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신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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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영/희곡/초대/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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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초대
이미영
등장 인물
나
동생
남자
여자
집주인
덩치
시간
과거, 현재
장소
도시의 허름한 주택. 1층과 반지하방
무대 배경
무대의 오른쪽 뒤편에 조금 높게 위치한 방 두 개가 나란히 붙어 있다. 각 방은 남자와 여자의 방이다. 그 바로 오른쪽 앞으로 남매의 방이 있다. 이 두 층을 연결하는 낮은 계단이 왼편에 있다. 1층의 왼쪽 방은 남자의 방으로 기타가 놓여 있다. 옆 방에는 여자의 방으로 화장대와 옷장이 정돈되어 있다. 남매의 방에는 큰 옷장이 하나 있으며, 이불을 둘러쓰고 있는 나(인형)의 모습이 보인다. 또한 작은 어항 하나가 방 안에 놓여 있다. 왼편에는 작은 창문이 있으며 무대의 왼편은 마당을 이루고 작은 플라스틱 의자와 화분 몇 개가 있다.
1장
‘나’가 등장해 무대 왼편 마당의 플라스틱 의자에 앉는다. ‘나’는 화분 속 흙을 조금씩 손으로 담아 바닥에 뿌린다.
나 벌써 한 달이 지났군요. 오늘 전 드디어 마지막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손을 거쳐 여기 저기 세상 구경을 하다가 돌아왔죠. 생각지도 못할 일들이 세상엔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뭐랄까. 흰 도화지에 그린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 말입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도 낯선 집에 들어선 느낌이었습니다.
동생이 선물로 받아온 어항 안에는 모두 여섯 마리의 금붕어가 들어있었습니다. 동생은 금붕어를 받아온 날부터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죠. 마냥 어릴 것 같던 동생의 몸에서 여자의 향기가 느껴지던 날. 매일 먹을 것을 입에서 떼어 놓지 않았던 동생의 모습. 유유히 헤엄치던 금붕어를 바라보는 동생의 모습이 기억납니다. 금붕어들은 제 눈에는 똑같이 보였는데, 동생은 어떻게 알았는지 한 놈 한 놈의 모습과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죠. 동생의 시선에 모인 금붕어들은 금비늘이 번쩍거리는 옷을 입고, 좁은 어항 속이 전부 인 것 처럼 숨 쉬고 다녔습니다. 기포가 오르는 어항 속에서 금붕어만의 세상을 만들어 나갈 때 나머지 한 마리는 처음 볼 때부터 숨만 간신히 쉬었습니다. 물결이 지나가는 길에서 몸도 둥둥 떠 다녔죠. 하루, 이틀...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습니다. 마치 제 몸도 그 안에서 함께 표류하고 있다고 느끼며 말입니다. 어항 안을 함께 헤엄치던 다른 녀석들은 아무 것도 모른 채 죽은 녀석의 주위를 맴돌기 시작했습니다.
동생은 죽은 금붕어를 오래도록 인식하지 못하다가, 아마 인정하기 싫었을 겁니다. 제 생일날 저녁, 죽은 금붕어를 건져 화분에 묻어 주더군요. 물고기 한 마리의 존재가 너무도 쉽게 건져 올려졌을 때의 모습. 어항 속 좁은 공간에서 부유하다가 드디어 정착하게 된 죽음의 그림자를 저는 잊지 못합니다. 한 달의 시간이 마치 하루 처럼 느껴지던 날. 새로운 어항 속으로 들어가지 못한 금붕어 한 마리를 바라봅니다. 누군가의 손에 건져 올려 질 때 까지 말입니다.
2장
무대 환해지면 남자는 기타를 치고 있고, 여자는 외출 준비를 하고 있다. ‘나’는 계속 의자에 앉아 동생과 대화한다.
나 어디 있니?
동 생 여기 있지.
나 글쎄. 오빠는 못 찾겠다.
동 생 바보다. 오빠는 바보야.
나 한번만 봐줘. 정말 어디에 숨었는지 모르겠다.
동 생 그것도 몰라? 이 안은 깜깜하다. 오빠 얼굴도 안 보여.
나 어, 정말 어디 숨었지? 오빠가 이번에도 졌다.
동 생 히히. 그것 봐. 숨박꼭질에서 졌다. 오빠가.
나 눈 감을 게. 나와라. 하나, 둘, 셋.
동 생 (옷장에서 나온다) 눈떠.
나 어디에 숨었어?
동 생 안 가르쳐준다.
나 숨박꼭질하니까 재밌어?
동 생 응. 안에 있으면 아무도 못 찾는다.
동생은 마당으로 나온다. 마당에 있는 화분에 물을 준다.
동 생 아, 벌려봐. 하늘에서 비가 내린다. 많이 먹어. 나도 비 맞고 싶어.
나 안 돼. 감기 걸려.
동 생 비가 오면 시원해. 내 몸도 깨끗해져.
나 비 오는 날은 나가지마. 저번에 넘어져서 다쳤잖아. 생각 안 나?
동 생 오빠. 비보여 주려고 나갔지. 물 컵에 담아서 주려고 했어. (겁에 질린 표정) 그런데, 넘어졌어.
나 괜찮아. 소리로도 비를 볼 수 있어.
동 생 쉿, 들어봐. 새 소리가 들려.
동생, 다시 방 안으로 들어온다. 어항을 들여다보며 금붕어 숫자를 센다.
동생 하나, 둘, 셋... 금눙아 잘 잤니?
나 오빠가 졌으니까 오늘은 밥 줘도 된다.
동 생 진짜?
나 그대신 조금씩만 주는 거다. 저번 같이 많이 주면 금붕어 배가.
동 생 펑. 터져. 나 알고 있다. 조금씩 줄거야.
동생, 금붕어 밥을 준다.
동 생 금눙아 많이 먹어. 아니 조금만 먹어.
나 그 다음에 뭘 해야 하나?
동 생 몰라. 생각 안나.
나 글씨 연습.
동 생 싫어 안 할래.
나 공부해서 빨리 쓰고, 읽을 줄 알아야지.
동 생 어렵다.
나 저번에 잘 써서 오빠가 뭘 해줬더라.
동 생 비행기. 공부 잘 하면 비행기 만들어 줄거야?
나 응. 오늘은 두 개 만들어 준다. 시작할까?
동생, 종이에 연필로 글씨 쓰기 연습을 한다.
나 뭘 쓰고 있어?
동 생 생일 파티 한다. 종이에 예쁘게 적을 거야.
나 초대장 만들려고?
동 생 금눙이도 초대할거다.
나 누구 생일인대?
동 생 달력에 빨갛게 칠했다. 오빠 생일. 모두 다 초대할거다.
나 벌써 그렇게 됐구나. 그럼 뭐라고 쓸까?
동생, 열심히 받아쓰고 있다.
나 꼭 오셔서 생일을 축하해 주세요. 몇 시로 하면 좋을까?
동 생 다섯 시.
나 다 적었어?
동 생 응. 이제 비행기 만들어줘.
나, 일어나 종이비행기를 만든다. 동생, 거울을 보고 머리에 예쁜 핀을 꽂는다. 옷도 갈아 입는다. 동생이 초대장을 들고 나오자 나, 종이비행기를 날린다. 동생 날려가는 방향을 쳐다본다. 동생은 의자에 놓인 다른 종이비행기를 들고, 계단에서 날려본다. 이때 여자, 밖으로 나와 남자의 방문을 두드린다. 동생도 종이비행기를 날리다가 남자의 방 쪽으로 간다.
여 자 안에 있어?
남 자 들어와.
여자 방안으로 들어간다.
여 자 오늘 주인 만나러가. 결판을 내야지. 자기가 하라는 대로 했는데, 영 찝찝한 게. 그 영감 눈치가 빠르잖아. 그리고 어젠 처음 본 사람을 한명 데리고 나오더라.
남 자 걱정 하지마.
여 자 그냥, 우리 오늘 도망가면 안 될까?
남 자 안 돼.
여 자 이상해. 자긴 주인 잡아먹으러 온 사람 같이 안달이 나서.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것 처럼 말이야.
남 자 그런 거 없어. 쉿. 무슨 소리가 들려.
두 사람 순간 정적. 동생 노랫소리만 들린다. 동생, 남자의 방 앞에 여자 구두가 있는 걸 보고 몰래 가져와 숨겨 놓는다.
여 자 이 일만 잘 되면 우린 오늘 밤 가는 거지?
남 자 (무뚝뚝하게) 그래.
여 자 클럽에서 처음 자길 봤을 땐 마냥 멋있게만 느꼈어. 기타 치면서 노래 부르는 모습에 반했지. 하지만 내가 언제부터 자길 믿었는지 알아? 바로 내가 클럽 주인한테 맞고 있을 때 날 데리고 도망쳤던 그 날이었어. 약한 줄만 알았는데. 하지만 가끔은 무서워. 겉은 부드럽지만 눈을 보면 딴 곳을 향해 있잖아. 그 전이 더 나았는지도 몰라. 이 일만 끝내면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거야. 알았지?
남 자 그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여자 나온다. 신발이 없어진 걸 확인한다. 여자의 모습을 지켜보며 웃고 있는 동생을 발견한다.
여 자 혹시 여기 있던 신발 못 봤어?
동 생 모른다.
여 자 진짜 못 봤다고 그랬지? 그럼 저기 있는 건 뭐야? 한 두 번도 아니고. 아니 왜 그래.
동 생 내가 안 그랬다. (배를 만지며) 이 안에서 그랬어.
여 자 이 집에 너 말고 이런 짓 할 사람 또 누가 있어?
남자 나온다.
남 자 무슨 일이야?
여 자 신발. 저 아가씨가 신발을 또 숨겨 놨지 뭐야.
남 자 (다정하게) 왜 그랬어요.
동 생 나 안 그랬어. 진짜야.
남 자 내가 가져다주지.
남자 신발을 가져다준다.
여 자 오늘이 마지막 이니까 정말 참는다.
여자, 신발을 신고 화난 얼굴로 나선다.
남 자 이제 그러면 안돼요.
동 생 저 여자 싫어.
남 자 오늘 어디가요? 예쁘게 단장을 다하고.
동 생 예쁘다. (초대장을 주며) 생일 파티 한다.
남 자 생일이에요?
동 생 우리 오빠 생일이야.
남 자 오빠가 있었어요? 그동안 몰랐군요. 집에 혼자 사는 줄 알았어요.
동 생 금붕어도 있어. 새도 막 울어. 나, 비행기 만들어줘.
남자, 초대장으로 비행기를 만들어서 준다. 동생 비행기를 받아 기뻐하며 마당으로 내려온다. 남자, 방 안으로 들어간다.
동 생 훨훨 날아라.
동생 방 안으로 들어와 어항을 쳐다보며 먹이를 조금씩 주며 관찰 한다.
나 아무도 없는 집 안에서 홀로 이 집을 지켜야 할 때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이 반반씩 밀려오곤 했습니다. 창문을 통해 드는 따스한 햇빛을 받을 때의 충만한 기쁨, 바람에 깃든 꽃가루 향기 같은 것들이 꼼짝할 수 없게 만든 몸의 근육을 흔들곤 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동생이 없을 땐 제 곁에 정말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밀려들곤 했습니다. 집을 나간 동생이 방치된 채로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한 없이 걱정이 되다가, 혼자 남겨 졌다는 공포와 두려움의 감정들이 저를 누르기 시작했습니다. (사이) 그러다 그날의 익숙한 것들로부터 실증을 느낄 때 쯤 따사롭던 햇빛은 제 살갗을 찌르는 듯 했습니다. 바람에 날린 꽃가루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죠. 목에서 내는 소리는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고요 속에 잠겨 버렸습니다. 벽을 기던 작은 벌레들은 거대한 흉기를 들고 저에게 다가오는 듯 했습니다. 그러다가 한 없는 정적이 흘렀고, 저의 존재도 고요함 속에 묻히고 말았습니다.
동생은 어항을 계속 쳐다보다 놀란다.
동 생 (손을 심하게 떤다) 주, 죽었어.
나 살갗을 에이는 햇빛이 따가웠습니다.
동 생 움직이지 않아.
나 바람에 날린 꽃가루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죠.
동 생 둥둥 떠다닌다.
나 작은 벌레가 흉기를 들고 다가와서는. 살려줘. 숨이 막혀요. 살, 려, 줘. 헉.
동 생 무서워.
나 그러다 고요함만이 밀려왔습니다.
동생, 온몸을 떨다가 옷장 속으로 들어간다. 암전.
3장
‘나’는 의자에 앉아 있다. 동생 사과를 먹으며 들어온다. 동생은 계단에 앉아있다. 나와 동생은 서로 대화한다.
동생 새소리가 들려.
나 춤춰봐. 너 잘 추잖아.
동생 새처럼?
나 그래.
동생 비행기처럼?
나 응.
동생 어디에서?
나 저기 하늘에서 춰봐.
동생 가볍게, 둥둥.
나 날아서 가는 거야.
동생 몸이 막 떠올라.
나 눈을 감고 바람을 느끼며.
동생 (웃으며) 히히. 간지러워.
나 어디까지 날아갔어?
동생 간지러워서 눈물이 나와.
나 오빤 네 옆까지 왔는데.
동생 오빠 간지러워.
나 퇴장. 동생, 기타 소리를 듣고 새처럼 춤을 춘다. 그러다 남자의 방안으로 들어간다.
남 자 (동생을 보고 놀라 잠시 멈춘다)
동 생 계속 듣고 싶어.
남 자 함부로 들어오면 안돼요.
동 생 나 춤출래. 저번처럼 출거야.
남 자 오빠가 찾겠어요. 어서 나가 봐요.
동 생 배가 이상하다. 이 안에 새가 들어있다. 꿈틀꿈틀하다가 (춤을 춘다) 훨훨.
남자, 난처해 하다가 기타를 친다. 이 때 여자 등장해서 남자 방안으로 들어간다.
여 자 뭐하는 거야? 이 여자 왜 또 여기에 있어?
남 자 그대로 둬.
여 자 당장 나가. (동생을 끌어낸다) 아참 그리고, 방세 많이 밀렸다면서? 주인 아저씨 오신대. 돈 준비하라고.
동생 울면서 마당에 있는 의자에 앉는다.
남 자 어떻게 됐어?
여 자 저 여자 언제부터 온거야?
남 자 별일 없었어. 간 일은 잘 된 거지?
여 자 덜떨어진 여자가 그렇게도 좋아?
남 자 착한 아이야. 그만 좀 해.
여 자 난 그 영감 만나서 온갖 수모를 당했는데, 자긴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남 자 미안해. 나도 알아. 고생하다 온 거.
여 자 (숨을 가다듬으며) 얼마나 긴장했는지 몰라. 옷이 다 젖었다구. 잘 됐어. 돈도 받아 왔어.
남 자 (여자에게 돈을 받아 불로 태운다) 활활 다 타버려라.
여 자 무슨 짓이야. 정신 나갔어? 이게 얼만데.
남 자 이건 쓸모없는 물건이야. 내겐 더 중요한 일이 남아있어.
여 자 힘들게, 고생해서...
남 자 알아. 내가 왜 이러는지 이제 곧 알게 된다.
여 자 그래도 그렇지 다 태우면 우린 이제 어떻게 해.
남 자 그 영감 돈은 애초부터 구실 못 할 거였어.
여 자 조금만 있으면 집세 받으러 올텐데, 빨리 짐싸자.
남 자 먼저 가 있어. 난 아직 해결할 일이 남았거든.
여 자 싫어. 같이 가.
남 자 오늘 안으로 뒤따라 갈테니 걱정마.
여 자 알았어. 하지만 금방 따라와야 해.
여자, 방에서 나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잠시 후 신경질을 내며 짐을 조금씩 싼다. 남자, 마당에 앉아있는 동생에게 다가간다.
남 자 아직도 울고 있었어요?
동 생 가지마.
남 자 생일파티에 꼭 갈게요.
동 생 배가 이상하다. 들어봐. 무슨 소리가 들려.
남 자 무슨 소리요?
동 생 새 소리. 오빠가 그랬다. 새는 가슴에서 운다고.
남 자 (동생의 배에 귀를 댄다) 그거 알아요? 전 끝을 내려고 왔는데, 아직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아무 것도 한 게 없는데 왜 이렇게 가슴이 뛰죠? (동생의 얼굴을 쳐다보며) 정말 뭔가 뛰는 것 같아요. 이 안에서요.
동 생 (남자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비행기 만들어줘.
남자가 동생에게 비행기를 만들어 주자, 동생 비행기를 날리면 논다. 이 때 집주인 등장한다. 그는 거만한 태도로 장부를 하나 끼고 들어온다. 집주인 뒤를 덩치가 따라온다. 동생 무서워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간다. 남자도 깜짝 놀라 일어난다.
집주인 (헛기침을 한다) 흠 허.
남 자 오, 오셨어요?
집주인 오랜만이군. 날 기억하겠나? 요즘엔 온라인 시대라 돈 주고 받는 사람 얼굴을 볼 수 있어야 말이지.
남 자 어쩐 일이십니까?
집주인 나야, 늘 일이 많지. 이것저것 해결할 일도 있고 해서 말이야. 옆 방 아가씨는 잘 있지?
남 자 네. 불러드릴까요?
집주인 아니, 그럴 필요 없어. 어차피 또 보게 될테니까. 아참, 자넨 무슨 일을 한다고?
남 자 사람과 관련된 일을 합니다.
집주인 자네 보험가지? 왠지 그래 보여. 하하. (장부를 들여다본다) 깔끔해. 밀린 것 없이. 요즘 경제가 어려워서 인지 방세 밀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말이야. 골치가 아파. 이 짓도 오래하기 힘들어. 안 그런가? 그래서 돈을 불릴 만한 곳에 모두 투자를 하기로 했는데, 믿을 구석이 있는지. 혹 자네라면 알 수도 있겠군. 어쨌든 돈에 관련된 일을 하니까 말이야.
남 자 글쎄요. 그런 일은 아직 해 본 적이 없어서요.
집주인 내가 잘못 짚었나? 이런 실수를 했군, 그래. 하지만 그건 알아야해. 사람들을 만날 땐 실속이 있어야 하지. 누굴 만나든 무슨 일을 하든지 말이야. 어쨌거나 오늘은 거추장스런 일을 처리해야 하니 잠시 후에 거기에 대해 차근차근 이야기 해 보세.
집주인, 덩치를 시켜 남매의 방을 열게 한다. 동생은 무서워서 옷장 안으로 들어간다.
덩 치 잘 안 열리는데요.
집주인 그것도 못 열어? 저 계집애는 고집이 보통 아니야. 이빨로 팔을 물면 끝까지 놓지 않을 정도라고.
남 자 오빠가 있다고 했어요.
집주인 오빠? 그래. 딱 한번 봤지. 방 안에만 누워 있어야 하는 환자였어. 내 처음에 안 받아주려고 했는데, 친척 중 한명이 돈을 주더군. 그래서 믿고 살게 했더니. 그 뒤로 소식이 없어. 난 자선 사업가가 아니라네.
여자, 트렁크를 끌고 내려오려다 주인을 보게 된다. 다시 방안으로 들어간다.
집주인 좀 더 세게 때리라고. 다른 방법을 찾아봐. 안 되면 힘으로 해야 되지 않겠나.
남 자 제가 한 번 달래 보겠습니다.
집주인 그래 주겠나? 아까 보니까 매우 다정해 보이던데. 무슨 사인가? 괜히 잘못 걸려들면 인생 망친다구. 나도 옛날에 한 여자한테 붙잡혀서 살아야 했지. 그런데 그 여자, 날 버리고 도망을 갔어. 다 돈이 문제지. 안 그런가?
남 자 그 뒤로 한번이라도 그 분을 찾아 보셨나요.
집주인 아니. 난 오랜 시간 환자였어. 찾아볼 기력도 없었지.
남 자 지금이라도 찾아봐야 하지 않습니까.
집주인 이미 지나간 일이야. 괜한 소란 피우고 싶지 않아. 집착은 집착을 불러오는 법. 그 뒤로 난 돈에 집착하고 있으니까. (사이)
남 자 열어봐요. 그냥 말로 하신대요.
동 생 싫어. 무섭다.
남 자 겁내지 말아요. 내가 있잖아요.
집주인 그래, 아가씨 해치지 않아. 난 단지 말로 해결할거야.
남 자 들었죠?
동생 옷장에서 나와 문 앞에 선다.
동 생 정말 거기 있어?
남 자 네.
동생 문을 연다. 집주인과 덩치 들어간다. 남자도 따라 들어간다. 이 때 여자는 방에서 나와 몽둥이를 들고 남매 방 앞에 선다.
집주인 이게 무슨 냄샌가?
덩 치 비린내, 아니 고기 썩는 냄새가 납니다.
집주인 지독한 냄새군. 자네는 쓸만한 물건이 없나 살펴보게.
덩 치 네.
남 자 어디서 나는 냄샐까요?
동 생 오빠, 생일 축하해주러 왔다.
덩치 ‘나’가 죽어서 덮여 있는 이불을 들춰낸다. 놀라며 소리친다.
덩 치 사, 사, 장님.
집주인 왜 그런가?
덩 치 주, 죽었어요?
집주인 뭘 주워?
덩 치 사람이 죽었어요.
집주인 뭐?
남자와 집주인 덩치가 있는 쪽으로 간다. 시신을 확인한 두 사람 놀란다.
남 자 죽은 게 확실합니다.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어요.
집주인 그럼 살이 썩는 냄새였단 말인가.
덩 치 시, 신고 할까요?
집주인 잠깐. 기다려봐.
동 생 다 모였다. 오빠 생일 축하해주자.
집주인 제 정신이 아니야.
덩 치 사장님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집주인 기다려. 생각 좀 해 보자구. 자네 빌려간 돈 생각 안 나나?
남 자 무슨 생각을 더 합니까. 경찰에 신고해야 합니다. 우리가 죽인 것도 아니잖습니까?
집주인 그렇지. 우리가 죽인 게 아니지.
덩 치 전화 할까요?
집주인 그래. 아니, 잠깐. 생각을 해봐. 신고하게 되면 내 집에 기자들이 들이닥칠 테고, 그렇게 되면 전국에 알려지게 된다고. 이 집은 물론 무용지물이 되고 말겠지. 재수 없는 집이라고 사려고도 하지 않을 걸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겠나? 우리가 죽인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할게 아닌가?
덩 치 그럼 어떻게 하자구요?
집주인 내 말대로 하겠나?
남 자 전 신고해야겠습니다.
집주인 난 다 알고 있네. 자네와 그 계집이 서로 사기를 쳤다는 걸 말이야. 내가 모를 줄 알았나 보지? 쉽게 속았으면 여기 있지도 않았어. 내 말대로 하는 게 좋을걸. (덩치를 향해) 자네도 마찬가지야. 이번에 내 말만 잘 들으면 한 몫 크게 줄 수도 있어.
갑자기 천둥, 번개치는 소리 들린다.
동 생 비 온다. 비.
동생 밖으로 나간다. 그 뒤를 여자가 따라 나간다. ‘비야 내려라’ 소리 들리다가 사라진다.
집주인 어떻게 할 건가? 아무도 모르게 묻어 두는 거야.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곳에 말이야.
덩 치 진짜, 한몫 떼 주실거죠?
집주인 그렇다니까.
덩 치 제가 옮겨 놓겠습니다.
집주인 잘 생각했어. 그럼 (남자에게) 자넨 조용히 입만 다물고 있으라고. 어차피 우린 한 배를 탔어.
덩치, 자루에 시체를 담는다. 남자, 어찌할 바를 모르며 고통스럽게 지켜보고 있다.
남 자 정말 이렇게 까지 해야 합니까?
집주인 가끔은 엄청난 선택을 해야 할 때도 있어.
남 자 한 가지만 여쭤볼 게 있습니다.
집주인 뭔가?
남 자 잊혀 진다고 정말 잊혀 질까요?
집주인 시간에도 끝이 있다면.
덩치 자루를 들쳐 메고 밖으로 나간다. 남자, 집주인을 쳐다본다. 집주인 퇴장. 남자, 힘 없이 방으로 들어간다. 갑자기 비명 소리가 들린다. 여자 급하게 뛰어 들어와 방안으로 들어간다.
4장
동생, 옷이 비에 젖어 있다. 넋나간 표정으로 방 안으로 들어와 어항을 들여다본다. 나 등장해 의자에 앉는다.
나 흐려진 물을 갈기 위해서는 그 물을 버려야한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비워진 어항 속에 깨끗한 물을 부어 넣은 후, 나머지 금붕어를 넣어야 하지요. 어항 밖을 나온 산 금붕어들은 처음에는 숨 쉬기가 곤란한지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깨끗해진 물 속에 들어가서는 다시 아무 일 없던 것처럼 헤엄을 쳤습니다. 버려진 물 속에 담긴 금붕어의 시체는 어딘가에 자리도 잡지 못하고 썩어가고 있겠죠. 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던 긴 집착의 끈은 놓지 못했습니다.
동생 마당에 있는 화분 쪽으로 걸어온다. 나는 동생의 모습을 애처로이 지켜본다. 동생은 어항을 화분 옆에 놓는다.
동 생 답답했지?
나 (천천히 고개를 흔든다)
동 생 이제 훨훨 하늘로 날아가.
나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죽은 금붕어를 꺼내 화분에 묻는다. 그런 다음 물뿌리개로 물을 뿌린다.
동 생 비가 내린다. 여기에 들어가 있으면 안전하다. 햇빛도 들어오고, 비도 내리고, 춥지도 않다. 오래오래 살 수 있어.
남자와 여자 방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자 계단 밑으로 숨는다.
여 자 나 빨리 이 집에서 벗어나고 싶어.
남 자 임신한 거 같아.
여 자 (깜짝 놀란 척한다) 누가? 혹시 그 여자? 자기 제정신이야?
남 자 나도 모르겠어. 그냥 그런 생각이 들어.
여 자 맞아. 요즘 이상했어. 배가 이상하다고 했잖아. 언제 그런 거야?
남 자 내 아이가 아닐지도 몰라.
여 자 그럼 누구 아인데?
남 자 모르겠어.
여 자 병원에 데리고 가자.
남 자 내 아이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했잖아.
여 자 맞을 수도 있는 거야. 우선 병원에 데리고 가서 알아보자구.
동생 무서워 떨며 방안으로 들어가 왔다 갔다 한다.
남 자 먼저 가. 내가 해결 할테니.
여 자 해결 할 일이 바로 이거였어?
여자, 화내며 먼저 나간다. 남자, 마당 주변을 돌아보다가 남매의 방으로 들어간다.
동 생 살려주세요.
남 자 해치지 않아요. 사람들이 곧 올 거예요.
동 생 무서워.
남 자 알고 있었어요? 오빠가 죽은 거.
동 생 아니다. 오빠는 여기 있다.
남 자 알았어요. 날 용서해요. 지금 떠납니다. 아기...
동 생 (배를 움켜쥔다) 안 돼. 이제 곧 날아갈 거야.
남 자 아니죠?
동 생 들어봐. 울고 있어.
남자, 동생에게 다가선다. 동생 뒤로 물러나기 시작한다. 남자가 만지려는 순간 방안에 있는 물건으로 남자의 머리를 내리친다. 남자, 쓰러진다. 동생, 옷장 속으로 들어간다. 나 중앙으로 서서히 걸어 나온다.
나 저는 곧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집주인에 의해 버려진 저는 누군가에 의해 발견됐죠. 저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진 다음 동생은 컴컴한 옷장 속에서 둥지를 틀고 앉아 있는 새처럼 편안하게 잠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잠에 빠져 들었죠. 그리고 동생의 손에서 벗어난 금붕어들은 누군가의 집에서 다시 유유히 헤엄치고 있을 겁니다. 함께 헤엄쳤던 사라진 한 녀석을 잊은 채로 말입니다.
이 긴 여행에서 얻은 것이 있다면, 어항 안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여행을 하고 돌아와서 집이 낯설게 느껴졌던 것도 바로 그 이유에서죠. 진실은 과연 무엇인지 사실 아무 것도 모릅니다. 다만 제 벽 안에서 느꼈던 그 소리와 모습을 통해 한 사람, 한 사람 초대 하고 싶었던 동생의 모습만 떠오릅니다. 유리벽 안의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 사람들도 때로는 가면을 쓰고,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을 감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또 다시 무관심 속에 수 많은 날들을 쌓아 올리고 있을 테죠. 동생이 눈을 떴을 때도 말입니다. 하루가 될지, 한 달이 될지... 하루가 한달 같이 느껴지는 것 처럼 말입니다.
나, 종이 비행기를 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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