로운 물건, 발견되지 않은 DNA. 이번 사건과 동일한 수법이었다. 다른 게 하나 있다면, 전 피해자는 남성이라는 것 뿐.

 

넌 이 사건 때 여기 있었지?”

 

파일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도혁이 한참만에야 입을 뗐다. 한참을 아무 말 없는 도혁에 눈치만 보고 있던 수홍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때 죽은 사람 누구였는지 기억 나?”

 

죽은 사람이라. 기억을 되짚는 건지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손가락으로 책상만 두들기는 수홍에 도혁은 혹시 기억에 도움이 될까 하여 수홍에게 파일을 넘겨주었다. 파일을 받아들고서도 한참을 말이 없던 수홍이 자신 없다는 투로 입을 열었다.

 

, ... 아마 주변 여학교에서 항의가 빗발치듯 들어온 놈일 겁니다.”

여학교에서? 항의가?”

 

파일을 몇 장 넘기며 사진들을 더 보다 이내 그 사람이 맞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던 수홍이 다시금 도혁에게 파일을 넘겨주며 말을 이어나갔다.

 

. 여학생들이 등교하는 골목에 앉아 음흉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봤다며 신고가 많이 들어왔었어요. 실제로 성추행 당했다는 신고도 몇 번 들어왔고... 김 씨네 따님도 당했다고 그랬는데, 증거가 없어서 못 잡았죠."

 

이전에 죽은 사람은 성추행범, 이번에 죽은 사람은 꽃뱀이라. 말없이 한참을 생각하며 연필 뒤꽁지만 잘근잘근 씹어대는 도혁을 보던 수홍이 저러다 또 머리가 터지겠다 싶었는지 커피포트에 물을 올렸다. 턱을 괴고 멍하니 앞을 주시하며 생각하던 도혁은 정리가 필요해진건지 수첩을 펼쳐 깨끗한 면을 북 찢어내고서 이제껏 알았던 모든 단서들을 써내려갔다. 오른팔, 면식범, 날카로운 것, 급소, 꽃뱀, 성추행범. 그러고서는 단서들 옆에 자신이 들었던 의문을 적어 내렸다. 오른팔-왜 하필 오른팔일까? 여기선 두 가지 가설을 세울 수 있었다. 하나는 범인의 오른팔에 뭔가 있다는 것. 다른 하나는 죽은 사람들 둘 다 오른손잡이였다는 것. , 생활의 편리함을 앗아가고 싶었던 게 아닐까. 면식범-남자와 여자. 둘 다 누군가가 해치려고 작정했다면 충분한 이유가 있을법한 사람들이었다. 고로 사람에 대한 경계도 꽤나 많았을 터인데. 저항 한번 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 제일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었다. 급소-아까도 생각했던 것이지만, 일반 사람이 급소를 정확하게 알고 그 곳을 한 치의 실수도 없이 정확하게 찔러 넣을 수 있을까? 급소에 몇 번이고 동그라미를 치며 고민하던 도혁의 시선이 꽃뱀과 성추행범을 적은 글자로 옮겨갔다. 우연의 일치로 죽은 두 사람이 전부 범죄자라고 부를만한 사람이었던 걸까? 그게 아니라면? 연필 뒤꽁지를 연신 잘근잘근 씹어대던 도혁이 순간 든 생각에 멈칫 하고서는 낮게 수홍을 불렀다.

 

수홍아.”

 

마침 커피가 다 끓었던 건지 도혁의 앞에 커피를 내려놓고는 자신의 커피도 이제 막 타려던 수홍이 도혁의 부름에 왜 불렀냐는 듯 눈을 크게 뜨며 도혁을 바라보았다. 수홍을 불러놓고 한참동안이나 말이 없던 도혁이 고개를 들고서 날카로운 눈빛으로 수홍과 눈을 마주쳤다.

 

, 다크 히어로라고 아냐?”

 

자신의 커피를 타던 수홍의 손이 멈칫했다. 묘한 표정으로 변한 수홍과 도혁의 시선이 공중에서 어지럽게 얽혔다.

 

#4 : 다시, 1130.

침대에서 눈을 뜬 수홍이 기지개를 폈다. 뒷머리를 긁적이며 아직 잠이 덜 깬 건지 연신 눈만 깜빡이던 수홍의 시선이 달력으로 옮겨갔다. 1130. 날짜를 확인하고서는 벽에 걸린 경찰복을 느릿느릿 입던 수홍의 핸드폰이 울렸다. 아마 메시지라 온 것이라. 하지만 문자가 오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옷매무새를 다듬던 수홍은 메시지가 온지 30분만에야 핸드폰을 들어 문자를 확인하였다.

 

[오빠, 오늘 만나는 거 알지?]

 

척 보기에도 교태가 잔뜩 묻은 메시지에 잠깐 피식 웃던 수홍은 짧게 []이라고 답장을 보내고서는 다시 거울 앞에 섰다. 다른 사람에게 꼬리를 쳐 가정을 파탄내게 한 것도 모자라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이렇게 꼬리를 치고 다닌다니. 낮게 중얼거리던 수홍이 삐친 머리를 침을 발라 쓸어내린 다음 경찰 모자를 바르게 쓰고서는 뿌듯한 표정으로 거울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옷매무새가 이제야 마음에 들었는지 미소를 띄던 수홍이 책상 위에 놓여있던 나이프를 들어 주머니에 넣고서는 낮게 중얼거리며 집을 나섰다.

 

심판의 시간이야.”

 

 

다크 히어로 : 악에 대항하기 위해서라면 모든 수단이 용납된다는 히어로.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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