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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상반기 신인발굴]_소설_서용혁_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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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344회 작성일 17-04-13 17:19

본문

<소설 부문>


성명: 서용혁

성별: 남

연령: 43세

주소: 서울시 관악구 남현동 1068-4 401호

연락처: 010-5533-2708



 

    




 

< 동거, 맥락 없이 따듯한 >




인생이라는 건 하나의 우주라고 말들 한다. 한 사람에게는 유일무이한 존재감이 있는 절대적 가치를 지닌 무언가다. 문제는 세상이라는 장(場)에는 그 우주가 수 없이도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우주는 그늘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하찮은 존재로 일생을 살아가기도 하고 어떤 우주는 차라리 존재하지 않는 것 보다 못한 존재로 살다가기도 한다. 냉정하지만 아주 소수의 우주만 그 본연의 빛을 드러내며 반짝인다.

그래서 우리가 운명이라고도 칭하는 그 어떤, 세상을 지배하는 법칙을 통해서 미리 구상되어진 서사구조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게 된다.

그 법칙을 받아들여 자기 나름의 피난처를 찾아 세상에서 멀찍이 떨어지면 마음이 편하고 행불행을 구분하려는 저항의 담이 낮아져 마음먹기에 따라서 쉽게 행복도 찾을 수 있다. 문제는 자신만은 마지막까지, 끝까지 특별한 우주이길 바라는 사람은 그 불공평한 세상과 피로감 혹은 일정 부분의 희생을 감수하고 맞서 싸워야한다.

70년 동안을 전쟁을 거듭하며 외로이 싸워 온 노병이 하나 있다.

시골의 꽤 크고 좋은 집에서 혼자 살고 있는 도근이다. 비교적 화려하고 성공적인 인생을 산 그.

그는 누구보다 특별한 인생을 살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과 싸우고 세상과 싸우고 때로는 타인과 싸웠다.

하지만 싸우지 말아야 할 대상과도 싸웠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과 자신의 행복과도 싸웠다. 그것이 잘못된 싸움이라는 것을 아는 데는 예상외로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인생은 무섭도록 흘러갔다. 무자비하게 흘러가는 인생은 언제나 그의 판단 보다 한 수 위였다. 아무런 전조증상도 나타나지 않는 중증의 암처럼 그렇게 시간은 그를, 그와 같은 모든 사람들을 유린한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젊은 패기와 열정으로 달려온 시간이 바로 어제 같은데, 아무 것도 없고 가진 건 젊음 밖에 없다고 달려왔는데, 다른 것들이 다 있는 이 순간엔 그 소중한 젊음이 없으니 무엇이 있어도 그리 기쁘지는 않았다.

마음은 20대의 어느 푸른 날에 혼자 두고 온 것 같은데 몸만 차에 싣고 급출발 해버린...

바래진 풍경을 보고 뒤늦게 마음을 두고 온 걸 알았지만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다.

그렇게 해서 반강제로 끌려 온 세월에서 이제 70년을 넘게 산 사람이 되어버렸다.

서서히 이제는 죽음의 공포가 느껴진다. 점점 하나둘씩 뭔가 꺾어지고 무너져간다.

그를 지탱하는 것은 이 만큼 인생을 살았다는 자부심과 자존감이다.

자신의 성공했던 인생을 뒤돌아보며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웨이’를 나즈막하게 따라 부르는 그는 자신을 방어해줄 마지막 성 안으로 들어와 배수진을 치고 있는 노병이다.

젊었을 때는 모델로, 나이가 들어 모델아카데미 원장 겸 중견모델로 그리고 나아가 모델 협회장과 대학의 모델학과 교수로.

패션이라는, 모델이라는 개념도 제대로 서지 못했을 때부터 시작한 이유로 허허벌판에 선 듯 힘들었지만 그만큼 경쟁자는 적었고 개척할 영토도 많았다.

치열하게 일하고 즐겁게 살았다. 패션업계에 일하면서 수많은 미녀들과 수많은 형식의 사랑을 나누고 꽤 잦았던 크고 작은 경쟁 속에서도 항상 여유 있게 이겨 오며 와인을 즐기고 샴페인도 터뜨렸다. 홀로 씁쓸한 소주를 마시는 전형적인 실망과 좌절의 장면은 그에게 드물었다. 욕심을 부렸어도 분수에 안 맞게 지나치지 않았고 돈과 명예에 집착하지 않고 늘 안전하게 이길 수 있는 싸움만 했던 그였다. 승률은 높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에게도 한 번도 맞붙지 못한 가장 강력한 괴물이 나타났다. 그것은 바로 ‘늙음’이었다.

모든 일을 그만 두고 은퇴했어도 그의 영향력은 쉽게 죽지 않았다. 하지만 그 영향력은 한 해 두 해 시간이 갈수록 줄어만 갔다. 처음엔 매체에 드러나는 비율이 적어지더니 후엔 그런 건 고사하고 명절에 찾아오는 사람이 줄어들었고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고 시골의 저택에 와서 살다보니 이제는 철저히 혼자가 되어 뒷방의 늙은이로 살고 있다. 함께 일하던 그리운 동료들은 불행히도 병상에 있고, 해외에 있거나 천국에 있거나 혹은 지옥에 있거나.

막상 닥치고 보니 생각 보다 이리도 외로운 상황에 빠질 거라는 사실만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외로워 봤자 까짓것 쉽게 넘겨버릴 줄 알았다. 돈만 있으면 외로워도 살 만할 거라 생각했다.

이제는 끝까지 자존심만은 지키자는 마음으로 버티고 있다.

하루를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지낸다. 그러나 그렇게 따분하지는 않다. 외로움을 이겨내려 그 일정에 따라서 하루를 충실하게 살려고 한다.

젊은 시절부터 올빼미 습관 때문에 잠을 일찍 자지 않는다. 영화를 보고 독서를 하다가 새벽 쯤 잠이 들면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더 오래 잠을 못자고 꼭 점심 먹기 전에는 일어난다.

눈 건강을 위해서는 최대한 잠을 많이 자려고 하는데 그것도 마음대로 안 된다.

일어나자마자 간단하게 맨손체조를 하고서 브런치를 준비한다. 예전에 먹던 대로 토스트에 견과류 바나나 그리고 블랙커피 같은 것이다.

아침을 먹으며 인터넷으로 뉴스를 검색해서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본다.

나이가 들었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세상이 썩어 돌아간다는 것과 별의 별 다양하고 개성 있는 미친놈들이 참 많다는 불변의 진리다. 그건 이미 늙어버린 그가 50년 전에 느꼈던 것과 똑같았다. 그 사실만은 아마도 영원한 젊음을 가진 체 끝없이 존재할 것이다.

브런치를 먹고 나면 집 주변을 한 바퀴 돈다. 집 주변은 산과 강으로 둘러싸여 꽤 괜찮은 산책로다. 어떤 코스는 70이 넘은 노인이 걷기엔 벅찰 수도 있지만 도근은 마치 자존심 싸움이라도 하듯이 거침없이 산길을 걷는다.

산책을 마친 도근은 집으로 와서 샤워를 한다. 혼자 살지만 노인네 특유의 냄새가 날 것이라고 생각하면 씻는 것을 게을리 하기가 싫다.

도근은 오후가 되면 집 한 켠 창고로 가서 목공을 하는데 시간을 쏟는다.

그러다 보면 저녁 먹을 시간이 된다. 간단히 먹는 아침 겸 점심에 비해 저녁은 오랜 시간 동안 요리하여 약간은 거하게 먹는 게 특징이다.

미리 마트에서 일주일 치 한꺼번에 구입한 재료로 이것저것 요리를 해 본다. 뭘 해볼까 고민하는 그 시간이 무료한 그에게는 꽤 행복한 시간이다.

저녁을 먹고는 스케줄이 갈린다. 거의 대부분은 그가 좋아하는 TV 프로그램 들을 보는데 시간을 보낸다. 예능 프로그램, 뉴스 그리고 드라마를 이어 보고 그 후에는 교양 프로그램도 이어서 본다.

하지만 그의 마음에 드는 프로그램이 없는 금요일과 일요일은 야간 낚시를 나간다.

밤이 되면 인적이 전혀 없는 이곳에서 혼자 낚시를 한다는 것은 사실 조금은 두려운 일이다.

특히 나이가 들어 자신의 용력(用力)에 자신이 없어진 그는 혹시 돈 많은 노인의 집을 노리고 오는 강도가 올까 나이가 들어갈 때부터 미리 검도를 배웠고 항상 밤낚시 때엔 목검을 가지고 다닌다. 왠지 이것을 지니고 있으면 안심이 됐다.

개를 키울 까도 고민했지만 더러운 것을 싫어하는 그의 성격에는 맞지 않고 결국 아무도 모르게 침대 밑에 숨겨 둔 진검이 그의 진짜 믿는 구석이다.

도시의 혼란스러운 불빛이 없는 이곳의 광경은 말 그대로 신의 작품 이자 자연의 축복과 같다.

하늘에서는 별의 잔치가 벌어진다. 어린 시절 잠시 보았던 그 광경이지만 도시에서 살게 되고서는 60여년을 못 보았던 그 하늘의 광경을 양껏 즐긴다.

하늘에서 시선을 내려 땅을 봐도 호수와 산의 능선들은 아름다운 여인의 옆으로 누운 매끈한 곡선과 그 주변에 놓여 진 값비싼 귀금속들처럼 화려하고 아름답다.

게다가 겨울이 지나면 반딧불들이 연출하는 조명쇼와 귀뚜라미들의 합창은 더욱 운치와 포근함을 더 한다. 낚시 자체의 성과는 둘째 문제다.

그러나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푸르고 투명한 카펫을 깔아 놓은 듯 잔잔한 호수의 표면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찌가 흔들리며 물결이 일 때 느끼는 설렘과 끌어 올렸을 때 상당한 크기를 가진 녀석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의 쾌감은 야간 낚시의 백미다.

금요일이 되어 낚시를 하고 있다. 오늘도 역시 날씨가 좋았다. 낚싯대를 드리워 놓고 별을 바라보며 가지고 나온 포터블 CD 플레이어로 음악을 듣자 만족감이 밀려왔다. 생각했던 것 보다 조금 추운 것을 빼고는 몸 상태도 그렇고 모든 것이 좋았다. 이동용 히터와 플레이어의 볼륨을 조금씩 올려본다.

그러다 그의 귀에 무언가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확실하지는 않았다. 무시하고 계속 커피를 한 모금 마시는데 다시 소리가 들렸다. 바람에 풀들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와는 확실히 다른 이질적인 소리였다. 사람이 걸어오는 소리다. 도근의 피부에서 순간적으로 털이 솟으며 소름이 함께 돋았다.

이 시간에 이곳을 찾아올 사람은 없다. 유일한 가능성은 사람이 없는 포인트를 찾아 온 낚시꾼 정도거나 강도다. 아니면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발소리가 들리면서도 사람이 아닌 종류는 분명 위협적이다.

볼륨을 줄이고 서서히 자신의 목검에 손을 대 본다.

음악을 줄이자 소리는 확실하다. 겨울이 되어 말라버려 건조해진 풀잎에 서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한손에 랜턴을 한손에 목검을 들고 도근은 일어난다. 하필 이럴 때 다리가 뻐근하다. 분명 긴장하진 않았는데…….

자신이 드러나면 더 빨리 공격해 올 수도 있으니 소리가 난 방향으로 조심스럽게 가 본다.

다가갈수록 하나의 사실을 알게 된다. 다가오던 발소리는 이제 꺾어 져서 호수 쪽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나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었다.

결국 조심스럽게 풀숲을 헤쳐 그 소리의 정체를 본다. 그것은 빨간 오리털 파카, 낡고 오래된 옷이라는 것을 패션업계에서 일했던 도근이 쉽게 알아챌 정도의, 그리고 아래에도 싸구려 브랜드의 청바지를 입고 있는 20대 중후반 정도의 여자였다.

얼굴은 전혀 미인형이 아니었다. 짧은 순간이라 자세히 볼 수는 없지만 볼품없게 생긴 평범한 얼굴이었다. 짧은 시선이지만 그의 직업상의 특기였다. 또 평생 남녀 모델들의 몸만 보고 살았기에 한 눈에 옷태로 몸매를 판단하는 그의 눈에 그녀의 몸도 굴곡이라곤 없고 여성미가 전혀 없는 미성숙하고 삐쩍 마른 몸이라는 것을 알아 차렸다.

하지만 정확히는 몰라도 많이 봐도 28살이 체 넘지 않는 것 같은 여자가 왜 호수를 향해 무작정 걸어 들어가는가?

그 의문을 갖고 체 판단해보기도 전에 갑자기 그녀가 호수 안으로 뛰어 들었다.

순간 도근은 자신도 모르게 작게 소리를 냈다. 이 평온히 보이고 겉으로 순한 인상을 풍기는 호수는 사실 섬뜩하게 무서운 수심을 숨기고 있었다.

도근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간다. 그녀의 움직임은 자살을 하려는 게 분명한데 이걸 살려야하는지 두 마음이 싸웠다. 얼마나 죽고 싶으면 저럴까? 인생에 미련을 가지지 않고 자신이 원한다면 죽는 것도 좋은 일이라 생각하는 도근은 그녀가 이해가 됐다. 본인의 선택이라면 존중해야 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자신은 70이 넘게 인생을 살았고 저 여자는 길어봐야 30년도 못 살아보고 죽으려는 것 아닌가?

분명 살려야 될 것 같은데 왜 살렸냐고 원망을 할 까봐 반대로 고민도 됐다.

그냥 그래서 단순하게 생각을 하기로 했다. 왜 내 집 터에서 죽으려 하느냐? 죽으려면 딴 데 가서 죽어!

하지만 고민이 끝나도 그 다음도 문제였다. 어떻게 살려야하나? 그의 나이 든 머리가 오랜만에 분주하게 작동을 시작했다.

자신이 수영을 어느 정도 하지만 그리고 저 여자의 체중은 적어도 50킬로그램 이하가 분명하지만 이 나이에 저 뼈를 에는 물에 들어갔다간 자신이 먼저 죽을 것 같았다.

그러자 마을에서는 유일하게 친하고 집안의 여러 수리 등의 일을 봐주는 전기 공사 사장이 놔둔 낡은 나무배가 생각이 났다.

얼마 전에 그 친구가 혼자서 타고 노를 저어 호수에서 노는 걸 봤으니 분명 자신도 그것을 타고 호수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아직 여자가 호수에 떠서 가라앉았다가 떴다 하는 것이 보인다. 막상 일부러 가라앉으려고 하면 오히려 어렵다. 특히 저런 펑퍼짐한 파카를 입으면 공기가 차서 더 그렇다. 반대로 뜨려고 허우적대면 오히려 가라앉게 되는 것이다. 그게 물의 역설이다.

공기가 들어간 두꺼운 파카가 원치도 않는 튜브 역할을 해준다는 걸 뒤늦게 알고 물에서 파카를 벗으려 하는 여자애를 보고 도근은 빠른 걸음으로 나무배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나마 다행인건 전기공사 사장이 빨랫줄로 육지에 매어 놓았으니 배가 뒤집혀도 잘 붙잡으면 죽을 일은 없을 거라 믿었다.

아직 파카를 못 벗고 있지만 익사하기 전에 저체온증으로 죽을 것 같아서 서둘렀다.

가까스로 배를 끌고 가 그녀 가까이에 간 도근은 추위에 근육이 마비 되 축 늘어져 겨우 얼굴만 드러내고 있는 그녀를 손으로 잡으려다가 배가 뒤집힐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도근은 가지고 있는 노를 들어서 그녀의 파카에 걸었다. 다행히 스스로 벗으려고 해도 어깨에 걸려 벗어지지 않았던 파카가 노에 단단히 걸렸다.

그러고는 한 손으론 호수 밖 나무에 묶어 놓은 줄을 당기기 시작한다.

꽤 힘이 들었다. 하지만 꾸준히 운동을 한 탓에 서서히 뭍으로 배가 향했다.

결국 배에서 내리고 본격적으로 여자를 끌어 당겼다. 이미 추운 날씨에 온 얼굴이 청색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여자를 업어 본다. 축 늘어져서 힘들기는 하지만 다행히 정말 마른 몸이라 무게가 많이 나가지 않았다. 급한 마음에 물건도 다 내팽개치고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들어왔다.

오자마자 일단 보일러부터 최고 온도로 켰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조치가 부족했다.

순간 망설인다. 여자의 옷을 벗겨야 한다. 물론 최소 딸이나 최대 손녀뻘의 여자이고 외모도 느낌도 전혀 ‘그 어떤 쪽’으로 생각이 안 든다. 그래도 뭔가 잘못하는 것 같았다. 수치심을 주게 될 수도 있었고…….

젊은 시절부터 중년 시절까지 그렇게 많은 여자의 옷을 함부로 벗겼던 그가 누군가를 살려야 되는 상황에서도 망설이는 게 조금 헛웃음이 났다.

패션쇼 현장에서 여자 모델이 급한 마음에 실 하나 걸치지 않고 옷을 갈아입는 것도 수없이 봤는데. 그때의 기분으로 물을 먹어 붙어버린 옷을 겨우 겨우 벗겨낸다.

무엇을 이리 못 먹고 살았는지 정말 가냘프고 힘없어 보이는 몸이다. 예전에 극단적으로 마른 여자 모델의 몸을 봤을 때와 비슷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 보다 더 볼품도 없었다.

아무리 낡은 오래 된 옷이지만 청결 상태를 보면 노숙을 한건 아닌데 많이 마른 것을 보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얼른 평소에 아픈 무릎에 대던 핫팩들을 다 꺼내와 몸 여기저기 대고 담요를 가져다가 여러 겹으로 덮었다.

119를 부를 까도 했지만 본의 아니게 공기를 먹어버린 파카 덕분에 물을 거의 먹지 않아 체온 만 높이면 깨어날 것 같았다.

군대에서 전문적이지는 않지만 손재주가 좋다는 이유로 대대급에서 의무병으로 근무한 경험으로 나름 근거 있는 판단이었다.

점점 얼굴빛이 파란색에서 하얗게 더 나아가 분홍색으로 변했다.

그러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가 깨어났다.

여자는 처음에 이곳이 어디인지 두리번거리며 생각하는 눈치였다.

“ 여기가 어디에요? 누구세요? ”

“ 나 집주인이야. 왜 여기서 죽으려고 그래? 여기 내 땅이야 ”

본인이 말하고도 우스웠다. 유치하게 뭐 이런 말부터……. 이성을 차리고 이야기하자.

“ 죄송합니다 ”

“ 나이도 젊은데 왜 죽을라고 그래요? ”

“ 죄송합니다. ”

한참 침묵만이 흐른다. 긴 침묵을 깨고 그녀는 아주 조심스럽게 약간 의외의 말을 한다. 아니 어쩌면 의외가 아닐 수도 있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가?

“ 정말 죄송한데요. 먹을 것 좀 없을까요? 제가 삼일 정도는 굶은 것 같아요 ”

도근이 냉장고에서 바나나를 꺼내서 가져다준다. 완전히 건네주기도 전에 받아서는 며칠 굶주린 사람처럼 급히 껍질을 까서 입으로 가져간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녀는 사실 며칠을 굶주린 사람이 맞다.

그렇게 먹고 있는 그녀를 보다가 측은한 생각이 들더니 갑자기 요리 실력을 발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아있는 재료로 소화가 잘되고 따듯한 음식을 만들어 주고 싶어 요리를 시작했다.

며칠을 굶고 부담스러운 것을 많이 먹었을 때는 탈이 난다는 것을 평생 다이어트와 몸 관리에 이력이 난 도근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간 쇠고기에 양파와 당근 버섯으로 맛을 낸 스프를 끊여서 먹게 했다. 뜨거운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허겁지겁 먹는 그녀가 조금이라도 천천히 먹게 하기 위해 그는 대화를 시도한다.

그녀의 이름은 이현주. 28살. 어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홀아버지와 살다가 아동학대를 당하고 결국 이웃의 신고로 아버지는 구속이 되고 그녀는 보호소로 보내졌단다. 그러다가 외할머니 손에서 자라게 되었는데 그것도 외할머니가 삼 년 만에 돌아가셔서 그나마 가장 사랑 받고 자랐던 시간은 짧은 꿈처럼 지나갔다.

게다가 아버지는 교도소에서 작업 중에 사고를 당해 세상을 떴다. 불행이지만 아주 냉정하게 어떤 면에서는 다행일 수도 있는 일이다.

그 이후로는 다시 아동보호소나 보육원에 갈 나이도 지나서 혼자서 살아가게 되었다. 국가 보조금으로 정말 가까스로 살았지만 성년이 지나니 그것마저 없어졌다.

공부도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가까스로 고등학교만 졸업했다. 고아에 경제 형편이야 말할 필요도 없고 보잘 것 없는 학벌을 가진 그녀가 날고 기는 청년들도 못하는 취업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생활고는 극심했다. 일주일 내내 컵라면 두개만을 먹고 힘없이 헤매다가 술집 아가씨를 구한다는 전단지를 봤을 때, 하고 싶다 하고 싶지 않다를 떠나서 그녀에겐 여자로 태어나 아무것도 없는 이들이 유일하게 수단으로 사용할 조건인 보기 좋은 외모, 그것조차도 없다는 사실에 거대한 벽에 부딪치는 것처럼 절망을 느꼈다.

정말 없어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자신과 같은 곳, 같은 시대에 태어난 평범한 여자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일도 그녀에게 막혀 있었다. 외국여행에 비행기는 고사하고 제대로 한번 국내 여행도 가보지 못했다. 돈이 없어서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도 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태어나서 서울, 경기, 인천 이 지역 외에는 가보지 못했다. 그럴 겨를도 여유도 없었다.

연애도 한번 해보지 못했다. 보잘 것 없는 외모에 가진 것도 또 그럴 여유도 없는 그녀에겐 자연스러울지 모르는 일이다. 어차피 그런 것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 가족들과 함께 화목하게 먹는 아주 평범하지만 따듯한 집밥, 연애보다도 그게 더 부러웠다.

하지만 그녀에겐 지독한 생활고에서 한 끼를 무엇으로라도 배를 채워내는 것, 그것이 행운이고 만족이었다. 결국 자신의 지독히도 잔인한 인생에 화를 내기 시작하고 마음속에서 욕을 내뱉으며 미친 듯이 제대로 살아보려고 했다. 정말 열심히 살아보려고 했지만 결국 그것마저 여의치 않자 다 포기하고 식물의 인생을 살았다. 그냥 최소한의 양분과 물로 버티고 남들을 비추고 남는 햇빛을 받아 겨우 목숨을 부지하는, 살아가는 자체가 목적이 되는 삶.

그녀에게는 아예 시작 할 수 있는 기회조차도 봉쇄되어 있는 게 현실이었다. 결국 자신이 살아야하는 이유 세 가지만 찾아보자고 했지만 한 가지도 제대로 찾지 못하고는, 가지고 있는 유일한 재산인 교통카드로 마지막 여행이라도 가보자 하고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자신이 갈 수 있는 최대한을 갔다. 마지막 버스에서 내려 무조건 아무 생각 없이 걸었다. 걷다 보니 멀리 아름다운 호수가 보였다. 그리고 그 호수가 자신의 마지막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이유 모를 유혹이 생겼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도근은 할 말이 없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아무 것도 없을 수 있나? 몸이 건강하니까 나이가 젊으니까 그래도 감사하고 열심히 살라는 틀에 박힌 말도 할 자신이 없었다. 그게 틀린 말은 아니라지만 그녀에게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은 정말 입으로 뿜어내는 담배 연기만도 못한 개소리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의 성격에서는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지만 갈 곳 없고 다시 혼자 놔두었다가 어떤 시도를 할지 모를 이 여자를 그냥 나가라고 할 수는 없었다.

결국 며칠 동안만 지내기로 했다. 힘든 운명의 그녀에게 인색하고 모질게 대하던 모든 사람들을 욕한 그가 다시 그녀에게 모질고 인색한 모습으로 바로 나가라고 하기에는 그가 가진 특유의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다.

그녀와 며칠을 함께 지내게 되었을 때 처음에는 근원을 알 수 없는 책임감으로 불편한 것들을 참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불편함이라는 새로운 부정적 더하기가 아니라 외로움의 해소라는 긍정적 빼기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체력이 회복되기도 전에 집안을 청소하고 최대한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했다. 그리고 함께 있다 보니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됐다. 아무 것도 없는 아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이런 조건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성격이 나쁘면 범죄자나 이상한 쪽으로 빠지게 되었지만 그녀는 타고난 심성이 착했다.

점점 더 많은 것을 함께 하게 되었다. 같이 요리를 하고 산책을 다니고 밤낚시도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진심으로 현주에게 도근은 이야기하게 되었다.

“ 넌 사실 가진 게 참 많다. 착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 그리고 난 네가 가지고 있는 시간이라는 것이 부럽다. ”

“ 전 어르신이 부러운데요. 정말 멋진 삶을 사시고 이제 은퇴해서는 이렇게 편안하게 사시잖아요. ”

“ 그런데 그 사는 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게 문제지. 나는 바꿀 수 있다면 너랑 바꿔서 한번 살아보고 싶은데. 내가 살았던 삶과 전혀 다른 인생 ”

“ 정말요? 저 같은 거 하구요? 저는 완전 대환영이죠. 어르신은 남자에다가 키도 크시고 완전 미남이셨을 것 같고 은근 카리스마도 있으시고 또 능력도 있으셨고 성공도 해보시고 그리고 돈도 많으시고... 제가 원하는 모든 걸 다 갖추셨는데요. 바꿀 수 있다면 당장 바꿀래요. ”

“ 너, 내 나이가 되 보면 그런 생각 안할걸. 나도 힘들어도 좋으니까 당장 바꿔서 살아보고 싶다. 아무리 가진 게 없어도 그래도 뭐라도 하면서 다시 젊고 싶다 ”

“ 전 지금 시간이 너무 힘들어요. 지금도 살기 싫어서 죽으려고 했는데 어르신처럼 살다가 가는 거라면 몇 년 만 더 살아도 그냥 좋을 거 같아요. “

“ 근데 넌 왜 나를 어르신이라고 부르니? 꼰대 냄새나는 그런 호칭 싫다 ”

“ 그럼 할아버지라고 불러요? ”

“ 아, 그건 더 싫은데. 도근씨라고 부르기도 뭐하고……. 그냥 정선생이라고 불러라 ”

“ 네, 정선생님 ”

그렇게 그 아이와 소위 동거라는 것을 하다 보니 시골 마을에 소문이 난 모양이다. 전기공사 사장한테 들었다. 집이 마을과 떨어져있지만 천리를 가는 ‘발 없는 말’은 역시 무섭긴 무섭다.

애당초 매력을 느낄 만큼 준수한 외모가 아닌데도 젊은 여자가 왔다 갔다 하니 그런 소문이 나는가보다. 불쾌했지만 별로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차라리 나이 든 여자가 보이면 더 의심이 되는 게 맞지 않는가? 천박한 그들에 대한 조소가 튀어 나왔다.

“ 미국에 살던 내 조카딸이야. 뭐 이상한 쪽으로 밖에 생각이 안 드나? ”

이렇게 말하고는 은근히 전기공사 사장이 가서 그렇게 해명 아닌 해명을 해주고 그것이 다시 ‘발 없는 말’ 본연의 힘이 발휘되길 기대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하루하루가 간다. 그 하루가 모여서 삼 개월이 갔다. 그동안 현주는 많이 밝아지고 살도 좀 올랐다.

원래 상냥한 성격에 어릴 때부터 여기 저기 짐짝처럼 돌려지며 눈치를 보고 자란 영향인지 배려심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야 할 것에 대한 판단이 빨랐다. 까다로운 도근이 지내는데 전혀 거슬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도근에게 진검과 흡사한 의미가 됐다.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그를 지키기 위한 마음의 피난처가 진검이라면 내부의 외로움으로부터 그를 지키는 피난처가 어느 순간 되어버린 것이다.

현주는 이제 염치라는 것을 가진 사람으로서 언제까지 여기서 신세를 지며 지낼 수는 없는 것이라 스스로 판단했다.

그동안 감사하다는 공손한 인사와 함께 가장 잘 만드는 음식인 김치찌개를 끊여 놓고 떠났다. 도근은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아무런 말없이 그녀를 보냈다. 어차피 아무런 상관없는 그녀와 언제까지 같이 산단 말인가?

그녀가 떠난 집은 텅 빈 것처럼 느껴졌지만 상황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도근의 가슴속에 있는 텅 비어버린 방보다는.

심각한 문제는 다시 도근은 평소와 같은 일상을 즐기며 살았지만 예전 같이 즐겁지 않다는 것이었다. 사실 예전에도 그다지 즐겁지는 않았을 거다. 즐거운 척 살아가던 그의 봉인에 흠집이 났다는 것이 더 정확하다.

 

현주도 다시 싸우고 있다. 차가워진 세상의 바닥에 내던져진 그녀가 극심한 추위를 느끼며 매일 밤 겨우 잠이 들 때마다, 철저히 혼자라는 절망적인 사실에 매일 아침 뜨고 싶지 않은 눈을 억지로 뜨며 잠에서 깨어날 때 마다 따듯한 기억으로 남았던 노인 도근과 그의 집에 대한 기억은 돌아갈 수 없는 낙원이나 엄마의 품속과 같아서 가슴이 시리도록 그리웠다. 하지만 그 시린 통증마저도 아무것도 붙잡을 것도 믿을 것도 없는 그녀에겐 그래도 살아가야 한다는 힘으로 작용했다.

평생 그녀에겐 남자라는 기억은 끔찍하게 다가왔다. 자신을 학대하던 아버지, 그리고 보육원에서 약한 그녀를 괴롭히고 상처를 주던 남자아이들, 예쁘지 않은 그녀에게 한없이 차갑고 엄격하게 구는 고용주나 고객이나 동료나 다양한 남자들의 모습.

그래서 그녀는 항상 자신이 남자였으면 하고 더 간절히 바랐던 지도 모른다. 최소한 그런 취급은 당하지 않을 거니까.

처음 죽음에서 살아났을 때도 강한 인상의 나이 든 남자를 보자 경계심이 들었다. 워낙 허기가 져 쓰러질 것 같은 상황에 자신도 모르게 먹을 것을 청하게 된 건 자신도 의외였다. 하지만 자신을 살리기 위해 노력한데다 무뚝뚝한 성격 뒤에 숨은 섬세한 배려에 처음으로 남자사람에 대한 새로운 감정이 들었다. 그것은 든든하고 포근한 느낌이었다. 세상의 그 어떤 누구에게도 받지 못한 느낌을 아무런 상관도 없는 그 나이든 남자에게 느꼈다.

다시 돌아온 세상은 여전히 그녀에게 가혹하고 차가웠다. 버티기가 버거웠다. 다시 아르바이트를 구하러 다니며 감옥보다도 못한 어둡고 좁은 방에서 배를 움켜쥐었다.

 

도근은 아주 오랜만에 감기에 걸렸다. 말도 안 되는 엉뚱한 생각이지만 3개월도 더 전에 추운 날 호수로 들어간 이유로 이제 와서 감기에 걸린 것만 같았다.

꿈에서는 자꾸 현주가 나타났다. 3개월이라는 아주 짧은 시간이었고 전혀 여자로 느껴지지도, 그렇다고 내 딸이나 손녀처럼 친밀히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그냥 외로운 그에게 갑자기 나타난 어떤 불쌍한 여자애, 그것 뿐 이었다.

몸이 아플 때 역시 혼자라는 사실이 더 힘들었다. 그래도 예전에는 아무리 아파도 누군가가 계속 생각나지는 않았는데.

며칠이 걸려서 겨우 회복한 그는 감기 때문에 침대에 누워서 앓고만 있던 이후로 그나마 자신을 팽팽하게 버텨주던 생활의 패턴마저 산산이 깨졌다는 것을 알았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현주는 화가 나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용돈을 벌기위해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전 시간 알바생은 툭하면 빨리 와달라고 부탁을 하고 해야 할 일은 하나도 하지 않고 모두 현주에게 미뤘다.

좋은 대학에 다니는 아주 예쁘게 생긴 여자애였는데 편의점 사장은 아무리 잘못을 해도 그 아이가 한번 애교라도 부리면 모든 것이 용서가 되는지 웃어넘기기만 했다. 단정한 것 같으면서 묘하게 교태를 보이는 재주도 있었다.

현주에 대해서는 항상 까다로운 잣대를 들이밀던 사장이 둘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면 항상 그 애의 편을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방학이 끝나고 개학을 하면서 그 '예쁜애'는 시간을 저녁으로 바꿔달라고 했다. 하지만 현주도 편의점이 끝나면 식당에 가서 다시 일을 해야 했다. 안되겠다고 하자 사장은 사장대로 현주를 압박하고 더 많은 일을 시켰다. 그리고 그 애는 나름대로 더 많은 일을 현주에게 미루고 매장을 엉망으로 두고 어쩔 때는 미리 퇴근해 있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현주는 끄덕도 하지 않았다. 그 정도도 뻔뻔하게 버티지 못했다면 이미 인생에서 물러나서 떠났어야 했다. 물론 그러려고 시도도 했지만.

어느 날 결국 하다 하다 안 되니 사장은 결산이 안 맞는다며 현주를 도둑 취급했다. 이미 조작을 다 끝낸 사장에 대항 해 그녀에겐 자신의 무고함을 반박할 근거가 없었다.

참다가 참다가 그녀의 눈물이 터져 나왔다. 해도 너무한다. 부모님이라도 있었다면 그것도 아니면 조금만 더 예뻤다면, 배운 것이 많던가 뭐 하나라도 믿는 구석이 있다면 이런 취급을 덜 받지 않았을까?

그때,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좀 전 부터 들어와 있었던 걸 그제야 느꼈다.

“ 사장님, 문제가 있으면 경찰을 불러. 그런데 만약 얘 잘못이 아니면 어떻게 책임질 거요? ”

흰머리에 주름진 얼굴이지만 나름 건장한 체구에 깔끔한 명품 양복을 입고 깐깐하게 쏘아보고 서 있는 도근이었다. 마술처럼 현주의 얼굴에 울음이 그쳤다.

“ 누구신데요? 무슨 상관이신데? ”

“ 나 얘 아버지야. 당신 사람 무시하나? 경찰 불러서 제대로 한번 따져보자고 ”

고아로 알고 있던 현주의 아버지라는 사람이 나타나자 사장은 막장 드라마 속에서와 같이 숨겨진 아버지라도 나타난 건가 혼란스러운 마음이 생겨 도근의 위아래를 훑어보면서도 조심스러워졌다. 더는 아무 말도 함부로 못하게 되었다.

“ 그만 둘 거니까 남은 월급 주시오 ”

도근이 뭐라고 말하려고 하는 현주에게 얼굴로 가만히 있으라는 신호를 보내고 단호하게 사장을 바라보고 서 있다. 꼿꼿한 자세와 냉철한 눈빛에서는 약간의 위압감이 느껴지고 명품 양복에서는 빛이 나 보이는 착시효과도 일어났다.

사장은 그를 스캔한 결과 만만하게 보이는 사람이 아니라 판단하고 순순히 현금통을 열어 월급을 내준다. 어차피 목적은 현주를 그만두게 하고 '예쁜애'가 계속 아르바이트를 나오게 하는 것이었으니까...

직접 돈을 받은 도근은 현주에게 건네주며 확인하게 한다. 확인이 끝나자 현주는 고개를 끄덕이고 도근은 마지막으로 사장을 한 번 더 냉정하면서도 서늘하게 쏘아보고는 현주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자신이 몰고 온 SUV 차량에 현주를 태운다.

“ 너 고시원으로 가자. 짐 챙겨라. 내 성격에 아버지는 되 줄 자신이 없는데 나이 많은 친구라도 하자. 친구끼리 한 집에 사는 게 이상한 건 아니겠지? 필요하다면 다른 사람에게는 아버지라고 해도 된다. ”

 

현주는 대답 대신에 방금 억울할 때 보다 훨씬 더 심하게 울어댔다. 그 울음의 의미가 당연히 부정이나 거절 따위의 의미가 아니란 걸 충분히 알았기에 도근은 시동을 걸었다.

이제 그녀가 따듯함을 느끼도록 스위치를 돌려 히터를 켠다. 그녀는 춥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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