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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성-단편소설(2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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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밖으로 필승
두 손에 수박이 들려있다. 체구도 작은 초등학교 4학년 짜리에게, 수박은 제법 무거운 물건이다. 일반적으로 수박은 먹으려고 산다. 그리고 나도 먹으려고 샀다. 그것은 분명하다. 아무리 일상적인 일이라고 해도 그 목적이 늘 똑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것을 분명하게 언급해 주어야 한다. 나는 이것으로 신발을 닦을 생각은 없다. 또한 농구를 할 생각도 없다. 그렇다고 선반 위에 장식해 놓을 것도 아니며, 에어컨으로 쓸 것도 아니다. 이런 가능성이 이상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류다. 물론 비합리적일 수도 있겠지만, 결코 해서는 안 될 것들은 아니다. 때문에 일상적인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은 실수이며, 당연해야 할 이유는 코딱지도 없다. 나는 말했다. 내가 힘들게 들고 있는 수박은 가족들과 함께 먹기 위해서 산 수박이다. 이제 수박에 대한 오해의 소지는 없어야 한다.
“히야~ 맛죽겠다.”
엄마 아빠와 둘러앉아 시원한 수박을 한 입 가득 배어 물 생각을 한다. 입 안에 침이 잔뜩 고인다. 혀로 입술을 적신다. 쩝쩝...... 그런데 수박을 떨어뜨린다. 아니, 수박이 스스로 기어 나간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것보다는 내가 내던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확신 할 수는 없다. 아무튼 수박은 지면과 충돌했고, 두 쪽으로 갈라져 감춰둔 붉그죽죽한 본심을 게슴츠레 드러낸다. 단단한 얼룩 속에 숨어있던, 응고된 피눈물 덩어리! 본심은 조금만 으깨어도 눈물을 보일 만큼 연약한 것이었으며, 지금 그렇게 수박즙을 흘리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그것을 내려다본다. 얄팍한 거짓말의 비밀이 들킨 것 같은 수치감이 든다.
“죽어! 아니, 큰일났네.”
나는 잠시 어쩔 줄을 모른다. 엄마랑 아빠랑 같이 먹으려고 산 수박인데. 오순도순 한 자리에 모여 같이 먹으려고 산 수박인데. 오늘 100점 맞은 이야기를 하며 먹을 수박인데. 내면의 호수에 슬픈 물방울이 내려앉는다. 그리고 우울한 불꽃이 드리워진다. 묵념하듯이 고개를 쳐박고 눈을 감는다. 하하하! 호수는 휘발성 기름으로 변질된 상태였고, 우울함은 도화선이었다. 폭발은 당연한 것. 나는 참을 수가 없다.
수박을 발로 내리 밟는다. 이불 빨래하는 발처럼, 물에 잠긴 이불의 때를 빼야 할 발처럼, 거침없는 발길질의 당당한 반복. 또 반복. 얼굴에 남은 것은 조소하는 미소 한 꺼풀. 그 사이 수박 덩이는 산산히 부서져서 서러운 살가루를 휘날린다. 흔적은 어쩔 수 없이 남는 것이다. 얼굴에도 묻고 손에도 묻었다. 신발과 바지 아랫단은 으깨진 붉은 수박의 체액을 고스란히 머금었다. 회피하고 싶지만, 그런 것들은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꼭 그렇다.
무언가 속죄한 기분이 든다. 또한 일말의 허탈함과 죄의식은 그대로 남는다.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던 것 같다.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내 어깨를 잡으며 묻는다.
“아니, 얘야. 너 왜 그러는 거니?”
나는 고개를 돌리며 피식 웃어준다.
아랫배가 아프다. 항문에 자연스런 압박이 가해진다. 화장실로 간다. 변기 뚜껑을 연다.
그렇다. 거기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것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습관 같은 것이다. 충분히 의식하지 않아도 몸이 알아서 상황에 대처하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생긴다. 일련의 습관 속에 발생하는 일탈은 사람을 늘 당황스럽게 만드는 법이다. 돌발은 그래서 재미있는지는 몰라도, 충분히 난처하다. 더욱이 지금은 결코 재미있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흐억!”
변기 뚜껑을 열자마자 나는 놀래서 비명도 제대로 지를 수 없었다. 변기 속에, 엄마의 머리통이 가라앉아 있는 것이었다. 난생 처음 있는 일이다. 나는 어찌 할 줄을 몰라, 잠시 숨도 멈춘 채 물 속에 빠져버린 엄마의 머리통을 넋 놓고 바라보기만 한다. 시간, 공간 할 것 없이, 내 좁은 사고까지도 뒤틀려 멈춰버린 것 같다. 상황은 일차적인 영상으로 투영된다. 뚜껑이 열린 하얀 변기 속에 평소처럼 눈을 뜬 채 입을 살며시 다문 엄마의 머리통. 해면처럼 물 속을 부유하는 단발의 가는 머리칼. 약간은 빛을 잃은 듯한 탁한 안색. 그리고 맑은 변기 물. 수박즙처럼 으깨진 맑고 투명한 변기 물. 빌어먹게도 맑은 물.
이 영상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상황과는 상관없다. 내 치부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조리하기 때문이다. - 변기 물이 너무 맑다. 돼지갈비도 물에 재우면 숨은 피를 토해내기 마련인데, 엄마의 머리통이 든 변기 묽은 투명하기만 하다. 굳이 엄마의 머리통이 아니더라도, 우리 집은 변기는 저렇게 맑은 물을 담고 있던 적이 거의 없었다. 수압이 낮았기 때문에 대부분 내용물을 제대로 흘려보내지 못했다. 항상 누런 오줌기가 은은히 감돌았고, 몇 개의 똥 덩어리가 점처럼 남아있었다. 그렇게 모든 것을 말끔하게 개워낸 적이 없던 변기 주제에, 지금은 너무 당돌하게 수돗물 본연의 맑고 투명한 물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 영상은 무언가 억지를 쓰고 있다.
물을 내린다. 일탈에 대한 부작용이었을까? 나는 내가 왜 변기 물을 내리는지 모른다. 똥오줌을 내릴 필요도 없었고, 변기가 막혔는지 확인해 볼 필요도 없었다. 그렇다면 엄마의 머리통을 흘려보내기 위해서일까? 내가 생각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는 어떤 목적도 없는 행위였다. 어쨌든 나는 물을 내렸다. 나는 이제 오해를 시작할지도 모른다. 차라리......
변기는 볼링 핀이 쓰러지는 경쾌한 소리를 내며 물을 아래로 흘려 보낸다. 엄마의 머리통은 물을 따라 빙글빙글 돌지만, 물의 흐름에 함께 빨려 들지는 못한다. 그런데 나는 엄마의 머리통이 검은 구멍 속으로 침잠해 버리는 것을 상상하고 있었다. 한심스럽다. 그리고 이제 확실한 흔적처럼 남은 엄마의 머리통을 보며 불안을 맛본다. 엄마의 머리칼은 소용돌이 속에 어지럽게 엉켜버렸다. 물이 완전히 내려간 다음에는 엄마의 머리는 똥 덩어리처럼 슬며시 물 속을 배회한다. 무언가 남아있는 아쉬운 미련의 표상처럼.
엄마의 머리칼을 조심스럽게 손끝으로 든다. 엄마의 머리통은 머리칼에 딸려 올라온다. 물이 아래로 주르르 떨어진다. 그리고 튄다. 더럽다. 변기의 물이 더럽기 때문이다. 최소한 지금까지 박혀왔던 인식은 그러하다. 진실은 생각보다 중요한 것이 되지 못한다. 순간을 결정하는 것은 진실보다는 즉각적인 인식에 의해서다. 그리고 그것은 목적이 되고, 현실이 된다. 우리는 그 인식의 왜곡 여부를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는 그가 만든 현실 속에 있으므로 그의 명령에 복종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인식의 노예에 불과할 뿐이다. 때문에 변기 속에 있던 물건을 손으로 끄집어낸다는 것 자체가 불결하다. 씻겨야겠다. 엄마의 머리통을 세숫대야에 넣고 수돗물을 받는다.
잠시 잊고 있던 배가 다시 아프기 시작한다. 똥을 눠야겠다. 바지를 내리고 변기에 앉는다. 이제 단편적인 영상들을 상황으로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응차. 똥 덩어리 하나가 떨어진다. 퐁당. 엄마의 머리통도 그렇게 퐁당 소리를 내며 변기 속에 떨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누가 떨어뜨렸을까? 그리고 왜 떨어뜨렸을까? 이 부분에 있어서는 낙하하는 똥보다도 확실한 답을 주지 못한다. 최소한 똥은 내가 싼 것이며 배가 아프기 때문이다. 이렇게 내가 싼 똥은 분명하다. 변기의 검은 구멍 아래로 사리질 운명 또한 일반적으로는 분명하다. 물론 분해되어 변기 속에 있던 흔적을 조각으로 남기는 운명 또한 분명하다. 하지만 엄마의 머리통은 도무지 알 수 없다. 단지 내가 알 수 있는 것이라고는 엄마가 그러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엄마가 엄마의 머리통을 변기에 빠뜨렸다면, 엄마의 몸뚱이는 변기 앞에 널브러져 있어야 한다. 하지만 엄마는 아무데서나 눕는 사람이 아니다. 결국 정리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응차. 또 한 덩이를 떨어뜨린다.
세숫대야에 물이 어느 정도 차자, 변기에 앉은 상태에서 허리만 숙여 수도꼭지를 잠근다. 엄마의 머리통은 반쯤 물에 잠겼다. 변기 속에 있을 때보다는 훨씬 깨끗한 것 같다. 응차. 이제 똥이 나오지 않는다. 다 쌌나보다. 똥을 닦고 물을 내린다. 콰르르-. 두 개의 긴 똥 줄기는 거센 물의 소용돌이를 따라 어지럽게 뺑뺑이 치면서 조금씩, 조금씩, 똥 조각을 떨구어낸다. 소용돌이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는 똥 덩어리는 이미 심연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하지만 그것의 분해된 흔적은 아직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물결에 폴락거린다. 결국, 물이 완전히 다 내려가고 새로운 물이 들어 찰 때는 다서 여섯 개의 콩만한 똥 조각이 지워져 버린 기억의 작은 흔적처럼 물 위에 둥둥 떠있게 된다.
엄마의 머리를 세숫대야 속에서 빙글빙글 돌려 골고루 물을 적신다. 그리고 꺼낸다. 세숫비누로 구석구석 문지른다. 거품을 낸다. 거품이 잘 난다. 거품이 눈으로 들어간다. 내 눈이 따가울 것 같다. 눈에 물을 뿌려준다. 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바닥에 뚝뚝 떨어진다. 찹찹한 안개가 가슴 아래쪽에 가라앉아 있는 것 같다. 샤워기를 든다. 물을 틀어 헹군다. 나는 엄마의 머리통을 깨끗하게 씻겼다. 변기에 빠졌던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만 했다. 변기는 똥을 누는 더러운 곳이고 세숫대야는 세수를 하는 깨끗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씻겼다. 엄마의 머리는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변기. 똥! 그런데 엄마의 몸뚱이는 어디로 갔을까? 다시 의문에 사로잡힌다. 똥처럼 변기 구멍 아래로 빨려 들어갔을까? 그렇게 되고 나서 똥처럼 엄마의 머리통만 남은 것은 아닐까? 대체 어떤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까? 엄마의 머리통이 변기 속에서 발견된 이상, 어쩌면 그것이 가장 합리적인 가능성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목적은 어떤 방향에서도 찾아 낼 수 없다. 대체 지금 순간은 어떤 인식의 연장선에 놓여 있는 것일까?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때문에 모든 생각의 문을 개방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변기 구멍 속에 빨려 들어간 것은 아닌 것 같다. 왜냐면 변기를 열었을 때 받았던 첫 인상이 부조리했기 때문이다.
“망치의 몸뚱이는 대체 어디로 갔지?”
내가 무슨 말을 지껄이는 거지? 어처구니가 없다.
“엄마의 몸뚱이는 대체 어디로 갔지?”
나는 기어이 혼잣말을 정정한다. 고개를 도리도리 흔든다. 우선 방을 뒤져봐야겠다.
안방으로 간다. 이불 속, 침대 아래, 장롱 위와 안, 쌓아둔 옷가지 속. 구석구석을 뒤져봐도 엄마의 몸뚱이는 나오지 않는다. 조금 신중해져야 할 필요가 있는 듯 하다. 냉장고 안과 세탁기 안, 그리고 전자렌지 안도 뒤져본다. 하지만 역시 없다. 어쩌면 집에 없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한 일이 아니니까. ......모른다, 고, 싶다.
그런데 배가 아프다. 항문에 자연스런 압박이 가해진다. 화장실로 간다. 변기 뚜껑을 연다.
그렇다. 거기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것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습관 같은 것이다. 충분히 의식하지 않아도 몸이 알아서 상황에 대처하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생긴다. 일련의 습관 속에 발생하는 일탈은 사람을 늘 당황스럽게 만드는 법이다. 돌발은 그래서 재미있는지는 몰라도, 충분히 난처하다. 더욱이 지금은 결코 재미있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흐억!”
변기 뚜껑을 열자마자 나는 놀래서 비명도 제대로 지를 수 없었다. 변기 속에, 엄마의 머리통이 가라앉아 있는 것이었다. 난생 처음 있는 일이다. 나는 어찌 할 줄을 몰라, 잠시 숨도 멈춘 채 물 속에 빠져버린 엄마의 머리통을 넋 놓고 바라보기만 한다. 시간, 공간 할 것 없이, 내 좁은 사고까지도 뒤틀려 멈춰버린 것 같다. 상황은 일차적인 영상으로 투영된다. 뚜껑이 열린 하얀 변기 속에 평소처럼 눈을 뜬 채 입을 살며시 다문 엄마의 머리통. 해면처럼 물 속을 부유하는 단발의 가는 머리칼. 약간은 빛을 잃은 듯한 탁한 안색. 그리고 맑은 변기 물. 수박즙처럼 으깨진 맑고 투명한 변기 물. 빌어먹게도 맑은 물.
하지만 이 엉터리 영상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터무니없이 익숙하다는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익숙한 것들은 얼마든지 있다. 술에 절은 아빠의 술주정을 듣는다던가, 엄마와 아빠가 울부짓으며 싸우는 소리를 듣는다던가, 그리고 그 이후면 꼭 파리채로 온 몸에 멍을 그어야 하는 일상의 것들. 그런 것처럼, 두려운 익숙함이다. 이제 진절머리가 난다. 1g의 분노와 2g의 우울 정도는 거짓말은 아닐 것 같다.
왜 엄마의 머리통이 여기에 있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지만, 지금은 내가 무척 급하다. 아랫배에서는 미친 폭동이 일어났다. 엄마의 머리통을 꺼내 세숫대야에 던져 넣고, 변기 위에 바지를 내리고 앉는다. 엄마의 머리통은 세숫대야에서 빙글빙글 구르다가 멈춘다. 나와 시선이 마주친다. 나는 발끝으로 세숫대야를 움직여 엄마의 시선을 뒤로 돌린다. 응차. 그러고 나서 힘을 준다. 하지만 똥은 나오지 않는다. 배는 아프다. 응차. 아무리 힘을 줘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보니, 조금 전에 똥을 누었었다. 두 덩어리의 똥을 누었고, 다서 여섯 개의 똥 조각을 남겼다. 당연히 똥이 나올 수가 없다. 그런데 왜 배가 아팠던 거지? 배가 아프면 당연히 똥이 나와야 하는데. 배가 아픈 목적은 똥을 누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배가 거짓말을 한 것이다. 나는 믿을 수가 없다. 이제 배가 아파도 똥이 누고 싶은 것에 대한 고민을 해야만 한다. 나는 분명히 배가 아팠다. 하지만 똥은 나오지 않았다. 배가 거짓말을 했다. 나는 믿을 수가 없다. 똥, 똥...... 나는 빌어먹을 똥에게 속은 것이다!
그런데 또 배가 아프다. 이번에는 속지 않아야 한다. 배를 움켜잡는다. 세숫대야에 놓은 엄마의 머리통을 힐긋 본다. 엄마는 반드시 후회했다. 하지만 내 인식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내 팔뚝을 수놓은 멍을 본다. 지금은 배가 무척 아프다. 하지만 다시 엄마의 머리통을 힐긋 본다. 정신이 혼미하다. 아...... 좀 눕고 싶다. 배가 아프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하지만 나쁜 것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렴풋이 이해하지 못하겠다. 수 만 마리의 지렁이가 머릿속에서 복잡하게 엉켜 꿈틀거린다. 어지럽다. 휴식이 필요하다.
일어서서 안 방으로 간다. 내 방으로 가지 않고 안 방으로 간 이유는 그 곳에 내가 두고 온 일이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아직 미완의 기억이 선명한 듯, 뿌옇게 남아있었다. 분명하다. 하지만 등에 난 검푸른 자국들처럼 기억의 조각만 껌뻑거릴 뿐이다. 배가 아프다. 아무튼 나는 안 방으로 가서 바닥에 눕는다. 침대에 누을까 하다가 그냥 바닥에 눕는다. 찬 바닥이 더 시원할 것 같다. 아니다. 솔직히 침대에 눕는 것은 겁났기 때문이다. 익숙하지만 달갑지 않은 기억의 똥 조각에 다시 손대기는 싫다.
아직도 배가 아프다. 똥을 누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바보처럼 또 속아서는 안 된다. 배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 나는 믿을 수가 없다. 하지만 배가 아픈 것은 너무 뚜렷하다. 똥을 누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기억처럼 또 속아서는 안 된다. 절대 사탕을 사주지는 않을 것이다. 파리채만 있을 뿐이다. 배가 아프다. 하지만 또 속아서는 안 된다. 똥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 나는 믿을 수가 없다. 똥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 나는 믿을 수가 없다. 나는 믿을 수가 없다. 나는 믿을 수가 없다. 대체!
내가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없다. 애초에 모든 것에는 그 가능성이 잠재해 있다고 했을 때, 내가 단 한 가지만 믿어버리는 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오류다. 나는 모든 것을 의심했어야 했다. 단어의 일반적인 의미에 속았던 것이다. 그 사람이, 그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었던 간에 그것은 다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분명한 현실로 경험했다. 그 무엇도 목적성을 제대로 제시한 것이 없다. 배가 아픈 것은 똥을 누기 위함이라고 믿었는데, 지금은 그것마저 거짓 명제로 판명 나버렸다. 아니면, 애초의 전제가, 그 상위 전제가, 최초의 대 전제가 시작부터 잘못된 것일까? 모르겠다. 모르겠다. 아무것도 모르겠다. 아, 아...... 나는 진실로 강요에 습격 당하고 만다. 빌어먹게도 맑은 물!
단지 배가 무척 아프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힘들다. 자고 싶다. 배가 아프지만 눈은 스르르 감긴다. 정말 쉬고 싶다. 그래, 애초에 믿을 것이 아니었다.
뚝. 얼굴에 물방울 같은 것이 떨어진다. 소름이 잠을 확 쫓아버린다. 천장을 쳐다보지만 아무것도 없다. 원인을 찾아야겠다. 하지만 이불 속, 침대 아래, 장롱 위와 안, 쌓아둔 옷가지 속. 구석구석을 뒤져봐도 엄마의 몸뚱이는 나오지 않는다. 조금 신중해져야 할 필요가 있는 듯 하다. 냉장고 안과 세탁기 안, 그리고 전자렌지 안도 뒤져본다. 하지만 역시 없다. 다시 뒤진다. 이제는 세세한 것 하나하나 믿을 수 없는 곳까지 다 뒤진다. 전화기 아래, 화분 아래, 베개 속, 시디 플레이어 안쪽까지 샅샅이 뒤진다. 그렇게 얼마를 뒤지다가 가족사진이 든 액자를 든다. 엄마, 아빠, 그리고 나. 아빠는 엄마의 어깨에 손을 감고, 있고 엄마는 아빠의 허리에 손을 감고 있고, 나머지 손은 가운데 있는 내게로 향한, 모두가 활짝 웃고 있는 사진. 배가 아프다. 그래서 액자를 제자리에 두는데, 단단한 쇠톱하나가 거기서 뚝 떨어진다.
“오라, 여기 있었군!”
나는 그것을 들어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둔다. 사실은 3g이 허탈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안 방에는 엄마의 몸뚱이가 없나보다. 내 방에서 찾아봐야겠다.
내 방으로 가서 책상 서랍을 모두 뒤져봐도, 옷걸이에 걸린 옷을 다 풀어 헤쳐봐도, 컴퓨터 본체를 열어봐도 엄마의 몸뚱이는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혹시나 해서 책가방을 뒤져본다. 하지만 역시 산수책, 도덕책, 자연책 따위와 과자 부스러기만 나올 뿐이다. 실망해서 가방을 바닥에 내 던지는 무언가 뭉퉁한 소리가 난다. 책 따위가 내는 펑퍼덕거리는 소리가 아니다. 그래서 다시 가방을 뒤져본다. 큰 망치가 나온다. 나는 그것을 손에 꾹 쥔다. 4g의 슬픔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무슨 소리가 들린 것 같다. 잠시 귀를 기울인다.
“영운아.”
아빠가 부르는 소리다.
“예.”
“화장실에 휴지가 없네. 휴지 좀 가지고 오너라.”
“예.”
나는 화장실로 달려간다.
세숫대야에는 엄마의 머리통이 얌전히 놓여있다. 그런데 이제야 피가 빠지는지 곳곳에 피가 더러운 얼룩을 묻히고 있다. 이상한 거리감이 느껴진다. 피는 저 먼 은하계의 별 빛을 보는 것처럼 까마득했고, 착오된 시대를 보는 듯 무관했다. 진짜 거짓말 같다. 하하하. 하지만 경쾌한 웃음이 나오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다. 그런데 바로 앞에 있는 엄마의 머리통에서 나온 그 피가 맞는 것일까? 세상은 불균형한 조각들을 덕지덕지 발라둔 넝마조각이다. 어지럽다. 기분 나쁘다. 아니면 내가 원하지 않았다. 빨리 씻겨야겠다.
망치를 바닥에 놓아두고 수도꼭지를 돌린다. 물이 콸콸 쏟아져 나온다. 엄마의 머리통을 그 아래에 가져다 대어 물을 골고루 적신다. 그리고 좀 전에 했던 그대로 꼼꼼히 비누칠을 하고 씻기기 시작한다. 대체 내가 언제? 왜 이 낯선 상황들과 행동들이 이렇게 익숙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아무리 씻기고, 헹구기를 반복해도, 피 자국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심지어는 솔로 문질러봤지만 소용없다. 거짓말이 들통날 때 드는 다급함과 초조함. 그런 류의 조급함으로 심장은 펌프질한다.
모두가 다 허무해지려고 한다. 마치 허공에다 붓으로 그림을 그리려는 것처럼 쓰잘 때 없는 짓거리 같다. 밤을 만들려고 대낮에 커튼을 꼭꼭 치는 무의미함만 중첩되는 것 같다. 내가 아무리 씻긴다고 해서 피는 씻겨져 나갈 것 같지 않다. 그런데도 나는 수 차례나 더 그 행위를 반복한다. 피는 여름철 강렬한 햇볕에, 무한한 얼음이 녹듯이 머리통에서 끊임없이 줄줄 흘러내린다. 그것을 빤히 지켜보면서도 무슨 죄책감인지 나는 멈추지 않는다. 이제 피는 눈에서 눈물처럼 흘러내린다. 가증스러운...... 그런 가능성은 싫다. 혹시 내가 흘리는 것일까? 역겹다. 나는 엄마의 머리를 패대기친다. 수돗물은 줄줄 흘러간다. 깊은 한숨을 내쉰다.
후우...... 잠시 잊었던 배가 다시 아프기 시작한다. 똥을 눠야겠다. 바지를 내리고 변기에 앉는다. 이제 단편적인 영상들을 상황으로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응차. 똥 덩어리 하나가 떨어진다. 퐁당. 엄마의 머리통도 그렇게 퐁당 소리를 내며 변기 속에 떨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누가 떨어뜨렸을까? 그리고 왜 떨어뜨렸을까? 이 부분에 있어서는 낙하하는 똥보다도 확실한 답을 주지 못한다. 최소한 똥은 내가 싼 것이며 배가 아프기 때문이다. 이렇게 내가 싼 똥은 분명하다. 변기의 검은 구멍 아래로 사리질 운명 또한 일반적으로는 분명하다. 물론 분해되어 변기 속에 있던 흔적을 조각으로 남기는 운명 또한 분명하다. 하지만 엄마의 머리통은 도무지 알 수 없다. 단지 내가 알 수 있는 것이라고는 엄마가 그러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엄마가 엄마의 머리통을 변기에 빠뜨렸다면, 엄마의 몸뚱이는 변기 앞에 널브러져 있어야 한다. 하지만 엄마는 아무데서나 눕는 사람이 아니다. 결국 정리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혼돈은 10g을 다시 무마시킨다. 응차. 또 한 덩이를 떨어뜨린다.
세숫대야에 물이 어느 정도 차자, 변기에 앉은 상태에서 허리만 숙여 수도꼭지를 잠근다. 엄마의 머리통은 반쯤 물에 잠겼다. 변기 속에 있을 때보다는 훨씬 깨끗한 것 같다. 응차. 이제 똥이 나오지 않는다. 다 쌌나보다. 똥을 닦고 물을 내린다. 콰르르-. 두 개의 긴 똥 줄기는 거센 물의 소용돌이를 따라 어지럽게 뺑뺑이 치면서 조금씩, 조금씩, 똥 조각을 떨구어낸다. 소용돌이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는 똥 덩어리는 이미 심연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하지만 그것의 분해된 흔적은 아직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물결에 폴락거린다. 결국, 물이 완전히 다 내려가고 새로운 물이 들어 찰 때는 다서 여섯 개의 콩만한 똥 조각이 지워져 버린 기억의 작은 흔적처럼 물 위에 둥둥 떠있게 된다. 뒤엉킨 사유는 고물 변기보다 더 명확하지 못한 찌꺼기를 남긴다.
엄마의 머리를 세숫대야 속에서 빙글빙글 돌려 골고루 물에 적신다. 그리고 꺼낸다. 세숫비누로 구석구석 문지른다. 거품을 낸다. 거품이 잘 난다. 거품이 눈으로 들어간다. 내 눈이 따가울 것 같다. 눈에 물을 뿌려준다. 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바닥에 뚝뚝 떨어진다. 찹찹한 안개가 가슴 아래쪽에 가라앉아 있는 것 같다. 샤워기를 든다. 물을 틀어 헹군다. 나는 엄마의 머리통을 깨끗하게 씻겼다. 변기에 빠졌던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만 했다. 변기는 똥을 누는 더러운 곳이고 세숫대야는 세수를 하는 깨끗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씻겼다. 엄마의 머리는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변기. 똥! 그런데 엄마의 몸뚱이는 어디로 갔을까? 다시 의문에 사로잡힌다. 똥처럼 변기 구멍 아래로 빨려 들어갔을까? 그렇게 되고 나서 똥처럼 엄마의 머리통만 남은 것은 아닐까? 대체 어떤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까? 엄마의 머리통이 변기 속에서 발견된 이상, 어쩌면 그것이 가장 합리적인 가능성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목적은 어떤 방향에서도 찾아 낼 수 없다. 대체 지금 순간은 어떤 인식의 연장선에 놓여 있는 것일까?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때문에 모든 생각의 문을 개방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변기 구멍 속에 빨려 들어간 것은 아닌 것 같다. 왜냐면 변기를 열었을 때 받았던 첫 인상이 부조리했기 때문이다.
“망치의 몸뚱이는 대체 어디로 갔지?”
좀 전에 놓아둔 망치를 든다. 망치는 무언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 같다. 끈적끈적한 이것은...... 찾아봐야겠다. 일어서서 안 방으로 간다. 내 방으로 가지 않고 안 방으로 간 이유는 그 곳에 내가 두고 온 일이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아직 미완의 기억이 선명한 듯, 뿌옇게 남아있었다. 분명하다. 하지만 등에 난 검푸른 자국들처럼 기억의 조각만 껌뻑거릴 뿐이다. 배가 아프다. 아무튼 나는 안 방으로 가서 바닥에 눕는다. 침대에 누을까 하다가 그냥 바닥에 눕는다. 찬 바닥이 더 시원할 것 같다. 아니다. 솔직히 침대에 눕는 것은 겁났기 때문이다. 익숙하지만 달갑지 않은 기억의 똥 조각에 다시 손대기는 싫다. 물을 내린 후, 다시 물을 받아서 또 한 번 물을 내리면 그나마 변기는 깨끗한 물을 머금고 있게 된다. 아무래도 지금은 물이 차도록 기다려야 할 것 같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지만, 지금은 그것이 최선이다. 그런데 뚝. 얼굴에 물방울 같은 것이 떨어진다. 소름이 잠을 확 쫓아버린다. 천장을 쳐다보지만 아무것도 없다.
“운아, 이 새끼야.”
“예.”
“휴지 좀 가지고 오라니까.”
“예.”
대체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거실 구석에 쌓아둔 휴지 더미에서 두루마리 휴지 하나를 빼들고 화장실로 간다.
화장실에는 아빠가 고개를 뒤로 젖힌 채 변기에 앉아있다. 등은 뒤로 기대었고, 두 다리는 쭉 뻗어 비스듬했다. 그리고 팔은 모든 것을 용서하는 것처럼 양옆으로 활짝 벌리고 있고, 입은 최후의 공기라도 빨아들이려는 듯 헤벌레 벌리고 있다. 그리고 왼쪽 이마에는 구멍이 뚫려있는데, 그 곳에서 네 개의 핏줄기가 목덜미 아래로 늘어져 잇다. 피를 닦아주려고 들어올린 손에는 휴지는 없다.
끈적인다. 손에 들린 것이 무겁다. 손에는 이미 피가 한 가득 묻어있다. 나는 이제 조금씩, 조금씩, 인정하기 시작해야만 했다.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이미 가상의 인식들이 밖으로 솟아 나와 현실로 만들어 버렸다. 어차피 그들의 목적성은 내게 늘 모호했다. 내가 지나쳤다면 그것은 가식적인 무지가 될 수도 있다. 일반적인 것인 늘 타당한 목적일 수 없다. 처음부터 습관이 만든 인식은 탈선한 길 위에 놓여있었다. 때문에 내 손에 들린 것이 결코 인식에 어긋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5g의 허전함. 그리고 5g의 뿌듯함.
거울을 본다. 얼굴에도 제법 많은 피가 튀어있다. 옷에도 마찬가지다. 다시 고개를 돌려 변기 위에 쓰러져 있는 아빠를 본다. 손에 들린 망치를 다시 위로 치켜든다. 아빠의 머리를 힘껏 내리친다. 움푹 들어가면서 수박 깨지는 소리가 난다. 나는 멈추지 않는다. 탈진한 광부의 무의식적인 괭이질보다 처절하다. 피와 뇌수가 튄다. 얼굴에, 옷에, 벽에, 천장에, 천지사방으로 신명나게 튀어나간다. 펑! 빈 풍선이 터지듯이 머리가 폭발한다. 붉은 피는 어찌나 많은지, 화장실 전체를 붉게 도배시킨다. 흔적이란 어쩔 수 없이 남는 것이다.
뚝. 얼굴에 물방울 같은 것이 떨어진다. 구역질나는 비린내 - 피다. 천장에 튀었던 피가 간헐적으로 흘러내린다. 그것은 역겨워서 견딜 수가 없다. 핏방울은 내 피부를 뚫고 들어와 내 속에 동화되려고 한다. 나는 끝내 그것을 거부한다. 하지만 뜨거운 오기가 사라진다. 언제부터 그것이 자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라지는 느낌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또 속은 것인가? 오기가 있었다는 것도 모른 채 그 동안 그냥 지내왔단 말인가? 그래서 한꺼번에 분출되어 왜곡 될 수밖에 없었단 말인가? 배가 아픈 통증에 이어서 느낌에게서 또 버림받은 것이다. 핏방울은 계속 떨어진다. 대체 언제부터가 시작이고, 언제부터가 잘못이었을까? 그리고, 그리고...... 배가 아프다. 나는 믿을 수가 없다. 뜨겁게 타오르던 오기가 사라졌다. 하지만 나는 믿을 수 없다. 배가 아프다. 사라졌다. 사라졌다. 하지만 처음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믿을 수가 없다. 나는 믿을 수가 없다...... 배가 아프다.
아빠의 몸뚱이를 앞으로 밀쳐낸다. 변기 속에는 엄마의 머리통이 들어있다. 그래, 이미 알고 있었다. 배가 아프다. 분명하다. 똥이 누고 싶은 것이다. 엄마의 머리를 치울 시간도 없다. 바로 그 자리에 앉아서 똥을 눈다. 응차. 하지만 똥은 나오지 않는다. 이런...... 배가 아프다. 죄여온다. 너무 아파서, 너무 너무 아파서, 너무 너무 너무 아파서, 구역질이 날 정도다. 어지럽다. 전신에 힘이 빠진다. 항문에서 쏟아진다. 구토물이 역겨움을 참지 못한 구토물이 우르르 쏟아진다. 발기된 오줌은 밖으로 쏘아 올려져 앞에 쓰러져 있는 아빠의 몸뚱이를 적신다. 뚝.. 뚝.. 그 위로 핏방울이 떨어진다. 다시 배가 아프다. 아...... 쉬고 싶다. 변기에서 일어나서 물을 내린다. 운이 좋았다. 엄마의 머리통을 제외한 모든 찌꺼기들이 흘러 내려간다. 하지만, 나는...... 방으로 가서 좀 누워야겠다.
안방으로 간다. 무언가 하지 않은 일이 남아있는 것 같다. 문을 연다. 그리고, 피식 웃는다. 그럴 수밖에 없다.
방에서는 붉은 비가 내리고 있다. 천장에서는 찬란하게 튀었던 핏방울이 붉은 구름이 되어 봄비처럼 피를 뿌리고 있다. 침대에는 엄마의 몸뚱이가 목이 잘려진 채 널브러져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아무렇게나 던져진 단단한 쇠톱이 놓여있다. 무척이나 정겨운 느낌이 든다. 그리고 눈에서는 눈물이 찔찔 나오려고 한다. 하지만 절대 울면 안 된다. 이렇게 울면 사내녀석이 또 운다고 아빠에게 야구 방망이로 맞을 것이다. 그래서 눈물을 꾹꾹 누르려고 하지만, 한없이 샘솟는 눈물은 어쩔 수가 없다. 하하하. 이토록 재미있는 일이, 하하하! 태양아래서 무한한 얼음덩이가 내뿜는 물줄기 같은 눈물보다 무한한 웃음. 재미있다. 재미있어.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나는 한참을 문 앞에 서서 울고 웃는다. 방으로 발을 들이민다. 피가 철퍼덕하고 튄다. 핏방울이 내 위로 우르르 떨어진다. 울음과 웃음은 계속된다. 하지만 나도 스스로 그 눈물과 함성이 이 핏덩이 속에 결코 용해되지 못하고 겉돌기만 한다는 것을 느낀다.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상관도 없다. 눕고 싶다. 피로 질퍽해진 바닥에 눕는다. 침대보다는 저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핏방울이 눈으로 떨어져 눈을 감는다. 나는 무언가로부터 무언가를 속아왔다. 분하다. 적어도, 적어도, 지금은 0.1g쯤은 잘못된 것이 확실하니까.
배가 아파 온다. 똥을 누고 싶다. 하지만 속으면 안 된다. 나는 운다. 나는 웃는다. 하지만 또 속으면 안 된다. 배가 아파 온다. 똥을 누고 싶다. 하지만 속으면 안 된다. 나는 운다. 나는 웃는다. 하지만 또 속으면 안 된다. 절대로 속으면 안 된다. 그쯤하면 되었다. 대체 얼마나 나는 어지럽게 분열되어야 하나. 엄마와 아빠가 최소한 그렇게만 하지 않았더라도 이런 것은...... 아니다. 어차피 인식들은 뒤죽박죽이었고, 현실은 엉터리 가능성이었고, 내가 믿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난 정말 바보였다. 버림받았다. 모든 것들을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내 마음도 그렇게 생각했기에 내가 가진 인식을 믿어버렸다. 왔다 갔다. 이런 날벼락이! 이 세상에 혼자 남은 듯한...... 처절한 하늘이 내게 붉은 서러움으로 무너져 내려 나를 깊은 곳으로 떨어뜨린다.
아주머니는 고개를 갸웃뚱 한다. 얼굴이 제법 심각해 보인다.
“아니, 얘야. 왜 그러냐니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수박을 짓뭉갠다. 아주머니는 내 어깨를 붙잡는다. 그래도 나는 멈추지 않는다. 그저 한 번 웃어줄 뿐.
“아니, 예가!”
아주머니가 내 옷덜미를 잡아챈다. 덩치도 작은 초등학교 4학년 짜리로서는 우악스러운 아주머니의 아귀힘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아주머니는 뚫어져라 나를 쳐다본다. 나는 지금도 속고 있을 지도 모른다. 내 인식의 거짓된 투사 속에 있을 지도 모른다. 아주머니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한다. 그리고 말한다.
“엄마, 아빠를 죽였어요.”
......
......
...... 나는 그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두 손에 수박이 들려있다. 체구도 작은 초등학교 4학년 짜리에게, 수박은 제법 무거운 물건이다. 일반적으로 수박은 먹으려고 산다. 그리고 나도 먹으려고 샀다. 그것은 분명하다. 아무리 일상적인 일이라고 해도 그 목적이 늘 똑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것을 분명하게 언급해 주어야 한다. 나는 이것으로 신발을 닦을 생각은 없다. 또한 농구를 할 생각도 없다. 그렇다고 선반 위에 장식해 놓을 것도 아니며, 에어컨으로 쓸 것도 아니다. 이런 가능성이 이상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류다. 물론 비합리적일 수도 있겠지만, 결코 해서는 안 될 것들은 아니다. 때문에 일상적인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은 실수이며, 당연해야 할 이유는 코딱지도 없다. 나는 말했다. 내가 힘들게 들고 있는 수박은 가족들과 함께 먹기 위해서 산 수박이다. 이제 수박에 대한 오해의 소지는 없어야 한다.
“히야~ 맛죽겠다.”
엄마 아빠와 둘러앉아 시원한 수박을 한 입 가득 배어 물 생각을 한다. 입 안에 침이 잔뜩 고인다. 혀로 입술을 적신다. 쩝쩝...... 그런데 수박을 떨어뜨린다. 아니, 수박이 스스로 기어 나간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것보다는 내가 내던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확신 할 수는 없다. 아무튼 수박은 지면과 충돌했고, 두 쪽으로 갈라져 감춰둔 붉그죽죽한 본심을 게슴츠레 드러낸다. 단단한 얼룩 속에 숨어있던, 응고된 피눈물 덩어리! 본심은 조금만 으깨어도 눈물을 보일 만큼 연약한 것이었으며, 지금 그렇게 수박즙을 흘리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그것을 내려다본다. 얄팍한 거짓말의 비밀이 들킨 것 같은 수치감이 든다.
“죽어! 아니, 큰일났네.”
나는 잠시 어쩔 줄을 모른다. 엄마랑 아빠랑 같이 먹으려고 산 수박인데. 오순도순 한 자리에 모여 같이 먹으려고 산 수박인데. 오늘 100점 맞은 이야기를 하며 먹을 수박인데. 내면의 호수에 슬픈 물방울이 내려앉는다. 그리고 우울한 불꽃이 드리워진다. 묵념하듯이 고개를 쳐박고 눈을 감는다. 하하하! 호수는 휘발성 기름으로 변질된 상태였고, 우울함은 도화선이었다. 폭발은 당연한 것. 나는 참을 수가 없다.
수박을 발로 내리 밟는다. 이불 빨래하는 발처럼, 물에 잠긴 이불의 때를 빼야 할 발처럼, 거침없는 발길질의 당당한 반복. 또 반복. 얼굴에 남은 것은 조소하는 미소 한 꺼풀. 그 사이 수박 덩이는 산산히 부서져서 서러운 살가루를 휘날린다. 흔적은 어쩔 수 없이 남는 것이다. 얼굴에도 묻고 손에도 묻었다. 신발과 바지 아랫단은 으깨진 붉은 수박의 체액을 고스란히 머금었다. 회피하고 싶지만, 그런 것들은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꼭 그렇다.
무언가 속죄한 기분이 든다. 또한 일말의 허탈함과 죄의식은 그대로 남는다.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던 것 같다.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내 어깨를 잡으며 묻는다.
“아니, 얘야. 너 왜 그러는 거니?”
나는 고개를 돌리며 피식 웃어준다.
아랫배가 아프다. 항문에 자연스런 압박이 가해진다. 화장실로 간다. 변기 뚜껑을 연다.
그렇다. 거기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것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습관 같은 것이다. 충분히 의식하지 않아도 몸이 알아서 상황에 대처하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생긴다. 일련의 습관 속에 발생하는 일탈은 사람을 늘 당황스럽게 만드는 법이다. 돌발은 그래서 재미있는지는 몰라도, 충분히 난처하다. 더욱이 지금은 결코 재미있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흐억!”
변기 뚜껑을 열자마자 나는 놀래서 비명도 제대로 지를 수 없었다. 변기 속에, 엄마의 머리통이 가라앉아 있는 것이었다. 난생 처음 있는 일이다. 나는 어찌 할 줄을 몰라, 잠시 숨도 멈춘 채 물 속에 빠져버린 엄마의 머리통을 넋 놓고 바라보기만 한다. 시간, 공간 할 것 없이, 내 좁은 사고까지도 뒤틀려 멈춰버린 것 같다. 상황은 일차적인 영상으로 투영된다. 뚜껑이 열린 하얀 변기 속에 평소처럼 눈을 뜬 채 입을 살며시 다문 엄마의 머리통. 해면처럼 물 속을 부유하는 단발의 가는 머리칼. 약간은 빛을 잃은 듯한 탁한 안색. 그리고 맑은 변기 물. 수박즙처럼 으깨진 맑고 투명한 변기 물. 빌어먹게도 맑은 물.
이 영상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상황과는 상관없다. 내 치부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조리하기 때문이다. - 변기 물이 너무 맑다. 돼지갈비도 물에 재우면 숨은 피를 토해내기 마련인데, 엄마의 머리통이 든 변기 묽은 투명하기만 하다. 굳이 엄마의 머리통이 아니더라도, 우리 집은 변기는 저렇게 맑은 물을 담고 있던 적이 거의 없었다. 수압이 낮았기 때문에 대부분 내용물을 제대로 흘려보내지 못했다. 항상 누런 오줌기가 은은히 감돌았고, 몇 개의 똥 덩어리가 점처럼 남아있었다. 그렇게 모든 것을 말끔하게 개워낸 적이 없던 변기 주제에, 지금은 너무 당돌하게 수돗물 본연의 맑고 투명한 물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 영상은 무언가 억지를 쓰고 있다.
물을 내린다. 일탈에 대한 부작용이었을까? 나는 내가 왜 변기 물을 내리는지 모른다. 똥오줌을 내릴 필요도 없었고, 변기가 막혔는지 확인해 볼 필요도 없었다. 그렇다면 엄마의 머리통을 흘려보내기 위해서일까? 내가 생각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는 어떤 목적도 없는 행위였다. 어쨌든 나는 물을 내렸다. 나는 이제 오해를 시작할지도 모른다. 차라리......
변기는 볼링 핀이 쓰러지는 경쾌한 소리를 내며 물을 아래로 흘려 보낸다. 엄마의 머리통은 물을 따라 빙글빙글 돌지만, 물의 흐름에 함께 빨려 들지는 못한다. 그런데 나는 엄마의 머리통이 검은 구멍 속으로 침잠해 버리는 것을 상상하고 있었다. 한심스럽다. 그리고 이제 확실한 흔적처럼 남은 엄마의 머리통을 보며 불안을 맛본다. 엄마의 머리칼은 소용돌이 속에 어지럽게 엉켜버렸다. 물이 완전히 내려간 다음에는 엄마의 머리는 똥 덩어리처럼 슬며시 물 속을 배회한다. 무언가 남아있는 아쉬운 미련의 표상처럼.
엄마의 머리칼을 조심스럽게 손끝으로 든다. 엄마의 머리통은 머리칼에 딸려 올라온다. 물이 아래로 주르르 떨어진다. 그리고 튄다. 더럽다. 변기의 물이 더럽기 때문이다. 최소한 지금까지 박혀왔던 인식은 그러하다. 진실은 생각보다 중요한 것이 되지 못한다. 순간을 결정하는 것은 진실보다는 즉각적인 인식에 의해서다. 그리고 그것은 목적이 되고, 현실이 된다. 우리는 그 인식의 왜곡 여부를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는 그가 만든 현실 속에 있으므로 그의 명령에 복종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인식의 노예에 불과할 뿐이다. 때문에 변기 속에 있던 물건을 손으로 끄집어낸다는 것 자체가 불결하다. 씻겨야겠다. 엄마의 머리통을 세숫대야에 넣고 수돗물을 받는다.
잠시 잊고 있던 배가 다시 아프기 시작한다. 똥을 눠야겠다. 바지를 내리고 변기에 앉는다. 이제 단편적인 영상들을 상황으로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응차. 똥 덩어리 하나가 떨어진다. 퐁당. 엄마의 머리통도 그렇게 퐁당 소리를 내며 변기 속에 떨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누가 떨어뜨렸을까? 그리고 왜 떨어뜨렸을까? 이 부분에 있어서는 낙하하는 똥보다도 확실한 답을 주지 못한다. 최소한 똥은 내가 싼 것이며 배가 아프기 때문이다. 이렇게 내가 싼 똥은 분명하다. 변기의 검은 구멍 아래로 사리질 운명 또한 일반적으로는 분명하다. 물론 분해되어 변기 속에 있던 흔적을 조각으로 남기는 운명 또한 분명하다. 하지만 엄마의 머리통은 도무지 알 수 없다. 단지 내가 알 수 있는 것이라고는 엄마가 그러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엄마가 엄마의 머리통을 변기에 빠뜨렸다면, 엄마의 몸뚱이는 변기 앞에 널브러져 있어야 한다. 하지만 엄마는 아무데서나 눕는 사람이 아니다. 결국 정리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응차. 또 한 덩이를 떨어뜨린다.
세숫대야에 물이 어느 정도 차자, 변기에 앉은 상태에서 허리만 숙여 수도꼭지를 잠근다. 엄마의 머리통은 반쯤 물에 잠겼다. 변기 속에 있을 때보다는 훨씬 깨끗한 것 같다. 응차. 이제 똥이 나오지 않는다. 다 쌌나보다. 똥을 닦고 물을 내린다. 콰르르-. 두 개의 긴 똥 줄기는 거센 물의 소용돌이를 따라 어지럽게 뺑뺑이 치면서 조금씩, 조금씩, 똥 조각을 떨구어낸다. 소용돌이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는 똥 덩어리는 이미 심연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하지만 그것의 분해된 흔적은 아직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물결에 폴락거린다. 결국, 물이 완전히 다 내려가고 새로운 물이 들어 찰 때는 다서 여섯 개의 콩만한 똥 조각이 지워져 버린 기억의 작은 흔적처럼 물 위에 둥둥 떠있게 된다.
엄마의 머리를 세숫대야 속에서 빙글빙글 돌려 골고루 물을 적신다. 그리고 꺼낸다. 세숫비누로 구석구석 문지른다. 거품을 낸다. 거품이 잘 난다. 거품이 눈으로 들어간다. 내 눈이 따가울 것 같다. 눈에 물을 뿌려준다. 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바닥에 뚝뚝 떨어진다. 찹찹한 안개가 가슴 아래쪽에 가라앉아 있는 것 같다. 샤워기를 든다. 물을 틀어 헹군다. 나는 엄마의 머리통을 깨끗하게 씻겼다. 변기에 빠졌던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만 했다. 변기는 똥을 누는 더러운 곳이고 세숫대야는 세수를 하는 깨끗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씻겼다. 엄마의 머리는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변기. 똥! 그런데 엄마의 몸뚱이는 어디로 갔을까? 다시 의문에 사로잡힌다. 똥처럼 변기 구멍 아래로 빨려 들어갔을까? 그렇게 되고 나서 똥처럼 엄마의 머리통만 남은 것은 아닐까? 대체 어떤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까? 엄마의 머리통이 변기 속에서 발견된 이상, 어쩌면 그것이 가장 합리적인 가능성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목적은 어떤 방향에서도 찾아 낼 수 없다. 대체 지금 순간은 어떤 인식의 연장선에 놓여 있는 것일까?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때문에 모든 생각의 문을 개방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변기 구멍 속에 빨려 들어간 것은 아닌 것 같다. 왜냐면 변기를 열었을 때 받았던 첫 인상이 부조리했기 때문이다.
“망치의 몸뚱이는 대체 어디로 갔지?”
내가 무슨 말을 지껄이는 거지? 어처구니가 없다.
“엄마의 몸뚱이는 대체 어디로 갔지?”
나는 기어이 혼잣말을 정정한다. 고개를 도리도리 흔든다. 우선 방을 뒤져봐야겠다.
안방으로 간다. 이불 속, 침대 아래, 장롱 위와 안, 쌓아둔 옷가지 속. 구석구석을 뒤져봐도 엄마의 몸뚱이는 나오지 않는다. 조금 신중해져야 할 필요가 있는 듯 하다. 냉장고 안과 세탁기 안, 그리고 전자렌지 안도 뒤져본다. 하지만 역시 없다. 어쩌면 집에 없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한 일이 아니니까. ......모른다, 고, 싶다.
그런데 배가 아프다. 항문에 자연스런 압박이 가해진다. 화장실로 간다. 변기 뚜껑을 연다.
그렇다. 거기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것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습관 같은 것이다. 충분히 의식하지 않아도 몸이 알아서 상황에 대처하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생긴다. 일련의 습관 속에 발생하는 일탈은 사람을 늘 당황스럽게 만드는 법이다. 돌발은 그래서 재미있는지는 몰라도, 충분히 난처하다. 더욱이 지금은 결코 재미있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흐억!”
변기 뚜껑을 열자마자 나는 놀래서 비명도 제대로 지를 수 없었다. 변기 속에, 엄마의 머리통이 가라앉아 있는 것이었다. 난생 처음 있는 일이다. 나는 어찌 할 줄을 몰라, 잠시 숨도 멈춘 채 물 속에 빠져버린 엄마의 머리통을 넋 놓고 바라보기만 한다. 시간, 공간 할 것 없이, 내 좁은 사고까지도 뒤틀려 멈춰버린 것 같다. 상황은 일차적인 영상으로 투영된다. 뚜껑이 열린 하얀 변기 속에 평소처럼 눈을 뜬 채 입을 살며시 다문 엄마의 머리통. 해면처럼 물 속을 부유하는 단발의 가는 머리칼. 약간은 빛을 잃은 듯한 탁한 안색. 그리고 맑은 변기 물. 수박즙처럼 으깨진 맑고 투명한 변기 물. 빌어먹게도 맑은 물.
하지만 이 엉터리 영상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터무니없이 익숙하다는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익숙한 것들은 얼마든지 있다. 술에 절은 아빠의 술주정을 듣는다던가, 엄마와 아빠가 울부짓으며 싸우는 소리를 듣는다던가, 그리고 그 이후면 꼭 파리채로 온 몸에 멍을 그어야 하는 일상의 것들. 그런 것처럼, 두려운 익숙함이다. 이제 진절머리가 난다. 1g의 분노와 2g의 우울 정도는 거짓말은 아닐 것 같다.
왜 엄마의 머리통이 여기에 있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지만, 지금은 내가 무척 급하다. 아랫배에서는 미친 폭동이 일어났다. 엄마의 머리통을 꺼내 세숫대야에 던져 넣고, 변기 위에 바지를 내리고 앉는다. 엄마의 머리통은 세숫대야에서 빙글빙글 구르다가 멈춘다. 나와 시선이 마주친다. 나는 발끝으로 세숫대야를 움직여 엄마의 시선을 뒤로 돌린다. 응차. 그러고 나서 힘을 준다. 하지만 똥은 나오지 않는다. 배는 아프다. 응차. 아무리 힘을 줘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보니, 조금 전에 똥을 누었었다. 두 덩어리의 똥을 누었고, 다서 여섯 개의 똥 조각을 남겼다. 당연히 똥이 나올 수가 없다. 그런데 왜 배가 아팠던 거지? 배가 아프면 당연히 똥이 나와야 하는데. 배가 아픈 목적은 똥을 누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배가 거짓말을 한 것이다. 나는 믿을 수가 없다. 이제 배가 아파도 똥이 누고 싶은 것에 대한 고민을 해야만 한다. 나는 분명히 배가 아팠다. 하지만 똥은 나오지 않았다. 배가 거짓말을 했다. 나는 믿을 수가 없다. 똥, 똥...... 나는 빌어먹을 똥에게 속은 것이다!
그런데 또 배가 아프다. 이번에는 속지 않아야 한다. 배를 움켜잡는다. 세숫대야에 놓은 엄마의 머리통을 힐긋 본다. 엄마는 반드시 후회했다. 하지만 내 인식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내 팔뚝을 수놓은 멍을 본다. 지금은 배가 무척 아프다. 하지만 다시 엄마의 머리통을 힐긋 본다. 정신이 혼미하다. 아...... 좀 눕고 싶다. 배가 아프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하지만 나쁜 것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렴풋이 이해하지 못하겠다. 수 만 마리의 지렁이가 머릿속에서 복잡하게 엉켜 꿈틀거린다. 어지럽다. 휴식이 필요하다.
일어서서 안 방으로 간다. 내 방으로 가지 않고 안 방으로 간 이유는 그 곳에 내가 두고 온 일이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아직 미완의 기억이 선명한 듯, 뿌옇게 남아있었다. 분명하다. 하지만 등에 난 검푸른 자국들처럼 기억의 조각만 껌뻑거릴 뿐이다. 배가 아프다. 아무튼 나는 안 방으로 가서 바닥에 눕는다. 침대에 누을까 하다가 그냥 바닥에 눕는다. 찬 바닥이 더 시원할 것 같다. 아니다. 솔직히 침대에 눕는 것은 겁났기 때문이다. 익숙하지만 달갑지 않은 기억의 똥 조각에 다시 손대기는 싫다.
아직도 배가 아프다. 똥을 누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바보처럼 또 속아서는 안 된다. 배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 나는 믿을 수가 없다. 하지만 배가 아픈 것은 너무 뚜렷하다. 똥을 누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기억처럼 또 속아서는 안 된다. 절대 사탕을 사주지는 않을 것이다. 파리채만 있을 뿐이다. 배가 아프다. 하지만 또 속아서는 안 된다. 똥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 나는 믿을 수가 없다. 똥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 나는 믿을 수가 없다. 나는 믿을 수가 없다. 나는 믿을 수가 없다. 대체!
내가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없다. 애초에 모든 것에는 그 가능성이 잠재해 있다고 했을 때, 내가 단 한 가지만 믿어버리는 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오류다. 나는 모든 것을 의심했어야 했다. 단어의 일반적인 의미에 속았던 것이다. 그 사람이, 그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었던 간에 그것은 다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분명한 현실로 경험했다. 그 무엇도 목적성을 제대로 제시한 것이 없다. 배가 아픈 것은 똥을 누기 위함이라고 믿었는데, 지금은 그것마저 거짓 명제로 판명 나버렸다. 아니면, 애초의 전제가, 그 상위 전제가, 최초의 대 전제가 시작부터 잘못된 것일까? 모르겠다. 모르겠다. 아무것도 모르겠다. 아, 아...... 나는 진실로 강요에 습격 당하고 만다. 빌어먹게도 맑은 물!
단지 배가 무척 아프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힘들다. 자고 싶다. 배가 아프지만 눈은 스르르 감긴다. 정말 쉬고 싶다. 그래, 애초에 믿을 것이 아니었다.
뚝. 얼굴에 물방울 같은 것이 떨어진다. 소름이 잠을 확 쫓아버린다. 천장을 쳐다보지만 아무것도 없다. 원인을 찾아야겠다. 하지만 이불 속, 침대 아래, 장롱 위와 안, 쌓아둔 옷가지 속. 구석구석을 뒤져봐도 엄마의 몸뚱이는 나오지 않는다. 조금 신중해져야 할 필요가 있는 듯 하다. 냉장고 안과 세탁기 안, 그리고 전자렌지 안도 뒤져본다. 하지만 역시 없다. 다시 뒤진다. 이제는 세세한 것 하나하나 믿을 수 없는 곳까지 다 뒤진다. 전화기 아래, 화분 아래, 베개 속, 시디 플레이어 안쪽까지 샅샅이 뒤진다. 그렇게 얼마를 뒤지다가 가족사진이 든 액자를 든다. 엄마, 아빠, 그리고 나. 아빠는 엄마의 어깨에 손을 감고, 있고 엄마는 아빠의 허리에 손을 감고 있고, 나머지 손은 가운데 있는 내게로 향한, 모두가 활짝 웃고 있는 사진. 배가 아프다. 그래서 액자를 제자리에 두는데, 단단한 쇠톱하나가 거기서 뚝 떨어진다.
“오라, 여기 있었군!”
나는 그것을 들어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둔다. 사실은 3g이 허탈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안 방에는 엄마의 몸뚱이가 없나보다. 내 방에서 찾아봐야겠다.
내 방으로 가서 책상 서랍을 모두 뒤져봐도, 옷걸이에 걸린 옷을 다 풀어 헤쳐봐도, 컴퓨터 본체를 열어봐도 엄마의 몸뚱이는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혹시나 해서 책가방을 뒤져본다. 하지만 역시 산수책, 도덕책, 자연책 따위와 과자 부스러기만 나올 뿐이다. 실망해서 가방을 바닥에 내 던지는 무언가 뭉퉁한 소리가 난다. 책 따위가 내는 펑퍼덕거리는 소리가 아니다. 그래서 다시 가방을 뒤져본다. 큰 망치가 나온다. 나는 그것을 손에 꾹 쥔다. 4g의 슬픔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무슨 소리가 들린 것 같다. 잠시 귀를 기울인다.
“영운아.”
아빠가 부르는 소리다.
“예.”
“화장실에 휴지가 없네. 휴지 좀 가지고 오너라.”
“예.”
나는 화장실로 달려간다.
세숫대야에는 엄마의 머리통이 얌전히 놓여있다. 그런데 이제야 피가 빠지는지 곳곳에 피가 더러운 얼룩을 묻히고 있다. 이상한 거리감이 느껴진다. 피는 저 먼 은하계의 별 빛을 보는 것처럼 까마득했고, 착오된 시대를 보는 듯 무관했다. 진짜 거짓말 같다. 하하하. 하지만 경쾌한 웃음이 나오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다. 그런데 바로 앞에 있는 엄마의 머리통에서 나온 그 피가 맞는 것일까? 세상은 불균형한 조각들을 덕지덕지 발라둔 넝마조각이다. 어지럽다. 기분 나쁘다. 아니면 내가 원하지 않았다. 빨리 씻겨야겠다.
망치를 바닥에 놓아두고 수도꼭지를 돌린다. 물이 콸콸 쏟아져 나온다. 엄마의 머리통을 그 아래에 가져다 대어 물을 골고루 적신다. 그리고 좀 전에 했던 그대로 꼼꼼히 비누칠을 하고 씻기기 시작한다. 대체 내가 언제? 왜 이 낯선 상황들과 행동들이 이렇게 익숙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아무리 씻기고, 헹구기를 반복해도, 피 자국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심지어는 솔로 문질러봤지만 소용없다. 거짓말이 들통날 때 드는 다급함과 초조함. 그런 류의 조급함으로 심장은 펌프질한다.
모두가 다 허무해지려고 한다. 마치 허공에다 붓으로 그림을 그리려는 것처럼 쓰잘 때 없는 짓거리 같다. 밤을 만들려고 대낮에 커튼을 꼭꼭 치는 무의미함만 중첩되는 것 같다. 내가 아무리 씻긴다고 해서 피는 씻겨져 나갈 것 같지 않다. 그런데도 나는 수 차례나 더 그 행위를 반복한다. 피는 여름철 강렬한 햇볕에, 무한한 얼음이 녹듯이 머리통에서 끊임없이 줄줄 흘러내린다. 그것을 빤히 지켜보면서도 무슨 죄책감인지 나는 멈추지 않는다. 이제 피는 눈에서 눈물처럼 흘러내린다. 가증스러운...... 그런 가능성은 싫다. 혹시 내가 흘리는 것일까? 역겹다. 나는 엄마의 머리를 패대기친다. 수돗물은 줄줄 흘러간다. 깊은 한숨을 내쉰다.
후우...... 잠시 잊었던 배가 다시 아프기 시작한다. 똥을 눠야겠다. 바지를 내리고 변기에 앉는다. 이제 단편적인 영상들을 상황으로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응차. 똥 덩어리 하나가 떨어진다. 퐁당. 엄마의 머리통도 그렇게 퐁당 소리를 내며 변기 속에 떨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누가 떨어뜨렸을까? 그리고 왜 떨어뜨렸을까? 이 부분에 있어서는 낙하하는 똥보다도 확실한 답을 주지 못한다. 최소한 똥은 내가 싼 것이며 배가 아프기 때문이다. 이렇게 내가 싼 똥은 분명하다. 변기의 검은 구멍 아래로 사리질 운명 또한 일반적으로는 분명하다. 물론 분해되어 변기 속에 있던 흔적을 조각으로 남기는 운명 또한 분명하다. 하지만 엄마의 머리통은 도무지 알 수 없다. 단지 내가 알 수 있는 것이라고는 엄마가 그러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엄마가 엄마의 머리통을 변기에 빠뜨렸다면, 엄마의 몸뚱이는 변기 앞에 널브러져 있어야 한다. 하지만 엄마는 아무데서나 눕는 사람이 아니다. 결국 정리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혼돈은 10g을 다시 무마시킨다. 응차. 또 한 덩이를 떨어뜨린다.
세숫대야에 물이 어느 정도 차자, 변기에 앉은 상태에서 허리만 숙여 수도꼭지를 잠근다. 엄마의 머리통은 반쯤 물에 잠겼다. 변기 속에 있을 때보다는 훨씬 깨끗한 것 같다. 응차. 이제 똥이 나오지 않는다. 다 쌌나보다. 똥을 닦고 물을 내린다. 콰르르-. 두 개의 긴 똥 줄기는 거센 물의 소용돌이를 따라 어지럽게 뺑뺑이 치면서 조금씩, 조금씩, 똥 조각을 떨구어낸다. 소용돌이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는 똥 덩어리는 이미 심연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하지만 그것의 분해된 흔적은 아직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물결에 폴락거린다. 결국, 물이 완전히 다 내려가고 새로운 물이 들어 찰 때는 다서 여섯 개의 콩만한 똥 조각이 지워져 버린 기억의 작은 흔적처럼 물 위에 둥둥 떠있게 된다. 뒤엉킨 사유는 고물 변기보다 더 명확하지 못한 찌꺼기를 남긴다.
엄마의 머리를 세숫대야 속에서 빙글빙글 돌려 골고루 물에 적신다. 그리고 꺼낸다. 세숫비누로 구석구석 문지른다. 거품을 낸다. 거품이 잘 난다. 거품이 눈으로 들어간다. 내 눈이 따가울 것 같다. 눈에 물을 뿌려준다. 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바닥에 뚝뚝 떨어진다. 찹찹한 안개가 가슴 아래쪽에 가라앉아 있는 것 같다. 샤워기를 든다. 물을 틀어 헹군다. 나는 엄마의 머리통을 깨끗하게 씻겼다. 변기에 빠졌던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만 했다. 변기는 똥을 누는 더러운 곳이고 세숫대야는 세수를 하는 깨끗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씻겼다. 엄마의 머리는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변기. 똥! 그런데 엄마의 몸뚱이는 어디로 갔을까? 다시 의문에 사로잡힌다. 똥처럼 변기 구멍 아래로 빨려 들어갔을까? 그렇게 되고 나서 똥처럼 엄마의 머리통만 남은 것은 아닐까? 대체 어떤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까? 엄마의 머리통이 변기 속에서 발견된 이상, 어쩌면 그것이 가장 합리적인 가능성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목적은 어떤 방향에서도 찾아 낼 수 없다. 대체 지금 순간은 어떤 인식의 연장선에 놓여 있는 것일까?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때문에 모든 생각의 문을 개방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변기 구멍 속에 빨려 들어간 것은 아닌 것 같다. 왜냐면 변기를 열었을 때 받았던 첫 인상이 부조리했기 때문이다.
“망치의 몸뚱이는 대체 어디로 갔지?”
좀 전에 놓아둔 망치를 든다. 망치는 무언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 같다. 끈적끈적한 이것은...... 찾아봐야겠다. 일어서서 안 방으로 간다. 내 방으로 가지 않고 안 방으로 간 이유는 그 곳에 내가 두고 온 일이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아직 미완의 기억이 선명한 듯, 뿌옇게 남아있었다. 분명하다. 하지만 등에 난 검푸른 자국들처럼 기억의 조각만 껌뻑거릴 뿐이다. 배가 아프다. 아무튼 나는 안 방으로 가서 바닥에 눕는다. 침대에 누을까 하다가 그냥 바닥에 눕는다. 찬 바닥이 더 시원할 것 같다. 아니다. 솔직히 침대에 눕는 것은 겁났기 때문이다. 익숙하지만 달갑지 않은 기억의 똥 조각에 다시 손대기는 싫다. 물을 내린 후, 다시 물을 받아서 또 한 번 물을 내리면 그나마 변기는 깨끗한 물을 머금고 있게 된다. 아무래도 지금은 물이 차도록 기다려야 할 것 같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지만, 지금은 그것이 최선이다. 그런데 뚝. 얼굴에 물방울 같은 것이 떨어진다. 소름이 잠을 확 쫓아버린다. 천장을 쳐다보지만 아무것도 없다.
“운아, 이 새끼야.”
“예.”
“휴지 좀 가지고 오라니까.”
“예.”
대체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거실 구석에 쌓아둔 휴지 더미에서 두루마리 휴지 하나를 빼들고 화장실로 간다.
화장실에는 아빠가 고개를 뒤로 젖힌 채 변기에 앉아있다. 등은 뒤로 기대었고, 두 다리는 쭉 뻗어 비스듬했다. 그리고 팔은 모든 것을 용서하는 것처럼 양옆으로 활짝 벌리고 있고, 입은 최후의 공기라도 빨아들이려는 듯 헤벌레 벌리고 있다. 그리고 왼쪽 이마에는 구멍이 뚫려있는데, 그 곳에서 네 개의 핏줄기가 목덜미 아래로 늘어져 잇다. 피를 닦아주려고 들어올린 손에는 휴지는 없다.
끈적인다. 손에 들린 것이 무겁다. 손에는 이미 피가 한 가득 묻어있다. 나는 이제 조금씩, 조금씩, 인정하기 시작해야만 했다.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이미 가상의 인식들이 밖으로 솟아 나와 현실로 만들어 버렸다. 어차피 그들의 목적성은 내게 늘 모호했다. 내가 지나쳤다면 그것은 가식적인 무지가 될 수도 있다. 일반적인 것인 늘 타당한 목적일 수 없다. 처음부터 습관이 만든 인식은 탈선한 길 위에 놓여있었다. 때문에 내 손에 들린 것이 결코 인식에 어긋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5g의 허전함. 그리고 5g의 뿌듯함.
거울을 본다. 얼굴에도 제법 많은 피가 튀어있다. 옷에도 마찬가지다. 다시 고개를 돌려 변기 위에 쓰러져 있는 아빠를 본다. 손에 들린 망치를 다시 위로 치켜든다. 아빠의 머리를 힘껏 내리친다. 움푹 들어가면서 수박 깨지는 소리가 난다. 나는 멈추지 않는다. 탈진한 광부의 무의식적인 괭이질보다 처절하다. 피와 뇌수가 튄다. 얼굴에, 옷에, 벽에, 천장에, 천지사방으로 신명나게 튀어나간다. 펑! 빈 풍선이 터지듯이 머리가 폭발한다. 붉은 피는 어찌나 많은지, 화장실 전체를 붉게 도배시킨다. 흔적이란 어쩔 수 없이 남는 것이다.
뚝. 얼굴에 물방울 같은 것이 떨어진다. 구역질나는 비린내 - 피다. 천장에 튀었던 피가 간헐적으로 흘러내린다. 그것은 역겨워서 견딜 수가 없다. 핏방울은 내 피부를 뚫고 들어와 내 속에 동화되려고 한다. 나는 끝내 그것을 거부한다. 하지만 뜨거운 오기가 사라진다. 언제부터 그것이 자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라지는 느낌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또 속은 것인가? 오기가 있었다는 것도 모른 채 그 동안 그냥 지내왔단 말인가? 그래서 한꺼번에 분출되어 왜곡 될 수밖에 없었단 말인가? 배가 아픈 통증에 이어서 느낌에게서 또 버림받은 것이다. 핏방울은 계속 떨어진다. 대체 언제부터가 시작이고, 언제부터가 잘못이었을까? 그리고, 그리고...... 배가 아프다. 나는 믿을 수가 없다. 뜨겁게 타오르던 오기가 사라졌다. 하지만 나는 믿을 수 없다. 배가 아프다. 사라졌다. 사라졌다. 하지만 처음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믿을 수가 없다. 나는 믿을 수가 없다...... 배가 아프다.
아빠의 몸뚱이를 앞으로 밀쳐낸다. 변기 속에는 엄마의 머리통이 들어있다. 그래, 이미 알고 있었다. 배가 아프다. 분명하다. 똥이 누고 싶은 것이다. 엄마의 머리를 치울 시간도 없다. 바로 그 자리에 앉아서 똥을 눈다. 응차. 하지만 똥은 나오지 않는다. 이런...... 배가 아프다. 죄여온다. 너무 아파서, 너무 너무 아파서, 너무 너무 너무 아파서, 구역질이 날 정도다. 어지럽다. 전신에 힘이 빠진다. 항문에서 쏟아진다. 구토물이 역겨움을 참지 못한 구토물이 우르르 쏟아진다. 발기된 오줌은 밖으로 쏘아 올려져 앞에 쓰러져 있는 아빠의 몸뚱이를 적신다. 뚝.. 뚝.. 그 위로 핏방울이 떨어진다. 다시 배가 아프다. 아...... 쉬고 싶다. 변기에서 일어나서 물을 내린다. 운이 좋았다. 엄마의 머리통을 제외한 모든 찌꺼기들이 흘러 내려간다. 하지만, 나는...... 방으로 가서 좀 누워야겠다.
안방으로 간다. 무언가 하지 않은 일이 남아있는 것 같다. 문을 연다. 그리고, 피식 웃는다. 그럴 수밖에 없다.
방에서는 붉은 비가 내리고 있다. 천장에서는 찬란하게 튀었던 핏방울이 붉은 구름이 되어 봄비처럼 피를 뿌리고 있다. 침대에는 엄마의 몸뚱이가 목이 잘려진 채 널브러져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아무렇게나 던져진 단단한 쇠톱이 놓여있다. 무척이나 정겨운 느낌이 든다. 그리고 눈에서는 눈물이 찔찔 나오려고 한다. 하지만 절대 울면 안 된다. 이렇게 울면 사내녀석이 또 운다고 아빠에게 야구 방망이로 맞을 것이다. 그래서 눈물을 꾹꾹 누르려고 하지만, 한없이 샘솟는 눈물은 어쩔 수가 없다. 하하하. 이토록 재미있는 일이, 하하하! 태양아래서 무한한 얼음덩이가 내뿜는 물줄기 같은 눈물보다 무한한 웃음. 재미있다. 재미있어.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나는 한참을 문 앞에 서서 울고 웃는다. 방으로 발을 들이민다. 피가 철퍼덕하고 튄다. 핏방울이 내 위로 우르르 떨어진다. 울음과 웃음은 계속된다. 하지만 나도 스스로 그 눈물과 함성이 이 핏덩이 속에 결코 용해되지 못하고 겉돌기만 한다는 것을 느낀다.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상관도 없다. 눕고 싶다. 피로 질퍽해진 바닥에 눕는다. 침대보다는 저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핏방울이 눈으로 떨어져 눈을 감는다. 나는 무언가로부터 무언가를 속아왔다. 분하다. 적어도, 적어도, 지금은 0.1g쯤은 잘못된 것이 확실하니까.
배가 아파 온다. 똥을 누고 싶다. 하지만 속으면 안 된다. 나는 운다. 나는 웃는다. 하지만 또 속으면 안 된다. 배가 아파 온다. 똥을 누고 싶다. 하지만 속으면 안 된다. 나는 운다. 나는 웃는다. 하지만 또 속으면 안 된다. 절대로 속으면 안 된다. 그쯤하면 되었다. 대체 얼마나 나는 어지럽게 분열되어야 하나. 엄마와 아빠가 최소한 그렇게만 하지 않았더라도 이런 것은...... 아니다. 어차피 인식들은 뒤죽박죽이었고, 현실은 엉터리 가능성이었고, 내가 믿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난 정말 바보였다. 버림받았다. 모든 것들을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내 마음도 그렇게 생각했기에 내가 가진 인식을 믿어버렸다. 왔다 갔다. 이런 날벼락이! 이 세상에 혼자 남은 듯한...... 처절한 하늘이 내게 붉은 서러움으로 무너져 내려 나를 깊은 곳으로 떨어뜨린다.
아주머니는 고개를 갸웃뚱 한다. 얼굴이 제법 심각해 보인다.
“아니, 얘야. 왜 그러냐니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수박을 짓뭉갠다. 아주머니는 내 어깨를 붙잡는다. 그래도 나는 멈추지 않는다. 그저 한 번 웃어줄 뿐.
“아니, 예가!”
아주머니가 내 옷덜미를 잡아챈다. 덩치도 작은 초등학교 4학년 짜리로서는 우악스러운 아주머니의 아귀힘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아주머니는 뚫어져라 나를 쳐다본다. 나는 지금도 속고 있을 지도 모른다. 내 인식의 거짓된 투사 속에 있을 지도 모른다. 아주머니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한다. 그리고 말한다.
“엄마, 아빠를 죽였어요.”
......
......
...... 나는 그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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