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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상반기 신인발굴]_수필_하정훈_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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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부문>
성명: 하정훈
성별 :남
연령: 35세
주소: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로 192
연락처: 010-8445-1580
< 나만의 창 >
햇빛을 받지 않고 생활하고 있다. 우리 집엔 창이 없다. 나는 지금 고시원에 살고 있다. 타향생활을 한지 어느덧 10년 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청운의 꿈을 안고, 서울로 상경했다. 부푼 꿈은 그대로 두고라도, 나는 살 곳이 필요했다.
의와 식과 주를 잘 해결할 수 있는...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 꿈 많은 청년에게, 스스로의 능력으로 온전하게 마련할 수 있는 거처라곤 고시원 밖에 없었다. 고.시.원. 어감 자체, 글자자체도 조금은 슬픈 글자 같다. 지리도 모르는 서울에서 가난한 청년은 무조건 가격이 싼 고시원을 찾았었다. 처음 마주했던 고시원이 생각난다. 조금은 눅눅하고, 어두침침했던, 대신에 눈을 찌를 듯한 백열등의 밝기가 극도로 대비 되었던, 마치 어느 탄광 속 사무실에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고시원마다 가격이 조금씩 달랐다. 창이 있고, 없고, 가격이 4, 5만원씩 차이가 있었다. 창이 있고, 없고가 그렇게 중요하나? 고민 없이 난 무조건 가격이 싼, 이름 하여 내창형 고시원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햇빛은 창을 통해 들어오지 않았다. 그땐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런 내창형 1.5평 고시원 소국에서 내 가난한 20대를 보냈었다.
난 배우가 되고 싶었다. 화려한 스크린 속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누구보다 성공하고 싶었다. 누구보다 풍족한 미래를 꿈꿨다. 배우가 되기 위해 열심히 발로 뛰었다. 아르바이트를 줄기차게 하였다. 여기저기서 일 못한다고 갈굼을 무진장 당하였다. 그리고 내창형 고시원으로 복귀하였다. 백열등의 전구 빛은 여전히 따가웠다. 불을 끄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 혼자 어느 암흑세계로 사라지는 건 아닐까? 걱정되어 잠 못 이루는 날도 있었다. 불을 끄면 아무도 볼 수 없는 암흑의 세계가 되고, 불을 켜면 좁다란 나의 소국만이 내 눈에 한가득하고, 좀처럼 마음이 진정되긴 어려웠다. 극단적 대비만 있는 세계. 흑과 백의 세계. 그 공간에서 내 감정도 흑과 백이 될 따름이었다. 누구보다 쉽게 달아오르고, 들끓으며, 누구보다 빠르게 침잠해 갔다. 마음의 평온은 찾아들지 않았다. 우연찮게 찾아온 20대의 사랑도, 들끓어오르는 나의 마음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가진 않았다. 모든 게 무모하고 서투르고 모자랐다. 자연스럽지가 않았다.
그렇게 나의 내창형 20대의 시간도 마감되었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고, 통장 속 잔고는 나를 허무의 끝으로 몰고 갔다. 회의감만 가득했다.
나이를 좀 더 먹어, 결국 나는 현실타협이라는 걸 하였다. 돈을 벌고 취업을 했다. 은장 막 속 화려한 세계는 잠시 내려놓기로 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부터 내 마음속에 조금씩 안정과 평온이 깃들기 시작했다. 조금의 보상들이 주는 위안이었다. 내 마음속 상처들도 조금씩 아물어가기 시작했다. 조금은 내성이 생겼고, 조금은 무감해졌다. 이제, 조금은 어른이 되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기적같이 내게 또 다른 사랑도 찾아왔다. 결혼을 꿈꾸게 한 여자였다. 모든 게 행복했다. 이 모든 것들이 사실은 꿈을 내려놓았더니 찾아온 선물이었다. 아이러니했다.
어느 날, 카페에서 난 책을 읽으며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카페 유리창을 통해 햇빛이 들어앉았다. 햇빛은 나를 덮고, 내 책들을 덮고, 나를 투과했다. 책속의 글자들은 살아 움직이는 듯 했고, 마치 유생물처럼 느껴졌다. 전혀 예상치 못한 행복감이 마음에 들어찼다. 이제껏 느껴보지 못했던 순간이었고, 경험이었다. 이게 도대체 뭐지?
자연스러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자연스러움. 창을 통해 바깥의 세계와 자연과 나는 자연스레 이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창을 통해 난 보호 받을 수 있었다.
연결과 보호. 창은 두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있었다. 나는 내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게 되었다. 난 나만의 창이 필요했다. 나를 지켜주고 나를 연결시켜줄 수 있는 나만의 창이...
< 우리라는 노력 >
이번 명절에도 내려가지 못했습니다. 개인적인 피로감과, 명절스러운 여러 귀찮은 일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조금은 버겁고 감당이 안될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부모님께 또 핑계를 대었습니다.
“ 요즘, 여기저기 출장을 다녀와서 너무 피곤해요! 몸도 좀 안 좋아요! ”
뻔한 이유를 둘러대었습니다. 간다면 갈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귀찮은 것입니다. 애써 무덤덤하게 전화를 끊으신 부모님도 조금은 섭섭하시고 신경 쓰이실 것입니다. 게다가 전 장남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끝내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이기적으로 행동했습니다. 제 자신의 안위를 먼저 생각한 것입니다.
고향을 생각하면 부모님, 그리고 친구들이 떠오릅니다. 이번명절에도 안 가게 되었으니, 이번에도 친구들을 만나진 못하게 되었습니다. 다 제가 자처한 것입니다. 친구들은 제 중학교 친구들입니다. 5인방 친구들, 내 하나뿐인 고향 친구들.
우린 어릴 때 다 너무 달랐습니다. 키도 다르고, 생긴 것도 다르고, 공부도 어떤 친구는 잘하고, 어떤 친구는 또 엄청 못하고, 들쑥날쑥 다들 제각각인 친구들이었습니다. 서로 정말 어울리지도 않을 것 같던, 비슷한 거라곤 하나도 찾을 수 없었던 우리들은 끝내 서로의 비슷한 관심사들과 유머코드들을 발견하고 잘 어울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린 우리들을 5인방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촌스러운 이름이긴 했지만, 5인방이라는 이름 속엔 ‘ 끝까지 5인방으로 영원히 함께하자’ 라는 마음이 아마 함축되어 있던 거 같습니다. 영원한 우정을 맹세하였던 것도 같습니다. 그러한 우리들이 성인이 되어 스무살 넘어서 다 함께 본지가 어느덧 10년이 흘렀습니다. 요즘은 SNS로 친구들의 근황을 아는 건 어렵지 않게 되었지만, 우리가 함께 서로 마주보고 이야기를 나눴던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기란 그리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들 각자의 삶과 사정들이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중학교의 시간으로 돌아가 봅니다. 우리들은 함께 하는 미래를 꿈꿨습니다, 많이 멋있어질 자신들의 모습을 꿈꿨습니다. 그땐 꿈꾸는 것만으로도 벅찬 행복들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작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고,
5인방. 우리라는 존재가 되게 멋있다고 느껴졌었습니다. 그리고 영원할꺼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우정과 시간들이
시간은 흐르고, 우린 성장했습니다. 대학을 가고, 취직을 하였습니다, 조금씩 각자의 시간과 삶속으로 걸어갔습니다. 다들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성공하기 위해, 각자 자신들의 꿈을 위해. 다들 열심히 달려갔습니다. 시간이 좀 더 흘러 청춘의 시기도 어느 정도 일단락되었을 때 우린 우리의 꿈이 실패했음을 자각하였습니다. 우린 우리의 꿈과 현실의 괴리감속에서 혼란스러워했습니다. 청춘의 시간은 달콤하지 않았습니다. 혹독하고, 아팠고, 쓰려왔고, 외로웠습니다. 그러한 시간 속에 고향은, 부모님은, 친구들은 자연스럽게 잊혀져갔습니다. 중요하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많이 실리적이 되었고, 계산적이 되었고, 간사해져갔습니다. 어른이 되간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나이를 먹어간 건 분명했습니다. 또다시 명절이 찾아왔습니다. 명절의 의미가 크게 와닿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귀찮은 시간들로 생각되었습니다. 고향에 가면 친구들을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만날 힘과 여유가 없었습니다. 연락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멀어져갔습니다.
미안하고 조금은 속상하였습니다.
저에게도 여자친구가 있습니다. 여자친구는 이번 명절에 내려가서 고향친구들을 만날 꺼라고 하였습니다. 그녀에게도 5명의 친구들이 있습니다. 난 항상 우울하고 심각해서 친구들도 안 만나고 고향에도 안내려가고, 부모님도 안 뵈는데, 내 여자친구는 친구들을 만날 생각에, 같이 술 한잔할 생각에 들뜨고 설레어 합니다. 내 여자친구가 고향에서 친구들과 함께 즐겁게 놀고 있는 사진을 보내주었습니다. 자취방에서 내 여자친구와 그들의 사진 속에서 벅찬 행복의 표정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부러워집니다.
우정은 언제나, 지금도, 함께, 행복할 수 있다는 걸 본 것이죠
뒤늦은 깨달음이 옵니다.
친구들과의 우정이든, 여자 친구와의 사랑이든, 부모님과의 관계든, 필요한 건 노력이라구요. 영원하겠다라는 노력. 함께하겠다라는 노력, 지켜주겠다라는 노력. 그러한 노력이 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끝없이 필요함을요. 자만했습니다.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영원함을 기대하였습니다. 쓸데없는 진지함과, 우울감으로 귀찮아했고 회피만 하였습니다.
나이를 계속해서 먹어감에도 언제나 잘못하고, 뒤늦게 후회했습니다. 앞으로도 후회로 가득할 인생을 살아가겠지만, 이제부터라도 노력할 것입니다.
어제보다 더, 그게 무엇이 됐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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