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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상반기 신인발굴]_시_황윤대_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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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성명: 황윤대
성별: 남
연령: 30세
주소: 경기도 가평군 경춘로 807-18 청구아파트 102동 302호
연락처 : 010-4351-8431
먹는 연습
자 이제 거식증에 걸린 소녀는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해 먹는 연습을 한다. 힘겨운 나날이지
만 리듬을 타며 먹는 연습을 한다. 나는 공을 차는 게 아니라 리듬을 탄다는 어느 축구선수처
럼 리듬을 타며 먹는 연습을 한다. 인간 실격을 외쳐도 하자가 없는 다자이 오사무와 그를 욕
하다 배를 가른 미시마 유키오의 난잡한 성행위를 묘사하듯 먹는 연습을 한다. 얼마나 먹었을
까. 또다시 구토를 통해 속을 비운 소녀는 치아 건강을 위해 양치질을 한 후 다시 먹는 연습을
한다. 먹고 또 먹고. 완전한 사육으로 길들여진 자신의 소화기관을 꿈꾸며 먹는 연습을 한
다. 죽을 때까지 거식증과 사투를 벌이며 먹는 연습을 한다.
좆같은 날
전자발찌 차고 이십대에 강제 백수 생활하던 중
담배 한 대 피러 나가 보니
개미 한 마리가 자기 몸보다 몇 배나 큰 지렁이 시체를 끌고 간다
정말 부지런하게 열심히도 살아간다
십새끼
질투가 나서 개미를 밟아 죽이고 지렁이 시체를 짓이겨 놓는다
벌레와 죽은 자에게는 매너를 지킬 필요가 없다
오늘 하루도 욕설이 절로 튀어나오는 좆같은 날이었고
개미 새끼에게 열등감을 느낀 나는 공터 흡연 구역에서 왕임을 자처한다
개와 나비의 시간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개는 나비를 바라본다
자신의 코끝을 스쳐 지나가는 나비에게서
처음으로 발정 난 이성과 접촉했던 시절의 향기를 느낀다
개줄이 엉키며 목이 졸리는 개는
입에서 끈적한 정액을 토해내며 흥분한다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라고 주장하는
군복 입은 개장수의 매질을 당하면서도
문득 개는 자신이 개가 아니라 나비였다고 외친다
숨통이 끊어지기 직전 개는 개처럼 짖으며
주인의 발등에 입을 맞추고 눈을 감는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개는 일상처럼 죽었고
썩은 피를 핥는 나비는 유유히 사라진다
사랑한 후에
피와 눈물로 술을 담근다. 빈속으로 다섯 번째 구토를 하여 마지막 남은 몸 안의 오물을 제
거한다. 살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칼로 얼굴을 긋는다. 미안하다는 단어로 열 평 남짓 하얀
방을 도배한다. 길 가던 아이에게 강제로 독한 담배를 물린다. 샛노란 암고양이의 눈깔에 막
대사탕을 꽂는다. 아직도 들리는 심장소리가 싫어 십자드라이버로 귓속의 나사를 푼다. 프로
이트의 이론이 거짓임을 증명하기 위해 스스로를 거세한다. 방금 사온 날고기를 씹으며 그 사
람의 이름을 떠올린다. 가내수공업으로 제작된 단 하나뿐인 목도리로 목을 조른다. 검붉은 가
래가 입술을 적실 때까지 유행가의 한 구절을 부른다. 길바닥에 달라붙은 시커먼 껌딱지를 떼
어 삼킨다. 혈관 속으로 에스프레소 커피를 흘려보낸다. 십자가 아래에서 죽음을 찬양하는 기
도문을 경건하게 읊조린다. 무덤 위로 피어난 꽃 한 송이로 차를 끓인다. 목을 매다 줄이 끊
어져 전치 사 주의 중상을 입는다. 베르테르 효과에 의한 통계 자료로 나 자신을 포함시킨다.
대한민국이 총기 소유 불법 국가임을 신께 감사드린다. 갓 죽은 들짐승의 체액으로 정액 냄새
를 닦아낸다. 단 한 사람에 의한 기억이 중추신경을 마비시킨다. 성 차별의 근원이 사적인 일
상의 폭력임을 밝혀낸다. 사랑을 찬미하는 시인의 모가지를 비틀어버린다. 복수를 주제로 한
영화 속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먼 나라 이야기가 내 이야기임을 직시하며 한 편의 드라마
를 완성한다. 오늘도 신경안정제를 누군가의 사진을 태운 잿물과 마시며 잠이 든다.
프랑크푸르트에 파전이 날아다닌다
2006 독일 월드컵이 한창이던 고3 시절
내가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 합격하면 월드컵에서 토고가 우승한다고 했던 그 해
교내 체육대회에 선수로 출전하신 담임선생님의 헤딩에
가발이 벗겨졌다
3초 동안 세상이 정지되었다
다시 지구가 돌며 가발을 바지주머니에 넣고 투혼을 불사른 담임선생님에게
모두가 박수를 쳐주었다
나와 내 친구들은 화장실에서 담임선생님을 떠올리며
프랑크푸르트에 파전이 날아다닌다
파전으로 위장한 담임선생님의 가발이 날아다닌다
고 이야기했다
토고가 월드컵에서 우승하지 못하고 한 해 두 해가 지나고
고교 동창과 함께 모교를 찾아갔을 때
친구들 선배들 후배들 다 보이지 않는 그곳에
담임선생님이 우리를 반겼다
가발을 쓰지 않고 십 년은 더 늙어버린 모습으로
우리를 반겼다
초췌하게 변한 모습에 우리는 몇 마디 인사를 나누고 학교를 떠났다
두 번의 월드컵이 더 지났다
토고는 월드컵에서 우승하지 못하고
프랑크푸르트에 파전이 날아다니지 않는다
복어
동네 작은 횟집 네모난 어항
쓰다듬으면 동그랗게 부풀어 오르는 복어가
그 무엇보다도 귀여워 보였다.
귀빈용으로 아껴두는 특식이라던
사시미 든 횟집 주인 무서운 줄 모르고
소금기 가득 찬 물속에서 복어를 꺼냈다
역시나 복어는
내 손길을 반가이 맞이하듯
잔뜩 공기를 빨아들여 동그랗게 부풀어 올랐다
문득 짓궂은 호기심에 사로잡힌 나는
복어의 새하얀 배에 구멍을 뚫었다
풍선처럼 빵 하고 터지지 않았지만
부르르 떨며 눈깔이 뒤집히는 복어에게서
내 첫사랑의 모습이 떠올랐다
참을 수 없던 나는
아직까지 부풀어 오른 복어의 뚫린 구멍으로
성기를 박아 넣었다
회색빛 내장의 감촉을 느끼며
나는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주머니 속 싸구려 볼펜을 꺼내
복어의 몸뚱이에 내 첫사랑의 이니셜 T를 새기며
부풀어 오른 복어가 쪼그라들 때까지
성기를 박아 넣었다
저 멀리서 시퍼런 칼날을 세우고
내 성기를 자르러 달려오는
횟집 주인의 고함을 못 들은 채
그렇게 나는 내 첫사랑을 떠올리며
복어의 뱃속에 성기를 박아 넣었다
요정
어제 뒷산에서 잡아온 그녀는 손 안에 감싸 쥘 수 있는 크기의 요정이었다. 요즘 잘 나간다
는 아이돌 가수 T양을 닮은 그녀는 작은 요정이었다. 외모도, 몸매도 모두 T양을 닮았다. 흐
뭇한 나는 떨고 있는 요정에게 두려워하지 말라며 먹을 것을 주었다. 하지만 요정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고기도, 채소도, 과자도, 과일도, 그 어느 것도 먹지 않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
을 뿐이었다. 화가 난 나는, 아무리 친절하게 대해주어도 두려워만 하는 요정에게 화가 난 나
는 나뭇잎으로 만들어진 요정의 옷을 커터 칼로 찢어발겼다. 소름끼치는 비명을 지르는 요정
의 모습에 잠시 당황하던 나는 이내 몹쓸 자기합리화에 사로잡혀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한쪽
눈을 송곳으로 파내고, 도망치지 못하도록 팔다리를 부러뜨렸다. 점점 흥분되는 몸과 마음을
추스를 수 없던 나는 요정의 사타구니 사이 작고 작은 틈새에 젓가락을 박아 넣었다. 젓가락
을 너무 깊이 집어넣은 건 아닌가 하고 생각했을 때 이미 요정은 경련을 일으키며 죽어가고
있었고, 음부에선 펜촉이 빠진 볼펜처럼 질척하고 검붉은 피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잠시
내가 한 행위에 대해 오백 원짜리 빵을 훔친 어린아이처럼 죄책감에 시달리던 나는 곧 정신을
차리고 요정을 통째로 믹서에 갈아버린 후 간장에 섞어 마셨다. 내가 한 행위가 단순히 짓궂
은 장난이 아닌, 요정의 모든 것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진심어린 사랑이었다고 스스로를
세뇌시키며 갈아버린 요정을 간장에 섞어 마셨다. 나는 단지 남들 다 하는 사랑에 빠졌을 뿐
이었다. 단지 그뿐이었다.
귀향
인어와 동화 속 로맨틱한 사랑을 나누고 싶었던 남자는 바다로 떠났다
어류와의 성행위는 얼마나 쾌감을 줄지 기대감에 부푼 남자는 바다로 떠났다
자신의 성적 판타지를 좇아 망상보단 현실에 충실했던 남자는 바다로 떠났다
소금물에 절인 거대한 양수 안에서
남자는 무한한 쾌락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꿈을 꾸었다
하지만 인어는 보이지 않았고
오랜 시간 발기될 일 없어 초조했던 남자는
오로지 성욕을 해소하고 싶다는 소박한 심정만으로
누구도 시도하지 않던 수중생물과의 동침을 요구했다
통조림 깡통으로나 훼손된 시체로 모습을 드러내던 참치의 처녀막을 찢어버리고
심해에 잠들어 있던 대왕오징어가 미끌미끌한 촉수로 전신을 애무해 주었다
수십 마리의 돌고래 떼와 파도를 가르며 하렘 궁전 생활을 하고
경계하는 복어의 부푼 아랫배에 구멍을 뚫어 겁탈하기도 했다
다른 바다 생물들도 남자의 정액 맛을 느끼고 싶었는지
이번에는 청새치가 나타나 드라큘라의 전신(前身) 블라드 체페슈처럼
창끝으로 피와 내장을 소비하는 항문 성교를 강요했고
마지막으로 카니발리즘에 심취한 상어가 나타나
극단의 사디즘과 마조히즘이 어우러진 SM 플레이를 가르쳐 주었다
끝없는 성의 제전 앞에서 자신을 감당하지 못하고
눈깔이 썩은 생선처럼 새하얗게 뒤집히기 직전에서야
그토록 찾아 헤매던 인어가 나타나 남자를 안아주었다
인간 아닌 존재와 사랑을 갈망한 대가로 피와 살을 바쳐
심장과 뇌만 남은 채 아기의 몸뚱이만큼 작아진 남자를
어머니 형상을 한 인어가 나타나 따스히 안아주었다
아가미 달린 태아로 양수 안에서 자유로이 헤엄치며
남자는 지느러미 달린 어머니 품에 안겨 깊은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
그날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날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니, 비처럼 느껴지는 축축한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 애가 붉은 레인코트를 입고 거리로 나왔을 때
수많은 이들이 반기며 웃어 주었다
군중의 한가운데 서 있던 나는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던 나는
석 달 전 동네 도서관에서 주운 낡은 우산이라도
그 애에게 씌워주고 싶었다
레인코트를 입었지만 혹시라도 감기에 걸릴까봐
우산을 씌워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 애 주위에는 나 말고도 우산을 씌워줄 이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징그러울 정도로, 너무나도 많았다
그 애는 군중들에게 둘러싸여 해맑게 웃고 있었다
자신을 사랑하는 이들이 수없이 많다는 사실에 행복했는지
지나칠 정도로 해맑게 웃고 있었다
너무 상큼하면 감당할 수 없어 신 맛이 나는지
그 애는 눈을 찡그리며 웃고 있었다
어느덧 그 애 주위로 수십 명의 군중이 가득 메우고
그 애는 내 시야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제야 난 정신을 차리고
책을 반납하기 위해 가던 길을 멈춰 서 있던 스스로를 질책하고는
몇 달 동안 단 한 번도 펼치지 않은 주운 우산을 들고
길을 걸었다
군중들의 함성과 뒤섞인 그 애의 희미한 웃음소리를 애써 무시했다
그날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니, 비처럼 느껴지는 축축한 눈이 내리고 있었다
아무 일도 없이, 그저 축축한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나무꾼과 꽃사슴
단지 돈을 벌기 위해
나무를 베던 나무꾼 앞에
갑자기 꽃사슴 한 마리가 나타났다
꽃사슴은 나무꾼에게 사냥꾼이 쫓아온다며
자신을 숨겨달라고 부탁했다
나무꾼은 숨겨줄까 말까 망설였고
그 짤막한 꽃사슴과의 만남 동안
사냥꾼이 나타나 꽃사슴을 죽였다
사냥꾼은 나무꾼에게 눈길 한 번 주지도 않은 채
활촉으로 꽃무늬 수놓은 꽃사슴을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리고 홀로 남겨진 나무꾼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나무를 베기 시작했다
어느 깊은 산 속의 동화 같던 이야기는
현실이 되어 일상의 하루처럼 지나갔다
- 본 응모 작품 중 _<개와 나비의 시간> 은 (사이버 문학광장 웹진, Posted on 2014-01-26 Posted in 시) 일치한 작품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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