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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상반기 신인발굴]_시_선명규_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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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시 부문>
성명: 선명규
성별: 남
연령: 21
주소: 부산광역시 사하구 당리동 제석로 127 혜성아파트 101동 506호
연락처: 010-9877-5349
<스무 살 나의 회고록>
3년 전, 상실의 파도가 밀려왔을 때
나는 그것을 막을 수 없었기에
아무렇지도 않은 마냥 순순히 잠기었다.
휩쓸려 나간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나는 여리디 여렸던 그녀의 비겁한 도피에
그 어떠한 상처도 받지 않았다고 외쳐댔다.
3개월 전, 나는 침잠하고 침잠하여
마침내 그 어떠한 빛도 닿지 못하는
심연 속의 바닥과 등을 맞대었다.
그 동안 작별조차 고하지 않았던
그녀를 원망한 나의 죄는 씻기어져
부디 안녕만을 바랄 뿐이었다.
이곳은 자궁 속, 나는 태초의 모습으로 회귀하여
정성스레 나의 무덤을 지었다.
한동안 유기체도 무기체도 아닌 채로 흔들리다.
문득, 저 멀리 세이렌의 아름다운 노랫소리
수면 위의 그 흉악한 파동은 굴절된 모습으로
나를 홀려오고, 나의 육신은 뭍으로 부상한다.
날카로운 바람이 나를 할퀸다 한 대도
출산되는 아기에게는 거부권이 없으니까.
2013.날짜미상
<서울,2013 겨울>
밤에 젖어들어 깊어질수록 옥죄어 온다.
골목길의 깨진 가로등은 관심을 못받은지 오래다.
그 밑엔 한 때, 누군가의 것이었을 부스러기가 담긴
까만 비닐봉지만이 불법적으로 기대어있다.
누군가를 기약 없이 기다림은 그런 것인가 보다.
서울은 별이 없어 올려다 볼 것이 없다.
그래서 하얀 입김을 공기방울 마냥 올려보냈다.
귀가 아릿해져온다.
끝내 변사체로 발견되지는 않을까.
2016.09,11 (10:56) a.m
<프로메테우스>
도대체 신이시여
당신은 단 한번이라도
우리가 고뇌로 몸부림치며 흘린 눈물을
닦아주신 적이 있으셨습니까.
저희를 구태여 무른 점토로 빚어내어
당신을 부르짖게 창조하신 저의는 무엇입니까.
부디 당신이 태초에 어루만질 적에 남은 지문에는
조금이라도 사랑의 기척이 있었기를
털가죽을 기꺼이 벗어던지고
열매를 딴 아담과 하와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 덕분에 우리는 선천적 미숙아
채 개월 수도 채우지도 못하고
좁은 산도를 기어 나와 차가운 바람과
여린 살갗을 맞댄 작은 등불의 동물
아궁이에서 빛나는 성스러운 불꽃은
자유를 위한 투쟁 속의 자랑스러운 전리품.
제가 얻은 그 보물을 죄로써 물들인 판도라가 가련하다.
제가 지핀 모닥불이 투영시킨
꼬리를 늘어뜨린 혜성과 찢어질듯 한 천둥을 두려워하고
찢어발기는 발톱과 거대한 송곳니를 동경하며
열등감으로 가득 차 추악해져야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어미의 젖을 탐하고자 하는 갓난 아기마냥
사랑을 갈구하는 사춘기 아이처럼
당신의 눈길 한번 받고자 삐뚤어져 저지르는 만행을 보소서.
그조차도 방관하는 이유는 또 무엇입니까.
부디 이제는 당신이 아닌 서로를 사랑케 하소서.
<마라토너>
숨이 가쁘다.
가슴을 관통하는 헐떡임이
너무나도 무겁다.
그럼에도
한발을 딛거든
반대 발은 내딛어야 한다.
그 과업이
언뜻 숭고해 보이지만
그저 비겁함의 연속인 것을
내 어찌 모를까.
온 몸에 난 생채기에서
소금 꽃이 피어났다.
땀 비린내에 구역질이 나
폐를 까뒤집어
빨랫줄에 널었으나
마르기를 기다릴 새도 없이
목 뒤로 삼켜낸다.
현재가 도는 궤도는
끝과 끝이 맞닿은 타원형
달리고 달려야 제자리인 삶의
출발선은 언제나 매순간.
격렬하게 뛰는 심장이
그 무엇도 알지 못하지만
멈출 수는 없기에
뜀박질을 계속하듯.
2015.날짜미상
<노스탤지어>
빗소리가 유난히 선명하고 기분 좋을 만큼만 적셔주는 날
길을 걷다 우연히 꽃가게에서 고개를 내민 물망초와 눈이 마주쳤다.
새초롬히 나를 바라보다 이내, 빗물에 푸른빛 꽃잎을 적시는 데에만 열중한다.
나도 그 옆으로 가 투명한 비닐우산을 접고는 비가 내림을 느낀다.
한없이 서정적이고만 싶은 날, 잠깐 그리운 모든 것을 되돌아본다.
아! 너는 아직도 그 때 그 자리에 있었구나.
내가 잊고자 했던 만큼 깊숙이 박히어 너는 그곳에서 뿌리를 내렸던 것이구나.
이제는 망망연히 바라볼 수밖에 없는 수평선 같은 이여.
그립고 그리운 너는 그 너머에서 나에게 손을 흔든다.
나는 눈을 감고, 부서지는 파도소리가 다시금 빗소리가 되어온다.
걸어야할 길은 멀고멀었는데 몸이 신열로 떨려온다.
물망초가 나를 걱정스레 바라보며 고이 접어놓은 우산을 건넸다.
오래된 책장을 펴듯 우산을 펼쳐들었다.
2016.07.15. (01:43) p.m
<2016년 7월, 반지를 찾아주세요>
우리라고 불렀던 그 얇은 실이 끊어지고
다시 비루한 내가 되었을 때 위로해 준 것은
너무도 아프게 나를 옥죄고 있던 금고아였다.
이름을 잃어버린 그 손가락이 못된 마음을 품었는지는 몰라도
그것은 흔적이었으니까, 당신의 향기를 품었었기에…….
하지만 슬프게도 그 아픔을 벗어
첫 번째 서랍 구석으로 밀어두는 것은 나에게 강요된 숙제였다.
어느 새부터인지도 모르는 채 반쪽짜리 우리는 미련이라는 이름으로 덧쓰여져
올가미에 매달린 채 침잠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숨바꼭질을 하듯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고 살며시 눈을 감았다.
그 때, 나는 첫사랑의 반지를 잃어버렸다.
2016.05.28 (12:54) a.m
<적막을 반추하며>
어쩌면 나는 그 무엇도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저 응어리진 이 가슴에 속이 메스꺼울 뿐입니다.
결론인지 서론인지도 모를
새벽을 비추는 형광등은 쓸데없이 눈부시게 밝습니다.
내 손에는 펜 한 자루.
이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를 한줄 적고자 앉았지만, 하염없이 거울을
그리고 이 종이를 제외한 모든 것들을 뚫어져라 바라봅니다.
이 방에 비가 내리면 좋겠습니다.
정말 어쩌면 그저 내 손을 잡아줄
누군가를 필요로 하고 있을 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2016.12.13 (8:27) p.m
<어린왕자>
한없이 누군가의 등 뒤에 숨고 싶은 때가 있다.
나로 향하는 그 모든 시선에
제멋대로 적의를 집어 담아 스스로 상처 입은
오늘 같은 날, 나는 달로 향한다.
나는 달의 뒷면에 숨어 마주보기를 거부했다.
두려움이라는 꽃을 애지중지하는 어린왕자.
꽃잎은 결결이 흐르는 자기혐오 탓에
본래 색을 알 수가 없다.
이 달나라는 황량하고 메말랐지만
아무도 없기에 왕자는 안주하고 만다.
그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 이곳에서 결코 왕이 되지 못한다.
비참하고 미천한 그 생의 가장 큰 비극은
세계와 나를, 그리고 어머니와 나를
분리해버렸던 그 순간일테지.
땅 속에 고개를 처박은 타조마냥
아직도 그 젖가슴에 얼굴을 묻고
고개를 들기를 거부한 채
그 스스로가 태어났던 달걀조각을 움켜쥐고서
내가 원한 것이 아니라 소리치며
그림자 괴물에게 먹힐 날을 기다린다.
2017.01.01 (02:49) a.m
<촛불에 홀리어>
아, 이렇게 답답할 수가!
이것은 비극이 아닐 수가 없다.
400년 전, 셰익스피어는 인생이라는 희극을
비극의 꼬챙이로 꿰어버렸을 때, 분명 누군가는 그를 질투했을 터다.
나는 그 극을 입 밖으로 꺼낼 재간조차 없어
이리도 분노하고, 질투하니
마치 제 원하는 것을 가지지 못해 분해하는 어린아이와도 같구나.
그 꼴을 스스로가 보기 부끄러워
눈을 가리듯 불을 껐다.
대신, 눈을 가린 손의 손가락을 살짝 벌리듯 촛불을 켰다.
살짝 벌린 틈으로 몰려드는 빛은 강렬하다.
나는 한참동안 그 애타게, 혹은 격렬하게
흔들리는 촛불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일렁임은 불꽃이다.
하지만 왜 꽃이라 명명하는가.
그것은 꽃이라기보다는 그저 낱장의 것이다.
고작 한 장의 꽃잎으로 홀리고 눈을 멀게 하는
생의 흔들림과도 같은 모양새다.
그렇다면 이 감각의 상실은 벌이다.
나의 그릇으로는 낙숫물조차 채 담지 못하고 넘치기에
이 쓸모없는 시야를 연소시킨 것이다.
어설픈 그 형상이
절망으로 또는 사죄로 꿇은 무릎에
애꿎은 민달팽이 한 마리만 즈려밟히어
끔찍이도 내장을 드러낸 채
봄철이 지난 후의 벚꽃 잎처럼
하지만 곧 사금파리 하나가 반론을 내놓는다.
그 상실은, 이 검은 글씨를 보지 못하는 것은 축복이지 않느냐.
비로소 보인다는 감각의 경계를 짓이기고는
투박하지만 자유로워진 너의 탈옥수들을 보아라.
눈치를 보지 않고 어둠이 잠긴 백지를 누비는
이 언어들이 마치 태초로 돌아간 듯 순수해졌지 않느냐.
그러니 그것은, 단지 어느 깊은 밤
언뜻 보인 너무나도 매혹적인 벚꽃 잎 한 장에
홀린 것이리라, 그리 외친다.
과거, 모든 것을 비춘다는 그 허언 아래에서
숨이 막혔던 이유가 있다.
침잠되어 차마 보지 못했던
수면 위로 둥둥 뜬 기름 같은
나의 공상이 바로 그것이다.
때문에 나의 방은 먼지가 가득했다.
책장에도 바닥에도
내가 깔고 누운 침대마저도
그것은 진득한 자기혐오였다.
오롯이 서있었다면 도망쳐 달리기라도 했을 채찍질은
무자비하게도 무력히 누워있는 나에게
긴 자상을 남겼다.
고문관의 얼굴은 나의 얼굴인 듯 하기도 하고
채 빛을 보지 못한 동대同代의 내 혈육 같기도 하였다.
지금, 나는 고민한다.
나는 충분히 흔들리었는가.
꽃잎하나를 피워내는 데에 나는 충분히 아파하였는가.
나는 알지 못한다.
허나, 긴 자상위로 촛농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 굽은 척추를 곧게 펴 검게 칠한다면,
분명 아름다운 촛불이 될 테지.
2016.06.28. (11:15) a.m
<어느 이름 모를 들꽃이 사그라진 꽃들에게>
피어나지도 못한 채
차가운 바람에
차가운 빗물에
사그라진 꽃들아
너희는 지금쯤
어디를 가고 있을까.
온몸을 수그러뜨린
너희의 부모는
아직도 눈물을 흘리우는데
충분히 슬퍼하지도 못했건만
세상은 점차 눈을 돌리네.
나는 이름 모를 들꽃
꽃은 흔들리며 피워내는 것,
하지만 나는 충분히 흔들리었는가.
사그라진 꽃들아
너희가 밝은 꽃을 피우려 했던
이 들판은 조금 이상하다.
바람 한 점 없는 이곳에서
흔들리는 것은 무슨 이치일까.
천연덕스러운 꽃봉오리를 매단 채
떨어져 한줌 흙이 된
너희 몫까지의 시선으로 보는
이 세계는 조금 무섭더구나.
무풍 속에서 꽃은 숨긴 채
벌벌 떠는 풀들은
그래서 그런 것일까.
내가 바란 고운 향기는
언제부터 의무가 되어버렸을까
두려워 떠는 꽃들은
제 꽃잎보다 무겁게
향기를 내뿜고
그 탓에 너 나 할 것 없이
다쳐 아파한다.
사그라진 꽃들아
이 세상은 빛으로
가득 차 있지만
슬픔도 만연한 세상이더구나.
과연 이 짧은
들꽃의 생을
마감할 적에 나는
플로라의 정원에 사뿐히 주저앉아
너무나도 힘들고 슬펐지만
아름다운 세상이었노라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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