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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상반기 신인발굴]_수필_김홍석_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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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부문>
성명: 김 홍 석
연령: 49세
주소: 충남 아산시 배방읍 장재로 27 장재마을 휴먼시아 1108-501
연락처: 010-8492-4621, 041-532-4621
1. 재래시장
시골에서 5일마다 서는 장날은 어릴 적 하루를 들뜨게 하는 날이었다. 집에서 일만 하시던 어른들도 이날만은 옷을 단정하게 차려 입고 한 쪽 구석에 모셔 놓았던 구두에 광을 내어 시장바닥으로 출타하는 날이었으니까. 같이 가겠다고 생떼를 써 성공하지 못한 날도 더러 있었지만, 간절한 어린아이의 마음을 매몰차게 저버리지 못한 부모의 심정에 동행을 약속받는다.
이날은 서민들의 정보 공유의 시간이고 친교의 시간이며 정보 습득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듣고, 이런저런 소문도 듣게 되니 말이다. 팔고자 하는 것을 팔고 사고자 하는 것을 구입하는 날이었다. 장날마다 가는 단골 식당은 장날 풍경의 최고 하이라이트이다. 푸성귀만 먹고 지낸 내장이 소증을 푸는 날이었다. 그날은 아버지께서 기분이 좋으시면 그동안 밀린 외상값을 치르기도 하고 돈이 영 부족하면 외상으로 처리하면 그만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보니, 재래시장은 하나 둘 문을 닫았다. 서양식 대형 마트가 여기저기 세워지면서 조그만 구멍가게 형식의 좌전들은 그 자취를 잃었다. 도저히 대량 구입을 통한 대형 마트의 할인매매 방식에 맞대응이 어렵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몇몇 분들은 잡초처럼 끈질겼다.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몸부림쳤다. 옛적에 팔던 수입의 반의 반도 못되는 처지이지만, 그냥 제 깜냥 탓으로 돌리며 만족하고 버티어냈다.
정이 그리운 나머지, 대형 마트를 버리고 재래시장으로 몸을 향한다. 옛날 옛적의 그 모습은 아니지만, 그래도 할머니, 아주머니, 아저씨들의 넉넉함이 아직까지는 남아있다. 그곳에서 과거의 추억을 찾고 인정을 느끼고 웃음을 되살렸다.
지금부터 20년 전, 집사람이 한 열흘 간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그때 슬하에는 1살, 3살, 5살의 자식들이 있었다. 한 사나흘은 주위에서 챙겨준 반찬으로 끼니를 해결했었다. 그 밑반찬을 모두 소진한 날, 재래시장에 나가 시장을 볼 수밖에 없었다. 그때 막내를 등에 포대기로 업고 3살 난 딸은 오른손, 5살 난 큰딸은 왼손으로 부여잡고 재래시장을 나섰다. 생선도 즐비하고 각양각색의 제철 채소들이 자태를 뽐내면서 구입을 종용했다. 콩나물시루가 놓여 있는 앞을 지나자 입이 동했다. 북어에 콩나물을 넣고 고춧가루 팍팍 넣은 후 다진 마늘과 파를 가미한 얼큰한 콩나물국이 생각난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나머지, 할머니에게 말을 건넸다.
“할머니, 콩나물 500원어치만 주세요.”
그런데, 할머니의 모습이 재미있다. 내 아래 위를 훑어보시고 혀를 끌끌 차시더니,
“한 바가지에 500원인데, 내 그쪽 생각해서 덤으로 많이 주니, 그리 알고 자식새끼들 생각해서 힘내요. 힘!”
하시면서 거의 두 바가지 가량의 양을 비닐봉투에 넣어 주신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냥 원래 양만큼만 주세요.”
라고 말씀을 드렸지만, 막무가내이셨다.
“아녀. 내가 그래야 맴이 편혀. 맛있게 잘 드슈.”
할머니의 생각에는 아이 셋을 들쳐 업고 나온 나의 모습이, 집나간 마누라에 아이 셋만 데리고 사는 홀아비로 보신 풍신이었다. 극구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덤을 주셨던 할머니. 지금도 재래시장에서 스치는 콩나물시루만 보아도 자꾸 그 생각이 난다.
바로 이게 우리 재래시장의 풍경이다. 배려와 사랑이 넘치고 사람을 아껴주는 곳. 넉넉하고 욕심이 없으며,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넘치면 넘치는 대로 그렇게 어울려 사는 인생사의 현장이 바로 우리의 재래시장이다.
값비싼 양품점이나 경양식점에서는 많은 금액임에도 불구하고 깎지 못하고 꼼짝없이 달라는 대로 주면서, 시골 할머니의 콩나물 가격 몇 푼은 굳이 깎고자 하는 모습. 이 모습보다는 그 반대로 할머니의 콩나물 가격은 후하게 쳐주고 값비싼 옷이나 음식 값을 매몰차게 깎는 모습,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오히려 인생을 차지게 사는 바람직한 모습이 아닐까 한다.
2. 사계절의 땅내음
날씨가 청명하고 미세먼지가 없는 날은 자전거를 끌고 집 밖으로 향한다.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을 가리지 않고 줄기차게 주말마다 다녔다. 자전거 안장 뒤에 조그마한 주머니를 매달고, 여름이 아닌 계절에는 그 속에 김밥 한줄, 음료수 하나를 넣고서 나만의 소풍을 간다.
페달을 힘차게 구르며 시내를 5분 만에 벗어나면 시골 들판이 나를 시원스레 환대한다. 그리고 그 들판이 계절마다 색다른 기쁨을 내게 안겨준다. 봄에는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싹의 손 흔듦이 좋고, 여름에는 뻘뻘 땀을 흘리면서 쳐다보는 대지의 진녹색이 좋고, 가을에는 노랗고 빨갛게 물들어가는 나뭇잎들의 스펙트럼 향연이 좋고, 겨울에는 딱딱한 대지의 느낌과 백색이 듬성듬성 앉아있는 나목의 자태가 좋다.
그런데 이런 들판의 모습과는 또 달리, 어느 무엇보다 특별한 것이 하나 있다. 계절마다 다른 땅내음이 그것이다. 20세기 초 헤닝(H. Henning)이라는 사람은 냄새 프리즘을 제시하면서 냄새의 종류를 여섯 가지로 한정했다. 썩은 냄새, 공기 냄새, 송진 냄새, 짜릿한 냄새, 향기로운 냄새, 탄 냄새. 그런데 세상 모든 냄새가 이 여섯 가지로만 표현할 수 있겠는가? 특히 드넓은 시골 들판의 땅내음은 더더욱 이 여섯 가지로만 설명하기 곤란하다.
자전거로 봄의 들판을 거닐 때면 들판은 그들의 냄새를 하염없이 토해낸다. 봄의 땅내음은 식물이 용솟음치면서 발산하는 풋내가 상큼하다. 얼었던 시냇물이 녹으면서 나는 물 냄새도 싱싱하다. 온 대지가 서서히 봄빛으로 물들며, 가물가물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속에서 발산하는 냄새는 싱그럽다.
여름에 자전거를 타는 것은 곤욕스럽기도 하다. 그래도 뙤약볕이 아닌 아침나절에 달리는 것도 크게 나쁘지는 않다. 여름의 대지는 또 어떤 냄새일까? 퇴비가 푹푹 썩는 냄새, 뜨거운 열기의 훅한 냄새, 습기가 많아 축축한 냄새, 찝찝하고 시큼털털한 부패 냄새, 온갖 과일들이 익어가는 냄새가 난다.
자전거를 타기 가장 좋은 계절은 뭐니 뭐니 해도 역시 가을이다. 더운 시기에서 찬바람이 서서히 일어나는 그즈음이 특히 좋다. 가을의 땅내음은 낙엽이 서서히 지면서 차고 건조한 냄새가 난다. 또 들판이 황금빛으로 물들면서 곡식 낟알이 익어가는 냄새도 난다. 온도도 적당한 것이 안성맞춤의 냄새라 할 수 있다.
자전거를 타기 가장 힘든 계절은 두말할 것 없이 겨울이다. 나가기 전부터 준비를 탄탄하게 해야 한다. 두터운 장갑과 옷은 자전거를 운전하기에 영 답답하고 거추장스럽다. 그래도 화창한 날을 골라 들판을 나서면 그 나름에 운치와 냄새도 있다. 쾌쾌하고 냉랭한 냄새가 코끝을 스민다. 가을 내내 썩었던 낙엽과 퇴비의 냄새도 솔솔 난다. 발효가 성숙의 단계로 들어가면서 내는 냄새이기도 하다.
때마다 다르고 곳마다 다를 수 있지만 땅내음 그 자체는 항상 거기에서 그대로를 나타낼 뿐이다. 남을 의식하지 않으며, 그냥 생긴 대로 그저 표현할 뿐이다. 항상 똑같은 냄새를 발산하지 않고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변하기도 한다.
사람에게도 냄새는 있다. 멋지고 화려한 옷차림을 한 중년부인의 향긋한 향수냄새, 건설 현장에서 굵은 땀방울을 흘리면서 나는 짭조름한 땀 냄새, 오랫동안 노숙 생활로 씻지 못해 나는 퀴퀴한 냄새, 나이가 들고 늙어갈수록 살갗이 노화하면서 난다는 노인 냄새, 앙증맞고 귀여운 어린 아기들의 보드라운 살 냄새, 젊고 발랄한 청소년들에게서 나는 상큼한 청춘 냄새, 풋풋한 여고생들의 재잘거림에서 나는 방년(芳年) 냄새 등.
이 냄새 저 냄새 여럿이 있지만, 다 나름대로 의미 있는 냄새들이다. 좋고 나쁨이 그다지 없다. 다만 어려운 삶 속에서 나는 퀴퀴한 냄새만은 냄새도 역겹지만 그러한 삶을 사는 사람이 안타까울 뿐이다. 나는 과연 어떤 냄새가 날까 고민해 본다. 결코 상큼하거나 보드라운 냄새는 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남들이 회피하고픈 냄새만 아니면 좋겠다. 좋은 일을 많이 하면 몸에서 자발적으로 향긋한 냄새라 나리라 믿는다. 내 향기가 남에게 역겹지 않을 그날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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