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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영/희곡/오늘도 기차는 달린다/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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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기차는 달린다
이미영
등장인물 아이
여자
남자
노인
의사
간호사
시간 현재
무대
무대 오른편은 기차 안의 모습이다. 왼편은 병원 중환자실이며 환자용 침대가 놓여 있다. 이 침대는 상황에 따라 이동이 가능하다.
1장
응급차의 싸이렌 소리와 사람들 웅성거림 들린다. 점점 더 크게 들리는 소리. 잠시 후 무대 왼편으로 의사와 간호사 환자용 침대를 밀며 등장한다. 오른편에는 남자와 여자가 의자에 앉아 있지 않고, 바닥에 쓰러져 있다.
간호사 온몸에서 살타는 냄새가 나요.
의 사 오늘이 고비니까 잘 지켜보도록!
간호사 네. 그런데 흉측한 얼굴에 미소가 잠겨 있어요.
의 사 괴로워 보이는데.
간호사 아니에요. 보세요. 웃고 있잖아요.
의 사 이 정도의 화상이면 표정은 사라지고 없어.
간호사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요?
의 사 글쎄. 급하게 실려 왔으니까.
간호사 보호자는요?
의 사 곧 오겠지.
간호사 선생님 호흡이 거칠어요.
의 사 오늘이 고비라고 했잖아. 내 말 못 들었나.
간호사 여기에 누워 있는 환자 모두 오늘이 고비라고 하셨어요.
의 사 잘 지켜봐. 죽음은 소리 없이 찾아오니까.
간호사 네.
의사 퇴장한다. 간호사 아이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아이의 가슴에 귀를 댄다.
간호사 네 심장 소리, 정말 가늘게 뛰고 있구나. 쿵쿵쿵. 일그러진 살 때문에 자세히 들여 다 볼 수 없지만 넌 마치 좋은 꿈을 꾸고 있는 듯 해.
심장 뛰는 소리, 숨소리 무대 가득 들린다. 사람들 웅성거리는 소리 무대 가득 메운다. 간호사 퇴장.
2장
심장 박동 소리 들리다 점점 작아진다. 잠시 후, 기차 오는 소리 들리며 조명 켜진다. 무대는 기차 안이다. 모두들 쓰러져 있다가 여자 먼저 일어난다.
여 자 머리가 아파. 여기가 어디지. (주위를 둘러본다) 기차 안이야. 여전히 난 이 곳에 있어.
여자, 남자를 발견하고 깨운다.
여 자 이봐요. 일어나 봐요.
남자 일어난다.
남 자 여기가 어디에요?
여 자 정신이 좀 들어요?
남 자 도착했습니까?
여 자 그런 것 같지는 않아요. 들어봐요. 기차가 달리고 있잖아요.
남 자 빌어먹을! 도대체 언제까지 달릴 참인지.
여 자 우리 모두 쓰러졌어요.
남 자 그래, 맞아요. 갑자기 뭔가에 맞은 것 처럼 머리가 깨질 듯 아팠죠.
여 자 그런데, 노인과 아이는 어디에 있죠?
남 자 찾아서 뭐라고 얘기 해야 할지.
여 자 아이가 많이 실망할거예요.
남 자 고집불통 노인은 정신까지 나가서.
이때, 어디선가 노인이 사람을 부르는 소리 들린다.
노 인 나 좀 꺼내줘.
남 자 어디 계세요.
노 인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남 자 손 좀 한 번 들어보세요.
노 인 움직일 수가 없어. 뭔가에 깔렸다구.
여자와 남자 주변을 살피며 뒤진다. 그때 짐에 눌려 있는 노인을 발견한다.
노 인 나 보여?
남 자 네, 찾았습니다.
노 인 뭣하고 있어. 빨리 꺼내줘.
남자, 여자와 함께 짐을 치우자, 노인의 모습 드러난다. 남자, 노인을 부추긴다.
노 인 그렇게 굼떠서야. 숨 막혀서 죽을 뻔 했잖아.
남 자 괜찮으십니까?
노 인 몰라. 온 몸이 아파.
여 자 의자에 앉아 쉬세요.
노 인 댁은 뉘시오.
여 자 아까도 물어 보셨잖아요.
노 인 기억이 안나.
여 자 새댁이라고 하셨잖아요.
노 인 내가. 언제?
여 자 아까요. 제 배를 보시고 말이에요.
노 인 그래. 배. 배를 보니 알 것 같구만. 새댁이었지. 그런데 여긴 어딘가.
남 자 기차 안이죠.
노 인 기차? 난 기차를 탄 적이 없는데.
남 자 저도 만찬가집니다.
노 인 이런 곳이 기차 안이라고?
여 자 기억 안 나세요? 우리 모두 쓰러졌잖아요.
노 인 왜?
여 자 그야... 저도... 잘.
노 인 난 알고 있어. 누군가 우릴 죽이려고 했던 거야.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곳에 갇혀 있을 수 있지?
남 자 기차가 갑자기 급정거 하는 바람에.
또 다시 기차가 급정거 한다. 세 사람 모두 몸을 휘청거린다.
여 자 또 시작이에요.
노 인 그것 보라구. 우리 모두 죽일 셈이야.
남 자 의자를 꼭 붙들고 계세요.
아이 등장한다.
아 이 이제 괜찮아요.
여 자 어디 있었니?
아 이 다른 칸에 있었어요.
여 자 누가 널 데리고 갔어?
아 이 꿈을 꿨어요.
남 자 무슨 꿈.
아 이 따스한 손길이 절 안고 갔었죠.
노 인 우리 말고 또 누가 있어?
아 이 아니요. 꿈이었어요. 깨어나 보니 저곳에 누워 있지 뭐예요.
남 자 다친 곳은 없고?
아 이 네.
여 자 다행이구나.
아 이 아줌마, 우린 어디로 가는 거예요?
여 자 글쎄. 잘 모르겠구나.
노 인 우릴 모두 다 죽일 셈이야.
여 자 할아버지 애 앞에서 그런 말씀 마세요.
노 인 쉬지도 않고 달리는 기차가 어디에 있어. 분명 끝없이 가다가.
아 이 가다가.
노 인 벼랑 끝에 다다르면.
아 이 다다르면.
노 인 쾅! 소리와 함께.
아 이 함께.
남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노인의 입을 막고 의자에 억지로 앉힌다.
남 자 할아버지 우린 죽지 않아요. 그리고 기차는 곧 안전하게 도착해서 우린 안전하게 내릴 겁니다.
여 자 아저씨 말이 맞아. 기차는 원래 출발과 동시에 목적지를 향해 간단다.
아 이 맞아요. 엄마도 그렇게 말씀 하셨어요.
여자, 고개를 끄덕인다. 안정을 찾은 남자와 여자, 의자에 앉는다. 아이는 창밖을 내다본다.
노 인 오늘이 며칠이지?
남 자 월요일, 화요일, 아니, 수요일인가.
노 인 수요일이라면 큰일이군.
여 자 왜요?
노 인 난 수요일 마다 중요한 약속이 있어.
여 자 무슨 일인데요.
노 인 글쎄. 무슨 일이더라. 생각이 잘 나지 않아.
남 자 또 시작하셨군.
노 인 그래. 시작이야. 무슨 시작이더라.
여 자 그냥, 생각하지 마세요.
노 인 아니야. 생각할 수 있어.
남 자 (여자에게) 몸은 괜찮으세요?
여 자 처음에는 뱃 속에서 발길질도 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움직이질 않아요. 무서워요.
남 자 걱정 마세요. 저희 어머니도 절 가질 때 한 참을 조용히 지내더래요.
여 자 어머닌 뭐하고 계시죠?
남 자 생선 장사를 하셨죠. 요즘 몸이 불편하셔서 제가 돌봐드리고 있는데, 여기 갇혀 있으니. 휴.
노 인 생각났어. 난 수요일 마다 아들 집에 갔지.
남 자 그게 중요한 약속인가요?
노 인 그럼, 무척 중요한 일이야. 약속을 어기고 화요일에 가면 다시는 안 본대.
여 자 그건 너무 억지에요.
아이 창밖을 보면서 말한다.
아 이 여기 좀 보세요. 사람들이 보여요.
노인, 남자, 여자 놀라서 창가 쪽으로 다가간다.
노 인 아무 것도 안 보이는데.
남 자 (놀라며) 정말이야. 저기 까만 옷을 입은 사람이 보입니다.
여 자 가까이 다가오고 있어.
노 인 우린 곧 나갈 수 있을 거야.
아 이 울고 있어요.
노 인 (창문을 치며) 안에 사람이 있어. 좀 보라구.
남 자 기차가 달리고 있는데 어떻게 보입니까?
여 자 그런데 이상해요. 달리지만 사람들이 뚜렷하게 보이잖아요.
아 이 누군가 우릴 보고 있어요.
다같이 어디.
남자, 갑자기 주저앉는다.
여 자 왜 그러세요?
남 자 어머니.
여 자 저분이요?
남 자 네. 그런데 울고 계시잖아요.
아 이 아저씨 얼굴이다.
남 자 내 사진. (어머니를 부른다) 어머니, 저 여기 있어요.
노 인 나도 여기에 있어. 우릴 이곳에서 꺼내줘.
여 자 소용없어요. 들리지 않나 봐요. 그냥 가시잖아요.
남 자 설마 아닐거야.
안내방송 들린다.
안내방송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저희 열차를 이용해 주신 손님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본 열차는 잠시 후 급정거 할 예정이오니 안전한 곳에 앉아 주십시오.
노 인 도대체 어디서 들리는 거야!
여 자 누군가 있나 봐요.
남 자 찾아봐야겠어요.
여 자 어디 가시게요.
남 자 분명 우리 말고 다른 사람이 있을 겁니다.
여 자 곧 급정거 한다고 했어요. 위험해요.
남자, 무대 퇴장한다. 잠시 후 열차 안에서 싸이렌 소리 들린다. 사람들 몸을 심하게 흔들거린다.
3장
싸이렌 소리와 심장 박동 소리 들리며 요란하게 기차안 사람들은 흔들거리며 움직인다. 잠시 후, 왼편으로 간호사와 의사 등장한다. 환자의 상태를 살핀다.
의 사 2번 환자 언제부터였지?
간호사 10분 전부터 자꾸 맥박이 떨어지고 있어요.
의 사 빨리 불렀어야지. 큰일이군. 이러다 큰일 나겠어. 보호자를 불러오게.
간호사 퇴장한다. 의사 계속 환자의 상태를 살피다 고개를 흔들며 가망이 없다는 듯 퇴장한다. 기차도 점점 움직임 없이 순조롭게 달린다.
여 자 이제 끝났나 봐요.
노 인 답답해.
남자, 두려운 표정으로 등장한다.
노 인 자넨 누구지? 나 좀 나가게 해줘.
여 자 어떻게 됐어요?
남 자 아무도 없어요. 개미 한 마리도 없다구요.
노 인 넌 누구냐?
여 자 안내 방송이 나왔잖아요. 그럼 그건 누가 내보낸 거죠?
아이 창가에 다가 간다.
남 자 짙은 연기, 아니 안개였어. 눈앞을 가로막아서 볼 수 없었어요.
노 인 안개가 끼면 모든 볼 수 없어. 당연해.
여 자 그런데 이상해요. 마치 달리면서도 정지한 느낌이 들어요.
남 자 어머니의 얼굴을 보는 순간 숨이 막힐 지경이었죠.
노 인 우릴 죽일 셈이야.
남 자 기차 안을 돌다가 봤어요. 어머닌 제 장례식을 치루고 계셨어요.
여 자 잘 못 보신 걸 거예요. 긴박한 순간에 느끼는 환각 상태일 겁니다.
남 자 가난한 집에서 어머니 홀로 삼 남매를 키우셨는데...
노 인 아들과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다신 얼굴을 못 봐.
남 자 전 생선 비린내가 너무 싫어서 도망갔죠. 그 뒤로 이것저것 안 해본 것이 없었죠.
여 자 좋은 경험을 하신 거예요.
남 자 성공해서 떳떳하게 가족들 앞에 서겠다고 결심했는데, 하던 사업이 망했죠.
노 인 약속을 지켜야해.
아 이 저기 보세요. 또 사람들이 지나가요.
남자, 여자, 노인 창가에 다가가 바라본다.
노 인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야.
여 자 사람들이 가까이에 있어요.
아 이 우리 쪽으로 다가와요.
노 인 수요일... 약속... 수요일에 온 거야.
남 자 누가요?
노 인 생각이 날 듯 말 듯.
아 이 할아버지 사진인데.
여 자 정말이네.
노 인 흉터. 흉터가 있었는데.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맞다.
남 자 알아 내셨어요?
노 인 저건 내 사진이고, 저 놈은 우리 아들이지. 수요일이어서 약속 지키러 왔구만. 내가 못 갔으니까.
남 자 이럴 수가. 그럼 우린...
여 자 (배가 아픈지 고통을 호소한다) 나오려고 해요.
남 자 이럴 때 하필.
노 인 저 놈은 다른 아이들과 달라서 머리가 굉장히 좋았지. 그래서 내가 운영하는 회사를 내줬는데, 하필 수요일에 일이 터진 거야. 내가 봤거든. 그 놈이 사람의 목을 조르고 있었어.
여 자 살려주세요.
남 자 여기선 안 돼요.
노 인 경찰이 용의자로 아들을 지목했어. 아들이 그랬어. 우린 수요일에 만나기로 약속 한 거라고.
아 이 아줌마 괜찮아요?
남 자 전 아직 총각이어서 아무 것도 몰라요.
여 자 의사, 제가 의사예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요. 다만... 악.
노 인 수요일은 기억해. 난 아들과 함께 있었어.
시끄럽게 사이렌 울린다. 여자는 바닥에 누워 있고, 남자는 여자 앞에 앉아 여자의 상태를 지켜보고 있다. 아이는 창 밖을 내다본다. 노인은 혼자 중얼거린다. 이 때 의사와 간호사 환자용 침대를 끌려 등장한다. 수술을 하고 있다.
의 사 메스.
간호사 여기요.
의 사 거즈.
간호사 여기요.
의 사 이제 나온다. 조금만 더. 조금만.
간호사 힘을 내세요.
여 자 죽을 것 같아.
의 사 이런!
간호사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아.
여 자 악!
여자 기절하고, 의사와 간호사 침대를 끌고 이동한다. 암전.
4장
맥없이 앉아 있는 여자는 옷에 죽은 아이를 싸안고 있다. 남자와 아이는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노인은 기차 안을 계속 왔다 갔다 한다.
여 자 아기가 안 움직여요.
노 인 수요일. 아들을 보러가는 날.
여 자 울어봐. 엄마야.
남 자 안개가 꼈는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아 이 엄마가 보여요. 아저씨 우린 곧 목적지에 도착하는 거죠?
남 자 그래.
아 이 엄마가 저기서 손짓하고 있어요.
여 자 아니야. 죽지 않았어. 내 손으로 널 죽이지 않았어.
남자, 여자에게 다가간다.
남 자 안타깝지만, 이제 그만하세요.
여 자 이 손이 그런 거예요. 제가 뱃 속의 아이를 죽였어요.
노 인 그자를 죽이는 모습을 똑똑히 봤다니까.
여 자 무서워요.
남 자 기차가 갑자기 서게 되면 우리 모두 탈출하는 겁니다.
노 인 목을 조르고 있었지.
남 자 아이를 묻읍시다.
여 자 내 아이야. 만지지마.
노 인 이 안엔 아무 것도 없어. 바람도, 공기도 통하지 않아.
안내방송 들린다.
안내방송 잠시 안내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희 열차 잠시 후 종착역에 도착할 예정이오니, 안전한 객실에 앉아 기다려 주십시오.
남 자 들었죠? 우린 곧 도착합니다.
노 인 만나러 가야해. 사실대로 이야기 할 거야.
여 자 아가야. 내 아가.
기차 안은 어둡다. 간호사, 환자의 상태를 확인한다.
간호사 선생님은 오늘이 고비라고 하셨는데, 난 믿지 않아. 넌 반드시 살아 날거야.
의사 등장한다.
의 사 별일 없었나.
간호사 네. 이 아인 꼭 살아 날 거예요.
의 사 나도 그러길 바라네.
간호사 오늘 밤 중환자실 환자만 세 명이 죽었어요.
의 사 우린 최선을 다할 뿐이야.
간호사 (아이를 쳐다보다 놀라며) 선생님 심장 박동수가 떨어지고 있어요.
의 사 누구나 한번은 죽는 거야. 그게 인간의 운명이지. 결국엔 한줌의 먼지 밖에 남지 않는 우린, 그 먼지를 마시고 살지. 살과 살이, 뼈와 뼈가 만나는 거야. 다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뿐이라네.
간호사 이 아이도 죽을까 두려워요.
기차 지나가는 소리가 빠르게 들린다. 이 때 아이의 심장 박동수가 계속 떨어진다.
간호사 심장이 뛰질 않아요.
의 사 큰일이군.
간호사 벌써 떠난 걸까요?
의 사 (여러 방법으로 깨워 보려 한다)
간호사 자면 안 돼. 깊은 잠을 자면 도저히 깨울 수 없어.
의 사 서서히 사그라들고 있어.
심장 소리 멈춤.
간호사 아이는 이제 정말 떠났나요?
의 사 아니, 아직도 우리와 함께 있어.
간호사 어디, 어느 곳에요?
의 사 들어봐. 기차 소리처럼 강하고, 낯설지 않게 우리 곁에 있잖나.
간호사 (아이의 얼굴을 쳐다보며 흰 시트로 덮는다)
의사와 간호사 퇴장. 기차 안.
아 이 엄마가 손짓하고 있어요. 선명하게 보여요.
남 자 이젠 더 이상 힘이 없구나.
여 자 아기가 울지 않아요.
노 인 우릴 다 죽일 셈이야.
아 이 전 고통스럽지 않아요. 엄마를 만나니까요.
남 자 너도 좀 쉬렴. 이제 곧 도착한다니 그때 까지 만이라도.
아 이 괜찮아요.
노 인 도착한다고? 언제?
남 자 방금 전에 안내 방송 들으셨잖아요.
노 인 거짓말이야. 믿을 수 없어. 그 놈은 날 죽이려했어. 그래서 이 안에 날 버린 거야.
안내 방송 들린다.
안내방송 승객 여러분 오늘도 즐거운 여행 되셨습니까. 저희 열차는 목적지에 곧 도착하겠습니다. 내리실 때에 두고 내리신 물건이 없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신 후 안전한 곳으로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저희 열차를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차 도착 신호를 알리며 움직인다. 모두들 일어선다.
노 인 드디어 도착했어.
남 자 (여자에게) 빨리 나갑시다.
여자 일어선다. 아이는 계속해서 창밖을 내다본다.
아 이 안개뿐이에요.
다같이 뭐?
아 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요.
노 인 그럴 일 없어.
남 자 그럼, 그게 사실인가?
여 자 어떤 사실?
남 자 우린 모두.
다같이 모두. (넋이 나간 듯) 설마. 아닐 거야.
아 이 엄마가 오고 있어요. 전 나가봐야 해요.
여 자 엄마가 어디 계시는데?
아 이 그곳에 먼저 가 계신댔어요.
노 인 여긴 어디지?
남 자 결국 어둠을 뚫고 이제야 도착했는데.
여 자 누구나 한번 기차를 타야 할 때가 있지.
노 인 아무도 모르게 이 거대한 놈이 다가와서 삼키지.
다같이 아무도 모르게.
아이 천천히 걸어 나간다. 다른 사람들 멍하니 앞을 바라본다. 긴 신호와 함께 기차 움직이는 소리 들린다.
암전
이미영
등장인물 아이
여자
남자
노인
의사
간호사
시간 현재
무대
무대 오른편은 기차 안의 모습이다. 왼편은 병원 중환자실이며 환자용 침대가 놓여 있다. 이 침대는 상황에 따라 이동이 가능하다.
1장
응급차의 싸이렌 소리와 사람들 웅성거림 들린다. 점점 더 크게 들리는 소리. 잠시 후 무대 왼편으로 의사와 간호사 환자용 침대를 밀며 등장한다. 오른편에는 남자와 여자가 의자에 앉아 있지 않고, 바닥에 쓰러져 있다.
간호사 온몸에서 살타는 냄새가 나요.
의 사 오늘이 고비니까 잘 지켜보도록!
간호사 네. 그런데 흉측한 얼굴에 미소가 잠겨 있어요.
의 사 괴로워 보이는데.
간호사 아니에요. 보세요. 웃고 있잖아요.
의 사 이 정도의 화상이면 표정은 사라지고 없어.
간호사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요?
의 사 글쎄. 급하게 실려 왔으니까.
간호사 보호자는요?
의 사 곧 오겠지.
간호사 선생님 호흡이 거칠어요.
의 사 오늘이 고비라고 했잖아. 내 말 못 들었나.
간호사 여기에 누워 있는 환자 모두 오늘이 고비라고 하셨어요.
의 사 잘 지켜봐. 죽음은 소리 없이 찾아오니까.
간호사 네.
의사 퇴장한다. 간호사 아이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아이의 가슴에 귀를 댄다.
간호사 네 심장 소리, 정말 가늘게 뛰고 있구나. 쿵쿵쿵. 일그러진 살 때문에 자세히 들여 다 볼 수 없지만 넌 마치 좋은 꿈을 꾸고 있는 듯 해.
심장 뛰는 소리, 숨소리 무대 가득 들린다. 사람들 웅성거리는 소리 무대 가득 메운다. 간호사 퇴장.
2장
심장 박동 소리 들리다 점점 작아진다. 잠시 후, 기차 오는 소리 들리며 조명 켜진다. 무대는 기차 안이다. 모두들 쓰러져 있다가 여자 먼저 일어난다.
여 자 머리가 아파. 여기가 어디지. (주위를 둘러본다) 기차 안이야. 여전히 난 이 곳에 있어.
여자, 남자를 발견하고 깨운다.
여 자 이봐요. 일어나 봐요.
남자 일어난다.
남 자 여기가 어디에요?
여 자 정신이 좀 들어요?
남 자 도착했습니까?
여 자 그런 것 같지는 않아요. 들어봐요. 기차가 달리고 있잖아요.
남 자 빌어먹을! 도대체 언제까지 달릴 참인지.
여 자 우리 모두 쓰러졌어요.
남 자 그래, 맞아요. 갑자기 뭔가에 맞은 것 처럼 머리가 깨질 듯 아팠죠.
여 자 그런데, 노인과 아이는 어디에 있죠?
남 자 찾아서 뭐라고 얘기 해야 할지.
여 자 아이가 많이 실망할거예요.
남 자 고집불통 노인은 정신까지 나가서.
이때, 어디선가 노인이 사람을 부르는 소리 들린다.
노 인 나 좀 꺼내줘.
남 자 어디 계세요.
노 인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남 자 손 좀 한 번 들어보세요.
노 인 움직일 수가 없어. 뭔가에 깔렸다구.
여자와 남자 주변을 살피며 뒤진다. 그때 짐에 눌려 있는 노인을 발견한다.
노 인 나 보여?
남 자 네, 찾았습니다.
노 인 뭣하고 있어. 빨리 꺼내줘.
남자, 여자와 함께 짐을 치우자, 노인의 모습 드러난다. 남자, 노인을 부추긴다.
노 인 그렇게 굼떠서야. 숨 막혀서 죽을 뻔 했잖아.
남 자 괜찮으십니까?
노 인 몰라. 온 몸이 아파.
여 자 의자에 앉아 쉬세요.
노 인 댁은 뉘시오.
여 자 아까도 물어 보셨잖아요.
노 인 기억이 안나.
여 자 새댁이라고 하셨잖아요.
노 인 내가. 언제?
여 자 아까요. 제 배를 보시고 말이에요.
노 인 그래. 배. 배를 보니 알 것 같구만. 새댁이었지. 그런데 여긴 어딘가.
남 자 기차 안이죠.
노 인 기차? 난 기차를 탄 적이 없는데.
남 자 저도 만찬가집니다.
노 인 이런 곳이 기차 안이라고?
여 자 기억 안 나세요? 우리 모두 쓰러졌잖아요.
노 인 왜?
여 자 그야... 저도... 잘.
노 인 난 알고 있어. 누군가 우릴 죽이려고 했던 거야.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곳에 갇혀 있을 수 있지?
남 자 기차가 갑자기 급정거 하는 바람에.
또 다시 기차가 급정거 한다. 세 사람 모두 몸을 휘청거린다.
여 자 또 시작이에요.
노 인 그것 보라구. 우리 모두 죽일 셈이야.
남 자 의자를 꼭 붙들고 계세요.
아이 등장한다.
아 이 이제 괜찮아요.
여 자 어디 있었니?
아 이 다른 칸에 있었어요.
여 자 누가 널 데리고 갔어?
아 이 꿈을 꿨어요.
남 자 무슨 꿈.
아 이 따스한 손길이 절 안고 갔었죠.
노 인 우리 말고 또 누가 있어?
아 이 아니요. 꿈이었어요. 깨어나 보니 저곳에 누워 있지 뭐예요.
남 자 다친 곳은 없고?
아 이 네.
여 자 다행이구나.
아 이 아줌마, 우린 어디로 가는 거예요?
여 자 글쎄. 잘 모르겠구나.
노 인 우릴 모두 다 죽일 셈이야.
여 자 할아버지 애 앞에서 그런 말씀 마세요.
노 인 쉬지도 않고 달리는 기차가 어디에 있어. 분명 끝없이 가다가.
아 이 가다가.
노 인 벼랑 끝에 다다르면.
아 이 다다르면.
노 인 쾅! 소리와 함께.
아 이 함께.
남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노인의 입을 막고 의자에 억지로 앉힌다.
남 자 할아버지 우린 죽지 않아요. 그리고 기차는 곧 안전하게 도착해서 우린 안전하게 내릴 겁니다.
여 자 아저씨 말이 맞아. 기차는 원래 출발과 동시에 목적지를 향해 간단다.
아 이 맞아요. 엄마도 그렇게 말씀 하셨어요.
여자, 고개를 끄덕인다. 안정을 찾은 남자와 여자, 의자에 앉는다. 아이는 창밖을 내다본다.
노 인 오늘이 며칠이지?
남 자 월요일, 화요일, 아니, 수요일인가.
노 인 수요일이라면 큰일이군.
여 자 왜요?
노 인 난 수요일 마다 중요한 약속이 있어.
여 자 무슨 일인데요.
노 인 글쎄. 무슨 일이더라. 생각이 잘 나지 않아.
남 자 또 시작하셨군.
노 인 그래. 시작이야. 무슨 시작이더라.
여 자 그냥, 생각하지 마세요.
노 인 아니야. 생각할 수 있어.
남 자 (여자에게) 몸은 괜찮으세요?
여 자 처음에는 뱃 속에서 발길질도 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움직이질 않아요. 무서워요.
남 자 걱정 마세요. 저희 어머니도 절 가질 때 한 참을 조용히 지내더래요.
여 자 어머닌 뭐하고 계시죠?
남 자 생선 장사를 하셨죠. 요즘 몸이 불편하셔서 제가 돌봐드리고 있는데, 여기 갇혀 있으니. 휴.
노 인 생각났어. 난 수요일 마다 아들 집에 갔지.
남 자 그게 중요한 약속인가요?
노 인 그럼, 무척 중요한 일이야. 약속을 어기고 화요일에 가면 다시는 안 본대.
여 자 그건 너무 억지에요.
아이 창밖을 보면서 말한다.
아 이 여기 좀 보세요. 사람들이 보여요.
노인, 남자, 여자 놀라서 창가 쪽으로 다가간다.
노 인 아무 것도 안 보이는데.
남 자 (놀라며) 정말이야. 저기 까만 옷을 입은 사람이 보입니다.
여 자 가까이 다가오고 있어.
노 인 우린 곧 나갈 수 있을 거야.
아 이 울고 있어요.
노 인 (창문을 치며) 안에 사람이 있어. 좀 보라구.
남 자 기차가 달리고 있는데 어떻게 보입니까?
여 자 그런데 이상해요. 달리지만 사람들이 뚜렷하게 보이잖아요.
아 이 누군가 우릴 보고 있어요.
다같이 어디.
남자, 갑자기 주저앉는다.
여 자 왜 그러세요?
남 자 어머니.
여 자 저분이요?
남 자 네. 그런데 울고 계시잖아요.
아 이 아저씨 얼굴이다.
남 자 내 사진. (어머니를 부른다) 어머니, 저 여기 있어요.
노 인 나도 여기에 있어. 우릴 이곳에서 꺼내줘.
여 자 소용없어요. 들리지 않나 봐요. 그냥 가시잖아요.
남 자 설마 아닐거야.
안내방송 들린다.
안내방송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저희 열차를 이용해 주신 손님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본 열차는 잠시 후 급정거 할 예정이오니 안전한 곳에 앉아 주십시오.
노 인 도대체 어디서 들리는 거야!
여 자 누군가 있나 봐요.
남 자 찾아봐야겠어요.
여 자 어디 가시게요.
남 자 분명 우리 말고 다른 사람이 있을 겁니다.
여 자 곧 급정거 한다고 했어요. 위험해요.
남자, 무대 퇴장한다. 잠시 후 열차 안에서 싸이렌 소리 들린다. 사람들 몸을 심하게 흔들거린다.
3장
싸이렌 소리와 심장 박동 소리 들리며 요란하게 기차안 사람들은 흔들거리며 움직인다. 잠시 후, 왼편으로 간호사와 의사 등장한다. 환자의 상태를 살핀다.
의 사 2번 환자 언제부터였지?
간호사 10분 전부터 자꾸 맥박이 떨어지고 있어요.
의 사 빨리 불렀어야지. 큰일이군. 이러다 큰일 나겠어. 보호자를 불러오게.
간호사 퇴장한다. 의사 계속 환자의 상태를 살피다 고개를 흔들며 가망이 없다는 듯 퇴장한다. 기차도 점점 움직임 없이 순조롭게 달린다.
여 자 이제 끝났나 봐요.
노 인 답답해.
남자, 두려운 표정으로 등장한다.
노 인 자넨 누구지? 나 좀 나가게 해줘.
여 자 어떻게 됐어요?
남 자 아무도 없어요. 개미 한 마리도 없다구요.
노 인 넌 누구냐?
여 자 안내 방송이 나왔잖아요. 그럼 그건 누가 내보낸 거죠?
아이 창가에 다가 간다.
남 자 짙은 연기, 아니 안개였어. 눈앞을 가로막아서 볼 수 없었어요.
노 인 안개가 끼면 모든 볼 수 없어. 당연해.
여 자 그런데 이상해요. 마치 달리면서도 정지한 느낌이 들어요.
남 자 어머니의 얼굴을 보는 순간 숨이 막힐 지경이었죠.
노 인 우릴 죽일 셈이야.
남 자 기차 안을 돌다가 봤어요. 어머닌 제 장례식을 치루고 계셨어요.
여 자 잘 못 보신 걸 거예요. 긴박한 순간에 느끼는 환각 상태일 겁니다.
남 자 가난한 집에서 어머니 홀로 삼 남매를 키우셨는데...
노 인 아들과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다신 얼굴을 못 봐.
남 자 전 생선 비린내가 너무 싫어서 도망갔죠. 그 뒤로 이것저것 안 해본 것이 없었죠.
여 자 좋은 경험을 하신 거예요.
남 자 성공해서 떳떳하게 가족들 앞에 서겠다고 결심했는데, 하던 사업이 망했죠.
노 인 약속을 지켜야해.
아 이 저기 보세요. 또 사람들이 지나가요.
남자, 여자, 노인 창가에 다가가 바라본다.
노 인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야.
여 자 사람들이 가까이에 있어요.
아 이 우리 쪽으로 다가와요.
노 인 수요일... 약속... 수요일에 온 거야.
남 자 누가요?
노 인 생각이 날 듯 말 듯.
아 이 할아버지 사진인데.
여 자 정말이네.
노 인 흉터. 흉터가 있었는데.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맞다.
남 자 알아 내셨어요?
노 인 저건 내 사진이고, 저 놈은 우리 아들이지. 수요일이어서 약속 지키러 왔구만. 내가 못 갔으니까.
남 자 이럴 수가. 그럼 우린...
여 자 (배가 아픈지 고통을 호소한다) 나오려고 해요.
남 자 이럴 때 하필.
노 인 저 놈은 다른 아이들과 달라서 머리가 굉장히 좋았지. 그래서 내가 운영하는 회사를 내줬는데, 하필 수요일에 일이 터진 거야. 내가 봤거든. 그 놈이 사람의 목을 조르고 있었어.
여 자 살려주세요.
남 자 여기선 안 돼요.
노 인 경찰이 용의자로 아들을 지목했어. 아들이 그랬어. 우린 수요일에 만나기로 약속 한 거라고.
아 이 아줌마 괜찮아요?
남 자 전 아직 총각이어서 아무 것도 몰라요.
여 자 의사, 제가 의사예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요. 다만... 악.
노 인 수요일은 기억해. 난 아들과 함께 있었어.
시끄럽게 사이렌 울린다. 여자는 바닥에 누워 있고, 남자는 여자 앞에 앉아 여자의 상태를 지켜보고 있다. 아이는 창 밖을 내다본다. 노인은 혼자 중얼거린다. 이 때 의사와 간호사 환자용 침대를 끌려 등장한다. 수술을 하고 있다.
의 사 메스.
간호사 여기요.
의 사 거즈.
간호사 여기요.
의 사 이제 나온다. 조금만 더. 조금만.
간호사 힘을 내세요.
여 자 죽을 것 같아.
의 사 이런!
간호사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아.
여 자 악!
여자 기절하고, 의사와 간호사 침대를 끌고 이동한다. 암전.
4장
맥없이 앉아 있는 여자는 옷에 죽은 아이를 싸안고 있다. 남자와 아이는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노인은 기차 안을 계속 왔다 갔다 한다.
여 자 아기가 안 움직여요.
노 인 수요일. 아들을 보러가는 날.
여 자 울어봐. 엄마야.
남 자 안개가 꼈는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아 이 엄마가 보여요. 아저씨 우린 곧 목적지에 도착하는 거죠?
남 자 그래.
아 이 엄마가 저기서 손짓하고 있어요.
여 자 아니야. 죽지 않았어. 내 손으로 널 죽이지 않았어.
남자, 여자에게 다가간다.
남 자 안타깝지만, 이제 그만하세요.
여 자 이 손이 그런 거예요. 제가 뱃 속의 아이를 죽였어요.
노 인 그자를 죽이는 모습을 똑똑히 봤다니까.
여 자 무서워요.
남 자 기차가 갑자기 서게 되면 우리 모두 탈출하는 겁니다.
노 인 목을 조르고 있었지.
남 자 아이를 묻읍시다.
여 자 내 아이야. 만지지마.
노 인 이 안엔 아무 것도 없어. 바람도, 공기도 통하지 않아.
안내방송 들린다.
안내방송 잠시 안내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희 열차 잠시 후 종착역에 도착할 예정이오니, 안전한 객실에 앉아 기다려 주십시오.
남 자 들었죠? 우린 곧 도착합니다.
노 인 만나러 가야해. 사실대로 이야기 할 거야.
여 자 아가야. 내 아가.
기차 안은 어둡다. 간호사, 환자의 상태를 확인한다.
간호사 선생님은 오늘이 고비라고 하셨는데, 난 믿지 않아. 넌 반드시 살아 날거야.
의사 등장한다.
의 사 별일 없었나.
간호사 네. 이 아인 꼭 살아 날 거예요.
의 사 나도 그러길 바라네.
간호사 오늘 밤 중환자실 환자만 세 명이 죽었어요.
의 사 우린 최선을 다할 뿐이야.
간호사 (아이를 쳐다보다 놀라며) 선생님 심장 박동수가 떨어지고 있어요.
의 사 누구나 한번은 죽는 거야. 그게 인간의 운명이지. 결국엔 한줌의 먼지 밖에 남지 않는 우린, 그 먼지를 마시고 살지. 살과 살이, 뼈와 뼈가 만나는 거야. 다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뿐이라네.
간호사 이 아이도 죽을까 두려워요.
기차 지나가는 소리가 빠르게 들린다. 이 때 아이의 심장 박동수가 계속 떨어진다.
간호사 심장이 뛰질 않아요.
의 사 큰일이군.
간호사 벌써 떠난 걸까요?
의 사 (여러 방법으로 깨워 보려 한다)
간호사 자면 안 돼. 깊은 잠을 자면 도저히 깨울 수 없어.
의 사 서서히 사그라들고 있어.
심장 소리 멈춤.
간호사 아이는 이제 정말 떠났나요?
의 사 아니, 아직도 우리와 함께 있어.
간호사 어디, 어느 곳에요?
의 사 들어봐. 기차 소리처럼 강하고, 낯설지 않게 우리 곁에 있잖나.
간호사 (아이의 얼굴을 쳐다보며 흰 시트로 덮는다)
의사와 간호사 퇴장. 기차 안.
아 이 엄마가 손짓하고 있어요. 선명하게 보여요.
남 자 이젠 더 이상 힘이 없구나.
여 자 아기가 울지 않아요.
노 인 우릴 다 죽일 셈이야.
아 이 전 고통스럽지 않아요. 엄마를 만나니까요.
남 자 너도 좀 쉬렴. 이제 곧 도착한다니 그때 까지 만이라도.
아 이 괜찮아요.
노 인 도착한다고? 언제?
남 자 방금 전에 안내 방송 들으셨잖아요.
노 인 거짓말이야. 믿을 수 없어. 그 놈은 날 죽이려했어. 그래서 이 안에 날 버린 거야.
안내 방송 들린다.
안내방송 승객 여러분 오늘도 즐거운 여행 되셨습니까. 저희 열차는 목적지에 곧 도착하겠습니다. 내리실 때에 두고 내리신 물건이 없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신 후 안전한 곳으로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저희 열차를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차 도착 신호를 알리며 움직인다. 모두들 일어선다.
노 인 드디어 도착했어.
남 자 (여자에게) 빨리 나갑시다.
여자 일어선다. 아이는 계속해서 창밖을 내다본다.
아 이 안개뿐이에요.
다같이 뭐?
아 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요.
노 인 그럴 일 없어.
남 자 그럼, 그게 사실인가?
여 자 어떤 사실?
남 자 우린 모두.
다같이 모두. (넋이 나간 듯) 설마. 아닐 거야.
아 이 엄마가 오고 있어요. 전 나가봐야 해요.
여 자 엄마가 어디 계시는데?
아 이 그곳에 먼저 가 계신댔어요.
노 인 여긴 어디지?
남 자 결국 어둠을 뚫고 이제야 도착했는데.
여 자 누구나 한번 기차를 타야 할 때가 있지.
노 인 아무도 모르게 이 거대한 놈이 다가와서 삼키지.
다같이 아무도 모르게.
아이 천천히 걸어 나간다. 다른 사람들 멍하니 앞을 바라본다. 긴 신호와 함께 기차 움직이는 소리 들린다.
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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