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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상반기 신인발굴]_시_이정희_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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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성명 : 이정희
연락처 : 010-8210-8557
주소 : 서울시 마포구 공덕동 공덕현대아파트 101동 104호
E-Mail: ljh652711@daum.net
구두 종합 병원
영하 날씨 아랑곳하지 않고
공덕동 오거리 으슥한 뒷골목
구두 종합 병원 여전히 성업 중이다
구부정한 아저씨가 정형외과 의사
굽이 부러진 것 밑창이 닳은 것 바닥이 너덜너덜 한 것도
손길이 가면 말짱하게 완쾌가 된다
한 평 남짓 컨테이너박스 안
걱정스럽게 기다리는 보호자를
신발은 그동안 어디를 쏘다녔는지
흔적이 상처로 남아 기억이 많으면 사연도 많아
발굽이 높은 홍학 같은 여인
낯설고 어설프게 들어선다
다락방같이 아늑한 곳
수족 같은 수술도구들
간이소파, 전기난로, 수술대가 전부다
정돈된 진료실 라디오 음악이 흐르고
다정한 웃음소리가 큰길까지 걸어나간다
선반 위엔 깔끔하게 치료된 환자들이
줄지어 퇴원을 기다리고 있다
다치고 헤진 장애 신발을 향한
평생 인술을 천직으로 여겼던 소말리아 의사처럼
오늘도 정답게 토닥토닥 구두를 치료 중이다
고향집
그녀는 덩그러니 안채 하나로 버티고 있다 수 년 전 든든한 남자 행세를 했던 사랑채가 푹
쓰러지자 많은 시간 슬픔에 잠겼었다 차츰 정신이 들고 찾아 올 자식들을 위해 몸을 추슬러
야 했다 강골 민속 마을로 지정되어 남아있는 안채의 병든 곳을 고쳐준다니 뛸 듯이 기뻤다
인물이 예전처럼 훤하지는 않아도 천만다행이다 지켜줄 울도 담도 없는 그녀에게 우뚝 솟은
열화정과 앞마당이 친구처럼 다가온다 봄에는 밥티꽃 매화꽃 향기 바람에 흩날려 온뜰에 진
동하고 가을엔 형형색색 나무들의 황홀한 슬픔이 흐르고 뒤란엔 쏴아한 대나무 소리 머물고
계절 따라 바뀌는 자연의 선물 그녀를 살게 하는 기쁨이다 이 방 저 방 형제들 복닥거리고
아버지의 구수한 이야기가 남아있는, 가끔 꿈속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그녀가 보고 싶다
부전자전
젊었을 때 그 양반 좀 심했지라우 출장가면 간단 말도 없이 바람처럼 이박삼일 전화 한 통
없어부요 처음엔 속이 펄펄 끓어 불다 시간이 지나믄 살아만 돌아오시오 하고 기도하고 있
어부네잉 그 양반 돌아오면 화는 눈 녹듯 사라져불고 전화나 좀 하지그라요 그라믄 공장이
벌판인데 전화기가 어디 있나 무슨 일 있으믄 경찰서에서 연락 왔것제 그래부러라 얼척이
업서부요 버르장머리는 안 고쳐집디다 수시로 애간장 태웠지라우 살결이 분처럼 희고 별같
은 눈매의 아들놈 엄마 치마폭 잡고 따를 때 하늘을 날라불던 맴 희망은 막 소리침서 솟아
오릅디다 아니나 다를까 사춘기 때부텀 슬슬 애를 먹이드만, 직장인 되어 일로 늦어도 집에
전화 한 통 업서부요 나원 참 날씨가 추운께 일찍 댕겨라잉 하믄 지 일 지가 알아서 합니다
자존심 꼿꼿이 세워부러라우 씨도둑 못한다드만 영락없이 즈그 아부지여라
손때 묻은 소쿠리
뚝딱뚝닥 썰고 치대고 손으로 동글동글 빚어 막 구워낸 동그랑땡 오래 된 낡은 소쿠리에
가득 담았다 시어머니가 쓰시던 윤기 반질반질 손때 묻은 소쿠리 옛날이 아련히 피어난다
어머니 어떠세요 맛있다 하지만 좀 더 이쁘게 만들거라 음식엔 사랑과 정성도 함께 넣어야
된다 음식 솜씨 없는 여자 어따 쓴다냐 생전의 시어머니 잔소리 들리는 것 같다 힘들었던
시집살이 시어머니의 끝도 갓도 없는 음식 수업 된장 고추장 젓갈 담그는 법 재래시장 다니
며 배추 생선 과일 양념 고르는 법 반찬 만드는 법 산더미같은 가사일에 일그러진 얼굴과
퉁퉁 부은 다리로 하루가 저물었다 머릿속은 온통 대문을 열고 훨훨 날고 싶은 마음뿐이었
다 너는 살림엔 관심이 없고 나갈 궁리만 하는 애 같다 꼬집는 시어머니가 야속해 끙끙 앓
았다 웬만하면 집에서 먹자 밖에서 먹는 음식 살로 안 간다 한상 가득 차려 분주한 내 모습
언제부턴가 영락없는 시어머니다
여권 사진
방금 찍은 그녀의 반명함판 사진
축 쳐진 눈꼬리 칙칙한 얼굴
계곡 같은 팔자 주름
세월이 그림을 그려놓았다
포토샵 리터칭 서비스
주름 하나 없는 탱탱한 얼굴
뽀송뽀송 화사한 피부
삼십 년 세월 잡아당겼다
비행기를 타고 어디를 가려는지
입이 귀에 걸린 그녀
성격 나쁜 건 용서해도
얼굴 못생긴 건 용서 못한다는
사진이 웃고 있다
다혈질
시상에 나쁜 놈 많키로서니 요놈처럼 나쁜 놈 어디 있으꺼시오 모감지를 틀어부러야 쓰것
는디 멀쩡한 사람을 눈 깜짝할 새에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분당께 이 잡것이 뛰쳐나와 공든
탑도 무너뜨려부러 얼척이 업서부요 뭔 일이다요 미쳐불것네 이 놈이 속에서 또가리를 틀고
있다가 환장병이 나면 툭 튀어 나오는디 안하무인이라니께 징해 불고 징해 부네 아무도 못
당해부요 아문 아문요 송신증이 나부요 별 수 업지라잉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단디 그저 이
쁘다고 달래야제 안 그라요 그로코롬 하다본께 속에서 천불이 나불제잉 어짜꺼시오 참을 인
자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 안 그요 참아야지라 참아야써라 안 그라요 그라지라잉
덜덜이
십 년 이상 한 방에서 동거한 그 남자
아침에 거슴츠레한 눈으로 올라가면 덜덜덜 온몸에 피돌기가 되면서
바짝 정신이 돌아온다
바이올린 선율의 가을 나그네에 젖어 있으면 정신없이 흔들어 슬픔을 잊게 하고 굿거리장
단 민요로 흥이 나 있을 땐 좋아라 까불며 같이 기뻐한다
뻐근하고 살이 쪄 둔탁한 내 몸 체지방을 빼주려 안달하고 근육질의 섹시한 몸매로 만들려
제 몸을 혹사시킨다
우리는 다른 사람 다 겪는 권태기 한 번 느껴 보지 못했다
아낌없이 주는 그 남자 요즘 이런 남자 없습니다
깨끗한 수건으로 그의 몸을 정성스럽게 닦아주고 어루만져 주었다
윤기가 좌르르 그의 얼굴이 생기 가득 환해왔다
러셀의 스케치
파란 하늘 바다는 춤을 춘다
하얀 드레스 즐겨 입는 돛배는 에메랄드 빛 물살을 가른다
꽃 피운 얼굴들 사이로
저 멀리 긴 해변을 따라 추억을 줍는 사람들
고래잡이 선원들 휴양지였고
뉴질랜드의 첫 번째 수도였던 곳
마오리족과 이민자들이 피터지게 싸웠던 곳
어두운 과거를 말끔하게 지운 러셀은 핏자국을 씻고 꽃을 심어
조용하고 아담한 미소로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해변 길에 주욱 늘어선 빅토리아풍 건물들
수백 년 비밀을 간직한 고목들
사랑을 껴안고 걷는 연인들
벤치에 마주 앉아 기쁨을 떠먹는 사람들
와 있어도 또 오고 싶은 러셀
나를 잡고 놓지 않는다
보라색 제비꽃
부모님 산소 가장자리
풀 속에 피어있는 보라색 제비꽃
작은 꽃잎 가늘게 떨고 있다
아버지의 평생을 애달파했던 엄니 마음 같다
교회 성가대에서
아티스와 이아의 사랑처럼 첫눈에 반했단다
시장에서 사온 군복바지 두 벌
피부처럼 달고 다니시더니
임종 때도 벗지 않으셨다
고춧잎처럼 작은 얼굴에 왜소한 얼굴
아이고 느그 아부지 불쌍해서 어쩐다냐
동정같은 소리 버릇처럼 들어온다
양지바른 곳으로 찾아 갔는데
엄니의 애달픈 사랑이 햇빛에 눈부시다
연시
감꼭지 방석 위에
새색시처럼 앉아 있다
떨떠름한 청시 소녀
어디로 갔는지
마음 텅 비우고 있다
살다 보니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몸
금의옥액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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