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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상반기 신인발굴]_수필_한나래_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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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304회 작성일 17-03-09 02:12

본문

<수필부문>



성명: 한나래

성별: 여

연령:  32

주소: 부산시 북구 금곡대로 166 롯데캐슬카이저 102-2502 

연락처: 010-5113-1422

 





 


나는 시위에 참여하지 않았다

    

 

민주 항쟁 열사들의 이야기들이 포털 사이트에 막 올라오고 있다. 열사의 기일이기도 하지만, 고문을 받고 돌아가신 이야기가 올라오면서 지금과 연결해 무언가를 쓰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솔직히 나는 그 때의 일과 지금이 무슨 연관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우리가 지금 민주 항쟁을 하고 있는 것인가? 어떤 민주 항쟁을 하고 있는 것인가?

지금 우리가 불만을 품고 있는 것은, 국정 농단과 관련하여 정경유착과 그로 인해 공평하지 않았던 인사권에 대한 것에 있다. 여기까지가 드러난 것이다. 기회의 불균등이라기보다 돈과 개인 취향에 의한 기회부여가 더 정확하겠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껍데기가 민주주의이기 때문에 형식상 갖추고 있는 것은 다 갖추고 있다. 문제는 그 속에 관련된 것이 더럽고, 멍청하고, 불공평하다는 것에 사람들은 분노하였다. 자신들에게도 피해가 온 것 같은데 어떻게 어디를 찔러야할지 잘 모른다. 항상 흐지부지하게 끝나거나 밥그릇이 안정되면 거짓말처럼 움직임들을 멈추고 덮어놓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힘없는 자들에게는 암묵적 보복들이 있어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줄 안다. 이 현상들이 과연 윗선들만의 문제일까?

평화 시위인 것은 좋다. 평화적으로 모임을 갖는 것도 좋다. 평화적으로 모이고, 평화적으로 다 같이 먹물을 칠하는 행위도 좋다. 그런데, 사실 사람들은 아무도 말을 하고 있지 않다. 같은 말만 뻐꾸기처럼 외치고 있지 촌철살인과 같은 경우들이 없다. 아무도 자신은 피해를 입었다고 나오는 사람들이 없다.

'내가 이런 피해를 입었습니다.' 라는 말로 시작하여 담담히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자들은 보지 못했다. 가장 많은 피해를 입었을 회사원들은 정작 가만히 있다. 아마도 똥이 더러워 피한 사람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너무 익숙하고 당연하게 더러운 세상이므로 그들은 받아들이고 또 그들만의 삶을 살고 있겠지. 정면으로 똥을 맞는 건 그렇게 좋은 기억은 아니었다. 내가 이해를 못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일을 하다가 나온 사람이다. 일을 그만두고 지금 공부를 하는 친구들, 일을 그만두고 개인 사업을 준비하거나 말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일하지 않기 위해서 개별 자격증을 준비하는 친구들, 본연의 재능을 갈고 닦아 시작하려는 나와 다른 친구들까지. 나와 그들은 차마 탄핵 시위장에 나가서 탄핵을 외치지 못하겠다. 탄핵을 외치지 않는다.

? 지금 이야기하면 안 될 것 같기 때문이다. 아무리 뼈라 할지언정, 뼈는 다 맞춰져야 돌아가는 것이지, 흩어진 뼈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지금의 시위는 엄청난 떨림이 있다. 듣기 좋은 소음만 있고 소리가 없다.

이 큰 살들의 떨림에 뼈가 없다. 뼈도 없고, 근육도 없다.

과거에 나는 뼈가 다 갈릴 때까지 열심히 일하고 나의 소리를 낸 대가로 뼈가 여러 번 부서졌다. 뼈 혼자 달리려고 했을 때, 뼈는 제 혼자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는 것을 그 때 알았다. 나는 내 살을 불렸다. 운동을 했다. 근육을 만들고, 뼈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한 사람의 뼈는 쉽게 부러졌다. 그게 내가 경험한 대기업이었고, 사람이 많은 회사였다. 아주 위에서 나를 한 번 톡! 건드리도록 만들면, 나는 악! 소리를 내면서 눈에 피를 줄줄 흘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나를 운동시켜주고, 나의 살을 붙여주는 사람들은 같은 돈을 받고 일을 하는 동료들이었고, 나에게 더러우면 피하라고 걱정을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가장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더러우면 그냥 피하라고 충고하기 때문이었다.

결국에는 그들의 걱정과 충고가 아무 소용이 없어지게 된 것은, 내가 바보라서, 사회생활이 다 그런 것인지 잘 몰라서는 아니다. 그러기에 나는 지독한 능구렁이의 가면을 쓰고 살았었음을 고백한다. 나는 무식하여 소리를 낸 것이 아니다. 어쩌면 내가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구조를 파악하고 문제를 잡아내는 사람이어서 그랬는지는 모른다. 이런 내가 그들에겐 생소할 수밖에 없었을 거다. , 아무것도 없는 내가 그렇게 본질을 강조했는지 그들은 의아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반응들을 예상하지 못 했던 것도 아니다. 참말로 무식해서 한 일이 아니다. 이렇게 살다가는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아니 당장 사랑하는 나 자신부터, 나의 10년이, 나의 20년을 그릴 수가 없었다. 그 곳에서는,그 곳에 있던 내 모습으로는 그려지지 않았다. 그 시기에, 나만 그럴 수도 있는 것이었다. 혹자는 나만 그런 것이란다. 고뇌의 밤이 해를 넘기고, 결국 나는, 나만, 혼자 나오기로 결심을 했다. 나 혼자 평생 엉뚱한 세상에서 살고 싶지는 않았다. 중간에 누가 노조를 들어가 보라고 했는데, 나는 노조를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다. 당시 내가 있던 곳의 노조는 본질을 잃고 또 다른 이익단체로 변질되어 있었다. 그들의 행태가 장기적인 안목으로 보았을 땐 회사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니었다. 내 인생과, 내 회사와, 내 나라가 같이 맞물려 성장해 가기를 바랐다. 어느 하나가 엉뚱한 방향으로 설정이 되면 나의 인생은 정지하여 삐걱댈 수밖에 없었다.

사회생활을 막 시작한 사람들이 9라고 한다면 가장 위가 1이 된다. 현재 시위에 나가있는 사람들은 6정도부터 9까지의 사람들이, 1을 탄핵하기 위하여 시위에 참석하고 있다. 23이 열심히 개인 밥그릇 싸움하는 거야 익숙한 것이라 치더라도, 열쇠를 들고 있는 45는 자기들이 고생한 것이 있으므로, 중간 이상은 가고 있으므로 입을 쏙 다물고 있다. 1~9까지, 각각의 내부에는 또 세부적인 분류가 있고, 그 각각의 기준들로부터 1부터 9까지 또 나뉘게 되어있다. 69 안에서의 상위층, 보이는 자들은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그것이 지금 이 탄핵 시위가 물렁물렁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23의 사람들은 69의 사람들을 열심히 이용하고 있다. 열심히 몰아가고 있으며, 열심히 싸워주기를 너무너무 고대하고 감사하고 있을 것이다. 그냥 같은 말만 함께 반복하면서 탄핵만을 외치라고 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좋아하는 대중적인 엔터테인들을 넣어서 그 시위에 참여하도록 하고 있다. 나는 솔직히 그게 평화시위인지도 잘 모르겠다. 이 정도까지 온 것만 해도 다행인 줄 알아! 라고 한다면 뭐 그 정도도 맞는다고 하겠다. 그럼에도 이것이 진보적으로 발전한 시위인지 퇴보한 것인지 다시 한 번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뼈들만 부딪혔던 과거의 시위에서는 충돌도 많았고 피도 철철 넘쳤다. 거기서 분명 바뀌어야 했던 것은, 피와 슬픔을 방지해야하는 것이었다. 뼈에 근육과 살을 붙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반대로 뼈가 없고 살만 있다. 살만 떨리고 있다.

어쩌면 이제 뼈들이 움직여야 할 차례가 아닌가 한다. 잔뼈들의 출연들과 굵은 뼈들의 출연이 필요하지 않나 한다. 그리고 그 뼈들을 움직이는 것은, 살들의 외침은 분명 아닐 것이다. 어떤 것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지만 사회생활의 경험이 있었던 사람들의 외침이 필요하다. 이 나라의 기업을, 이 나라의 사회생활을, 적나라하게 느끼고 온몸에 소름이 돋아 헛구역질을 하다 적응을 하였지만, 용기를 내어 소리를 내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우리의 현장에는, 듣기 좋은 소음만 있고 소리가 없다.









무의식중에 살아있는 것들


 

억지로 내려놓은 것은 내 욕심을 위해 머리로 내려놓은 것은 사실은 내려놓은 것이 아니었다.

머리로 생각하고 기억을 더듬는다. , 이러면 채워졌었지. 억지로 파고, 파고, 그렇게 나를 억지로 벗겨내고 드러내었는데, 사실은 나를 더 옭아매는 일이었다.

사실은 내려놓은 것이 아니어서 사실은 뭘 내려놓을지 몰라서.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내 욕심 때문에, 제자리로 돌아간다. 너무 많이 슬프고 아팠으니 된 것이겠지, 괜찮겠지. 그래서 몇 번이고 제자리로 돌아가서 몇 번을 돌아왔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다 아는 척, 다 성숙한 척, 다시 나의 틀로 사람들을 보면서, 웃으면서. 감사합니다, 감사한 마음을 갖자, 그래야지 또 지칠 때까지 힘이 나지.

마음이 닫힌 그대로인지도 모르고. 그 자리에서 도는지도 모르고. 다시 돌아가서 벗겨낼 것들을 켜켜이 쌓고 있는 건지도 모르고.

 

그러다 무장해제가 되는 것은, 내가 원해서 그런 것은 아니고, 어쩔 수 없이 우연인 듯 필연인 듯 이루어진다. 물론 그게 끝은 아니다. 거기서 다시 시작일 뿐. 계속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야하고, 좋은 사람들만 만나서는 안 되고, 보기 싫은 사람도 만나야하고, 나에게 냉정한 사람도 만나야하고. 하지만 억지로 찾아 다녀서는 안 된다. 그대로 놔둬야 한다.

 

부정성을 순간적으로 덮어 밝아지는 방법은 나에겐 너무도 쉬운 길이었다. 그 습관이 만성이 되었음을 인식하여 같은 장면에는 다른 방법을 써야 한다. 어떻게든 병든 만성을 극복하여 나은 삶을 살겠다는 줄을 잡고 있어야 한다.

예전처럼 의식적으로 무언가를 찾아다니고, 의식적으로 무언가를 바꾸고, 의식적으로 무언가에 억지를 부려서도 안 된다. 기억은 내 것이니까, 반복되면 내 문제임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돌아가지 않으려는 그 줄을 잡고 이리 저리 휘둘리고 휩쓸리는 자체가 견뎌내기 참 힘들다, 하지만 포기하면 다시 처음과 똑같이 돌아갈 것이다.

 

내가 사람을 찾아다닐 땐 몰랐는데, 사람이 나를 찾아올 땐 몰랐는데. 머리로 의식하면서도 나를 싸매면서, 입만 살아있을 땐 몰랐는데. 의식적인 틀을 하나씩 벗고, 무의식에 이루어지는 그 시간. 그 시간에 나를 정말 당황스럽게 하고 평정을 잃게 만드는 것들. 그 것이었다. 무의식에서 끊임없이 저항하고 부정하던 그 것.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겠다던, 내가 진정 싸워야 할 핵심. 진짜 문제. 한 번을 턱! 하고 맞아도, 아직 끝이 아님이 느껴졌다. 나를 잠시 놓고, 나를 기다리다가도, 끝이 난 것 같았는데도, 계속 한다. 괜찮아, 또 기다린다. 끝까지 다 흔들릴 때까지. 끝까지 전부, 전부 털릴 때까지…….

어느 순간, 이거였구나. 여기에 이렇게 무심하게 붙어있었구나. 그래서 그랬구나. 그리고 나는 그것을 그대로 눈으로 볼 수 있도록 종이에 적어 내려간다. 그려나간다.

숨을 막던 그 것이 시간을 통과하여 하나씩 뚫려간다.

 

삶의 본질은 지난 역사 안에는 없다. 삶은 되돌아가기나 도돌이표가 아니다. 그 위로 날아가고, 나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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