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리토피아 신인상

신인상
수상자
투고작

[2017상반기 신인발굴]_소설_박주원_01.30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309회 작성일 17-02-16 16:07

본문


<소설 부문>


성명: 박주원

성별:

주소: 경기도 기흥구 마북동 교동마을 대림 이편한세상 101502

연락처: 010-3385-5824(010-9956-5823)

이메일: leaf_of_rain@naver.com

 





 

 

나는 죽었다




그 사람이 죽었으면 하고 바라지는 않았다. 오히려 바보 같은 내가 눈을 뜨면 이 세상이 아닌 다른 곳으로 떠나있기를 바랐다. 숨을 거칠게 내쉬거나 과격한 행동을 하거나 술을 퍼마시고 싶지도 않았다. 침대에 누워서 두꺼운 이불을 끌어안고 차갑게 식어버린 열정과 인생에 대한 미련을 느끼며 하얀 별과, 이지러진 방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살짝 열린 창문 사이로 푸른 하늘이 보였다. 미세하게 움직이는 구름,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그 자리에 든든히 서 있는 나무들과 초목들, 아침부터 분주히 출근을 하는 양복을 입은 중년 남자들과 등교를 하는 학생들의 웃음소리, 역겨웠다. 식어버린 내 방과 여기저기 흩어져 조각조각 나버린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이 세상은 더없이 아름다웠다.

한숨을 내뱉고서 천장을 바라봤다. 햇살이 눈이 부실 정도로 내 방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유리병에 담긴 장미꽃들은 물에 담겨있는 애정이 어린 사랑을 느끼지 못했는지 시들어 차가운 겨울밤 공기에 얼어붙은 식물 같았다.

 

그 사람은 나와 달리 아름다웠다. 스스로 빛나서 달라붙는 호박벌들이 많은 사람이었고, 어떻게 해야 자신이 사랑받을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난 처음부터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녀에게 접근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의 눈빛에서 누구도 모를, 그러니까 나만이 알 수 있는 외로움이 느껴졌고, 그것은 나만이 이해해줄 수 있을 거란 착각과 망상이 내가 그녀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될 것이란 헛된 기대를 생기게 했다.

그녀는 누구나 사랑할만한 애완동물 같았다.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 달라고 조르면 그것을 거절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았다. 숨을 쉬는 순간에도, 작고 얇은 손으로 차가운 아이스커피를 마실 때도, 예쁘게 꾸며진 딸기 치즈케이크를 먹을 때에도 그랬다. 내가 그녀에게 수줍게 손을 내밀었을 때, 그녀는 세상 그 누구보다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의 이기적인 마음은 그 미소를 나만이 갖고 싶다는 욕심을 만들어냈고, 나는 어느새 그녀에게 조금씩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목숨까지 거는 사람을 나는 누구나처럼 얼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건 현실 세계에 있을 법한 얘기가 아니라 멍청한 기자들이나 가십을 좋아하는 녀석들이 자기 입맛대로 각색해서 만들어낸 소설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의 난 사랑 덕분에 살면서 생각조차 해본 적 없는 스스로 죽이는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가 내 곁에 없는 세상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날보다도 더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한 사람 때문에 전체의 삶이 무너져 내리는 이 역겨운 사람의 이야기는 나의 죽음으로써 소멸할 테니, 그리고 그래야 내가 느끼는 이 괴로움과 절망이 끝이 날 테니, 나는 어떻게 해야 가장 손쉽게 죽을 수 있을지 구체적인 생각까지 했다.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 .’

내 머릿속에 맴도는 그 조그만 소리. 천사의 하프연주보다도 더 아름답게 들리는 그 소리. 저 문을 열고 이제 때가 되었다고 내게 찬란하고 빛나는 입술로 속삭이는 이름 모를 여인이 내 곁에 와서 아를 데려가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지금까지 네가 겪었던 고난과 시련들은 내가 너를 데려가기 위한 시험이었다고, 그러니까 이제 욕심 없이도 행복할 수 있는 천국으로 가자고. 난 눈을 감고 오랜만에 작게 미소 지어 보였다. 작은 거울이라도 근처에 있었다면 나는 이 멍청하고 말도 안 되는 망상을 접어두고서 다시 고난을 겪기 위해 방 밖을 나설 테지만 내 방에는 하나의 거울조차도 없었다. 그녀에게 거절당한 나의 얼굴은 누구에게도 사랑받을 자격이 없을 거란 자괴감과 절망. 그것이 본능적으로 거울을 피하게 했다.

누군가가 말했다.

외모는 한순간이야. 결국 그 사람의 내면이 중요하지.’

그렇다면 내면마저 썩어버린 나에게 좋은 인연이란 건 절대 올 수 없는 그런 필연적인 일일 테지. 겨우 사랑에 버림받았다고 상처받아 자살까지 생각하는 나니까. 차라리 얼굴이라도 잘 생겼었더라면, 나의 이 썩어빠진 내면을 이해해줄 만한 멍청한 여자라도 만나지 않았을까?

비가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창문에서 떨어지는 작은 빗방울과 흐릿하게 쏟아지는 소나기가 오늘 하루종일 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흘러내리는 물이 보고 싶었다. 하다못해 나이아가라 폭포라도 보고 싶었다. 몇 번의 퇴적과 세월이 풍파를 견뎌낸 저 자연 앞에서 나의 초라함을 느끼고 싶었다. 그래, 저 커다란 자연 안에서 한 사람의 몸이란 그저 흙덩이에 지나지 않을 테니 나의 죽음이라는 것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았다. 사람이 사랑이란 걸 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쏟아지기 시작한 눈물은 인간의 이기심, 자기들이 정말 잘난 존재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오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방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방에 쌓여있던 책은 빗물에 젖었고, 옷장에 걸려있던 외투와 셔츠들이 몰에 젖어 바닥에 떨어졌다.

산속에 있던 작은 수돗가.’

어릴 적 누군가와 그곳에서 물장난을 했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는 슬플 때 술을 찾지 않았고, 밤새 누군가의 품에서 잠들기를 소망하지도 않았다. 쾌락이라는 이름으로 순수한 사랑을 더럽히지도 않았다. 난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돌려버려서 그 기억 속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리고 내 몸에 떨어지는 투명하고 청명한 빗방울이 나에게 그 일을 실현시켜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사랑, 절망, 외로움, 우울함이 내 몸에서 씻겨져 나가는 걸 느끼며 나는 곧 내가 우울하게 누워있던 방을 아주 조용히 빠져나왔다.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